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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동안, 입은요?] 곳곳에 사건이 있다 - 마지막 회

쓰는 동안, 입은요? 마지막 회 - 전투 식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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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이디어를 가장 많이 얻은 곳 중에 하나가 횡단보도 앞인데, 거기서 가만히 초록불을 기다릴 때 켜지는 게 신호등만은 아니다. (2023.01.26)


소설가는 마감 때 무엇을 먹을까?
염승숙 소설가와 윤고은 소설가가 글쓰기와 음식에 관한 에세이를 번갈아 연재합니다.
매주 목요일을 기대해주세요.


언스플래쉬

작가들을 이렇게 구분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연재 방식을 선호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나는 연재를 선호하는 편인데, 일단 마감일이 규칙적인 리듬처럼 다가오는 게 좋고,(마감을 견디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책으로 묶기 전에 규칙적인 원고료를 받을 수 있어서다. 모든 작가들이 이런 이유로 연재를 선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연재가 조금 더 안정적인 창작 환경을 만든다는 걸 부인할 작가는 없을 것 같다. 나로서는 소설을 쓰는 것만으로도 이미 안전벨트 없이 전투기에 올라탄 느낌이 들기 때문에, 글을 쓰는 환경은 좀 안정적이기를 바란다. 그러나 마감일이 다가올 때의 내 모습을 보라. 안정은 어디로 갔나?

두 달에 한 번씩 다가오는 장편 소설 마감일. 얼마 전엔 편집자에게 이런 말을 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늦어서 죄송해요. 이번에 사건이 좀 많았거든요."

그러자 편집자가 이렇게 말했다.

"아, 그렇죠? 사건이 나올 것 같았어요."

"예? 어, 소설 속에서요? 제 삶에 사건이 많았다는 얘기였는데, 물론 소설 속에도 사건이 있죠. 있습니다!"

다른 '사건'에 대해 각자의 시각으로 이야기하는 두 사람이라니 흥미롭지 않은가. 확실히 마감은 극도의 고통과 희열을 모두 가져오는 굵직한 서사 요인인 동시에 서로 다른 욕망과 오해가 빚어내는 깨알 디테일이기도 하다.

언젠가는 자다가 이런 잠꼬대를 한 적도 있다고 한다.      

"아, 네. 금방 드릴게요. 네, 네." 

몹시 절박한 어조였다고 하는데, 대체 나는 누구에게, 무엇을, 왜 드린다고 한 걸까? 꿈에서 내가 어떤 상황이었는지는 모르지만, 확실한 건 꿈 밖에서 내가 아주 절박한 마감에 놓여있었다는 것이다. 마감이면 마감이지 절박한 마감은 또 뭔가. 이렇게 마감에 대한 말들이 정교해질수록 어쩐지 부끄러워지는 기분이다.

원고를 약속된 시간에 넘기면 되는 것인데 왜 나는 이렇게 많은 디테일을 품게 된 걸까. 마감식뿐 아니라 마감학(學)이라도 연구해야 할 판이다. 그게 가능하다면, 마감학의 연구 주제에는 반드시 '병목 현상'과 '유령 체증'이라는 항목을 넣을 것이다. 이런 말들은 도로 위에서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내 원고들도 소리치고 있을 것이다. 

"아니, 앞에서 계속 밀리니까 이제 참." 

혹은 

"왜 막히는 거야, 대체? 앞 차는 뭘 하는 거야?"

게다가 내가 선호하는 '연재 방식'이라는 건 일부러 톨게이트를 여러 군데 세워두는 행위나 마찬가지다. 게다가 이 톨게이트에는 이용 가능한 시간이 정해져 있다. 톨게이트를 통과하기 위해 하나둘 모여드는 차량들, 얼마나 막힐지 모르니 차 안에는 비상식량이, 비상식량이 많아야 한다.  

원고 마감을 앞둔 작가들, 그것도 완전히 발등에 불이 붙고도 한참 지난 상태의 작가들을 이렇게 세 부류로 나눌 수도 있을 것이다. 거의 안 먹고도 배고픔을 잊는 사람,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먹는 사람, 평소보다 훨씬 많이 먹는 사람. 이건 꼭 작가들의 원고 마감에만 적용되는 구분은 아닐 것 같다. 일, 과제, 즐거운 시절, 인간관계, 어떤 고민이나 결심... 삶은 온갖 종류의 마감으로 가득하니까. 이 상태를 어떻게든 마무리해야 하는 상황, 그것이 마감이다. 

앞서 나눈 세 부류 중에서 나는 맨 끝 유형에 해당한다. 평소보다 훨씬 많이 먹는 사람, 조금 더 구체화하자면 평소에 잘 안 먹던 것까지 먹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국밥이나 치킨 같은 것. 평소엔 잘 선택하지 않는 것. 지금 나는 치킨을 주문하려고 한다. 치킨은 내 삶에서 우선순위가 한참 뒤로 밀리는 메뉴였는데, 태풍급 마감이 몰아칠 때는 치킨이나 피자 같은 전통적인 배달 메뉴에 기대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들의 긴 역사에 기대어 흐름을 좀 타고 싶달까. 

그래, 전투 식량은 배달앱을 타고 온다. 그런데 배달앱을 켜면 너무 선택지가 많아서 또 마음이 오락가락한다. 피자와 치킨 사이에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겨우 치킨으로 마음을 먹었는데, 이번엔 그다음 관문이 기다린다. 

일단 의심의 여지 없이 순살을 선택한 것까지는 좋은데, 반반 메뉴를 고르기로 한 것까지도 좋은데, 선택의 영역이 아직 남아 있다. 어떻게 그 반반을 채우느냐가 관건인 것이다. 블랙알리오와 투움바, 고추마요 중에 어떤 조합으로? 이게 뭐라고, 얼른 고를 수가 없다. 처음도 아닌데. 나는 이 치킨을 시키면 함께 먹을 L에게 묻는다. 어떤 걸로 할까?

L이 블랙알리오와 고추마요를 고르면 그대로 시킬 생각이었는데, L이 블랙알리오와 투움바를 고른다. 고추마요도 괜찮지 않아? 내 말에 L은 그럼 고추마요와 블랙알리오를 고른다. 그러면 내게는 이제 투움바가 아주 중요한 사건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내가 놓칠 수도 있는 중요한 사건... 치킨의 세계와 소설의 세계를 혼동한 작가 하나는 그렇게 거의 삼십 분을 고민하다가 치킨 한 마리를 겨우 시킨다.

가끔은 마감식이 이래도 되나 싶은 곳에서 이뤄지기도 한다. 맛집 앞 대기 줄 속에 내가 포함되는 것이다. '드물게' 이런 일이 '종종' 일어난다. 드물게와 종종이 한 문장에 놓인 기분, 그 뭔가 말도 안되는 기분, 그게 마감 중에 <생활의 달인>과 같은 프로그램에 나온 식당 앞에 줄 서 있을 때의 내 상태다.

원고 마감을 하지 못한 채 달인의 크루아상이나 들깨옹심이를 먹기 위해 줄을 선 적이 있다. 설마 편집자를 여기서 만나지는 않겠지, 마음 졸이면서. 달인의 가게 앞에 당도하기 전까지 확고했던 내 추진력은 대기 인원의 규모에 따라 쉽게 무너진다. 간혹 압도적인 '이줄망(이번 줄은 망했어)'을 보여주는 광경들이 있다. 그럴 때는 돌아서야 한다. 내 마지노선은 20분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한 시간을 기다린 적도 있긴 하다. 그건 내 의지라기보다는 동행의 의지 때문이다.

줄이 몹시 길던 어느 베이글 맛집 앞에서 내가 "이미 글렀어"라고 할 때, L은 나를 줄에 세워두고는 냉큼 편의점에 가서 뭔가를 사 온다. 배가 통통한 바나나우유 같은 것. 빨대 하나를 내 입에 물려놓고는, 줄이 엄청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다고 중계한다. 중계할 것은 많다. 기다림을 포기하기도 하고(저기 앞에 두 명 나갔어!) 벤치마킹하기도 하고(저기도 편의점 다녀왔네!) 메뉴 하나가 마감되었다는 말에 폭발하기도 하고(싸우나 봐! 저 아저씨 욕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기다린다(저 사람 들고 나온다!). 곳곳에 사건이 있다. 사건이.

여기에 오자고 한 건 물론 나였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열심히 할 생각은 없었단 말이다. 그러니까 이렇게까지 열심히 기다릴 생각은! L은 칭얼거리는 동행에게 이렇게 말해준다. 

"어차피 줄은 다 줄어들게 돼 있어." 

이쯤 되면 L은 줄 서기의 달인이다. 그의 말은 사실이긴 하다. 긴 줄 속의 점 하나가 되어 있으면, 결국은 내 차례가 오니까. 그건 뭔가 안심이 되는 시스템 아닌가. 언젠가는 내 차례가 온다는 사실, 그 정직한 룰이 가볍게 무시되기도 하는 세상이니까. 

줄 밖으로 이탈하지 않는 한, 내 자리가 온다는 건 사람에게나 원고에게나 믿고 싶은 판타지다. 물론 예기치 않은 일은 종종 벌어지니까 가끔은 내 바로 앞에서 "오늘 재료 소진" 같은 푯말이 딱 붙어서 좌절하게 되거나, 내 바로 뒤에서 대기조차 마감되기도 하지만. 만약 그런 의외의 '사건'이 벌어진다면, 그럼 다른 식당으로 가면 된다. 선택지는 많다. 이런 의외의 이동이 반짝이는 영감을 가져오기도 한다.

원고 속에서 길을 잃은 느낌일 때, 그 미로를 헤쳐나가는 방법도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 경우엔 일단 원고를 덮고 조금 걷는 것을 선호한다. 핀셋으로 내 몸을 잡아서 여기가 아닌 다른 어딘가로 옮겨놓는 것이다. 내가 아이디어를 가장 많이 얻은 곳 중에 하나가 횡단보도 앞인데, 거기서 가만히 초록불을 기다릴 때 켜지는 게 신호등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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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윤고은(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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