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대중문화 > 김윤하의 전설이 될 거야
혼성 그룹, 왜 안돼? : 케이팝의 한계를 깨는 KARD의 저력
KARD(카드) <Re:>
확고한 방향성이 있고, 그 모두를 담아낸 좋은 음악이 있다면, 나머지는 그저 남은 사람들이 수군대는 소리일 뿐이다. 케이팝에 다른 색깔이 또 한 번 덧입혀졌다. (2022.07.06)
케이팝에서 혼성 그룹은 금기에 가깝다. 요즘 말로 ‘있었지만 없었습니다’ 수준이다. 이러한 혼성 그룹 부재에 90년대를 언급하는 사람은 하수다. 룰라나 투투, 잼이나 영턱스 클럽, 쿨이나 코요태 같은 그룹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등장하며 전성기를 이루던 그 시절 가요계와 지금의 케이팝 신(scene)은 인기의 양상도 팬덤 형성과 운용도 하늘과 땅 차이다.
90년대 혼성 그룹의 키워드는 ‘그룹’과 ‘댄스 음악’이었다. 모든 게 새로웠다. 적당한 안무가 곁들여진 흥겨운 악곡에 맞춰 노래하고 춤추는 한 무리의 젊음에 대한 욕구는 그때도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기에 누가 들어도 호불호를 느끼지 않도록 결이 다른 남성과 여성의 목소리를 적절하게 배치했다. 스물두 살 동갑내기를 묶어 청춘의 풋풋함을 살렸던 투투나 남성 멤버들이 만든 밑그림을 기어이 찢고 튀어나오는 신지 목소리의 존재감은 그런 노래 중심의 기획을 통해 탄생했다. 요즘으로 치면 음원 차트 선전을 겨냥해 부드러운 보컬리스트를 기용한 힙합 트랙들과 흡사한 제작 방식일 것이다.
90년대를 떠나 상식선의 아이돌 그룹을 살펴보자. 이제는 꽤 길어진 케이팝 족보를 샅샅이 훑어봐도 별다른 흔적을 찾기 어렵다. 2010년 등장했던 남녀공학이나 같은 소속사라는 이점을 활용해 유닛으로 활동했던 트리플H 정도를 제외하고는 제대로 데뷔해 활동한 그룹 이름조차 찾기 힘들 정도다.
실상이 이렇다 보니 ‘케이팝에는 왜 혼성그룹이 없을까?’는 잊을만하면 등장하는 케이팝 대표 질문이 되었다. 매번 새롭게 신기하다는 듯 떠오르는 물음표에 대한 대답의 가짓수는 사실 열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다. 동일 성별로 구성된 그룹의 장점은 정서적 이유에서 물리적 한계까지 무척이나 다채롭다. 숙소에서 대기실, 차량 이용의 편의는 물론 현실과 망상을 모호하게 오가는 멤버 사이의 관계성에서 각종 ‘유사’ 감정을 불러일으키기 용이한 환경, 여기에 혼성 그룹에 비해 동일 성별 그룹의 성공 사례가 훨씬 많다는 데이터적 접근도 무시할 수 없다.
2017년 정식 데뷔한 혼성 그룹 카드(KARD)는 이런 ‘말하지 않아도 아는’ 업계 불문율을 등지고 등장한 일종의 돌연변이다. 혼성그룹 전멸 신화를 분연히 딛고 선 이들 성공의 바탕에는 해외 시장에서의 뜨거운 반응이 있었다. 오대양 육대주 어딘가에 꽂혀 나부끼는 태극기는 그것이 어디든 누가 꽂았든 모든 걸 삼켜버리는 국내 최대 화제성의 불꽃 그 자체 아니던가.
2016년 프로젝트 그룹으로 이름을 알린 '카드'는, 당시 저스틴 비버나 에드 시런 같은 팝 스타들도 한참 푹 빠져 있던 뭄바톤과 트로피컬 하우스를 케이팝 식으로 풀어낸 ‘Oh NaNa’, ‘Don’t Recall’로 서서히 인기의 닻을 올렸다. 정식 국내 데뷔도 하기 전 월드투어를 먼저 연 그룹으로 명성을 크게 얻기도 했다. 이후 멤버의 군 입대로 인해 생긴 공백기를 갖기 전 발표한 EP <RED MOON>과 싱글 <Way With Words>까지 이러한 음악적, 활동적 기조는 꾸준히 이어졌다.
엔데믹의 훈풍을 타고 1년 10개월 만에 다시 돌아온 카드의 앨범 <Re:>는 그렇게 자신들을 끌어 올린 힘의 중심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그 언제보다 뚜렷하게 증명하는 앨범이다. 2년에 가까운 공백기나 멤버의 군대 문제도 있지만, 그 사이 소속사가 변경되는 그룹으로서는 나름 큰 변수도 있었다. 앨범 작업을 함께하던 스태프도 전면 변경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카드는 그럼에도 더욱더 카드다운 것을 가지고 돌아왔다.
깊은 동굴 속 뚝뚝 떨어지는 검은 물방울처럼 몽환적으로 그려진 사운드를 떠다니는 전지우의 묵직한 저음으로 시작되는 앨범은 타이틀 곡 ‘Ring The Alarm’을 비롯한 전반부 두 곡을 어둡게, 후반부 두 곡을 다소 가벼운 터치로 가져간다. 이 대비는 '카드'라는 그룹이 지난 6년간 뜨거운 나라에서 가져온 다양한 리듬으로 그려온 음악들로 만든 그라데이션을 그 언제보다 선명하게 드러낸다.
물론, 그를 떠받치는 든든한 축이 클로버와 스페이드, 하트, 다이아몬드로 상징되는 멤버들의 확고한 개성과 정체성이라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일 것이다. 이쯤 되면 혼성 그룹이 어떻고, 남녀가 어떻고 하는 말들이 전부 사족처럼 느껴진다. 확실한 실력이 있고, 확고한 방향성이 있고, 그 모두를 담아낸 좋은 음악이 있다면, 나머지는 그저 남은 사람들이 수군대는 소리일 뿐이다. 케이팝에 다른 색깔이 또 한 번 덧입혀졌다. 안될 건 아무것도 없다.
추천기사
관련태그: 채널예스, 예스24, 김윤하의전설이될거야, KARD, 카드, 혼성그룹, Re:, 카드Re:
대중음악평론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케이팝부터 인디까지 다양한 음악에 대해 쓰고 이야기한다. <시사IN>, <씨네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