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리넷 5중주 A장조 K.581>은 클라리넷 외에 두 대의 바이올린과 각각 한 대씩의 비올라와 첼로로 이뤄진, 그러니까 기존의 현악4중주에 클라리넷 한 대를 덧붙인 편성입니다. 클라리넷이 펼쳐내는 우아한 음색과 화려한 기교, 인생의 희로애락을 사람의 목소리로 노래하는 듯한 표현력이 대단히 매력적인 곡입니다. 이렇게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 클라리넷 곡은 모차르트 이전에는 당연히 없었고, 그가 떠난 이후에도 오랫동안 세상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출처: 위키피디아]
작곡가들도 자신이 특별히 좋아하는 악기가 있습니다. 특히 말년의 모차르트가 사랑했던 악기로는 클라리넷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물론 말년이라고 해봤자 30대 초반이 겨우 넘은 나이였지요. 오스트리아 빈에서 생애의 마지막에 들어섰던 모차르트는 클라리넷을 주인공으로 삼은 5중주곡을 1789년에 작곡했습니다. 또 그로부터 2년 뒤에, 그러니까 세상을 떠난 해였던 1891년에는 클라리넷 협주곡을 한 편 완성하지요. 두 곡 모두 걸작입니다. 클라리넷의 매우 중요한 레퍼토리로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기악 음악의 발전은 악기의 발전과 궤를 같이합니다. 작곡가들도 악기의 개량과 발전에 자극과 영감을 받아서 작곡에 손을 대는 것이지요. 모차르트가 18세기 후반에 두 곡의 클라리넷 걸작을 잇따라 작곡한 이면에는 그런 ‘물질적 배경’이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클라리넷은 플루트, 오보에, 바순 등과 더불어 목관악기 군(群)에 속하는 악기이지요. 목관악기 연주자를 지망하는 학생들이 가장 많이 손에 잡는 악기가 아마도 플루트와 클라리넷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중에서도 클라리넷은 중세 시절부터 쓰였던 샬뤼모(chalumeau)라는 악기를 조상으로 삼습니다. 뉘른베르크의 악기 제작자였던 요한 크리스토프 텐너(1655~1707)가 그것을 오늘날의 클라리넷과 비교적 흡사하게 개량하지요. 이어서 그의 아들들이 가업을 이어받아 한 단계 더 발전시킵니다.
클라리넷은 모차르트가 맹활약을 펼치던 18세기 후반에 독일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룹니다. 넓은 음역과 그로 인한 풍부한 표현력이 가장 큰 장점으로 손꼽히지요. 이 악기의 음역은 다른 목관악기에 비해 한 옥타브 정도 넓습니다. 또 음량 조절이 용이해서 아주 여린 소리까지도 음정의 흔들림 없이 낼 수가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다양한 표정의 연주가 가능하지요. 슬픔과 기쁨, 비탄과 환희, 질투와 갈망 등 인간의 갖가지 희로애락을 리얼하게 표현해낼 수 있는 매력적인 악기입니다. 아마 그래서 모차르트도 클라리넷에 빠졌을 것이라고 짐작해봅니다.
물론 이유는 또 있습니다. 모차르트가 클라리넷에 매혹당한 또 하나의 동기는 ‘우정’이었습니다. 누구와의 우정이었을까요? 모차르트로 하여금 클라리넷의 아름다운 음색과 다양한 표현력에 눈을 뜨게 해준 친구는 당대의 뛰어난 클라리넷 연주자였던 안톤 슈타틀러(1753~1812)였습니다. 빈 궁정 오케스트라 단원이었던 그는 모차르트가 몸 담았던 비밀결사조직 ‘프리메이슨’에 함께 참여했던 동료이기도 했지요. 그가 모차르트의 곡을 처음으로 연주한 것은 1784년 빈의 궁정극장(부르크 극장)에서 세레나데 10번 ‘그랑 파르티타’를 초연할 때였습니다. 일주일 뒤에는 같은 장소에서 ‘피아노와 목관을 위한 5중주(KV 452)’를 모차르트와 슈타틀러가 함께 연주하지요. 이렇게 맺은 인연이 프리메이슨이라는 비밀결사조직으로 이어지고, 모차르트는 친구에게 ‘노치비키치’(Noschibikitschi)라는 우스꽝스런 별명까지 붙여줍니다. 개구쟁이 같은 성품을 지녔던 모차르트는 친구들의 별명을 지어 부르는 것 좋아했는데, ‘노치비키치’라는 특이한 조어(造語)는 우리 식으로 얘기해 ‘엉뚱맨’ 정도로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말하자면 친밀한 우정을 그렇게 표현했던 것이었겠지요.
알려져 있다시피 모차르트는 빈에서 보낸 마지막 시기, 특히 세상을 떠나기 3~4년 전부터 경제적으로 몹시 쪼들렸습니다. 그래서 여러 사람에게 돈을 빌려 쓰는 일이 허다했습니다. 당시의 모차르트는 프리메이슨의 동료 푸흐베르크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썼지요. “내가 싫어하는 사람에게까지도 도움을 청해야 할 만큼 안 좋은 상황이라네. 좋은 친구, 형제인 당신마저 나를 버린다면, 나와 가련한 병든 아내 그리고 아이도 파멸해 버릴 것이라네.” 말을 에둘러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토해내는 모차르트의 성품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참으로 애절한 가장(家長)의 호소가 아닐 수 없습니다. 클라리넷 연주자 슈타틀러는 바로 이 시절의 모차르트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친구였습니다.
<클라리넷 5중주 A장조 K.581>은 그 우정에 대한 답례였던 셈이지요. 클라리넷 외에 두 대의 바이올린과 각각 한 대씩의 비올라와 첼로로 이뤄진, 그러니까 기존의 현악4중주에 클라리넷 한 대를 덧붙인 편성입니다. 클라리넷이 펼쳐내는 우아한 음색과 화려한 기교, 인생의 희로애락을 사람의 목소리로 노래하는 듯한 표현력이 대단히 매력적인 곡입니다. 이렇게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 클라리넷 곡은 모차르트 이전에는 당연히 없었고, 그가 떠난 이후에도 오랫동안 세상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100년쯤 후, 브람스가 1891년에 <클라리넷 5중주 b단조>를 쓸 때까지 그랬습니다.
1악장은 알레그로 템포로 빠르게 문을 엽니다. 현악기들이 깔끔하고 풍요로운 화음을 노래하고, 이어서 클라리넷이 물고기처럼 유연한 연속음을 펼쳐내지요. 독일의 음악사가 헤르만 아베르트(1871~1927)가 “맑게 갠 봄날 아침”이라고 표현했던 것처럼 청명한 느낌으로 가득합니다. 현악기들과 클라리넷이 첫번째 주제를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깨끗하면서도 애틋한 분위기의 두번째 주제가 등장하지요. 그 투명한 애상감이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짙어집니다.
2악장은 느린 라르게토(Larghetto) 악장.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5중주에서 가장 사랑받는 악장입니다. 클라리넷이 아릿한 슬픔의 곡조를 상당히 길게 노래하고 현악기들이 배경에 깔립니다. 이어서 제1바이올린이 애상감 가득한 그 선율을 이어받지요. 슬픔의 정조가 물씬한 악장입니다. 아울러 한 마리 백조의 춤처럼 우아하고 때때로 관능적이기도 하지요. 클라리넷이 마치 눈물(통곡이나 오열이 아니라, 조용한 눈물입니다)을 흘리는 것 같은 분위기가 끝없이 이어지고, 제1바이올린이 그 옆에서 함께 울어주는 풍경이 펼쳐집니다.
3악장에서는 다시 환한 분위기로 돌아옵니다. 클라리넷이 펼쳐내는 넓은 음역과 다양한 표정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악장이지요. 전체적으로 우아한 춤곡의 느낌을 풍기지만, 악장의 중간쯤에서 바이올린과 비올라가 주고받는 선율에는 역시 외로움과 슬픔의 그림자가 짙습니다.
4악장은 하나의 주제와 6개의 변주로 이뤄진 악장. 현악기들이 짧은 음형을 새의 지저귐처럼 노래하면서 주제를 제시합니다. 이어서 클라리넷이 여유 있게, 약간은 능청스러운 느낌으로 바통을 받습니다. 그것이 첫번째 변주입니다. 이어지는 변주들이 어떻게 펼쳐지는지 귀를 기울여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때로는 빠르고 때로는 느립니다. 템포가 확연히 느려지는 다섯번째 변주에서 클라리넷이 들려주는 저음의 매력도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다 다시 템포가 빨라지면서 마지막 변주로 들어섭니다. 그 지점이 바로 코다(종결)입니다.
전설처럼 회자돼온 모차르트 클라리넷 5중주의 명연이다. 블라흐(1902~1956)는 세상을 떠난 지 반세기가 지났어도 여전히 위대한 연주자의 표상으로 남았다. 그가 생전에 연주한 모차르트와 브람스의 클라리넷 곡들은 아직까지도 음반으로 재발매된다. 그만큼 찾는 사람들이 꾸준하다. 음색은 다소 음울하고 템포는 전반적으로 느리다. 전체 악장 중에서도 라르게토의 2악장에서 블라흐의 클라리넷이 들려주는 고적한 슬픔이 단연코 명연으로 손꼽힌다. 다만, 1951년도 녹음인 탓에 음질에 대한 기대는 접어두는 것이 좋겠다.
▶알프레트 프린츠(Alfred Prinz)ㆍ빈 실내합주단/1979년/Denon
프린츠는 앞서 언급한 블라흐의 제자다. 하지만 스승과는 다른 음색을 보여준다. 스승이 정중동을 추구했던 것에 비해 한결 생동감 넘치는 연주라고 할 수 있다. 빈 필하모닉의 수석 연주자이기도 했던 프린츠의 장점은 역시 화려한 음색과 능란한 테크닉이다. 빈 실내합주단과 함께 하고 있는 이 연주에서도 그렇다. 템포에는 속도감이 넘치고 음색도 환하다. 전체적으로 앙상블이 좋은 연주, 그러면서도 클라리넷의 활약이 선명하다. 빈 풍의 연주를 대표하는 녹음으로 손꼽힌다.
▶데이비드 쉬프린(David Shifrin)ㆍ체임버뮤직 노스웨스트/1984년/Delos
쉬프린은 1999년에도 에머슨 현악4중주단과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5중주를 녹음했다. 브람스의 클라리넷 5중주가 커플링된 음반(DG)이다. 만약 오늘의 선곡이 브람스였다면 이 녹음을 추천음반 리스트에 올렸을 것. 하지만 모차르트 5중주에서는 지나친 선명함, 혹은 대비의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스타일이 오히려 음악의 맛을 저해하는 측면이 있다. 그보다는 1984년 체임버뮤직 노스웨스트와 함께 한 녹음을 추천 목록에 올린다. 비교적 빠른 템포에 풍성하고 따뜻한 음색이 돋보인다. 클라리넷의 다채로운 표현력은 물론, 현과의 앙상블도 좋다.
1961년 강원도 묵호에서 태어났다.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에 소위 ‘클래식’이라고 부르는 서양음악을 처음 접했다. 청년시절에는 음악을 멀리 한 적도 있다. 서양음악의 쳇바퀴가 어딘지 모르게 답답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구 부르주아 예술에 탐닉한다는 주변의 빈정거림도 한몫을 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 음악에 대한 불필요한 부담을 다소나마 털어버렸고, 클래식은 물론이고 재즈에도 한동안 빠졌다. 하지만 몸도 마음도 중년으로 접어들면서 재즈에 대한 애호는 점차 사라졌다. 특히 좋아하는 장르는 대편성의 관현악이거나 피아노 독주다. 약간 극과 극의 취향이다. 경향신문에서 문화부장을 두차례 지냈고, 지금은 다시 취재 현장으로 돌아와 음악담당 선임기자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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