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 놀이터

[미묘의 언박싱 케이팝] 제이홉의 신기루 같은 '지금'

제이홉(j-hope) <Jack In The Box>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사라질 수도 있지만 머물 수도 있는, 더 상업적이거나 높은 성적을 올릴 수도 있지만 딱히 그러지 않아도 좋은 앨범. 이 앨범의 많은 선택은 '지금으로서 즐길 것'을 제안하는 듯하다. (2022.08.24)


대중음악 평론가 미묘의 ‘언박싱 케이팝’ 칼럼이 격주 수요일 연재됩니다.
최신 이슈부터 앨범 패키지에 담긴 이야기까지 지금 케이팝의 다채로움을 전합니다.


빅히트뮤직 제공

많은 이에게 제이홉(j-hope)의 <Jack In The Box>가 주는 첫인상은 '어둡다'는 것이었을 테다. 디스코 기반의 틴팝으로 화려한 사운드 속에 작은 것들을 크고 아름답게 노래하던 BTS가 그룹 활동을 잠시 내려놓고 당분간 솔로 중심의 활동을 하겠다고 천명한 후 첫 타자다. 고전적일 정도의 힙합 비트는 사뭇 전투적이고, 해사하고 활달해 보이던 제이홉은 무겁고 심각하게 으름장을 놓으며 래핑한다. 그의 목소리에는 종종 디스토션이 날카롭게 걸리고, 무거운 비트 뒤로 한발 물러선 보컬 믹스도 암울한 세계의 탁한 공기감을 전한다.

그런 맹렬함에 비해 곡들이 '매운맛'으로 들리지는 않는다. 이를테면 우리가 케이팝에서 익숙하게 접하는 인트로와 전개부, 절정부와 확실한 결말 같은 구조의 롤러코스터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곡들은 각기 스냅숏처럼 일정 시간을 흐르다 "자, 여기까지만"이라고 말하듯 과감히 잘라내고 다음 트랙으로 넘어가 버린다. '케이팝 맛'을 기대해서가 아니라, 어떻게 보면 병렬된 인털류드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밋밋하거나 얕은 것은 아니다. 곡 하나하나는 내부에 메시지의 전제와 이면이 차곡차곡 담겨 있고 그에 따라 비트의 음악적 전개와 이에 조응하는 래퍼의 '연기'가 충실한 굴곡들을 만들어낸다. 곡들이 갑작스럽게 끝난다고 느낀다면 어느 정도는, 곡마다 내부에 흐르는 다이내믹이 더 앞으로 나아갈 만큼 넉넉하기 때문일 수 있다. 순식간에 끝나는 곡들이 나열된, 순식간에 끝나는 앨범이다.

이러한 출렁임을 타고 제이홉은 비관으로 가득한 세계관 속을 날렵하게 '허슬'하며 생존과 희망을 추구하는, 특유의 낙천적인 캐릭터상을 심도 있게 전달한다. 비트의 질감이 <화양연화> 연작 이전 <학교> 시리즈 시절의 방탄소년단을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앨범은 또한 '시대의 아름다운 청년'이 된 BTS의 한 단면을 증언하기도 한다. 내부에서 부글대는 활기와 끝내 지향하는 희망이 단지 한국 주류 문화로서의 케이팝이 수용할 수 있는 '어두운 콘셉트'의 타협점이 아닌, 셀프메이드 아티스트로서 BTS의 본연에서 비롯된 것이었음을 말이다. 제이홉의 솔로 앨범이자 BTS의 스핀오프로서의 의의도 생각해 볼 만해지는 대목이다.

또 한 가지, 이 앨범의 특기할 점은 '위버스 앨범 버전'이다. 패키지에 수록된 코드를 '위버스 앨범' 앱에 등록하며 향후 이 앱을 통해 앨범을 감상할 수 있는 포맷이다. 소속사인 하이브(HYBE)에서 다른 아티스트들도 CD와 '위버스 앨범'을 함께 발매한 바 있는데, 제이홉은 CD 없이 '위버스 앨범 버전'으로만 발매됐다. 패키지에는 등록 코드와 포토 카드, 그리고 예스24 등 구매처에 따라 주어지는 특전 스티커만이 포함돼 있다. 이중 포토 카드는 이미 패키지 내부에 수납하기보다 '탑로더' 등을 이용해 별도로 수집하고 보관하는 일이 일반화돼 있는 형편이다. 그러니 물리 앨범이기는 하되 그 '물성'은 매우 제한돼 있는 셈이다. 믹스테잎으로만 발매되던 BTS 솔로 작품이 정식 앨범으로 발매된다는 소식에 기대한 팬들에게는 디지털 앨범에 꽤나 가까운 이 포맷이 아쉬울 수도 있겠다.

기존에도 물성을 어느 정도 확보하며 CD를 대체하려는 디지털 앨범 패키징 포맷이 케이팝 업계에 몇 가지 등장한 바 있는데, 아직 그 존재감은 다소 부족한 편이다. 이중 위버스 앨범은 다운로드 권리가 아닌 서비스 내 감상 권리를 판매한다. 그런 사태를 바라는 이는 아무도 없겠지만, 만에 하나 서비스가 종료되는 경우를 생각하지 않을 수는 없다. 스트리밍 서비스는 종료된다 해도 감상 기록이나 플레이리스트, 댓글 정도가 사라지고 소비자는 다른 월 정액 서비스에 가입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개별적으로 구매한 앨범의 감상 권리가 신기루처럼 날아갈 수도 있다는 점은, 스트리밍 시대 이전 초기 음원 서비스나 전자책 서비스 모델과 궤를 같이한다.

CD와, 특히 으리으리하게 구성되는 케이팝의 앨범 패키지가 남기는 탄소 발자국에 대한 경각심이 공유되고 있는 시점이다. '한없이 디지털 앨범에 가까운' 포맷도 이와 무관하지만은 않아 보인다. 'STOP(세상에 나쁜 사람은 없다)'는 환경 재앙을 포함한 디스토피아적 세계에 대해 "작은 발걸음이 큰 발걸음"이라 말하고 있기도 하다. 팬들의 큰 불만인, 위버스 앨범이 빌보드 차트 집계 대상이 아니라는 점까지, 많은 것이 과도기적인 인상을 남기기도 한다. 그러나 BTS의, 그것도 커리어 상 큰 상징적 의미를 갖는 앨범이 당장의 한 걸음을 걷는 것은 나쁜 일처럼 보이지 않는다. 사라질 수도 있지만 머물 수도 있는, 더 상업적이거나 높은 성적을 올릴 수도 있지만 딱히 그러지 않아도 좋은 앨범. 이 앨범의 많은 선택은 '지금으로서 즐길 것'을 제안하는 듯하다.



제이홉 (j-hope) - Jack In The Box (Weverse Albums)
제이홉 (j-hope) - Jack In The Box (Weverse Albums)
제이홉
YGPLUSBIGHIT MUSIC



추천기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0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미묘(대중음악평론가)

<제이홉>10,500원(19% + 1%)

*어플리케이션 설치 및 QR 코드 인식 후, 앨범 전곡 및 위버스 앨범 독점 포토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카트
  • 리스트
  • 바로구매

오늘의 책

끝나지 않는 오월을 향한 간절한 노래

[2024 노벨문학상 수상] 1980년 5월 18일부터 열흘 간의 광주, 그리고 그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작가의 철저한 노력으로 담아낸 역작. 열다섯 살 소년 동호의 죽음을 중심으로 그 당시 고통받았지만, 역사에서 기록되지 않은 인물들의 이야기를 꺼내 보이면서 그 시대를 증언한다.

고통 속에서도 타오르는, 어떤 사랑에 대하여

[2024 노벨문학상 수상] 2023 프랑스 메디치 외국문학상 수상작이자 가장 최근작. 말해지지 않는 지난 시간들이 수십 년을 건너 한 외딴집에서 되살아난다. 깊은 어둠 속에서도 “지극한 사랑”이 불꽃처럼 뜨겁게 피어오른다. 작가의 바람처럼 이 작품은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다.

전세계가 주목한 한강의 대표작

[2024 노벨문학상 수상] 2016년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수상한 장편소설이자 한강 소설가의 대표작. 보이지 않는 영혼의 고통을 식물적 상상력으로 표현해낸 섬세한 문장과 파격적인 내용이 큰 울림을 만들어낸다. 폭력의 악순환을 끊고,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나무가 되고자 한 여성의 이야기.

더럽혀지지 않는 어떤 흰 것에 관한 이야기

[2024 노벨문학상 수상] 한강 소설가의 아름답고 고요한 문체가 돋보이는, 한 편의 시와 같은 작품. 삶과 죽음의 경계를 허물고, 그 사이를 넘나드는 소설이다. ‘흰’이라는 한 글자에서 시작한 소설은 모든 애도의 시간을 문장들로 표현해냈다. 한강만이 표현할 수 있는 깊은 사유가 돋보인다.


PYCHYESWEB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