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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특집] 우크라이나는 왜 싸우는가? - 윤성학 교수

우크라이나 특집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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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인들이 싸우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러시아 정체성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 때문이다. (2022.04.11)


채널예스에서 분쟁 사태로 어려움을 겪는 우크라이나의 실정을 알리기 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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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했을 때 누구도 이 전쟁이 이렇게 오래 지속될 것으로 생각하지 못했다. 푸틴은 러시아군이 키이우를 포위하면 48시간 안에 젤렌스키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 정치인들 도주하며, 72시간 이내에 괴뢰정부를 세울 것이라고 자신했다. 미국 또한 우크라이나군의 허술한 전력을 고려하여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망명을 권유했다. 그렇지만 이제 전쟁 50일 만에 상황은 완전히 바뀌고 있다. 러시아군은 수도 키이우와 제2의 도시 하르키우, 흑해의 가장 중요한 항구도시인 오데사에는 접근조차 하지 못하고 물러갔으며, 심지어 마리우폴의 경우 아직도 완벽히 점령을 못 하는 실정이다. 우크라이나군은 오히려 이제 남부 헤르손과 동부 돈바스 지역 수복을 노릴 정도로 승기를 잡고 있다.

이 전쟁의 분수령을 결정적으로 바꾼 것은 죽어도 싸우겠다는 우크라이나인의 결사 항전 의지 때문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가족까지 수도 키이우에 남아 싸우고 있으며, 행정부 고위직과 국회의원들도 총을 들고 조국을 지키기 위해 나서고 있다. 대부분 우크라이나 남자들은 가족을 안전한 후방으로 보내고 자신들은 자발적으로 전선으로 나가고 있다. 이번 전쟁에서 러시아군이 항복하고 포로가 된 경우는 수도 없이 많지만, 우크라이나군이 도망가고 포로가 된 장면은 잘 보이지 않는다. 우크라이나는 죽기를 각오하고 절대 물러서지 않고 있다.

많은 전문가가 이번 전쟁을 나토의 동진과 러시아의 안보 불안이라는 지정학적 시각에서 보고 있지만, 이는 우크라이나인들의 결사항전 의지를 설명하지 못한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지정학적 관점에서 싸웠다면 이 전쟁은 이미 오래전에 끝났을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돈바스를 러시아에 넘겨주고 중립을 보장받고, 대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지 않는 조건으로 휴전 협상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터키에서 진행된 휴전 협상이 휴짓조각이 된 것은 이 전쟁이 ‘정체성의 전쟁(a war of identity)’이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우크라이나 지역은 유라시아 패권 투쟁의 길목이자 주 무대였다. 12세기 동슬라브인들은 키이우를 중심으로 드네프르강과 볼가강을 중심으로 루스 공국 연합을 구성하여 번성하다가 칭기스칸의 손자 바투가 이끄는 유목군에 궤멸당했다. 19세기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은 우크라이나를 거쳐 모스크바로 진격하다가 겨울 추위와 보급 부족으로 우크라이나 대평원에서 죽어 나갔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군과 독일군의 주 전장이었으며, 2차 세계대전에는 히틀러가 이 지역을 휩쓸고 지나가면서 시체로 산을 쌓았다. 반격의 기회를 잡은 스탈린은 우크라이나 대평원에서 나치군을 탱크에 깔아뭉개며 대지를 적셨다.  

역사학자 티머시 스나이더는 이런 의미에서 우크라이나를 ‘피에 젖은 땅’이라고 불렸다. 그러나 그 피는 2차 세계대전에서 멈추지 않았다. 1991년 우크라이나는 소연방에서 독립하였지만 2004년 오렌지 혁명, 2014년 유로마이단과 크림반도 사태, 그리고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다시 대지에 피를 흠뻑 적시고 있다. 푸틴이 전쟁광이기 때문에 휴전 협상을 중지하고 전쟁을 지속하는 것은 아니다. 푸틴은 1991년 독립 이후 우크라이나가 추구하는 새로운 국가 정체성이 러시아의 정체성과 완전히 다르다는 것에 분노하고, 위기를 느끼고 있어서 그의 모든 것을 걸고 전쟁을 진행하고 있다.

푸틴은 지독한 역사광인데, 노벨문학상 작가이자 러시아의 극우 민족주의자 솔제니친의 추종자이다. 솔제니친은 1990년 9월, 콤소몰스카야 프라브다에 발표한 ‘러시아 재건하기(Как нам обустроить Россию?)’라는 투고문에서 카자흐스탄 북쪽과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회복해야 할 땅으로 간주했다. 러시아는 같은 슬라브 국가인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일부를 묶어 새로운 슬라브 국가를 건설하고, 러시아 정교를 국교로 삼아 순수 러시아 전통 사회를 복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솔제니친과 푸틴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러시아의 정체성은 슬라브 인종 중심의 정교, 가족, 국가주의이다. 이들은 노골적으로 동성애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부정하며, 경제적으로는 일종의 원시 공산주의를 선호한다. 지난 23년간 푸틴의 제국은 국가의 압도적인 폭력을 앞세워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개인의 권리를 철저하게 짓밟았으며, 그리고 경제는 권력에 유착한 부패한 올리가리히들이 주도하는 정실 자본주의(crony capitalism)를 추구했다. 러시아는 ‘추운 나이지리아’가 되었고 가난하지만 재능있는 젊은이들은 유럽으로, 한국으로 도망갔다.  

우크라이나인들이 싸우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러시아 정체성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 때문이다. 우크라이나는 1991년 소비에트 체제의 해체 이후 폴란드를 비롯한 동유럽에서 개인의 자유가 보장받고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것을 목격했다. 이때부터 우크라이나의 정체성도 슬라브주의에서 자유주의와 시장주의로 바뀌게 되었다. 유교적 이상사회를 꿈꾸었던 대한민국이 식민 지배와 전쟁을 겪으면서 자유, 시장, 민주주의로 바뀐 것과 마찬가지로 우크라이나의 정체성도 독립과 오렌지 혁명, 유로마이단, 2022년 전쟁을 거치면서 도저히 러시아와 양립할 수 없는 새로운 정체성을 갖게 된 것이다. 이런 이유로 우크라이나는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고 있다. 


*우크라이나 어린이 돕기 캠페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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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윤성학(고려대 러시아CIS 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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