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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진의 글 쓰는 식탁] 나만의 장소
<월간 채널예스> 2022년 11월호
마르땅(반려인)이 카페를 열면서 내게 두 번째 직업이 생겼다. 카페 아르바이트. 나는 요즘 매일 카페로 출근한다. (2022.11.04)
마르땅(반려인)이 카페를 열면서 내게 두 번째 직업이 생겼다. 카페 아르바이트. 나는 요즘 매일 카페로 출근한다.
프랑스인 마르땅의 취향을 반영한 이 카페는 프랑스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시장 입구에 있다. 사람들은 종종 내게 왜 이런 곳에 카페를 차렸냐고 묻고 나는 그럴 때마다 '유산'이라고 대답하는데, 그러니까 이곳은 우리 집 여자들이 다소 무능했던 남편과 자식들을 먹여 살린 성소였다. 시작은 할머니였다. 한글도 쓸 줄 몰랐던 할머니가 이 가게를 장만해 식구들을 먹여 살렸고, 아빠의 사업이 망한 이후로는 엄마가 다시 이곳에서 옷을 팔아 우리를 키웠다. 할머니는 이 가게를 '미친년 허벅지만 한 곳의 기적'이라고 불렀는데, 정확히 '미친년'은 누구이며 그 여자의 허벅지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없지만, 먹고사는 데 미친 듯이 매달렸던 여자의 가는 허벅지만큼 좁고 보잘것없는 곳이라는 의미와 그런 곳에서 망하지 않았으니, 그것이 '기적'이라는 뜻이었으리라 짐작한다.
아무튼 인생은 흘러 흘러 이제 내가 이곳에 있게 됐다. 십 년 전 누군가 내게 "너는 한국에 돌아가 할머니의 가게에서 커피를 팔게 된다"고 말했다면 나는 어이가 없어서 웃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인생이 내게 던진 이 농담에 웃고 있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언젠가 내가 '우연'을 좋아한다는 문장을 책에 쓴 적이 있는데, 그 우연이 이것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 책 제목도 『몽 카페』다. 우리말로 옮기면 '나의 카페'. 나의 카페가 내가 아르바이트하는 카페가 된 것은 정말이지 완벽한 우연이다.
내가 이 카페에서 일하는 대가로 받은 것은 한쪽에 놓인 작은 테이블과 팔걸이가 있는 의자다. 테이블은 네모반듯하고 의자는 오십 년도 더 된 오래된 것인데, 거기 앉는 순간 바로 내 자리라고 느꼈다. 몸을 웅크리고 책을 펼치면 열리는 나만의 장소. 마르땅이 아침부터 반죽을 하는 동안 나는 그 의자에 앉아 글을 쓰고, 읽고, 옮긴다.
오늘 아침에는 최승자 시인의 에세이 『어떤 나무들은』을 읽었다. '아 슬픔이여'라는 말에는 그 슬픔이 가진 몇 프로의 풍자와 경멸과 진짜 슬픔이 있고, 그것에 딱 맞는 단어를 고르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라는 시인이자 번역가의 말에 어제 옮긴 문장이 부끄러워졌다. 그러나 부끄러운 것은 부끄러운 것이고, 슬픔을 슬픔으로만 해석하지 않는 사람의 글을 읽는 일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그 작은 테이블에서 슬픔의 세계가 확장됐다. 나의 슬픔에는 몇 겹의 마음들이 있을까, 그걸 들여다보려는 순간, 손님이 들어오고 영업이 시작됐다. 내 자리를 떠나야 하는 시간이 온 것이다.
온종일 바에서 커피를 내렸다. 의자는 텅 빈 채로 나를 기다렸고, 최승자의 『어떤 나무들은』은 테이블에 우두커니 놓여 있었다. 나는 몇 번이고 그곳을 바라봤다. 아, 내 자리! 마감에 허덕이며 쓰고 옮기는 기쁨을 다 잃은 줄만 알았는데...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간사하다. 커피를 내릴수록 점점 그 자리가 그리운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곱게 분쇄한 커피에 95℃의 물을 천천히 부으며 문장을 생각했다. 여러 겹의 마음을 다 끌어안은 '아 슬픔이여'라는 말은 테이스팅 노트가 풍부한 커피 같다. 맛있는 커피를 만들기 위해서는 알맞은 물의 온도와 원두의 적절한 분쇄도, 섬세한 동작이 필요하다. 하물며 문장은, 문장을 쓰고 옮기는 일은 어떻겠는가. 언어의 온도와 그것의 알맞은 크기를 찾기 위해서는 어떤 섬세함과 정확함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나는 키보드가 아닌 주전자를 쥐고 있고, 그걸 깨달은 순간 나의 자리가 얼마나 간절하던지... 최승자 시인은 어떤 나무들은 바다가 그리워 아무리 멀리 있어도 바다 쪽으로 구부러져 자란다고 했는데, 나 역시 그런 나무가 아닐까 하는 희망이 생겼다. 읽고 쓰고 옮기는 일을 향해 자라는 희망 말이다. 주전자를 쥐고 그런 희망을 품는 것은 너무도 나다운 일. 나는 꼭 엉뚱한 곳에 서서 내 자리를 찾는다.
영업이 끝나고 마지막 컵을 깨끗이 씻고 내 자리로 돌아가 다시 책을 펼쳤다. 불현듯 할머니와 엄마가 떠올랐다. 그 두 사람은 이곳에서 어떤 기적을 간절히 꿈꿨을까. 가만히 생각해 보니 간절함이야말로 이곳의 유산 같다. 지금 내게도 간절한 것이 하나 있다. 그러니까 문학이라는 바다를 향해 내 가지가 휘어지는 일, 읽고 옮기고 쓰는 일을 향해 몸이 굽는 일. 그 바다가 멀어도 좋다. 닿지 못해도 상관없다. 바다가 있는 방향을 아는 나무로 살 수 있다면... 나는 그곳을 향해 최선을 다해 내 가지를 뻗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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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오래된 극장을 돌아다니며 언어를 배웠다. 산문집 『열다섯 번의 낮』, 『열다섯 번의 밤』,『몽 카페』를 썼고, 아니 에르노의 소설 등을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