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짓궂은 인터뷰] 그 선택이 고마웠다 - 『가만한 당신 세 번째』
<월간 채널예스> 2023년 1월호 - 최윤필 작가의 『가만한 당신 세 번째』
언젠가부터 어떤 '당신'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산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런 바람을 품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고, 설사 품게 되더라도 드러내지 않는, 드러나지 않는 사람으로 늙어가고 싶다. 내가 나눠 가질 꿈은 없다고 생각한다. (2023.01.02)
책 쓰는 일에 인색한 저자를 볼 때 반갑다. 쉽게 쓴 글이 아니기에 더 차분히 읽고 싶은 『가만한 당신 세 번째』. 최윤필 기자는 이 책의 인세를 길고양이와 유기견을 위해 쓴다. 저자로서 책을 낸 보람은 딱 하나, '후암동, 동자동, 사직동 고양이와 강아지들 앞에선 으스댈 수 있다는 것'이다.
최윤필 기자의 안부를 궁금해 하는 독자들에게, 요즘의 주요한 일상을 알려 달라.
아랫배가 나오는 게 싫어 연초부터 권투를 시작했다. 회비 아끼려고 6개월치를 선납하고 ‘내년 전국체전이 목표’라고 큰소리 쳤는데, 정확히 세 번 나가고 포기했다. 주로 줄넘기만 했고, 3분 줄넘기가 너무 힘들었다. 나는 결심은 더뎌도 포기는 빠른 편이다. 대신 한 달 전부터 산 너머 구립여성회관 피트니스센터에 등록했다. 근데 또 날이 추워진다.
첫 번째 『가만한 당신』이 2016년 6월에 나왔으니 6년 만에 세 번째 책이다. 소감이 어떤가?
'처음이 어렵지 두 번째는 할 만하고 세 번째는 쉽다'고들 하지 않던가. 첫 책을 제안받았을 때는 나름 자계(自戒)하며 삼가려고도 했는데, 두 번째에는 '이왕 젖은 터'라는 마음이 컸다. 이번 책 제안에 역시 주저했지만 응했다. 내 마음이지만, 그게 무언지 나도 '솔직히' 모르겠다. 뭐가 달라진 것인지 두려워하며 들여다보는 중이다.
첫 장을 펼치면 "나는 윤리야말로 궁극의 '능력'이라고 믿는다."라는 문장이 적혀 있다. 편집자의 선택이었을까?
오롯이 편집자의 선택이지만, 나도 그 선택이 고마웠다. 경쟁을 미화하고 부추길수록 윤리 의식이 능력 발휘의 장애물처럼, 능력 부족의 변명이나 무능의 알리바이처럼 인식되는 경향이 있지 않은가 의심하곤 한다. 경쟁은 분배를 위한 유효한 방편 중 하나지만, 윤리가 전제되지 않으면 축구의 반칙처럼 기만적인 이데올로기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가만한 당신 세 번째』는 '인간다움의 가능성을 넓힌, 가만한 서른 명의 부고'가 담긴 책이다. '앞서가는 당신', '건설하는 당신', '질문하는 당신', '폭로하는 당신', '기록하는당신'으로 카테고리를 나눴다. 주제에 맞는 인물을 선정했나? 또는 반대였나?
인물들을 정한 뒤 범주화한 것으로 알고 있다. 책에 실린 주인공들은 모두, 내 부탁에 따라 편집자가 선택했다. 카테고리를 나눈 것도 편집자의 아이디어였고, 내게는 대안이 없었다. 독자 편의 등을 감안해서 내린 판단일 테지만, 삶을 범주화하는 의미로 이해되지는 않았으면 한다.
저자는 '기록하는 당신'일까?
언젠가부터 어떤 '당신'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산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런 바람을 품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고, 설사 품게 되더라도 드러내지 않는, 드러나지 않는 사람으로 늙어가고 싶다. 내가 나눠 가질 꿈은 없다고 생각한다. 굳이 고르라면 '지켜보는 당신'.
첫 번째, 두 번째 책에는 한국인 부고가 없었는데 이번 책에는 고 이문자, 이도진, 김일주의 이야기가 실렸다.
직장 상사의 강한 권고가 계기였다. 나 역시 부고로 소개하고 싶은, 엄밀히 말하면 취재를 핑계로 좀 더 알고 싶은 이들이 있었다. 그렇게 다시 시작했지만 역시 힘들었고, 저항감도 찜찜함도 여전했다. 고인의 기억(기록)에 티끌 한 점도 용인하지 않겠다는 이들의 마음을 이해는 한다. 요즘은 또 잘 안 쓴다.
<한국일보>에 '기억할 오늘', '가만한 당신'을 연재하고 있다. 신문 기자인 저자는 왜 과거의 사건, 사람들을 많이 기억하려고 할까?
잘 모르겠다. 또래 기자는 대부분 논설위원이지만, 나는 매일 제때 출근하고 토론하고 순서에 맞춰 칼럼 쓰는 일을 해낼 능력도 자신도 없다. 신문사에서 나처럼 한계가 뚜렷한 기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기억할 오늘'은 편집국 지시로 칼럼을 면제받는 대신 쓰게 된 코너다. 깨달은 점은 아직도 잘 모르겠다.
<가만한 당신> 시리즈를 가만히 사랑해 주는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
앞 질문과 관련을 지어 답해야 할 것 같다. 내가 칼럼을 기피하고 또 못 쓰는 주된 이유는, 할 말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어쩌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누군가 이미 한 말이거나 뻔한 말인 것 같고, 못난 내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아 위축되곤 했다.(그래서 부고의 형식으로, 그들의 삶과 말을 빌려 오게 된 것일지 모른다) 독자들께도 특별히 드릴 수 있는 말은 없다. 꽤 오래 연재했지만, 독자가 있다는 사실이 다만 신기하고, 고맙다.
*최윤필 1992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편집부, 사회부, 경제부, 문화부, 기획 취재부 등을 거쳐 지금은 <한국일보> 선임 기자로 일하며, 매주 원고지 약 60매 분량의 글을 쓴다. 지은 책으로 『어느 날 나는 바깥으로 들어갔다』, 『겹겹의 공간들』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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