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안다 시인의 책장
당신의 책장 - 양안다 편
작가들은 평소 뭘 보고 듣고 읽을까? 언젠가 영감의 원천이 될지도 모를, 작가들의 요즘 보는 콘텐츠. (2024.04.24)
작가들은 평소 뭘 보고 듣고 읽을까? 언젠가 영감의 원천이 될지도 모를, 작가들의 요즘 보는 콘텐츠. |
게임 <비기너스 가이드>
Everything Unlimited Ltd.
시인으로 활동하기 이전에 함께 시를 쓰는 한 친구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는 시를 정말 잘 썼다. 그런데 잘 썼다는 기준이 뭐지? 좋은 시가 도대체 뭐지? 나는 나의 취향에 맞는 시가 좋은 시라 여겼다. 그는 나의 취향에 맞는 시를 참 잘 썼다. 그러나 그는 타인에게 시를 보여주길 주저했으며, 투고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어느 날, 그는 시를 그만 쓰겠다고 말하며 자신의 시를 나에게 전부 보내주었다. 나는 그의 시가 그리울 때마다 이 게임을 한다. 게임을 하다가 자꾸 운다.
앨범 <How To Be A Human Being>
Glass Animals
나의 책 『천사를 거부하는 우울한 연인에게』, 『몽상과 거울』, 『달걀은 닭의 미래』를 작업할 때 자주 들었던 앨범. 나는 글을 쓸 때 하나의 곡을 반복해서 듣는 편이다. 어느 날에는 <Youth>를 들었고, <Cane Sugar>나 <The Other Side Of Paradise>를 듣기도 했다. 나는 가사가 잘 들리지 않는 편이고 그렇다고 가사를 찾아보지도 않는다. 나는 이 앨범의 수록곡이 무슨 뜻인지 모른다. 그냥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혼자 춤을 추고 헤드뱅잉을 한다. 지금 ‘당신의 책장’ 원고를 쓰면서 <Youth>를 듣고 있다.
영화 <시네도키, 뉴욕>
찰리 카우프먼 감독
나는 시를 쓰는 것이 너무 즐겁다. 하루가 더 길었다면 더 많은 시를 쓰기 위해 시간을 사용했을 것이다. 시만 쓰고 싶지만…… 가끔 나는 너무 많은 일정과 스트레스로 인해 육체적인 고통을 겪는다. 그럴 때는 이 영화를 본다. 나는 찰리 카우프먼의 영화를 볼 때마다 이런 생각에 빠진다. ‘찰리 카우프먼은 분명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일 거야. 그런데 영화를 사랑한다는 사실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을 거야.’ 그리고 나도 가끔 괴로움에 빠진다.
T.S. 엘리엇 저/황동규 역 민음사
그래도 시인이니까 시집 한 권은 골라야 하지 않을까. 나에게 영향을 준 시집은 많지만 그래도 하나 골라야 한다면 『황무지』를 골라야겠다. 『황무지』는 너무 유명하지만, 너무 유명해서 언급이 잘 안 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이 책을 무척 사랑했는데 이제는 다른 이를 사랑하려고 한다. 저는 이제 당신 글을 그만 읽으려고요. 10년 뒤에 다시 오겠습니다. 그때도 제가 시인으로 활동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제니 오필 저/최세희 역 | 뮤진트리
나에게는 읽고 나면 이상하게 슬프고 우울한 책이 몇 권 있다. 그 중 제니 오필의 『사색의 부서』는 내가 읽은 책 중 가장 솔직한 책이다. 물론 나는 제니 오필에 대해서 모른다. 그냥 책을 읽고 어떤 ‘솔직함’ 같은 것을 느낀 것이다. 그래. 솔직함이란 건 다 환상이니까…… 나도 제니 오필처럼 더 솔직해지고 싶지만 그게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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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충남 천안에서 태어났다. 2014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 『작은 미래의 책』 『백야의 소문으로 영원히』 『세계의 끝에서 우리는』 『숲의 소실점을 향해』 『천사를 거부하는 우울한 연인에게』 『몽상과 거울』, 동인 시집 『한 줄도 너를 잊지 못했다』가 있다. 창작 동인 ‘뿔’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