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 놀이터

[정이현의 어린 개가 왔다] 안과 밖

정이현의 어린 개가 왔다 - 5화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아래가 막혔는데 위를 뚫으면 안 되는 겁니다. 먼저 어디가 막혀 있는지 찬찬히 찾아봐야죠. 그리고 거기서부터 시작할 겁니다. (2023.02.27)


소설가가 얼룩 개를 기른다고요?
정이현 소설가에게 어느 날 찾아온 강아지, 그 작은 돌봄과 애쓰는 마음을 연재합니다.
사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강아지,
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서로 적응해가는 이야기,
<채널예스> 격주 월요일을 기대해주세요.



이 세상 모든 분야에는 전문가들이 있다. 숨어 있는 고수들. 몇 해 전 집안 싱크대 배수구에 역류 현상이 생겼을 때였다. 어떻게 해도 물이 내려가지 않아 애를 먹고 있을 때 구세주처럼 등장하신 배관 수리공의 첫마디를 잊지 못한다. 

"아래가 막혔는데 위를 뚫으면 안 되는 겁니다." 

눈에 보이는 위쪽 문제가 아니라 밑으로 내려가는 길목이 이물질들로 꽉 막혀 있다고 했다. 

"먼저 어디가 막혀 있는지 찬찬히 찾아봐야죠. 그리고 거기서부터 시작할 겁니다."

마침 쓰던 소설도 중간에 꽉 막혀 안절부절못하던 나에게 그 말은 퍽 중의적으로 들렸다.(원래 소설 때문에 고민스러우면 어떤 말도 소설 쓰기에 대한 비유로 와닿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그분 덕분에 배관 문제도, 그리고 소설 문제도 무사히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전문가들을 신뢰하고 경외감을 품고 있다고 해도 무조건 도움을 요청할 수는 없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말이다. 나는 반려동물 훈련 전문가들에게 헐레벌떡 연락을 취할 일이 생기지 않기만을 바랐다. 그렇지만 일어날 일은 곧 일어나고 마는데... 

이틀 사이에 바둑이는 마냥 웅크려 있던 데에서 벗어나 조금씩 울타리 안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케이지 안에 있다가 어느새 나와서 울타리 밖을 둘레둘레 구경하는 시간이 많아졌고, 아이들이 고심하여 넣어준 장난감들에 흥미를 보이는 듯도 했다. 그런데 아이들이 손을 뻗어 머리를 쓰다듬으려 들면 한사코 몸을 피했다. 몸을 조금이라도 건드리려 할 때마다 반복적으로 그런 행동을 했는데, 그중 두 번에 한 번은 마치 공격이라도 할 것처럼 살짝 으르렁거렸다. '우리만의 귀여운 강아지'와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만을 손꼽아 기다려온 아이들은 당황해서 어쩔 줄 몰랐다. 

그동안 아이들이 가까이서 보아온 개들은 모두 세 마리였다. 태어날 때부터 있던 친할머니댁의 슈나우저 두 마리는 이미 나이가 많았는데, 가끔 방문하는 꼬마 손님들을 늘 점잖게 대하고 많은 것을 양보해주었다. 그 개들이 무지개다리를 건넌 후 새로 데려온 푸들은 앙증맞고 순해서 모두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사람이 마음껏 예뻐하고 듬뿍 사랑해주기만 하면 되는 존재. 바둑이를 데려오기 전까지 아이들에게 반려견이란 그런 의미였던 것 같다. 이제 우리 어떻게 하느냐고 아이들이 물었다. 나야말로 벽에라도 대고 묻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날 밤, E가 간식을 들고 울타리 안으로 들어갔다. 간식을 손바닥에 올리고 한 알씩 먹게 하면서 다른 손으로 바둑이를 쓰다듬어보겠다는 원대한 계획이었다. 나머지 세 명은 숨을 멈추고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러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심지어 그는 비명과 함께 패퇴했다. 바둑이 머리 쪽으로 손바닥을 가까이 가져가는 순간, 바둑이의 입이 휙 먼저 달려들었고 개의 이빨에 손가락을 긁혔다고 했다. 

"일부러 문 건 아니야. 그냥 스친 것뿐이야."

그는 손가락에 소독약을 바르면서 그저 사고에 불과했음을 거푸 강조했다. 원하면 바둑이가 울타리 밖으로 나올 수 있게끔 울타리 문을 살그머니 열어두었지만, 나오려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이틀째 밤도 그렇게 저물었다. 다음 날, 바둑이는 어제보다도 한층 활발한 듯 보였다. 울타리를 앞발로 붙들고 계속 일어서려고 시도하기, 벽을 타고 점프하기, 울타리의 나무문을 이빨로 갉기, 배변 패드를 장난감처럼 물어뜯기 등등. 거기서 나오고 싶어서 하는 행동인 것 같기는 한데 정확히 왜 그러는지는 알쏭달쏭하기만 했다. 아이들은 하교하자마자 단거리 육상 선수처럼 집으로 달려왔다. 작은아이가 쓰다듬으려다가 또 휙 손등을 긁혔다. 아이들은 스트레스 때문이 분명하다며, 바둑이를 당장 저기서 꺼내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누가 몰라?"

나는 소리쳤다. 설마 내가 바둑이를 영원히 거기에 둘 계획이겠는가. 어차피 며칠임을 알고 있었다. 이제 꺼내야 하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늦었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언제, 어떻게? 그리고 누가? 나는 고개를 저었다. 울타리를 설치하기 전에 철거까지의 구체적인 설계도를 미리 그려두었어야 마땅했다. 직장에서도 온 신경이 바둑이에게 와 있는 듯한 E라면 나와 다를 것이다. 미완성이라도 설계도면 비슷한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 바둑이가 마치 스스로 울타리를 탈출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듯이 켄넬을 흔들어댔다. 이윽고 켄넬 위에 올라타려고 했다. 나는 한 가닥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문자를 보냈다.

— 얘가 좀 이상해 너무 나오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이제 나오게 해야 하나? 

득달같이 답이 왔다. 

— 그래. 근데 할 수 있겠어?

할 수 있겠냐고 그는 물었다. 잠깐만. 나는 숨을 골랐다. 그 물음표의 수신자는 나. 또 나, 항상 나였다. 바둑이가 오고 벌써 사흘째 나는 최소한의 일상생활 외에는 오로지 강아지 울타리 옆에 붙어 앉아 인간 CCTV 기능을 수행하며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은 필연적으로 수신자를 딜레마에 빠지게 한다. '할 수 없다'고 대답하면 나는 고작 그 정도도 처리 못하는, 어른 같지 않은 어른이 되는 것이다. 반면 '할 수 있다'고 대답하면 정말로 나의 책임하에 그걸 해야 했다. 어느 쪽을 선택해도 내가 지는 경기였다. 도대체 왜 내가, 개를 원하기는커녕 평생 개를 좋아해 본 적도 없는 내가, 또 내가, 항상 내가 기울어진 대답의 자리에 앉아 있어야 하는 걸까. 사람 손길을 거부하는 개 옆에서 도무지 언제까지, 한 번도 원한 적 없는 삶을 살아야 하는 걸까. 반려견 훈련사의 전화번호를 누르지 않을 수 없었다. 

언제 방문하면 되느냐고 훈련사가 물었다. 나는 대답했다. 

"가능하신, 가장 빠른 시간이요."

"빠른 시간이요?"

"네. 지금 강아지가 울타리에 있는데, 밖으로 나와야 하는데, 저희가 아직 강아지를 제대로 만지지를 못해서."

횡설수설 설명하면서도 내 어리석음을 고백하는 듯한 내용에 스스로 기가 찼다.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훈련사가, 그러면 오늘 저녁 시간을 비워보겠노라고 대답했다. 훈련사는 쭉 뻗은 나무처럼 키가 아주 큰 분이었다. 평소와 다른 공기를 느꼈는지 바둑이는 켄넬로 들어가서, 지금껏 들어보지 못했던 깊고 낮은 소리로 그릉거렸다. 

"울타리 밖으로 나온 적 있습니까?"

"아니요, 문은 열어줘 봤는데 문으로는 안 나와요."  

문이 아니라 여기 담을 넘어서 나오고 싶어 하는 것 같다고 아이가 거들었다. 짧은 동안 강아지의 기색을 살피던 그가 나에게 물었다. 

"그런데 강아지가 바깥으로 나오고 싶어 하는 것 같나요?" 

기습적인 질문이었다. 

"그, 그렇지 않을까요."

내가 자신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보호자님." 

그는 단호하게 나를 불렀다. 

"저 친구는 이 문으로 못 나옵니다.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나올 수가 없는 친구예요."

"왜요?"

"너무 겁이 많고 굉장히 예민해서요." 

믿고 있던 세계가 기우뚱, 이상한 방향으로 기울었다. 훈련사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행동에 돌입했다. 먼저 울타리의 문을 있는 대로 활짝 열어젖혔다. 그리고 간식을 한 알 씩 바닥에 던지며 바둑이를 켄넬 밖으로 유인했다. 바둑이는 슬로모션으로 아주 느릿느릿, 바닥의 간식을 먹으며 조금씩 조금씩, 전진해 나왔다. 숨소리도 내지 못하고 그 모습을 보았다. 울타리 앞까지 거의 다 나왔을 때, 드디어 간식이 울타리 밖의 마룻바닥에 던져졌다. 바둑이는 앞발을 슬쩍 들었다가, 그만 문턱을 넘지 못하고 허공에서 발을 멈추었다. 울타리의 안과 밖, 그 사이를 스스로 넘지 못하고 어린 강아지는 경계선 위에 주저앉아 꼼짝도 하지 못했다.



추천기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2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ㆍ사진 | 정이현(소설가)

1972년 서울 출생으로 단편 「낭만적 사랑과 사회」로 2002년 제1회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나왔다. 이후 단편 「타인의 고독」으로 제5회 이효석문학상(2004)을, 단편 「삼풍백화점」으로 제51회 현대문학상(2006)을 수상했다. 작품집으로 『낭만적 사랑과 사회』『타인의 고독』(수상작품집) 『삼풍백화점』(수상작품집) 『달콤한 나의 도시』『오늘의 거짓말』『풍선』『작별』 등이 있다.

오늘의 책

끝나지 않는 오월을 향한 간절한 노래

[2024 노벨문학상 수상] 1980년 5월 18일부터 열흘 간의 광주, 그리고 그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작가의 철저한 노력으로 담아낸 역작. 열다섯 살 소년 동호의 죽음을 중심으로 그 당시 고통받았지만, 역사에서 기록되지 않은 인물들의 이야기를 꺼내 보이면서 그 시대를 증언한다.

고통 속에서도 타오르는, 어떤 사랑에 대하여

[2024 노벨문학상 수상] 2023 프랑스 메디치 외국문학상 수상작이자 가장 최근작. 말해지지 않는 지난 시간들이 수십 년을 건너 한 외딴집에서 되살아난다. 깊은 어둠 속에서도 “지극한 사랑”이 불꽃처럼 뜨겁게 피어오른다. 작가의 바람처럼 이 작품은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다.

전세계가 주목한 한강의 대표작

[2024 노벨문학상 수상] 2016년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수상한 장편소설이자 한강 소설가의 대표작. 보이지 않는 영혼의 고통을 식물적 상상력으로 표현해낸 섬세한 문장과 파격적인 내용이 큰 울림을 만들어낸다. 폭력의 악순환을 끊고,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나무가 되고자 한 여성의 이야기.

더럽혀지지 않는 어떤 흰 것에 관한 이야기

[2024 노벨문학상 수상] 한강 소설가의 아름답고 고요한 문체가 돋보이는, 한 편의 시와 같은 작품. 삶과 죽음의 경계를 허물고, 그 사이를 넘나드는 소설이다. ‘흰’이라는 한 글자에서 시작한 소설은 모든 애도의 시간을 문장들로 표현해냈다. 한강만이 표현할 수 있는 깊은 사유가 돋보인다.


PYCHYESWEB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