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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호정의 옛 담 너머] 여자인 척하는 곰인 척하는 여자 아니면 아예 호랑이
현호정 칼럼 – 9화
어쩌면 광기에 사로잡힌 듯 ‘게으른’ 것이나 ‘둔한’ 것에 철퇴를 휘두르며 달려온, 눈에 띄는 모든 것을 양손에 움켜쥐고 내달려 온 작금의 한국인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딱 한 가지인지도 모른다. 이제 아무도 탈락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2024.07.23)
현호정 소설가가 신화, 설화, 전설, 역사 등 다양한 옛이야기를 색다른 관점에서 읽으며, 현대와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을 전합니다. 격주 화요일 연재됩니다. |
백일 동안 견디라고 했으면서 환웅은 곰을 삼칠일(21일)만에 인간으로 만들어 주었다. 사람들은 그 이유를 다양하게 추측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이렇게 확신한다. 호랑이가 도망쳤기 때문이라고.
호랑이가 도망치자 환웅은 무서워진 것이다. 곰도 도망칠까 봐. 자기를 포기하고 떠날까 봐. 애초에 어쩌자고 그리 힘든 숙제를 내줬나 후회하면서, 한편으로 서러워도 했으리라.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나? 나를 위해 백일 동안 동굴 안에서 쑥과 마늘만 먹으라는 게? 나는 모든 이를 널리 이롭게 하려고 이 땅에 몸소 추락했는데, 그런 나에게 땅의 것들은 어찌 이리도 매몰찬 것인지? 그래, 어릴 적부터 배신과 상처로 내 삶은 점철되어 왔고, 사실 난 늘 아버지가 미웠다.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어머니……. 그러나 어머니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그냥 나는, 이 환웅이라는 남자는, 언제든 누구에게든 버려질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거고, 그러니까 결국 나는 영원히 사랑받지 못…….
메리언 엥겔의 소설 『나의 곰』1 에서 상황은 역전된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똑똑하고 통제권을 가진 여자와 우리에 갇힌 수컷 곰이다. “두더지처럼 사무실 깊숙이 파묻혀 지도와 필사본을 헤집으며” 살던 역사협회 소속 ‘루’는 새로 발령받은 외딴 섬 저택 마당에서 곰과 지내며 차차 자기 안에 갇혀 있던 본능과 야성을 자각한다. 루는 곰과 섹스한다. 루의 삶은 “격정적”2 인 존재가 된다.
‘주파일(zoophile, 동물성애자)’을 『성(聖)스러운 동물성애자』3 (원제: 聖なるズ?)라는 제목의 책으로 다룬 하마노 지히로는 동물과 인간의 섹스에 관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인간은 동물과의 사이에 경계를 긋고 난 후 ‘사람’이라는 카테고리를 만들어 낸다. 하지만 인간과 동물의 섹스는 그 경계를 교란한다. 그러므로 주파일들이 제기하는 문제는 ‘섹스는 무엇인가?’라는 질문만이 아니라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기도 하다.”4 여기 전제된 현대 생태계에서 인간은 살아 있는 모든 것의 꼭대기에 위치한다. 그러나 살아 있는 것 너머의 것들이 포함되어 있던 고대의 생태계를 적용해 본다면 어떨까.
연구자 김재희는 단군신화에서 곰이 웅녀가 되는 과정을 “존재의 격상이 아니라 신격을 벗어나 인격으로의 하강, 기독교식 표현으로 성육신(成肉身, incarnation)에 해당하는 현현(顯現, epiphany)의 원형으로”5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과거 곰이라는 동물 자체가 신성시되어 온 맥락을 짚으며 그러한 신이 (다른 신과의 관계를 통해) 인간의 몸으로 나타났다고 보는 관점을 제안하는 것이다. 『나의 곰』 속 루에게도 곰은 종종 신이다. 루는 “때때로 그를 신처럼 여”기는데 “그에게는 자신이 닿을 수 없는, 찾아낼 수 없는, 지성의 손가락이 파괴할 수 없는 심연이 있”6 기 때문이다. 이에 루는 “그가 핥”고 “탐색”하는 자신이 “그가 찾아내려는 벼룩이었는지도 모른다”7 는 생각에까지 이른다.
“나는 떠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절대로 떠나지 않을 것이다. (…) 나는 절대로, 절대로 너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8 루는 곰을 향해 이렇게 다짐한다. 루는 곰이 떠나는 상황은 가정하지 않는데, 자신이 그의 사슬과 우리의 열쇠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너를 절대로 떠나지 않을 것이다”라는 루의 말은 “나는 너를 절대로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과 다름없어지고, 곰의 털에 매달린 벼룩의 다짐은 곰을 움켜쥔 신의 욕심과 연결된다. 곰은 루의 환웅이자 웅녀가 되고, 루도 마찬가지다.
한편 연구자 김종대는 김재희와 반대되는 의견을 펼친다. “곰이 신앙적 대상으로 전승되고 있는 지역은 한반도보다는 그 윗 지역”이며, “한반도에서는 오히려 호랑이를 중심으로 한 신앙적 특징이 강하”고 “곰은 미련하다는 부정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9 는 것이다. 이 관점은 지금껏 한국 사회나 한국인의 특징이라고 일컬어져 온 몇몇 특성을 상기시키며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로 확장된다. 우리가 곰 쪽이 아니라 동굴에 갇혀 마늘 먹다가 열불이 터져 약속을 깨고 도망친 호랑이의 후예라면, 그 전제만으로도 나는 한국이 얼추 이해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삼국유사 원문을 보면 호랑이가 도망을 쳤다거나 열불이 터졌다는 얘기는 없다. 서술은 단순하다. “금기를 삼칠일 지키자, 곰은 여자의 몸을 얻었고, 호랑이는 금기를 지키지 못해, 사람의 몸을 얻지 못했다(忌三七日, 熊得女身, 虎不能忌, 而不得人身).”10 하여, 나는 호랑이가 제 발로 도망친 게 아니라 환웅으로부터 버려진 것인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둔다. 예컨대 호랑이는 마늘과 쑥을 20일간 먹고 21일째 되던 아침에 배가 너무 아파서 오늘은 그냥 굶어야겠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그게 규칙을 어기는 행위라고 판단하지 않았을 수 있다. 그러나 다소 빡빡한 기준을 가지고 있던(그리고 애초에 규칙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던) 환웅이 호랑이를 내쫓고 보란 듯이 곰을 여자로 만들어 줘 버린 것이라면? 그렇게 몹시 상처받은 채 남쪽으로 내달려 온 호랑이의 원한과 불안이 우리에게 대대로 전해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까 어쩌면 광기에 사로잡힌 듯 ‘게으른’ 것이나 ‘둔한’ 것에 철퇴를 휘두르며 달려온, 눈에 띄는 모든 것을 양손에 움켜쥐고 내달려 온 작금의 한국인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딱 한 가지인지도 모른다. 이제 아무도 탈락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부릅뜬 눈의 감시는 오래전 끝났고, 잘못이나 실수를 해도 우리는 여전히 서로의 곁에 머무를 수 있으며, 결코 버려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말이다. 그걸 쥐고 나면 차차 멈추며 비로소 알게 되리라. 지금껏 숨을 헉헉대고 땀을 뻘뻘 흘리며 미워해야 했던 대상은 느릿느릿하고 태평한 이들이 아니라, 그와 우애롭던 나무 아래서 우리를 추방한 최초의 심판관이라는 것을.
1 메리언 엥겔 지음, 최재원 옮김, 『나의 곰』, 한겨레출판, 2024.
2 같은 책, 167p.
3 하마노 지히로 지음, 최재혁 옮김, 『성스러운 동물성애자』, 연립서가, 2022.
4 같은 책, 188p.
5 김재희, 「유라시아 곰 신앙과 단군신화의 쑥과 마늘을 통해 본 웅녀의 재해석」, 한국민속학, 2018, 34p.
6 메리언 엥겔, 위의 책, 164p.
7 같은 책, 127p.
8 같은 책, 157p.
9 김종대, 「한국문화의 원류, ‘단군신화’에 나타난 곰과 호랑이의 상징성」, 첨단문화기술연구 제4호, 2008, 2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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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명소녀 투쟁기』 『고고의 구멍』, 『삼색도』 등을 썼다. 2020년 박지리문학상, 2023년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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