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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지, 정성껏 문장을 고르는 사람
<월간 채널예스> 2022년 6월호
제가 책을 읽을 때 소리를 많이 내거든요. ‘헉’하고 놀라거나 크게 감동을 받으면 저도 모르게 감탄이 나와요. 그렇게 저를 놀라게 하는 책이 좋아요. (2022.06.09)
‘요즘 책 읽는 문화’를 가장 잘 아는 사람 하면, 혜지 님이 떠올라요. 현재 소셜 독서 플랫폼 ‘텍스처’에서 일하고 있죠. 하는 일을 소개해 줄 수 있나요?
북 큐레이터로 꾸준히 일해왔어요. ‘텍스처’는 문장을 수집하고 공유하는 소셜 플랫폼인데요. 제 역할은 주제별로 좋은 문장을 소개하는 콘텐츠를 만드는 거예요. 하루를 마무리할 때 읽기 좋은 문장이나, 산책에 관한 문장. 다양한 상황에 맞는 책을 추천하고 있어요.
원래는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다고 들었어요. 어떻게 책과 관련된 일을 하게 됐어요?
대학 시절부터 책을 정말 좋아했어요. 전공 수업만큼 영문학, 독문학 등 다양한 수업을 들을 정도로요. 주변에도 버릇처럼 난 서점에서 일할 거야 말하고 다녔죠.(웃음) 자연스럽게 첫 직장이 서점이 됐는데, 그때만 해도 ‘북 큐레이터’라는 직업을 몰랐어요.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된 거네요. ‘북 큐레이터’ 일을 직접 해보니 어땠나요?
사실 크게 달라진 건 없어요.(웃음) 평소에도 주변에 책 추천을 많이 해왔거든요. 최근에 떠오른 일인데, 군대 간 친구에게 책을 보내준 적이 있었어요. 책만 보낸 게 아니라 표지에 포스트잇을 붙여서 이 책을 왜 읽어야 하는지 어떤 점이 좋은지 적어서 보냈다는 거예요. 내가 이미 큐레이션을 하고 있었던 거구나 했죠. 직업이 되고 나서는 이 책을 누가 읽어야 하는지 꼼꼼히 분석하게 된 것 같아요. 이 책이 왜 특정 주제에 들어가야 하는지 자세히 설명할 수 있어야 하고요.
좋아하는 것이라도 일단 일이잖아요. 지칠 때는 없나요?
일할 때 크게 스트레스를 안 받는 편이에요. 주변에서 궁금해할 정도로요. 저는 일과의 거리두기가 잘 되는 것 같아요. 물론 업무시간에는 최선을 다하죠. 그런데 일은 일이고, 일 말고도 좋아하는 게 너무 많거든요. 친구랑 술 마시며 이야기하는 것도 좋고, 피아노도 치고 요가도 하고요. 오히려 일이 내 전부가 아니니, 더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책 읽는 문화도 변하고 있어요. 혼자 읽고 끝내는 일이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읽고 리뷰를 SNS에 적극적으로 올리기도 하죠.
맞아요. 요즘엔 모두가 좋아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공유하잖아요. 다들 SNS 계정 하나쯤은 있고요. 그런 문화에 독서도 연결되는 것 같아요. 저도 좋은 책을 읽으면 그 경험을 주변 사람에게 끊임없이 이야기하게 되더라고요. 거창하지 않더라도 소수의 마음 맞는 사람에게 나누고 싶은 욕구는 누구에게나 있다고 생각해요.
혜지 님의 인스타그램에도 와닿는 문장들이 많았어요. 평소에 어떤 책을 좋아하나요?
제가 책을 읽을 때 소리를 많이 내거든요. ‘헉’하고 놀라거나 크게 감동을 받으면 저도 모르게 감탄이 나와요. 그렇게 저를 놀라게 하는 책이 좋아요. 예전에는 현대소설이 어렵다고 생각했는데요. 한 권씩 읽다 보니 새로운 길이 열리더라고요. 그렇게 배수아, 정지돈, 이상우 작가 등 소설을 예술로서 느끼게 하는 책을 많이 읽게 됐죠.
지금 표정에 사랑이 가득한 거 알아요?
하하. 그런 말 많이 들어요. 책 이야기할 때, 표정이 달라진다고요. 책 이야기 하니 너무 신나네요.
최근에 좋았던 책이 궁금해요.
너무 많은데요.(웃음) 하나의 경험으로 다가오는 책들이 기억에 남아요. 『혼자 점심 먹는 사람을 위한 시집』은 점심시간을 주제로 묶인 시 앤솔로지인데요. 점심시간에 한 편씩 읽으니 참 좋더라고요. 실제로 점심시간에 쓰인 시도 있어서, 내용과 제 독서 경험이 겹쳐지는 것 같았어요. 정지돈 작가의 산문집 『당신을 위한 것이나 당신의 것이 아닌』은 산책을 하듯 읽었어요. 무작정 걷고 싶을 때, 대신 걸어주는 듯한 책이랄까요.
『인싸를 죽여라』와 『분더카머』도 즐겁게 읽으셨다고요.
맞아요. 일을 시작하면서 문학 외의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게 돼요. 『인싸를 죽여라』는 미국 극우주의에 대한 책인데 사회과학 책인데도 스릴러처럼 읽혀요. 인터넷상에서 혐오가 계속되면 정말 큰일 나겠다는 생각이 들고, 새로운 관점으로 생각할 수 있었어요. 『분더카머』는 소설, 에세이, 학술서의 경계를 넘나드는 책인데요. 읽는 내내 마음이 건드려져서 펑펑 울기도 했어요. 문장을 따라가는 것 자체가 즐거웠죠.
마지막으로, 혜지 님이 좋아하는 문장을 소개해줄 수 있나요?
하나를 꼽는 대신, 에밀 시오랑의 아포리즘 『태어났음의 불편함』을 추천하고 싶어요. 단언하는 문장을 좋아하거든요. 현실에서는 극단적으로 들리겠지만, 비관과 함께 유머가 공존한다고 느껴요. 이 책에도 그런 문장이 가득해요. 현실에서는 불가능하지만 책에서는 뭐든지 가능하잖아요. 그런 경험이 참 좋아요.
*김혜지 북 큐레이터. 여러 개의 직업을 가질 계획이지만 책에 대한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 현재는 소셜 독서 플랫폼 ‘텍스처’에서 콘텐츠 기획을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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