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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네일 메일, 새로운 인디록의 영웅
스네일 메일(Snail Mail) <Valentine>
1999년생 싱어송라이터는 1990년대를 품은 <Valentine>으로 새로운 인디 록 영웅의 자리에 한 발짝 더 다가섰다. (2021.12.22)
2018년에 나온 스네일 메일의 정규 1집 <Lush>는 스스럼없는 자기표현과 독창적 음악색으로 주목받았다. 그해 10월에 열린 내한 공연을 비롯해 다양한 활동을 펼쳤지만, 시나브로 쌓인 고독감에 마음이 곪아버렸다. 회복기와 자아 성찰로 보낸 3년은 음악적 성숙의 시간. 고통을 사랑으로 극복하는 서사는 특유의 직설화법으로 전형성을 벗겨냈고 외려 비타협적 태도와 대담성을 강화했다. <Valentine>은 세상을 알아가며 느끼는 아찔한 순간을 직면하고 그것을 음악화하는 사명까지 지켜냈다.
고독과 침잠의 시간은 심연으로 빠지지 않았다. 'Ben Franklin'의 '재활 이후 나는 쪼그라들었어'란 구절은 자기연민과 거리가 멀고 곧바로 '당신은 나를 빚졌고, 나를 소유했어요.'(Glory)라고 말한다. 사랑을 좆아 우울을 쫓아내는 이미지는 이번 앨범 곳곳에 퍼져 있고 수기처럼 일상을 묘사하는 방식은 데뷔 앨범 <Exile In Guyville>로 1990년대 미국 인디 신을 뒤흔들었던 얼터너티브 록 뮤지션 리즈 페어와 닮았다. 페어가 젠더 고정 관념을 무너뜨렸던 것처럼 스네일 메일도 보수적 틀에 갇히지 않는다.
2021년 대중음악계의 화두라고 볼만한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약진. 줄리언 베이커, 루시 데이커스같은 뮤지션들과 스네일 메일을 구별 짓는 건 공격적인 펑크(Punk) 사운드다. 상대를 향한 집착과 자기 파괴적 성향을 펑크 록 스타일로 풀어낸 'Valentine'이나 밴드 부시가 연상되는 그런지 록 'Glory'를 통해 소리에도 감정의 명암이 공존한다.
연약과 강인을 아우르는 다채로운 결의 중심은 가창이다. 스웨덴 출신 가수 매들린 케인의 디스코 넘버 'You and I'를 샘플링한 'Forever (sailing on)' 에서 몽환성을 채색하는 한편, 진한 허스키 보이스에 어쿠스틱 기타가 어우러지는 'C. et a'로 운신의 폭을 넓힌다. 미세한 세기 조절을 통한 감정 표현이 섬세하다.
초점 없는 눈으로 어딘가를 응시하던 <Lush>의 소녀는 강렬한 분홍빛 옷을 차려입고 정면을 바라본다. 성숙기를 거쳐 자아와 사랑을 논하는 메시지가 더욱 예리해졌고, 펑크와 어쿠스틱을 넘나드는 소리의 정체성 또한 완숙하다. 1999년생 싱어송라이터는 1990년대를 품은 <Valentine>으로 새로운 인디 록 영웅의 자리에 한 발짝 더 다가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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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