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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우리, 사치스럽게 살아요” - 김연수 『우리가 보낸 순간』 『7번 국도』

“날마다 글을 쓴다는 건, 자신이 원하는 그 사람이 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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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낸 순간』(소설)은 김연수 작가가 웹진 ‘문장’에서 문학집배원으로 매주 독자에게 배달한 문장들을 모았고, 『우리가 보낸 순간』(시)는 지난 한해 한국일보에 ‘시로 여는 아침’에 연재한 글을 담았다.

소설가 김연수가, 지난 연말 독자들에게 세 권의 책으로 찾아왔다. 김연수가 읽은 소설과 시를 꼽아 엮은 책 두 권 『우리가 보낸 순간-소설/시』『7번 국도-revisited』 개정판이다. 『우리가 보낸 순간』(소설)은 김연수 작가가 웹진 ‘문장’에서 문학집배원으로 매주 독자에게 배달한 문장들을 모았고, 『우리가 보낸 순간』(시)는 지난 한해 한국일보에 ‘시로 여는 아침’에 연재한 글을 담았다.

그의 경험과 추억이 담긴 짤막한 에세이들은, 낯선 시를 독자의 일상에 접속하게 만드는 콘센트 같은 역할을 한다. 같은 시기에 출간된 소설 『7번 국도-revisited』는 초기작 『7번 국도』의 개정판으로 한동안 절판되어 구할 수 없는 소설이었다. 고로 팬들에게는 더없이 반가운 겨울 소식.


이해할 수 없는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관하여

이상이 남긴 데드마스크를 둘러싼 진위논란을 다룬 소설 『꾿빠이 이상』, 유년의 기억과 추억을 담은 연작소설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소설이 삶의 어느 지점까지 닿을 수 있을까 치열하게 질문하는 소설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민생단 사건을 겪는 한 개인의 이야기 『밤은 노래한다』 1990년대 역사적 기록들 주변에 내팽개쳐진 개인들의 이야기를 엮어낸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 한다고 말하는 소설 『세계의 끝, 여자친구』…….

김연수의 소설은 다양한 배경 속에서 개인의 삶을 복원시킨다. 치밀한 자료조사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그의 소설 세계에서는 어느 것 하나 허투루 설정되어 있지 않다. 덕분에 그의 소설은 독자가 겪을 수 있는 최대의 경험치를 선사한다. 개인의 세계는 결국 마음의 세계다. 김연수는 이해할 수 없는 세계에서 벌어지는 무수한 마음의 변화를 설득력 있게 짚어낸다. 우연의 세계를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소설 속 인물이 어떠한 시대배경 속에 놓여져 있든 그가 겪는 상황에 함께 처하게 된다.

소설뿐 아니라, 김연수 작가가 칼럼이나 에세이에서 드러나는 개인의 취향, 언제나 노력하는 소설가의 모습은 소설의 세계를 넘어 작가 개인에 대한 호감으로까지 이어진 듯 하다. 많은 문학 지망생들이 김연수 작가를 롤모델로 삼거나, 그의 행사 때면 다양한 연령층의 독자들이 애정을 갖고 모이는 걸 보면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순간

그러니까 이런 감수성과 표현력은 그야말로 타고나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보고, 대학교 3학년 때 시로, 4학년 때는 소설가로 등단한 이력을 확인하고는, 역시 작가는 타고나는 것이라고 되뇌어본다. 그래서, 『우리가 보낸 순간: 소설』에 실려있는 에피소드. 시상식에 갔더니 한 소설가가 그에게 다가와 “천재십니다!” 라고 말해 충격을 받았다는 일화가 그저 농담으로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김연수 작가는 『우리가 보낸 순간』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백일장에 나가서도 상 한 번 타본 적 없었고’ ‘글 쓰는 재능이 있으리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일이 없었다.’(p.212) 인터뷰 중에도 “소설가로 데뷔한 이후, 글을 쓰다가 ‘아, 정말 내가 갈 길이 아니구나’ 좌절한 적도 많다”고 말했다.

예술가를 꿈꾸는 사람들은 대부분 재능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그런데 지금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작업에 몰두했던 시간에 대해 이야기한다. 결국 우리가 기억해야 할 『우리가 보낸 순간』은 소중한 것에 몰두했던 시간, 사랑했던 시간일 터. 이 기록을 통해 독자들은 그의 소중한 순간으로 초대받는다.

그가 어떻게 글을 써왔는지, 어떻게 작가가 되었는지, 어떤 마음으로 고독한 시간을 지나왔는지 그는 이야기한다. 그의 에세이를 읽고 있자면 흡사 한 작가의 영업비밀을 엿보는 것만 같다. 물론 알고 있다. 매일 읽고 쓰는 일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을. 그래서 조금은 더 매혹적이다. 그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매일 읽고 쓰는 일이 내게는 얼마나 놀라운 일을 일으킬 수 있을까 상상하게 된다.

1월, 매일 아침 ‘오늘이 최저기온’이라는 예보를 듣는 쌀쌀한 날, 『7번 국도』로 시작해, 『우리가 보낸 순간』들에 대해, 김연수 작가가 보낸 시간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처음 소설 쓰기에 매혹된 것은…”


첫 작품도 아닌 『7번 국도』를 개정하셨어요.

『7번 국도』는 이야기가 서사적으로 진행되지 않고, 시간이 앞뒤로 왔다 갔다 하는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개정을 하기 쉬운 거죠. 처음에 『7번 국도』』를 냈을 때도, 여러 개의 단편들 가운데 넣거나 빼고 발표를 한 셈이었어요. 그때도 시간이 흐른 뒤에 다시 쓰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서, 『7번 국도-revisited』라고 제목도 그때 지어뒀어요.”

『7번 국도』를 썼을 때 작가님이 27살이었어요. 그때와 지금, 소설 『7번 국도』는 어떻게 달라진 건가요?

“소설을 쓰는 사람들은 결국 시간에 대해 깨닫게 되는 것 같아요. 인생의 시간이 되게 길다는 것. 그래서 어느 시점을 잡아 글을 쓰느냐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져요. 스물 일곱 살 때 글을 쓸 때는, 27년 밖에 보내지 않은 삶이니까, 거기에 대해 쓰거든요. 마흔이 넘은 이 시점에서 글을 쓰게 되면, 그 뒤로도 시간이 아주 오랫동안 지속된다는 걸 알게 되는 거죠.

소설에서 주인공의 나이를 7살로 설정해도, 이 사람의 인생이 앞으로 70년 정도 있다는 걸 아는 상태에서 소설이 진행 되는 거예요. 현재 일을 쓰더라도, 지금의 일이 먼 훗날까지 영향을 받는 다는 걸 알고 쓰기 때문에 예전의 글과 달라질 수 밖에 없어요. 27살 때 쓴 『7번 국도』는, 시적인 접근이었어요. 서사가 없이 이미지가 계속 존재하고, 하나의 사건이 뒷일에 영향을 주지 않아요. 이번에는 소설적으로 접근한 것이고요.”



살아가는 건 때로 새로운 규모의 입자 가속기를 마주한 물리학자의 심정을 이해하는 일과 비슷했다. 그는 입자가속기 안에서 일어날 일들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 일을 관찰하는 순간, 자신의 짐작이 옳았든 옳지 않았든 무조건 그는 놀랄 것이다. 짐작하는 것과 실제로 지켜보는 건 전혀 다른 일이니까. 그러니 살아가면서 나는 수없이 많은 시간을 놀라면서 보낼 수밖에 없었다. (p.191)

『7번 국도-revisited』를 읽으면서, 작가님이 맨 처음 글을 쓸 때를 상상해봤어요.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에 대한 글 중에 ‘나만을 위한 소설을 썼는데 사람들이 읽어서 정말 깜짝 놀랐다’는 대목을 읽은 게 기억나더라고요. 그때는 어떤 글을 쓰고 싶으셨어요?

“딱히 어떤 글을 쓰고 싶다기보다, 글을 쓰는 일을 즐겼어요. 소설가, 시인, 극작가를 꿈꾼 게 아니라, 뭐든 쓰는 경험이 좋았어요. 그러니 결과물로 나온 이 텍스트는 굉장히 낯선 것이고, 쓴 과정이 기록된 글이 출판되어 팔린다고 생각하면 당혹스러운 거죠. 그 당시 저에게 중요한 것은 그만한 분량을 계속 써내는 것이 중요했거든요.”

그렇다면 지금, 계속 쓰는 행위는 작가님께 어떤 의미인가요?

“등단이 되고 난 뒤에는 내용에 대해 생각을 해야 하죠. ‘이렇게 많이 긁적였습니다’하는 결과물로는 팔 수가 없으니까요. 그때부터 소설을 잘 써야 되겠다고 생각을 했고, 소설을 잘 쓰기 위해서 굉장히 글을 많이 썼어요. 처음에는 좌절도 하고, ‘아유, 나는 아닌가 보다’ 싶었고, ‘아, 그런 식으로 접근 하는 게 아닌 것 같다’하면서 여러 가지로 연습과 실험을 했어요.

그러고 나서 보니까, 요즘엔 그런 생각이 든다는 거죠. 결국 내가 처음에 소설쓰기에 매혹된 것은 계속 뭔가를 쓰는 행위 때문이 아니었을까? 결국 내 소설이 점점 나아졌다면, 그 행위가 점점 쌓여서 그런 게 아닐까? 누구에게 체계적으로 배우거나, 머리가 좋아서 혼자 구조를 파악하고 잘 쓰게 된 건 아니라는 거죠. 그런 결론에 이르게 되더라고요. 처음부터 양으로 승부를 하는 사람이었어요.(웃음)”


예전부터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아니었고, 이과생이었던 작가님이, 글 쓰기에 재미를 붙인 데에 계기가 있었나요?

“독서를 되게 좋아했어요. 읽는 걸 되게 좋아해서, 아마추어 독서가가 되고 싶었어요. 거기까지가 제가 생각했던 책과 관련된 미래였어요. 혹은 번역을 하거나 출판사 일 정도를 예상했어요. 그리고 대학교 때 시를 쓰기 시작하면서 계속 뭔가 쓰기 시작했고요. 그때만 해도 쓰는 것 자체가 창조적인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미련한 짓인데, 어차피 저는 발표가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에 계속 뭔가 쓰는 일에 아무런 불만이 없었죠. 그렇게 쓰다 보니까 우여곡절 끝에 작가가 된 케이스예요.”


“통속적이지 않으려고 소설에 글자 수가 많은 거예요.”


『우리가 보낸 순간』을 보자면, 작가님의 책 읽기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는데요. 독서 습관이나 책을 고르는 기준이 있나요?

“주로 새 소설을 읽고요. 가끔씩 고전 같은 걸 읽겠다는 계획을 세우기도 해요. 많은 책을 접하지만, 대부분의 책들은 60~70퍼센트 정도 넘겨보다가 끝이 나요. 앉아서 봐야 하는 인문서 빼고는 그런 식으로 읽죠. 소설 같은 경우도 읽다가 한……. 30페이지 정도면 결판이 나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닥치는 대로 다 읽었는데, 요즘에는 다 읽지 못해요. 시간이 부족하고, 책은 굉장히 많이 나오고 있고, 책을 고르는 데 시간이 많이 들어요. 많이 따져보죠.”

어떤 걸 주로 따져보나요?

“소설 같은 경우, 제가 좋아하는 유형의 소설이 있어요. 안 읽는 소설로 치자면, 스페이스가 듬성듬성한 일본소설. 대부분 안 읽어요. 이건 편견이기도 하고, 정말 그렇기도 한데, 소설에 글자 수가 많이 들어가지 않으면 이야기가 통속적이게 돼요. 독특한 이야기가 잘 안 나와요. 소설은 통속적이지 않으려고, 그렇게 글자를 많이 넣는 거거든요. 드라마 대본에는 글자가 그렇게 많지 않잖아요. 그에 비해 소설은 굉장히 많은 정보가 들어가요. 통속적인 얘기만으로는 그 정보를 다 채울 수가 없죠. 진짜 특이한 이야기들. 특이한 묘사가 있는 책을 찾아요. 요즘엔 책을 발견하는 게 힘들어졌어요.”

『우리가 보낸 순간』은 모두 연재한 글인데요. 그 작업 과정이 궁금합니다. 연재를 하다 보면, 날씨나 계절, 혹은 시의성 등에 영향을 받았을 것 같아요.

“제가 굉장히 무계획적이에요. 신문사에서도 미리 리스트가 있는 걸 원하지 않아서, 그때그때 작품을 찾았어요. 그러다 보니 날씨와 사건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고요. 계간지가 나온 주는 굉장히 시를 많이 읽게 되고, 어떤 주는 시가 별로 없어서, 많은 시집을 뒤져봐야 했어요. 하나하나 다 영향을 받아 우연적인 요소로 택하게 되는 거죠. 그걸 요즘 약간 즐기는 편이에요. 우연적으로 선택해서 가게 되는 것들. 소설 쓸 때도 마찬가지고요.

또 이런 생각이 있었어요. 예전부터 제가 좋아하던 시들이 분명히 있지만, 새 시를 읽고 싶었어요. 한동안 시를 읽지 않았고, 시인들이 무슨 시를 쓰는 지 알 수가 없었는데, 연재를 시작하면서, 1년 동안 안 읽어본 시들을 다 읽어보자고 결심한 거죠. 그렇게 읽고 좋다고 느낀 걸 고른 거예요. 1년 동안 괜찮은 경험을 한거죠.”


제목이 ‘우리가 보낸 순간’이잖아요. 『7번 국도-revisited』에 보면, 이런 대목이 나와요.“내가 희망을 찾는 방법을 가르쳐줄까? 그건 바로 너희가 망각 속에 파묻어버린 기억들을 모두 되찾는 거야.(p.117)” 작가님의 역사에서 되찾거나 가장 보존하고 싶은 때는 언제인가요?(웃음)

“글쎄요.(웃음) 서른다섯 살 때쯤?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소설을 쓸 때. 그때 제일 순수하게 글을 썼던 것 같아요. 순수하다는 말은 다른 데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말이고요. 그때는 경제적으로 좋지도 않았고, 상을 받기도 했지만, 그게 저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어요. 그때 처음 작가적인 자의식이 생겼어요. ‘상황이 어떻게 바뀌더라도 글은 계속 쓸 것 같구나, 내가 글을 쓰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작가가 된 순간이랄까.

물론 지금도 좋은데 그때와는 달랐어요. 아무도 안 읽어도 내가 계속 쓰겠다는 태도가 있었어요. 실제로 그렇게 썼고요. 지금은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들과 상호 작용이 시작됐어요. 그 작용 안에서 글을 쓰고 있거든요. 물론 지금 상태도 좋다고 느껴요. 상호작용이 없어도 글을 쓰는 문제는 굉장히 용기가 필요한 일이거든요. 그땐 용기가 있어서 괜찮았구나, 그런 생각을 하죠.”


상호작용에 대한 것은 『세계의 끝, 여자친구』에 실린 소설에서 많이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글을 쓰면서 다른 사람을 만나고 독자를 접하면서 일어난 변화일까요?

“그보다는 제 삶의 사이클과 연결이 되겠죠. 아이를 낳고, 아이가 커가는 과정을 보고……. 나이가 들면서 다른 사람들을 조금 더 받아들일 수 있게 됐고요. 친밀감이 저에게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는 것이 소설에 반영이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사회적인 문제들에 대해서도, 이거 아니면 저거, 이런 식으로 생각을 했었는데, 그 즈음부터는 어떤 입장에서 방향을 조금만 틀어도 대단히 중요한 변화라는 걸 알게 됐어요.”


“그럼에도 계속 쓰자는 건, 이 상황을 돌파하자는 얘기죠.”


뭔가 새로운 글을 쓰는 일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어렵다. (…) 스스로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결국 쓰지 못한다. 쓰느냐, 쓰지 못하느냐. 그 비밀은 글을 쓰려고 책상에 앉았을 때 자기 자신에게 무슨 말을 하느냐에 달려있다. (『우리가 보낸 순간』(소설) p.215)

『우리가 보낸 순간-소설』에 ‘매일 글을 읽고 쓰는 일’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요. 내구력이 많이 필요한 일인 것 같아요. 원래 끈기가 있는 편이신가요?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길러진 건가요?

“원래 끈기가 있진 않았어요. 소설을 쓰면서 그렇게 바뀐 거겠죠. 원래 지니고 있던 자질 중에서 가장 좋은 점은, 남에게나 자신에게나 큰 기대를 하지 않는 다는 점이었어요.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도, 인간이란 으레 그럴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글 쓰기를 하면서도 스트레스를 훨씬 덜 받았어요. 글 쓰는 게 좋았지, 결과물은 상관없다는 생각도 그런 맥락에서 나온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나고 나서 보니까, 계속 썼던 게 중요한 걸 알았고, 그럼 이걸 환원해서 ‘인내심을 가지고 되든 안되든 계속 해봅시다.’라고 말을 해야 할 텐데 그건 또 아닌 것 같아요. 인내심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좋아하는 문제인 것 같아요. 글을 잘 쓰기 위해서 매일 쓰자는 얘기가 아니라, 무슨 직업에 종사하고 있든 어쨌든 글을 써보자는 거거든요.”


매일 쓰는 일이 더 나은 인간을 만들어준다는 사실은 ‘장담할 수 있다’고 하셨어요.

“이제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대개 글을 쓰자면, ‘이딴 짓을 왜 하는 가’에 대한 생각이나, ‘내 미래는 암울하기 짝이 없구나’하는 것들을 쓰게 돼요. 제가 보기엔, 그런 식의 글은 매일 쓸 수가 없어요. 미래가 정말 어둡다, 어둡다, 어둡다……. 이걸로 한 장을 쓸 수가 없고, 며칠을 쓸 수가 없거든요. 그럼에도 계속 써보자는 건, 그 상황을 돌파하자는 얘기죠. 그래서 자신이 어떤 글을 쓰냐에 따라 달라지게 되는 거고요. 글을 잘 쓰는 건 사실 다른 문제예요.

다음 단계에서 시작해야 하는 일이죠. 글 쓰기 전에 먼저 스스로가 작가처럼 되어야 해요. 상황이나 인생 전반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되야 소설을 쓸 수 있는 거죠. 소설 이전에 내가 먼저 그런 조망을 갖고 있어야 하는 거죠. 장편을 쓰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사람이 수다스러워지게 되어 있어요. 사건을 다 알고 있기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이 많아지거든요.

그렇게 인생 전체를 보다 보면, 사람이 긍정적이 돼요. 비관할 일이 없거든요. 그러니 작가가 되는 일이 글 쓰는 일의 사전 단계에요. 그러려면, 매일 뭔가 긁적이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거죠. 인내심? 저는 없는 편에 가까워요. 싫증을 잘 느끼니까.(웃음)”


거기에는 매일 읽는 일도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런데 책을 읽으면 과연 더 나은 사람이 될까요? 아니면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책 읽는 법이 따로 있는 걸까요?

“그나마 책을 읽은 사람들이 좀 나아요.(웃음) 아예 안 읽는 사람들 보다는 좀 더 나아지는 게 사실이고요. 책이 사람을 바꾸지는 못하겠지만, 영향은 끼쳐요. 우리는 계속 영향을 받아요. 반복적으로 하거나 듣는 말들. TV에서 하는 말들에서 무의식적으로 계속 영향을 받고, 그게 결국 자기 생각이 되거든요.

책은 전적으로 다른 사람의 경험을 겪어 보는 거니까. 머리가 단일화되지 않고, 복잡해지는 데 도움을 줘요. 읽고 나면 원래 자기로 다시 돌아가겠지만, 그전과는 조금 달라지는 거겠죠. 여러 가지 생각들이 회전이 될 테니까 최소한 한가지 생각에만 빠지지 않아요.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다고 두 가지 방법을 떠올리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고, 그걸 더 여러 가지로 생각하는 사람은 가장 좋은 사람이죠. 제일 안 좋은 사람은 한가지로만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그런 점에서는 책을 읽는 게 좋죠.”



“기왕이면 우리, 사치스럽게 살아요.”


소설가가 되고 나서부터 10년, 되돌아보면 어떤 시간으로 기억되나요?

“10년쯤 지나고 나니까 이런 사람이 됐구나. 뿌듯해요. 소설가인데, 소설을 계속 써서 소설책이 많아졌고, 많아진 그 책만큼 내가 바뀌었다는 것, 그게 놀라운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10년 전에 『꾿빠이 이상』 쓸 때의 저와 지금의 저는 굉장히 많이 달라요. 사람들이 주로 뻔뻔해졌다고 하는데(웃음) 그건 늙어서 그런 것 같고. 아무튼 굉장히 많이 달라졌어요.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때의 저였다면 『세계의 끝, 여자친구』 같은 걸 못 썼을 거예요. 그런데 놀랍게도 그런 식으로 사람이 바뀌더라고요. 『밤은 노래한다』는 더 이전에 쓴 소설이니까,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까지가 제가 쓰려던 소설이었어요. 그 이후에 어떤 소설을 쓰게 될지 저도 궁금했거든요. 소설을 쓰고, 상호 피드백을 받으면서 내가 바뀌었다는 걸 알았다는 게 제일 좋은 점이죠. ‘소설가가 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일을 했구나’ 싶고, 그게 10년 간의 보람이에요.”


번역도 하고 있는데, 직접 소설을 외국어로 번역하거나 외국어로 소설을 써볼 생각은 없으신가요?

“당연히 생각은 해봤죠. 그런데 시간이 없어요. 이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거잖아요. 영어로 쓸 수도 있겠지만, 쓴다고 치면, 10년 정도 지나야 잘 쓸까, 말까. 그러기에는 시간이 없죠. 거기에다가 모국어만큼 감각적으로 쓸 수가 없어요. 쓰지 못할 바에야 그걸 왜 쓰고 있는가 하는 거죠.

소설이 번역은 됐는데 책이 출판된 적은 없어요. 결국 책을 내서 다른 독자들과 소통하는 일일 텐데, 번역이 되면 좋을 것 같은데, 뭐가 좋은지는 구체적으로 잘 모르겠어요. 국위선양을 할 것도 아니고, 한국문학이 얼마나 우수한지 보여주고 싶은 생각도 없고, 돈을 많이 벌 수 있을까? 외국에서 많이 팔려서 하루키 같이 꽤 많은 돈을 번다고 치면, 돈을 벌어서 뭐하나……. 잘 모르겠어요. 외국 독자들의 반응도 가끔 듣는데 별 차이가 없어요.(웃음) 좋은 소설은 좋은 소설이고, 나쁜 소설은 나쁜 소설이겠죠. 막 읽혀야겠다는 생각은 많지 않아요.”


아이폰을 쓰시는데요. 가장 자주 쓰는 어플은 무엇인가요?

“최근에 제일 많이 쓰는 건 모멘토 다이어리. 그런데 요즘은 아이폰을 점점 많이 안 쓰게 돼요. 대신 노트를 자주 써요. 아이폰을 쓰고 난 뒤에 오히려 아날로그로 바뀌었어요. 아이폰에다 일기 쓰고, 가계부 쓰고 입력하다 보니까 인터페이스가 되게 불편해요. 노트를 들고 다니니까 다 해결이 되더라고요. 검색할 필요도 없죠. 넘기면 다 있으니까. 마인드맵도 훨씬 편하게 그릴 수 있고요.(웃음) 킨들을 사서 써보기도 했어요. 제 책을 만들어서 넣어보니까 재미있더라고요. 하지만, 역시 결국 책이 정말 훌륭한 툴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아이패드만 해도 넘기고 키우고 제목을 보려고 하면 나가야 하고 그런데 책은 그냥 넘기면 되잖아요. 전자책의 미래는 암울하다고 생각해요.(웃음)”

매년 새해 계획을 세우시잖아요! 올해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여러 가지 뭘 계속 해보고 있는 중이에요. 작년 말부터 채식을 한번 해봤어요. 이런 저런 변화가 있구나. 알았고. 술을 한번 1년 동안 끊어볼까?(웃음) 그러고 그걸 쓰거든요. 제가 약간 기록광 비슷한 게 있어서, 변화나 추이를 관찰하고 기록하는 걸 좋아해요. 술을 끊는 일이 과연 가능할까요? 스무 살 이후부터 술을 100일 동안 끊어본 적이 없거든요. 책을 안 읽어볼까 이런 것도 있었어요. 어렵더라고요. 공연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어요. 정상훈 씨랑. 여러 가지 계획 중에 무대 위에서 기타치기도 있었어요.(웃음)”

무척 계획적이고, 프랭클린 다이어리를 방불케 할 정도로 시간관리를 하실 줄 알았어요.(웃음) 계획을 이루기 위해 ‘작심삼일’ 문제는 어떻게 극복해내시나요?

“3일만에 실패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작심삼일은 3일 뒤에 계획을 다시 세우면 되죠. 그리고 계속 쓰고. 하다가 마는 거죠. 여러 번 하다 보니까 노하우는 생기더라고요. 이번에 담배를 최종적으로 끊는 데에 2년이 걸렸거든요. 시도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담배를 피울 수 밖에 없구나’하고 끝. 다시 또 시작해요. 그러다 ‘이 상황에는 피우는 게 마땅해’하고 끝. 그러다 보니 노하우가 생기더라고요. 제가 넘을 수 없는 산이 뭐였느냐 하면, 여행지에서, 그리고 휴게소에서 담배를 피지 않을 수 없었어요. 그래서 여행지에서 담배를 안 피워보고, 휴게소를 안 들렀어요. 그랬더니 피울 일이 없더라고요.”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요. 독자들에게 새해 인사를 부탁해요.

“어떤 일이 있어도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행복이 마냥 좋은 건가요, 물어보면 할 말이 없지만, 나쁘지 않으니까. 사실 행복한 감정은 되게 사치스?운 감정이에요. 그 반대의 개념은 움츠러드는 거죠. 덜 웃고, 힘을 덜 쓰는 게 경제적인 삶인데, 이제는 사치스럽게 사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얼마든지 계속 쓸 수 있는 감정이라면, 기왕이면 사치스럽게 살자는 거죠.

저는 가능하면 많은 곳에 흔적을 남기면서 살기를 바라요. 나무에 꽃이 피면 꼭 가서 보고, 전시회가 하면 꼭 가서 보는 사람이에요. 곳곳에 많은 흔적들이 남아 있어야 글 쓰기가 쉬워요. 다른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흔적들을 남기면서, 지구상에, 다른 사람의 인생에 많은 흔적을 남기면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다들 지지 마시길. 비에도 지지 말고, 바람에도 지지 말고, 눈에도, 여름 더위에도 지지 않는 튼튼한 몸으로 사시길. 다른 모든 일에는 영악해지더라도 자신에게 소중한 것들 앞에서는 한없이 순해지시길. 지난 일 년 동안, 수많은 일이 일어났지만 결국 우리는 여전히 우리라는 것. 나는 변해서 다시 내가 된다는 것. 비에도 지지 말고, 바람에도 지지 말자는 말은 결국 그런 뜻이라는 것. (『우리가 보낸 순간』(소설) p.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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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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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전혀 다른 세상의 시작일까

유발 하라리의 신작. 호모 사피엔스를 있게 한 원동력으로 '허구'를 꼽은 저자의 관점이 이번 책에서도 이어진다. 정보란 진실의 문제라기보다 연결과 관련 있다고 보는 그는 생성형 AI로 상징되는 새로운 정보 기술이 초래할 영향을 분석했다.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한국 문학의 지평을 더욱 넓혀 줄 이야기

등단 후 10년 이상 활동한 작가들이 1년간 발표한 단편소설 중 가장 독보적인 작품을 뽑아 선보이는 김승옥문학상. 2024년에는 조경란 작가의 「그들」을 포함한 총 일곱 편의 작품을 실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름들과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한 권에 모두 담겨 있다.

주목받는 수익형 콘텐츠의 비밀

소셜 마케팅 전문가 게리 바이너척의 최신작. SNS 마케팅이 필수인 시대, 소셜 플랫폼의 진화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콘텐츠 제작을 위한 6단계 마케팅 전략을 소개한다. 광고를 하지 않아도, 팔로워 수가 적어도 당신의 콘텐츠는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다.

삶의 끝자락에서 발견한 생의 의미

서른둘 젊은 호스피스 간호사의 에세이. 환자들의 마지막 여정을 함께하며 겪고 느낀 경험을 전한다. 죽음을 앞둔 이들과 나눈 이야기는 지금 이순간 우리가 간직하고 살아야 할 마음은 무엇일지 되묻게 한다. 기꺼이 놓아주는 것의 의미, 사랑을 통해 생의 마지막을 돕는 진정한 치유의 기록을 담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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