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읽는 사람의 사생활
이나경, 책의 제자리를 찾아주는 일
<월간 채널예스> 2022년 5월호
예전에는 책에 담긴 내용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면, 지금은 ‘파는 사람’의 정체성이 생겼죠. 책도 물건이니 어떻게 하면 많이 팔 수 있을까 고민하게 돼요. (2022.04.27)
인스타그램을 보면서 무척 성실한 독자라는 인상을 받았어요. 서점에서 일하는 나경 님의 일상이 궁금하기도 했고요.
좋게 봐주셨다니 쑥쓰럽네요. 지금은 서울 망원동에 있는 서점에서 일하고 있어요. 출근하면 가장 먼저 전날에 어떤 도서가 많이 팔렸는지 확인해요. 집계를 한 후, 필요한 책이 있으면 주문을 넣고요. 주로 서가 정리하는 데 시간을 많이 쏟아요. 엉뚱한 자리에 책이 놓인 경우가 있어서 분류에 맞게 다시 꽂아둬야 하거든요. 그 외에도 신간 보도자료를 읽기도 하고, 동료들과 북토크를 기획하기도 해요. 지금 일하는 서점에는 카페를 겸하고 있어서, 커피도 내리고요. 그러다 보면 금방 퇴근할 때가 되죠.
다양한 일을 하시네요. 서점에서 일하면서 달라진 점이 있나요?
생각보다 몸 쓰는 일이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웃음) 아무래도 공간을 운영하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또 예전에는 책에 담긴 내용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면, 지금은 ‘파는 사람’의 정체성이 생겼죠. 책도 물건이니 어떻게 하면 많이 팔 수 있을까 고민하게 돼요.
오프라인 서점이니 독자들을 더 가까이서 만날 것 같아요. 책을 큐레이션 할 때의 기준도 궁금하고요.
손님들이 직접 책을 고르고 계산하는 모습을 지켜보다 보니, 요즘 독자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체감할 수 있는 것 같아요. 큐레이션을 할 때만큼은 제 취향을 너무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깊게 파고드는 책도 있어야 하지만, 가볍게 읽기 좋은 책도 필요하니까요.
일을 하다 보면 힘든 순간도 많지만 ‘아, 여기서 일하는 거 좋다’ 문득 느낄 때가 있잖아요. 나경 님에게는 어떤 순간인가요?
가끔 제 취향과 정확히 일치하는 책만 골라서 사가는 분들이 있어요. 그런 손님을 볼 때, 정말 신기해요. “저 여기서 이 책 샀는데 재밌어서 또 왔어요”하고 말해주시는 분들도 가끔 있는데, 그럴 때 뿌듯함을 느끼죠.
언제부터 책을 좋아했어요?
고등학생 때, 아이돌 팬픽에 푹 빠져서 ‘소설은 참 재밌는 거구나. 나도 소설 한번 써보고 싶다’ 하는 마음이 생겼어요. 그렇게 문예창작과에 갔는데, 친구들은 이미 독서량이 엄청나더라고요. ‘쟤들이랑 빨리 친해져야겠다’ 하면서 열심히 책을 읽었죠.
나경 님의 사적인 책 취향도 궁금해지네요.
문학책을 좋아해요. 신인 작가들의 첫 소설집이 참 재밌더라고요. 최근에는 이유리 작가님의 『브로콜리 펀치』를 인상적으로 읽었어요. 페미니즘과 노동 문제도 관심이 많은데요. 리베카 솔닛은 제 세계관을 형성한 작가 중 한 명이에요. 늘 문장과 생각을 빚진다는 느낌이 들어요. 오월의봄 출판사에서 내는 노동 관련 책들을 챙겨 보고요.
최근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책을 소개해 주신다면요?
읽고 나서 마음이 찡해진 책 두 권을 가져왔어요. 임선우 작가의 『유령의 마음으로』는 일상에 환상을 한 스푼 더한 소설인데요. 인물이 조용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데,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거예요. 퇴근하고 집에 왔는데 모르는 사람이 와 있다거나, 빵집에서 일하는데 유령이 등장한다거나. 근데 이 유령이 자기 감정에 굉장히 충실한 유형이에요. 기쁠 땐 노래를 부르면서 빵집 안을 돌아다니고, 슬프면 울기도 하고요. 그런 장면을 보면서, 환상도 참 슬프고 마음이 찡할 수 있구나 느꼈어요. 제 감정도 돌아보게 되고요.
다른 한 권은 그래픽노블이네요.
최다혜 작가님의 그래픽노블 『아무렇지 않다』인데요. 일러스트레이터, 시간 강사, 무명작가 세 명의 인물이 나오는데, 모두 불안정한 환경에서 일을 해요. 보통 고용 환경이 불안정하면 삶도 불안정해지곤 하잖아요. 그럼에도 인물들이 삶을 담담하게 지켜가는 모습에 깊이 이입했어요.
글도 꾸준히 쓴다고 들었어요.
주로 에세이를 쓰는데요. 어떤 글을 써도 엄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더라고요. 요즘 자전적인 에세이도 많이 나오니까, 엄마랑 딸이 어떤 관계길래 이렇게 많은 이야기가 쏟아지나 놀라기도 하고요. 구술사에도 흥미를 느껴요. 나중에 내가 엄마를 인터뷰한다면 어떤 이야기가 나올까 상상해볼 때도 있고요.
최근에는 여자배구에 푹 빠져있다고요.
맞아요. '최애'는 김희진 선수예요. 정말 책읽기 말고는 아무런 취미가 없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일하다 지칠 때도, 배구 경기 보러 갈 생각에 힘을 내곤 해요. ‘덕질’이 일상에 정말 중요하더라고요.(웃음)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요?
지금껏 도전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책을 소개하고 싶어요. 또, 글쓰기도 계속 해나가고 싶고요. 한동안 못 쓰고 있어서 주변 친구들에게도 글을 꼭 쓰겠다 선언한 상태거든요.(웃음) 그런 다양한 시도를 많이 하고 싶어요.
*이나경 서점에서 일하며, 책에 대해 말하고 쓰는 것을 좋아한다. 문학, 노동, 페미니즘 분야를 즐겨 읽는다. |
추천기사
관련태그: 채널예스, 예스24, 읽는사람의사생활, 브로콜리펀치, 유령의마음으로, 아무렇지않다
좋은 책, 좋은 사람과 만날 때 가장 즐겁습니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