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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대자연만큼 아름다웠던 두 남녀의 사랑, 음악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 K.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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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그가 클라리넷을 위해 남긴, 아울러 자신의 “좋은 친구”였던 슈타틀러를 위해 작곡한 또 하나의 걸작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 K.622>를 듣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이 곡은 한 편의 영화 때문에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엘비라 마디간’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피아노 협주곡 21번 C장조 K.467>과 비슷하지요.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를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각인시켰던 영화는 바로 <아웃 오브 아프리카>였습니다.

말년의 모차르트, 그래봤자 30대 초반이 조금 넘은 모차르트가 각별히 관심을 가졌던 악기로 클라리넷을 빼놓을 수 없다는 이야기는 지난번에 했습니다. 그가 왜 클라리넷을 사랑하게 됐고, 그래서 무슨 곡을 작곡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지난 6월 3일자 <내 인생의 클래식 101(//86chu.com/Article/View/22266)>에 게재돼 있습니다. 사회적으로는 악기의 개량과 발전에 영향을 받았고, 개인적으로는 클라리넷 연주자였던 안톤 슈타틀러(1753~1812)와의 우정이 계기였다는 내용을 전해 드렸습니다. 잠시 클릭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은 그가 클라리넷을 위해 남긴, 아울러 자신의 “좋은 친구”였던 슈타틀러를 위해 작곡한 또 하나의 걸작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 K.622>를 듣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이 곡은 한 편의 영화 때문에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엘비라 마디간’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피아노 협주곡 21번 C장조 K.467>과 비슷하지요.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를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각인시켰던 영화는 바로 <아웃 오브 아프리카>였습니다. 시드니 폴락이 메가폰을 들었고 메릴 스트립과 로버트 레드포드가 주연을 맡아 1985년에 세상에 나왔던 영화입니다. 이듬해 아카데미상에서 7개 부문을 휩쓸었지요.

기억나십니까? 영화 속의 여주인공 카렌은 엄청난 재산을 가진 덴마크 여성이지요. 영화의 원작은 소설 형식을 띤 회고록입니다. 1937년 출간됐습니다. 이삭 디네센이라는 여성이 영화의 여주인공 카렌의 실제 모델입니다. 로버트 레드포드가 연기했던 남자 주인공 데니스도 역시 실재했던 인물입니다. 다시 말해 이 영화는 실화입니다. 영화의 내용을 간단히 압축하자면, 아프리카의 대자연 속에서 펼쳐지는 유부녀 카렌과 역마살 낀 로맨티스트 데니스의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단지 그것만이라면 이 영화가 그토록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기를 얻진 못했을 겁니다. 그러면 무엇이었을까요? 아마도 이 영화는 ‘잃어버린 낭만의 환기’ 때문에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을 겁니다. 물론 그 낭만 속에는 현대의 도시인들이 잃어버린 ‘원시적 자연’도 포함돼 있었겠지요. 1980년대 중반, 고만고만한 일상을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이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이 영화는 그래서 인상적이었습니다. 지금 봐도 여전히 그렇습니다. 아프리카의 장엄한 풍광과 거대한 커피 농장을 배경으로, 아무런 계산도 깔리지 않은 두 남녀의 사랑이 벌거숭이처럼 펼쳐집니다.


영화 속의 데니스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말하자면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에 등장하는 ‘그리스인 조르바’와 비슷한 캐릭터입니다. 직업이 사냥꾼인 그는 아프리카에까지 축음기를 가져와서 음악을 듣습니다. 영화에서는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의 2악장이 곳곳에서 흘러나오지요. 카렌과 데니스가 작은 경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날아가는 장면, 또 초원에서 데니스가 카렌의 머리를 감겨주던 장면에서도 느린 템포의 2악장이 잔잔하게 흘러나옵니다. 결국 카렌은 남편인 브릭센 남작과 이혼하고 데니스에게 청혼하지요. 그러나 데니스는 그 청혼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어쩌면 그는 일정한 곳에 정착해 안락하게 사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진정으로 방랑하기 위해서는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의 용기가 필요한지도 모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적당히 놀고, 적당히 돌아가려고 하지요. 하지만 데니스는 돌아갈 곳을 아예 만들지 않습니다. 물론 이런 사람에게는 대개 비극적인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법입니다. 영화 속 데니스의 마지막도 그렇습니다.

자, 다시 음악으로 돌아옵니다. 6월 3일자 칼럼은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5중주 A장조 K.581>을 설명하고 있는 글입니다. ‘인간의 희로애락을 매력적으로 표현해내다’라는 제목이 붙어 있군요. 물론 제가 붙인 제목은 아니지요. 채널예스 편집실에서 붙였습니다. 어쨌든 ‘인간의 감정을 표현한다’는 측면에서 클라리넷을 따라올 악기는 그리 많지 않는 게 사실입니다. 일단 넓은 음역이 그렇습니다. 클라리넷의 음역은 여성의 음역과 거의 일치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3옥타브 반 정도의 음역을 지녔는데, 여성의 알토에서 소프라노까지와 거의 흡사합니다. 현악기 중에서는 바이올린이 비슷한 음역을 지녔습니다.

클라리넷은 넓은 음역을 자유자재로 오가면서 다양한 음색을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비슷한 음역의 다른 목관악기, 이를테면 오보에 같은 악기와 차별성을 갖습니다. 다시 말해 오보에는 저음부터 고음까지 거의 동일한 음색을 지녔습니다. 물론 그것은 장단점의 문제라기보다는 악기 고유의 ‘캐락터’라고 봐야 하겠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는 항심(恒心)이야말로 오보에의 캐릭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클라리넷은 음역마다 음색이 바뀌면서 기쁨과 슬픔의 감정을 빠르게 오갈 수 있다는 특징을 지녔습니다. 다시 말해 클라리넷은 순발력이 뛰어난 연기자에 가깝습니다. 다정다감하고 로맨틱한 성품을 지닌 악기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모차르트는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를 1791년 9월 28일부터 11월 15일 사이에 작곡했다는 기록을 남겨놨습니다. 자, 그렇다면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나기 20일 전에 완성했다는 얘깁니다. 알려져 있다시피 모차르트는 같은 해 12월 5일 <레퀴엠>을 작곡하던 도중에 병사했지요. 그래서 <클라리넷 5중주 A장조 K.581>은 모차르트가 세상에 남긴 최후의 협주곡입니다.


1악장은 전체 3개 악장 가운데 길이가 가장 깁니다. 전체 연주시간 약 30분 중에서 거의 절반가량을 차지합니다. 먼저 오케스트라 합주가 첫번째 주제를 제시합니다. 산뜻하고 매끄러우면서도 음악적으로 균형 잡힌 선율입니다. 이 선율을 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현악기들, 이어서 관악기들이 차례로 받아서 연주합니다. 그 주제 선율은 1악장이 끝날 때까지 여러 차례 등장합니다. 첫주제에 상응하는 두번째 주제는 별도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물론 첫번째 주제가 변화, 발전하는 과정에서 단편적으로 끼어드는 에피소드 풍의 주제들은 종종 있습니다. 1악장은 전체적으로 매우 균형 잡힌, 그래서 고전적인 격조를 보여주는 악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장면에서는 모차르트 특유의 유머러스한 감정을 드러내지만, 또 어떤 장면에서는 어두운 그림자를 예감케 합니다. 클라리넷이 화려한 독주 기교를 뽐내는 카덴차는 별도로 존재하지 않지만, 그래도 클라리넷이 곳곳에서 빼어난 기교를 펼쳐 보입니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와 함께 기억되는 2악장은 느린 아다지오 악장입니다. 현악기들이 반주로 깔리면서 클라리넷이 주선율을 연주합니다. 마치 클라리넷이 아련하고 슬픈 노래를 부르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주제 선율이 점점 희미해질 무렵, 오케스트라가 다시 한번 그 선율을 노래합니다. 이어서 조바꿈. 다시 클라리넷이 슬픈 곡조를 노래하다가, 역시 오케스트라가 그것을 받아 연주합니다. 이어서 클라리넷이 카덴차 풍의 화려한 테크닉을 선보이지만 주조(主調)는 역시 슬픔입니다. 잠시 후 원래의 주선율로 돌아와 클라리넷이 느리고 슬픈 노래를 다시 부르고, 현악기들이 잔잔하게 배경으로 깔립니다. 마지막으로 클라리넷이 테크니컬하면서도 정갈한 연주를 한차례 선보인 후 막을 내립니다. 코다는 매우 간결하면서도 아련한 여운을 남깁니다.


3악장은 경쾌하고 장난스러운 느낌으로 문을 엽니다. 죽음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도 역시 모차르트답지요. 18세기 후반의 소나타나 교향곡, 협주곡 등의 마지막 악장에서 자주 나타나는 론도 형식의 악장입니다. 하나의 주제가 여러 개의 삽입부(중간부)를 사이에 두고 여러 차례 반복해 등장합니다. 그래서 마치 빙글빙글 도는 듯한 ‘원무’(圓舞)의 느낌을 풍기지요. 물론 이런 음악적인 설명에 심각하게 귀 기울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냥 마음 가는 대로, 음악을 받아들이는 내 몸의 감각을 자연스럽게 따라가는 것으로 족합니다. 하지만 악장의 서두에서 클라리넷이 경쾌하게 연주하는, 짧게 부서지는 스타카토 풍의 주제 선율은 꼭 기억해두시기 바랍니다. ‘짜잔 짜라잔잔잔잔~’ 하는 선율입니다. 악장이 끝날 때까지 여러 차례 들려올 겁니다.


알프레트 프린츠(Alfred Prinz), 칼 뵘ㆍ빈 필하모닉/1972년/DG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을 거론할 때 가장 빈번하게 첫 순위에 꼽히는 음반이다. 프린츠의 연주는 클라리넷의 화려한 기교와 풍부한 음색, 상쾌한 블로윙 등에서 흠잡을 곳을 찾기 어렵다. 그의 스승인 레오폴트 블라흐의 연주(로진스키 지휘)도 인구에 회자돼온 명연이었으나 1954년의 모노녹음인 까닭에 추천목록에 올려놓기에는 애매하다. 프린츠와 뵘의 협연은 빈 풍의 고전적 양식미를 유지하면서 풍성하고 유려한 사운드를 들려준다. 템포가 종종 느리게 느껴지는 것은 뵘 특유의 모차르트 해석으로 보인다. 본문에서 언급한 클라리넷의 매력, 순발력 뛰어난 감정 표현을 잘 보여주고 있는 음반이다.



데이비드 쉬프린(David Shifrin), 제라드 슈워츠(Gerard Schwarz)ㆍ모스틀리 모차르트 오케스트라/1984/Delos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5중주 A장조>를 소개할 때도 추천했던 음반이다. <협주곡 A장조>가 커플링돼 있다. 쉬프린은 한국에도 다녀간 적이 있는 클라리넷 명장이지만 국내에서는 웬일인지 인기가 시들하다. 물론 해외에서는 이 녹음에 대한 평가와 인기가 높다. 특히 영국과 미국에서 높은 점수를 얻고 있다. 어찌 보면 다소 공격적으로 느껴지는 연주다. 빠른 템포로 황홀한 모차르트를 들려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거친 연주는 아니다. 클라리넷과 오케스트라가 주고받는 앙상블이 디테일에서도 치밀하다. 전체적인 사운드는 풍성하고 클라리넷의 음색은 탐미적이라고 느껴질 만큼 아름답다.



안토니 페이(Antony Pay), 크리스토퍼 호그우드(Christopher Hogwood)ㆍ고음악 아카데미(Academy of Ancient Music)/1984년/Decca

이번 칼럼을 쓰면서 반복적으로 청취한 음반이다. 매우 정갈하고 직진성이 돋보이는 연주다. 고음악 아카데미의 창립자 호그우드가 지휘하는 연주이니만치, 편성은 당연히 원전악기다. 영국의 털북숭이 연주자 페이는 이 녹음에서 바셋 클라리넷을 불고 있다. 모차르트가 염두에 두고 작곡했던, 안톤 슈타틀러가 고안했던 것으로 전해지는 바셋 클라리넷은 보통 클라리넷보다 밑으로 3도 음정을 더 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당시의 악기가 전해지지 못하는 까닭에, 페이가 사용하는 바셋 클라리넷은 기록을 통해 추정ㆍ복원된 악기다. 비브라토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 깔끔한 연주가 일품이다. 성악으로 치자면 엠마 커크비의 목소리처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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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문학수

1961년 강원도 묵호에서 태어났다.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에 소위 ‘클래식’이라고 부르는 서양음악을 처음 접했다. 청년시절에는 음악을 멀리 한 적도 있다. 서양음악의 쳇바퀴가 어딘지 모르게 답답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구 부르주아 예술에 탐닉한다는 주변의 빈정거림도 한몫을 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 음악에 대한 불필요한 부담을 다소나마 털어버렸고, 클래식은 물론이고 재즈에도 한동안 빠졌다. 하지만 몸도 마음도 중년으로 접어들면서 재즈에 대한 애호는 점차 사라졌다. 특히 좋아하는 장르는 대편성의 관현악이거나 피아노 독주다. 약간 극과 극의 취향이다. 경향신문에서 문화부장을 두차례 지냈고, 지금은 다시 취재 현장으로 돌아와 음악담당 선임기자로 일하고 있다.

2013년 2월 철학적 클래식 읽기의 세계로 초대하는 <아다지오 소스테누토>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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