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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묘의 언박싱 케이팝] 엔믹스의 주사위 놀이
NMIXX(엔믹스) <ENTWURF>
퍼포머로서 엔믹스가 곡을 이끌고 나가는 곡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프로덕션과 멤버들 모두가 치열하게 쏟아붓는 기세만큼은 더없이 확연하게 선보여진다. (2022.10.05)
대중음악 평론가 미묘의 ‘언박싱 케이팝’ 칼럼이 격주 수요일 연재됩니다. 최신 이슈부터 앨범 패키지에 담긴 이야기까지 지금 케이팝의 다채로움을 전합니다. |
엔믹스(NMIXX)는 대체 무얼 하고 싶은 건가, 많은 이가 궁금해하는 일이다. 오로지 차진 팝송의 미덕을 곧 죽어도 고수하던 JYP 엔터테인먼트의 전통을 역행하며, 데뷔 전부터 거창한 세계관 콘텐츠를 많이도 풀어냈고, 데뷔곡 'O.O'도 파격적으로 시퀀스를 이어 붙였다. 뒤이은 행보가 드림웍스 <개비의 매직 하우스> OST, 여름 방학을 맞아 (방학을 맞을 일 없는) 중장년의 추억 여행을 돕는 리메이크 프로젝트 참여였던 점도 이 의문에 명쾌한 답을 제시해주기는 어려웠다. 하이데거의 용어를 빌어온 새 싱글 <ENTWURF>는 이에 대답해줄까?
타이틀곡 'DICE' 뮤직비디오는 보드빌 풍의 극장에서 액자식으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참조한 정원에 진입한다. 브라스는 인트로의 레트로 무드를 냈다가, 두텁고 넓게 왜곡된 신스 브라스가 되어 강경한 힙합을 구사했다가, 후렴에서는 화려한 팝적 공간을 연출한다. 곡은 랩과 멜로디가 (말하자면) 대화하는 형태로 굴곡이 많은 구절들로 이뤄지고, 전작 'O.O'처럼 급격한 템포 변화를 맞이하며, 규진과 지우의 8마디 랩을 청자의 신경망 바로 앞까지 끌어다 놓는다. 원곡으로 돌아온 후에는 2분 46초 플레잉 타임 중 상당히 뒤인 2분 10초경에 '아직도 놀랄 일이 남았다'는 듯이 댄스브레이크를 삽입하기도 한다. 여전히, 수시로 청자를 뒤집고 뒤집고 또 뒤집어 놓는 복잡한 전개의 곡이다.
영상 역시 화려하고도 복잡하다. 극장과 정원, 작은 방, 바다, 널찍한 스튜디오, 우주 등 많은 공간을 수시로 오가고 그 색감이나 공간감도 서로 차이가 크다. 주사위를 던져 나올 수 있는 다양한 경우를 표현하고, 데뷔 티저에서부터 강조하듯 서로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수평적으로 수집하는 것이 엔믹스의 테마이기도 하다. 다소 과한 듯도 하지만, 무작위로 쏟아놓은 바구니처럼 느껴지지만은 않는다.
곡의 주제인 주사위가 그렇다. 뮤직비디오 속 엔믹스 멤버들은 주사위 외에도 많은 것을 손에 쥔다. 트럼프 카드, 룰렛, 체스 등이다. 여기에 마술쇼나 군무까지 더해지면 '다이스'인지 라스베이거스인지 하이데거인지 혼란스러워지기도 한다. 그런데 카드는 미리 정해진 운명을 집어 들거나 이를 전략적으로 사용하는 도구다. 룰렛은 정해진 순서를 가해진 힘에 따라 순환적으로 거치다 하나에 도달한다. 체스는 전략 싸움이다. 그에 비해 주사위는, 비슷비슷해 보이는 다른 세속적 행위들 중에서도, 아직 정해지지 않은 운명을 자기 손으로 선택하는 도구다. 싱글 제목인 하이데거의 개념 '기투성(Entwurf)'의 의미처럼 말이다.
패키징은 싸이키델릭을 차용한 스타일로 꾸며졌다. 뮤직비디오 속 기이한 정원의 풍경은 한정반에서는 팝업으로, 일반판에서는 스티커로, 주얼케이스 버전에는 뒷표지와 사진 배경으로 등장한다. 한정반과 일반판의 경우 씨디는 포토북 끝에 끼워져 있는데, 가사지는 별지로 포함돼 있다. 그만큼 가사지에 그려진 주사위 게임 보드를 강조하고 있는데, 약간 과몰입하자면 아쉬움이 남는다. 페이지 자체는 세로가 더 긴 패키지의 판형을 따르고 있어 위아래 여백이 남기 때문이다. 주사위를 던지고도 아직은 패키지 속에 갇혀 있음을 표현하려 했다고 말한다면, 나의 기준에서도 지나친 과몰입인 것 같다.
어쨌든 힘이 많이 들어간 싱글임에는 분명하다. 곡과 뮤직비디오, 패키지까지 디테일이 매우 많고 동시에 다채로워서, 비교적 평이한 사진집 같은 포토북의 페이지를 넘길 때 안도감마저 든다. 포토북 후반 '도망칠 생각 마라'는 듯 'Impetus'를 설명하는 두 페이지나 앨범 소개글의 으리으리하고도 긴 설명을 마주할 때면 역시 조금 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안 그래도 밀도 높은 콘텐츠 속에 메시지'들'이 많이 있음을 자꾸 강조하면서, 이를 '해석'해야만 즐길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DICE'는 엔믹스가 어디로 가려는지 보여준다. 'O.O'가 팝적인 달콤함을 중간 삽입부에 (심지어 'JYP표' 멜로디 질감까지 더해) 단 한 번 쏟아낸 것에 비해, 'DICE'는 팝송으로서 정 붙일 만한 대목을 여럿 준비했다. 어지러울 수는 있어도, 순간순간의 당황을 즐기며 플레잉타임 내내 따라가기는 수월해졌다. 파격적으로 설계된 구조 위에 멤버들이 올라섰다기보다, 그래도 퍼포머로서 엔믹스가 곡을 이끌고 나가는 곡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프로덕션과 멤버들 모두가 치열하게 쏟아붓는 기세만큼은 더없이 확연하게 선보여진다.
이를 가능케 하는 건 JYP의 '원천 기술' 중 하나일 수 있겠다. 초기의 트와이스가 이런저런 덜컹임에도 불구하고 "용기 내라!", "좋아한다!" 같은 '메시지'만은 부정할 수 없이 전달했고, 어떤 걸 하든 있지가 "아무튼 다르구나!"하고 납득시켜버린 걸 생각하면 말이다. 애초에 어려운 메시지가 아니지 않았느냐고? "너 스스로 살아가", "깨어나" 같은 것도 따지고 보면 심플한 이야기일 수 있고 그 자체로 케이팝에서 이질적인 주제도 아니다. 'DICE'와 엔믹스가 다를 수 있다면, 어쨌든 지금으로서는 이 곡이 들려주는 포화 상태를 넘어서려는 에너지와 기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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