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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루가 읽은 그림책] 『묘생이란 무엇인가』
<월간 채널예스> 2023년 7월호
이것이 예고된 상실과 앞으로 남은 터무니없이 짧은 시간보다 무겁고 의미 있는 추라는 것을 나는 안다. 우리가 앞으로 나이 들며 나눌 것들이 이전보다 서로의 삶을 조금 더 충만하게 해주리라는 것도. (2023.07.11)
고양이와 함께 산다고 하면 종종 나이를 물어 온다. "어디 보자, 2013년 1월생이니까 이제 열 살이네요" 하고 대답하면서 나는 속으로 조금 긴장한다. "사람 나이로 치면 몇 살이에요", "고양이는 얼마나 오래 살아요" 같은 질문이 되돌아올까봐서다. 기어이 말이 이어지면 꺼끌꺼끌해진 마음을 감추며 이렇게 답한다. 내 고양이는 이제 나와 비슷한 나이가 되었어요. 우리는 함께 나이 들어 가고 있어요.
사람의 나이를 물어 왔을 때에도 이런 마음이었던가 기억을 더듬어보지만 연령을 불문하고 불편했던 적은 없었다. 왜 둘이 다를까. 고양이 나이를 묻는 질문이야 그저 호감 어린 가벼운 관심의 표현일 뿐인데, 왜 나는 악의라고는 전혀 없는 저 말들이 종종 무례하게 느껴지는 걸까. 이 질문의 답을 찾는 일에 때이른 불안과 어떤 슬픔이 조금도 작동하지 않는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불편의 기저에 더 크게 자리 잡은 것은 이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내가 내 고양이의 남은 생을 누군가와 한 자릿수 뺄셈하듯 그렇게 쉽게 계산하고 싶지는 않다는 것.
고양이의 평균 수명은 객관적 사실에 근거한다. 내 고양이의 수명 또한 그 수치에 근접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딱히 어떤 논쟁이나 감정이 끼어들 여지는 없다. 그럼에도 나는 고양이와 함께 사는 누군가에게 고양이의 나이에 대해 묻거나 이야기하는 일이 좀 더 섬세하게 다뤄지기를 바라게 된다. 이를테면 당신이 당신의 고양이와 함께 살 날은 이제 몇 년 남지 않았군요, 같은 방향으로 대화가 흐르지 않도록 세심히 말의 둑을 쌓으면서 말이다.
인생에 비하면 묘생은 얼마나 짧은지. 내 고양이는 언젠가 나를 먼저 떠날 것이다. 새까만 털로 빽빽한 등 위에 드문드문 나기 시작한 흰 털들을 볼 때면 머지않은 어떤 미래를 예감하며 마음의 밑바닥에 조용히 슬픔이 가라앉는다. 그러나 늘 현재는 미래보다 크고 선명하다. 우리의 오늘은 마냥 앉아 희미한 내일을 걱정하고 있을 만큼 녹록하지 않다. 일상은 종일 시끄럽고 분주하다. 지금도 내 고양이는 줄기차게 장갑 한 짝을 계속 물고 와서 어서 던져달라고 요구하는 중이다. 내 급한 마감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그렇게 우리는 매일 착실하게 하루 치의 희로애락을 쌓아간다. 그러니 언젠가 우리가 헤어진 뒤에 남는 것의 이름이 단지 슬픔은 아닐 것이다. 아홉 번째 생을 모두 마치고 떠나는 고양이와의 이별을 아름답게 노래하는 『아홉 번째 여행』이나, 주먹밥 모양의 크고 희고 난폭하고 낭만 넘치는 고양이 '테츠조'를 추억하는 『내 고양이는 말이야』나, 우연히 만나 인연을 맺은 길고양이와 훗날 어디서든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는 『어느 날, 우리는』 같은 그림책들이 하나같이 나를 울다가 끝내 웃게 하는 것을 보면 더욱 그런 확신이 든다.
특히, 『묘생이란 무엇인가』의 까칠하고 도도한 고양이 '고경이'를 보면 용기가 난다.
"어떤 모양으로 할까... 고르고 고르다"
고등어 코트를 장착하고 태어난 이 녀석의 묘생에는 '길과 집 사이에' 마음을 두는 일과, 아침마다 자신을 안고 "너, 묘생이 뭐라고 생각하냐?"고 묻는 아빠와, '동생인지 뭔지가 들어오며' 시작된 질풍노도와, 이웃집 개보다 나은 점프 실력에 차오르는 자신감과, 꿈속에서 받은 묘생의 가르침과, 먼저 떠난 아빠와의 이별이 있다. 일상의 조각들이 콜라주된 이 웃기고도 짠한 고양이의 삶은 여느 인생이 그렇듯 희로애락의 물레 위에서 '돌돌돌' 돌아간다. 그리고 아빠보다는 늦게, 엄마보다는 이르게 생을 마친다.
먼저 떠나 자신을 기다리던 아빠 손을 잡고 우산 위로 와이파이 신호를 한껏 발산하며 마침내 묘생이란 다름 아닌 "냐흥"이라고 늠름하게 답하는 이 씩씩한 고양이의 유쾌한 생애가 내게는 위안이 된다. 나의 방만하고 성긴 애정에도 불구하고 내 고양이 또한 나름의 삶을 제멋대로 누리며 살다가 가겠구나, 네게는 너만의 생이 있겠구나, 하고 마음이 조금 느긋해진다. 동시에 고경이와 남편, "두 가족을 잃고, 묘생 생각, 인생 생각을 오락가락하며 이 책을 만들었다"는 작가의 말에는 마음이 먹먹하다.
로르 아들레르는 "나이는 감각이지 실재가 아니다"라고 했다.(『노년 끌어안기』) 나이가 들수록 어떤 생도 나이로 쉽게 수치화되지 않기를 바라게 된다. 나이 듦을 부정해서가 아니다. 생을 숫자에 가두고 싶지 않아서다. 지난 10년 사이 나와 내 고양이는 각자의 시간으로 나이 들어 함께 나란히 중년에 진입했다. 이제 우리는 같은 생애 주기를 통과하는 중이다. 이것이 생각보다 꽤 든든한 기분이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이제 내 고양이가 내는 수많은 "냐옹"의 의미를 내가 구분할 수 있고, 내 고양이 역시 매일 내가 하는 온갖 말들이 실은 사랑한다는 말의 변주임을 안다는 것이다. 우리는 나날이 서로를 더 복잡하게 이해한다. 이것이 예고된 상실과 앞으로 남은 터무니없이 짧은 시간보다 무겁고 의미 있는 추라는 것을 나는 안다. 우리가 앞으로 나이 들며 나눌 것들이 이전보다 서로의 삶을 조금 더 충만하게 해주리라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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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을 위한 그림책 읽기 안내자. 비혼이고 고양이 '탄'의 집사이며, 채식을 지향하고 식물을 돌보며 산다. 그림책 『섬 위의 주먹』, 『마음의 지도』, 『할머니의 팡도르』를 번역해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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