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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거리는 온통 버스커의 벚꽃 노래로 가득하더라

삶도 매일 매일 축제가 될 수 있으면… 날마다 축제 - 벚꽃벚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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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커 버스커’의 벚꽃 노래를 듣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꽃을 보는 일의 아름다움, 혼자 걷는 것의 서정성, 무엇보다 손을 잡고 함께 걷는 것의 낭만에 대해서. 그런 것들을 떠올릴 수 있는 봄이라 좋다. 서울의 기온이 어느 날 28도쯤으로 올라가 버린다면 그 모든 것들이 무너지겠지만. 그러니 조금이라도 꽃이 남아 있을 때, 봄을 부릅뜨고 봐야 할 것 같다. 좋은 것들은 언제나 빠르게 사라져 버리니까.

날마다 축제

올해 사소하지만 중요한 결심 한 가지를 했다. 삼십 대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이제야말로 암보험을 한 가지 든다거나, 이사를 한다거나, 파격적인 작품을 발표한다거나 하는 거창한 계획은 아니다. 며칠 전, 청도를 여행하며 ‘복사꽃 마을’이라 이름 붙여진 어떤 동네를 걷다가 사는 동안 4월의 일주일 정도는 남쪽에서 지내겠다고 결심했다. 박지윤의 ‘그대는 나무 같아’나 브로콜리 너마저의 ‘유자차’ 같은 곡을 mp3에 가득 담아 꽂고 매일 매일 들으며 꽃을 보러 다니겠다고 말이다.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4월의 나무들이 뿜어내는 연두 빛 그늘 아래에서 산 너머 나무들을 바라보며 다짐했다. 일을 쉬고 4월에는 그저 남쪽에 내려가 있겠다고 말이다. 그렇게 결정하자 문득 내 삶이 말할 수 없이 호사스러워지는 기분이었다. 매이지 않는 직업을 가진 덕분에 그런 삶이 가능하다는 게 감사했다. 황당한 생각들을 늘어놓아도 멋진 생각이라고 말해주는 친구가 있다는 것도 고마웠다.

서울에 있을 때, 4월의 내가 본 것은 벚꽃과 목련과 철쭉 정도였다. 그나마 봄이 너무 짧아 미처 느낄 사이 없이 봄은 언제나 내 마음보다 먼저 지나갔다. 봄과 가을은 점점 ‘눈을 부릅뜨고 바라보지 않으면’ 지나가버리는 어떤 것이 되 버렸다. 그러니까 기상청에서 올해 진해 군항제가 3월 말에 벌어진다는 얘길 듣고 나면, 기다렸다는 듯이 봄비가 내리고, 그나마 있던 간신히 붙어 있던 벚꽃들이 전부 떨어져 땅 바닥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 식인 거다. 그래서 봄이면 나는 언제나 지나간 봄을 안타까워하다가 ‘4월 이야기’ 같은 영화로 마음을 달래곤 했다. 봄이 간신히 존재하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걸 깨달은 사람처럼 멍한 얼굴로.

대구로 이사를 하고 난 후, 태어나서 가장 많은 꽃들을 봤다. 청도에 있는 ‘운문사’로 가는 길에 수없이 많은 유실수의 꽃들을 봤다. 달게 열매 맺는 것들이 애써 밀어 올린 꽃들이 유독 예쁘다는 걸 왜 이전엔 몰랐을까. 분홍색 꽃 대궐처럼 피어난 복숭아꽃, 흰 살구꽃. ‘삼국유사의 고장’이라고 적힌 경상도 ‘군위’에선 두 눈을 뜨고도 놀랄 정도로 많은 희고 소복한 자두 꽃들을 보았다. 돌배나무 위에 핀 하얀색 배꽃도 ‘이화’라는 이름답게 바람에 날려 아름답게 산화하고 있었다.

‘복사꽃 마을’에서 활짝 핀 복숭아꽃을 보다가 삼국지의 ‘도원결의’가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했을까란 의문이 든 건 그때였다.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에서 유비, 관우, 장비가 복숭아나무 아래에서 의형제를 맺게 되었다는 것에서 유래한 도원결의. 하지만 삼국지에 묘사된 ‘관우’의 키는 9척. 장비의 키가 8척이고 유비가 7척인데, 이것을 현재의 키로 환산해보면 관우의 키는 2미터가 훌쩍 넘는다. 현재의 키로 환산하면 장비가 대략 196센티미터, 유비가 173센티미터인 셈이다. 아무리 커도 복숭아나무가 그들보다 클 리 없기 때문에 복숭아나무 근처에 서서 얘기하기도, 그렇다고 나무 밑에 앉아서 얘기하기에도 애매하다. 결의를 위해 나무 밑에 앉았는데, 앉은키가 나무보다 더 크다면? 결의를 위해 나무 아래에 섰는데 꽃들이 가슴팍 정도에 걸쳐 있다면? ‘도원결의’가 정설이든 아니든 생각만 해도 흐드러진 복숭아꽃 사이로 불쑥 목이 나와 있는 관우, 유비, 장비의 얼굴이 그려져서 자꾸 웃음이 났다.

삶이 매일 매일 축제가 될 수 있을까. 진해의 벚꽃 축제, 창녕의 유채꽃 축제, 청도의 유등축제 등을 보다가, 나이가 들면 따뜻한 곳에 살면서 지방의 이런 저런 축제를 따라 여행을 하면 가능할 것 같단 생각도 들었다. 청도에 들러선 말로만 듣던 ‘소싸움 축제’를 보았다. 내가 생각한 것과 달리 경기장은 현대식으로 지어져 있었다. 게다가 싸움소의 이름이 메시나 ‘푸르미르’라니, ‘콩알’과 ‘꼴통’이라니 말이다. 경기 종료 시간에 우루루 몰려가 ‘마권’이 아니라 ‘우권’을 사들고 검은색 플러스 펜으로 자신이 응원하는 소에 돈을 거는 사람들을 보는 것도 꽤 인상적이었다.

내가 본 소싸움 경기는 9경기와 10경기. 메시와 킹카의 경기에선 3초 만에 킹카의 승리. 봉기와 탱고와의 경기에선 탱고가 20분이 넘는 격투 끝에 승리했다. 소의 몸무게는 697킬로그램. 뿔걸이와 되받아치기가 특기인 이런 소들이 뿔로 서로를 들이박는 장면이라던가, 몸을 기울인 채 뿔로 버티고 몇 분씩 서 있는 장면은 터프했다. 격분한 소싸움 해설자의 말투도 흥미로웠다. “자! 탱고의 왼뿔 연타 공격! 다섯 방, 여섯 방, 일곱 방!!! 자빠졌습니다!” 지방 축제를 돌아다니자 지방 축제만 전문적으로 쫓아다니는 길거리 장돌뱅이와도 계속해서 마주쳤다. 전라도 광주 남자가 경상도 청도에 와서 짝퉁 ‘나훈아 디너쇼’를 벌이는 것도 남쪽 여행이 준 선물이었다.


버스커? 버스커!

대구의 ‘동성로’를 걷는데 온통 ‘버스커 버스커’의 노래들이었다. 골목 하나를 지나고, 가게를 스쳐지나갈 때마다 버스커 버스커의 다른 노래라 무척 놀랐다. 지금은 사라진 풍경, 뭐랄까 1990년대 유행하는 가요가 끝도 없이 흐르던 번잡한 강남역의 타워 레코드 앞을 지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버스커 버스커’의 ‘벚꽃 엔딩’을 들으며 봄바람이 부는 도심의 밤길을 빠르게 걸었다. 여수 밤바다, 외로움증폭장치, 첫사랑, 이상형……

길을 걷는 1시간 동안 적어도 스무 번 이상 보컬 장범준의 목소리를 들었다. ‘너와 함께 걷고 싶다, 너와 함께 걷고 싶다, 여수 밤바다.’ 1989년 생. 24살의 남자. 장범준은 단순한 멜로디의 복고풍 노래를 담담하게 부르고 있었다. 좋아하는 여자에게 세 번쯤 차인 사연 많은 남자가 낼 수 있는, 어쩐지 쓸쓸한 목소리였다.

대구에는 ‘대백’이란 이름의 백화점이 많았다. 대구엔 커다란 문구점들이 많았다. 예쁘게 대구 사투리를 쓰는 여자들도 많았다. ‘대구 보건대학교’로 가는 버스 뒷좌석에선 자신이 ‘서울 말’과 ‘대구 말’ 두 가지를 완벽히 말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귀여운 남자애를 보기도 했다. 심야영화가 5천원인 극장에 들어가 ‘언터처블’을 보기도 했다.

밤에 걷는 동성로의 어떤 골목은 신주쿠나 하라주쿠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상점들이 빼곡하게 늘어선 뒷골목을 걷자 꼭 2009년도의 일본으로 여행 온 기분도 들었다. 아직 쓰나미가 몰려오기 전, 방사능에 피폭되지 않은 평화로운 시절의 도쿄. 멀지 않은 곳에 커다란 일본 고양이 인형이 손짓하고 있었다. 다양한 사케를 파는 이자카야였다. 예쁜 티셔츠를 파는 편집 숍 앞에서 다시 ‘버스커 버스커’의 ‘벚꽃 엔딩’이 울려 퍼졌다.


그대여 그대여 그대여 그대여 그대여

오늘은 우리 같이 걸어요 이 거리를
밤에 들려오는 자장노래 어떤가요 오예
몰랐던 그대와 단 둘이 손 잡고
알 수 없는 이 떨림과 둘이 걸어요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우우 둘이 걸어요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우우 둘이 걸어요

오예

그대여 우리 이제 손 잡아요 이 거리에
마침 들려오는 사랑 노래 어떤가요 오예
사랑하는 그대와 단 둘이 손잡고
알 수 없는 이 거리를 둘이 걸어요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우우 둘이 걸어요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우우 둘이 걸어요

바람 불면 울렁이는 기분 탓에 나도 모르게
바람 불면 저편에서 그대여 니 모습이 자꾸 겹쳐
오 또 울렁이는 기분 탓에 나도 모르게
바람 불면 저편에서 그대여 니 모습이 자꾸 겹쳐

사랑하는 연인들이 많군요 알 수 없는 친구들이 많아요
흩날리는 벚꽃 잎이 많군요 좋아요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우우 둘이 걸어요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우우 둘이 걸어요

그대여 그대여 그대여 그대여 그대여



‘벚꽃 엔딩’을 듣던 밤, 남쪽 도시에서 흐드러지게 핀 벚꽃과 매화꽃을 보았다. 봄이 정말 봄이라고 느껴지는 봄이었다. 외로움을 외로워하고, 절망을 절망하던 어느 봄이 아니라, 봄이 봄처럼 느껴져 점점 더 봄의 밀도가 높아지는 동어반복적인 밤. 봄을 봄이라고 느낄 사이 없이 여름으로 건너 뛴 해가 더 많았기 때문에 하루 종일 걸어도 다리가 아프지 않았다. 모두 망할 꽃들 때문이었다. 꽃이 너무 예뻐서 그곳을 지나다니는 사람들 모두가 다 예뻐 보였다. 배경 음악은 이상형. 그대의 새끼발톱과 아홉 번째 척추 뼈와 쪼글쪼글한 팔꿈치와 통통한 손목과 뱃살이 아름다운 미칠 것 같은 남자가 부르는 그 노래가 봄밤이라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웠다.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건, 왜 한 해의 시작이 겨울의 한복판에 있느냐는 점이죠. 전날까지 불던 바람과 오늘 부는 바람이 전혀 다를 바 없이 추운 그런 나날의 하나가 도대체 왜 새해의 첫날이 되어야 할까요? 개나리와 진달래와 목련꽃이 만개하는 날을 새해의 첫날로 삼으면 좋을 텐데요. 꽃 피기 전날 밤이라면 한 해를 결산하는 연기대상도 뽑고, 다들 종로에 모여 보신각 종소리도 듣고, 그런 식으로 지난겨울, 지난 한 해의 일들을 말끔하게 정리하는 게 어울리지 않겠어요? 그리고 푹 자고 일어나면 온 동네에 봄꽃이 활짝 피어 있는 거죠. 그날부터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는 겁니다. 뉴스에서는 그날부터 따뜻하고 향기로운 새해가 시작됐다고 보도하겠죠. 희망에 가득 차서, 마치 새로운 세상의 시작을 알리는 것처럼. 멋지잖아요. 하룻밤 사이에 인생이 바뀌는, 뭐, 그런 경험을 매년 할 수 있다면 우리도 꽤 괜찮은 사람이 될 수도 있을 텐데요. 그러니 새해 첫날을 봄꽃들 만개하는 날로 바꿨으면 좋겠어요.



김연수의 『우리가 보낸 순간』을 읽다가 이 부분에 밑줄을 그었다. 아예 소리를 내어 읽어보기도 했었다. 창문을 열자 밖으로 어둠이 한껏 내려앉아 있었다. ‘입춘’이 지난 3월이었지만 아직은 겨울이었다. 찬바람을 맞으며 겨울 다음에 오게 될 봄을 생각했었다. 이런 기분을 가지는 건 역시 나 뿐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우리가 가진 네 개의 계절이 어쩐지 질서정연하고 순차적이지 않다는 느낌. 어색한 배열을 가진 잘못된 문제의 틀린 답 같다는 느낌말이다. 겨울과 봄 사이에 심리적 완충 지대가 있어야 한다고 믿던 그 시절의 나를 떠올리다가 김연수의 이 문장을 거짓말처럼 우연히도 찾아냈다.

그러니까 어째서 겨울 다음에는 봄이 오는 걸까. 도대체 왜? 모든 것이 말라있고, 모든 것이 어둡고, 모든 것이 쓸쓸한 계절 다음에 어째서 그토록 급격한 변화가 찾아드는 걸까. 색깔은 얼마나 다양해지는 지, 거리는 얼마나 풍성해지는 지… 그런 급격한 변화의 진폭을 누군들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어째서 새해 첫날, 꽁꽁 언 칼바람에 여자들은 서둘러 떡국을 끓여야 하는 걸까. 결국 ‘봄바람 난다’란 말은 다름 아닌 춥고 혹독한 겨울의 부작용이 아닐까. 수많은 의문들이 여전히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정말이지 새해 아침에 봄꽃이 피는 기적이 일어난다면, 사람들은 분명히 더 행복해질 텐데 말이다. 좋은 책 백 권이 무슨 소용인가. 딱 벚꽃 한 번 피면 될 일인데.

‘버스커 버스커’의 벚꽃 노래를 듣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꽃을 보는 일의 아름다움, 혼자 걷는 것의 서정성, 무엇보다 손을 잡고 함께 걷는 것의 낭만에 대해서. 그런 것들을 떠올릴 수 있는 봄이라 좋다. 서울의 기온이 어느 날 28도쯤으로 올라가 버린다면 그 모든 것들이 무너지겠지만. 그러니 조금이라도 꽃이 남아 있을 때, 봄을 부릅뜨고 봐야 할 것 같다. 좋은 것들은 언제나 빠르게 사라져 버리니까. 청춘이 그러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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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백영옥

장편소설 『스타일』로 제4회 세계문학상 수상. 2008년에서 2009년에 걸쳐 YES블로그에 장편소설 『다이어트의 여왕』 연재, 일간지 연재칼럼을 모아 낸 에세이집 『마놀로 블라닉 신고 산책하기』, 단편집 『아주 보통의 연애』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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