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 원인이 아니라 증상이다

『어리고 멀쩡한 중독자들』 키슬 저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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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인생에 대한 모든 해답은 이미 당신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그 답을 들을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2023.01.26)

키슬 저자

알코올 의존증, 우울증, 섭식 장애, 외모 강박, 자존감 상실 등. '남들보다 잘해야 해'라고 외치는 세상에서, 누구나 한 번쯤 겪어 봤을 마음의 병이다.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쉽게 지치는 이유는 우리가 나약해서일까? <세바시> 누적 조회 수 44만 회 화제의 강연자이자 국내 최초 '여성 알코올 중독자 유튜버'로서 15년간 알코올 중독과 섭식 장애를 극복하고 그 경험을 나누고 있는 키슬이 첫 책 『어리고 멀쩡한 중독자들』을 통해 행복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해 말한다.



『어리고 멀쩡한 중독자들』은 작가님이 알코올 의존증을 극복하는 내용만큼 알코올 의존증 환자가 되기까지의 과정에도 많은 분량을 할애해 솔직하게 말하고 있는데요. 이 부분이 다른 알코올 의존증을 다룬 책과의 차이점으로 느껴져요. 이 내용을 특별히 강조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알코올 중독은 하루아침에 걸리는 질병이 아니에요. 저는 그래서 이 병을 '시간병'이라고 부릅니다. 냄비 속 개구리가 익어가는 줄도 모른 채 서서히 죽는 것처럼, 스스로 죽어간다는 자각 없이 진행되는 무서운 병이거든요. 제가 인터뷰를 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서서히 술에 물드는 중인 분이 많을 겁니다. 퇴근 후 위로 차원에서 스스로에게 건네는 맥주 한 캔, 주말마다 친구들과 만나 부딪치는 소주잔, 좋아하는 사람들과 가까워지기 위해 용기 강장제로 마시는 술, 외로움을 이기기 위해 배달 음식과 곁들이는 반주 등. 아무런 경각심 없이 만나는 알코올이 사람을 부지불식간에 중독자로 만든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아마 제가 술에 중독되어 가는 과정 그 어딘가에 독자 분들의 현재가 있을 거예요. 아주 초반일 수도, 이미 먼 길을 왔을 수도 있겠죠. 제 중독 과정을 묘사한 글을 통해 자신의 현재 상황을 조금이나마 자각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문제를 극복하려면 우선 명확하게 파악해야 하니까요. 또 하나의 이유는 공감하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실제로 '저희 집에 CCTV를 달아 두셨나요?', '제 일기를 읽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같은 후기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 과정에 공감한다면 희망도 더 크게 가질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당신과 다를 게 없는 내가 이렇게 술을 끊었어요. 그렇다면 당신도 가능하지 않을까요?'라는 메시지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작가님은 알코올 의존증 외에도 우울증, 섭식 장애 등을 앓고 있었는데요. 술을 끊은 이후, '중독은 원인이 아니라 증상'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작가님의 중독 원인은 무엇이었나요?

제 중독의 원인, 그러니까 '무의식적 문제'를 큰 틀에서 보자면 '사회적 기준에 부합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잘못된 관념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렸을 적 저는 자라는 내내 굉장히 많은 기대를 등에 업고 항상 부담을 느끼는 아이였어요. 잘해야 해, 틀리면 안 돼, 어른들의 기대를 채울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해 등. 기대에 맞춰 '잘나가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월드 클래스의 성공한 여성' 같은 이미지 있죠? 날씬하고, 멋진 옷을 입고, 전문 분야에서 일하는... 진정으로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나다운 인생은 무엇인지, 인생에서 정말로 이루고 싶은 건 뭔지는 안중에도 없었어요.

하지만 그럴수록 이상하게 엇나가고는 했지요. 저에게 '잘해야 한다'는 무거운 기대감을 심어 준 사람들에게 내 인생을 망치는 것으로 '복수'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나답게 살지 못했던 건 내 잘못된 신념 때문이지 그 누구 때문도 아니었지만, 그걸 깨닫는 데는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지요. 실제로 여러 중독과 섭식 장애로 제게 상담을 요청해 온 분들에게는 '나답게 살지 못하는 것에서 오는 공허감'이라는 공통점이 존재했어요. 그분들의 '나다움'을 찾아드리면 의외로 중독은 쉽게 끝이 나지요. 책을 집필하는 동안 독자분들도 그 지점을 찾으시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습니다.

『어리고 멀쩡한 중독자들』은 어떤 사람이 읽었으면 하고 쓰셨는지 궁금합니다. 또한 제목인 '어리고 멀쩡한 중독자'는 무슨 뜻인가요?

캐롤라인 냅의 저서 『드링킹』에 처음 나온 개념인 '고도 적응형 알코올 중독자'는, 사회생활에 고도로 적응하여 겉으로 보기에는 상당히 멀쩡하고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알코올 중독의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을 일컫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사회생활을 무척 중요하게 여기면서 동시에 알코올에 관대한 사회에서 많이 나타나지요.

같은 고도 적응형 알코올 중독자였던 저는 조금만 눈을 돌려도 '아 저분은 분명 고도 적응형 알코올 중독일 것 같은데' 싶은 분이 보이지만, 정작 그들은 자신이 중독이라고 인지조차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알코올 때문에 생활에 자잘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어도 '사회생활 멀쩡하게 하는데 뭐 어때'하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고도 적응형 알코올 중독자의 경우, 사회생활을 그냥저냥 잘하는 정도가 아니라 남들보다 좋은 성과를 내는 분이 많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자신의 중독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습니다. 요즘에는 저처럼 어린 나이에 잠재적으로 알코올 중독이 될 가능성이 높은 분이 정말 많이 보아서, 걱정이 되고 안타깝기도 합니다. 그들이 자신에게 중독 문제를 인지하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썼습니다.

'여성 알코올 중독 유튜버'라는 타이틀이 특이한데요, 사실 알코올 중독자는 점이 약점이 될 수도 있는데, 시작하며 불안하지 않으셨나요?

책의 말미에도 썼지만, 오랜 알코올 중독으로 인해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는 상황이어서 그랬는지 크게 불안하지는 않았습니다. 아시죠? 잃을 게 없는 사람은 무서운 것이 별로 없습니다.(웃음) 물론, 걱정되는 부분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직까지 중독자, 특히 여성 중독자에 대한 사회의 편견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유튜브 시작 후 입에 담기도 어려운 악플이 여럿 달렸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 고도 적응형 알코올 중독자들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으로, 죄인처럼 숨어 홀로 술을 마시고 있을 많은 분에게 '당신은 죄인이 아니다', '당신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은 열망이 더 컸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중독을 벗어날 수 있다면, 내 이야기는 얼마든지 하겠다'라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아프거나 힘들었던 기억을 드러내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사용하라는 내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돈 문제, 친구 문제 등 실제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난 사람만이 줄 수 있는 Q&A가 도움이 됐다는 평가를 들었어요. 술을 끊기 위해서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자신이 가진 '잘못된 관념'을 최대한 많이 찾아 흐릿하게 만들라는 조언을 드리고 싶습니다. 실제 코칭에서도 가장 많이 하는 작업인데요. 여기서 관념이란 'A는 B다'와 같은 형식으로 사실(A)에 의미(B)를 연결한 뒤 진실이라고 믿어 버리는 생각을 말합니다. 이 관념이 많으면 많을수록 부정적으로 변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습니다.

그리고 스트레스를 자극적이고 중독적인 행위(술, 담배, 오락 등)로 풀며 보상받으려는 심리도 커집니다. 예를 들어 '세상(A)은 불공평(B)하다'라는 관념이 있는 사람에게는 당연히 불공평한 상황이 많이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관념 자체가 프레임이 되어 다른 가능성을 보는 눈을 가리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가진 관념을 최대한 많이 발견하고 흐릿하게 만드는 작업을 하세요. 

다시 예를 들어볼까요? '세상은 불공평하다'를 흐릿하게 만들면 '세상은 불공평할 수도 있다'가 됩니다. 이보다 더 흐릿하게 만들면 '세상은 불공평하지 않을 수도 있다'가 됩니다. 이보다 더 흐릿해지면 '세상은 그냥 세상이다'가 됩니다. 이런 식으로 단계적으로 세상을 달리 볼 수 있는 가능성을 넓히면, 스트레스를 중독적 행위로 해소하고 싶은 마음도 크게 줄어듭니다.

주위에 알코올 의존증 환자가 있다면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요?

아쉽지만 자기 문제는 자기 스스로 해결할 수밖에 없습니다. 많은 이가 알코올 중독자를 돕고 싶어 하지만, 환자 당사자가 중독을 인정하지도 않고 나아지기를 원하지도 않는다면 그 누구도 실질적으로 도울 수 없습니다. 오히려 반발해 '난 절대 중독자가 아니다'라며 더 깊은 중독으로 도망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어떤 태도로 대해야 할지 몇 가지만 말씀 드리자면, 위험한 발언으로 들릴지 모르겠습니다만, 자기 문제를 스스로 깨닫고 도움을 구할 때까지 스스로 만든 착오 속에서 헤매는 것을 기다려 주세요. 많이 헤맬수록 답을 찾을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그들이 회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많은 분이 그들의 회복 가능성을 믿지도 않으면서 돕고 싶어 하는데, 이는 더 큰 의존의 원인이 될 뿐입니다. 상대를 믿는 마음은 생각보다 훨씬 더 중요합니다. 중독자들은 누군가 나를 믿고 있다는 사실에서 많은 힘을 얻습니다. 마지막으로, 상대를 죄인 취급을 하거나 그들에게 문제가 있다는 태도로 대하면 큰 역효과가 일어납니다. 편견을 버리고, 최대한 인격적인 대우와 존중의 태도로 상대를 대하면 좋겠습니다.

지금도 알코올 등 각종 중독, 마음의 문제로 힘들어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한마디 해주신다면요?

제 이야기를 읽고 있는 당신, 당신의 인생에 대한 모든 해답은 이미 당신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그 답을 들을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니 먼 곳에서 답을 찾으려 하지 마세요. 당신을 사랑합니다.



*키슬

15년의 알코올 의존증과 10년여의 식이 장애를 자력으로 극복했다. 처절한 고통 속에서 자신이 왜 이렇게 아파야 하는지 이유를 연구하다가 인간의 모든 고통은 세상을 바라보는 개인의 관점과 태도, 즉 '멘탈'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자신의 멘탈을 바로잡기 위한 과정을 거치며 삶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통찰을 얻었고, 비슷한 고통을 겪는 많은 사람의 인생을 치유하는 멘탈 코치, 강연자, 작가로 일하게 되었다.




어리고 멀쩡한 중독자들
어리고 멀쩡한 중독자들
키슬 저
좋은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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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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