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영의 짧은 소설] 데비 챙

<월간 채널예스> 2021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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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데비를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 오르비에토의 종탑 위에서 만났다.(2021.07.28)


나는 데비를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 오르비에토의 종탑 위에서 만났다.

종탑 꼭대기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나선형의 좁고 가파른 계단을 타고 오랫동안 걸어 올라가야 했다. 종탑 꼭대기에 올라가니 커다란 종이 보였다. 종에 가까이 다가가는데 누군가 내가 있는 쪽으로 소리를 쳤다.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자 깡마르고 까무잡잡한 동양인 남자애 하나가 내반대편에서 자기 쪽으로 오라고 손짓을 하고 있었다. 나말고 다른 사람이 있나 둘러보자 이번에는 그 애가 두 손으로 귀를 막는 포즈를 취했다. 왜 저러는 거지? 그때 종이 울리기 시작했다. 나는 종 바로 옆에 서 있었고 그 소리에 얻어맞은 것처럼 자리에 쪼그리고 앉아서 귀를 막았다. 종은 쉬지 않고 한동안 계속 울리더니 곧 그쳤다.

종소리가 그치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 남자애가 내 쪽으로 걸어왔다. 너 괜찮아? 그 애는 그렇게 묻더니 자기 손목시계를 가리키며 한 시야, 라고 내게 말했다. 자기는 곧 종이 칠 걸 알고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면서. 그런 말을 하는 그 애를 나는 곁눈질로 뜯어봤다. 나도 행색이 초라한 배낭 여행객이었지만 그 애의 모습은 독보적이었다. 깡마른 몸에 무릎까지 오는 아디다스 반바지와 검은 나시 티를 입고 있었는데 선크림을 바르지 않았는지 목과 팔 부분의 피부가 빨갛게 벗겨져 있었다. 미처 벗겨지지 않은 죽은 피부가 팔에 지느러미처럼 붙어서 바람이 불 때마다 팔랑대기까지 했다. 껍질이 벗겨진 부분의 팔이 햇볕에 붉게 익어 있었다. 이 상태로라면 다음 단계에는 물집이 생길 것이 뻔했다. 내 피부가 벗겨진 것 같아서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선크림을 안 쓰니? 아파 보여.

나는 그 말을 하며 가방에서 선크림을 꺼내 그 애에게 건넸다. 그 애는 선크림을 자기 한 손에 쭉 짜더니 얼굴과 팔, 목에 조심스럽게 발랐다. 자기는 원래 한여름에도 선크림을 안 바르는데 이탈리아의 태양이 상상 이상이라면서 태연하게 말했다.

그거 그냥 네가 가져. 난 선크림 많아. 진짜? 안 그래도 되는데.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그는 자기 배낭에 선크림을 넣었다. 나는 데비야, 너는? 나는 남희야.

한국에서 왔지? 응. 너는? 홍콩.

우리는 천천히 나선형 계단을 내려오면서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시계탑 밖으로 나와서 나는 그 애에게 작별 인사를 하려 했다.

이제 어디로 갈 거야?

그 애의 질문에 대답하려는 순간 뜨겁고 따가운 뭔가가 머리 위로 떨어졌다. 새똥이었다. 내가 당황해서 가방에 있는 껌 종이를 머리카락으로 가져다 대자 그 애가 자기 주머니에서 티슈를 꺼냈다. 그 애는 내 머리카락을 몇 가닥씩 들어 올리면서 침착하게 내 머리카락 위의 새똥을 닦아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가방에서 물병을 꺼내 물을 적신 티슈로 더 꼼꼼하게 내 머리카락과 두피를 닦았다. 나는 몇 번이나 고맙다는 말을 하면서 얼굴을 붉혔다.

아무리 닦아냈다고 해도 그 상태로 다시 대중교통을 탈 수 없어서 나는 데비와 슈퍼마켓을 찾아가 샴푸를 사고 공중화장실 세면대에서 머리를 감았다. 데비의 가방에서 나온 스포츠 타월로 물기를 닦아낼 수 있었다.

두오모가 보이는 길가 벤치에 앉아 오후의 태양 볕에 머리카락을 말리는 동안 기분 좋은 바람이 불어왔다. 거기에 앉아서 나는 데비가 스물세 살로 나와 동갑이며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비행기 정비사 준비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애는 <시네마 천국>을 보고 이탈리아를 여행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서 로마에 도착 했다고 했다. 여행을 시작한 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았고 남은 시간 동안 시칠리아까지 내려가면서 이탈리아의 크고 작은 도시들을 둘러볼 거라고 했다.

난 어제 도착했어. 오늘이 둘째 날이야. 왜 로마 구경을 안 하고 근교로 왔느냐고 물어볼 줄 알았는데 데비는 그렇게 묻지 않았다. 나는 그 애에게 내가 취직을 준비하고 있으며 종종 새똥을 맞는다고 나를 소개했다. 가장 싼 티켓을 사서 타이페이와 방콕에서 두 번의 경유를 해 인천에서 로마까지 24시간이 걸렸다는 말도 했다. 1990년대 홍콩 영화를 좋아하고 특히 장만옥을 좋아 한다고 하자 데비의 얼굴에 반가운 미소가 어렸다.

어릴 때 장만옥을 본 적이 있어.

뭐?

아버지가 방송국에서 카메라맨으로 일하셨거든. 놀러 가서 봤었어.

진짜야?

응.

나한테 사탕도 주고, 말도 걸어주고 그랬어.

거짓말 아니지?

응.

나는 그 애에게 내가 왜 장만옥을 좋아하는지 흥분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좋아한다기보다는 사랑한다고 해야겠지.

처음 그녀를 스크린에서 봤을 때 나는 사랑에 빠졌어. 저음의 목소리 하며 웃을 때 한쪽으로 살짝 올라가는 입꼬리에 아름다운 눈썹, 그리고 그 깨끗한 눈을 봐봐. 말을 하지 않고도 백 마디 말을 하는 것보다 더 많은 감정을 전달해. 장만옥이 사람일까? 아니 진짜로 장만옥을 본 적이 있다고?

이 년 전쯤? 길 가다가 우연히 본 적도 있어.

거짓말.

내 말에 그 애는 어깨를 으쓱 올리고 미소 지었다. 모르지. 너도 언젠가 그녀를 보게 될지도.

그 말에 나는 크게 웃었다.

그날 우리는 오르비에토를 같이 구경하고 기차를 타고 로마로 돌아왔다. 테르미니역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둘다 영화를 많이 좋아하고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고 그러면서도 충동적으로 이탈리아행 비행기표를 끊었다는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리고 나는 그 애로부터 데비의 이름이 왜 데비인지, 영국 국적으로 홍콩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에게 홍콩과 중국이 어떤 의미인지도 듣게 됐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북경어와 광둥어가 서로 통하는 말이라고 생각했고 홍콩과 중국의 관계도 잘 알지 못했다.

데비는 자신에게 그토록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나의 무지에 조금 놀라다가 천천히 내게 상황을 설명해줬다. 그런 그 애를 보면서 정작 홍콩에 사는 사람들의 삶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으면서 홍콩 영화를 좋아한다고 떠들어대던 내 모습이 부끄러워졌다. 테르미니역에 도착할 때쯤이 되어서는 그 애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들 지경이었다.

그 애는 로마를 조금 더 둘러본 후 나폴리에 들러 근교를 여행하고 최종 목적지인 시칠리아로 갈 거라고 했다. 나는 별다른 계획이 없지만 피렌체와 베로나, 베니스를 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럼 여기서 안녕이네. 그 애는 그렇게 말하고 테르미니역 앞에서 손을 흔들었다. 나는 발길을 떼지 못하고 멀어지는 그 애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 애는 뭔가가 떠올랐다는 듯이 뒤돌아서 내게 소리쳤다.

선크림 고마워!

며칠 뒤 로마에서 피렌체로 가는 열차에서 나는 깊은 잠에 빠졌다. 역무원이 나를 깨우는 소리에 비몽사몽 일어나 티켓을 건넸다. 피곤한 날이었다. 역무원은 그 열차가 피렌체에 가지 않는다고 했다.

다음 역에서 내려야 합니다. 그녀가 말했다.

다음 역이 어디죠?

나폴리요.

여름이라 해가 늦게 졌지만 나폴리역에 내리자 사위가 컴컴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공중전화로 걸어가서 가이드북에 나온 숙소 몇 군데에 전화를 해보고 자리가 있는 호스텔에 예약을 하고 그곳을 향해 걸어갔다. 호스텔은 좁은 골목에 위치해 있었는데 도착할 때쯤 되어서는 더위와 두려움 때문에 온몸에 땀이 흘렀다. 6인용 도미토리의 창밖으로 마주한 건물의 발코니가 보였다. 발코니마다 빨래가 주렁주렁 걸려 있었고 발코니에 기대어 바깥 구경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였다. 계획대로라면 나는 피렌체의 아르노강이 보이는 숙소에서 이미 자고 있어야 했지만,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나폴리의 한 테라스에 서서 나는 어쩐지 그 순간이 그렇게 싫지만은 않았다.

다음 날 조식을 먹으러 간 호스텔 식당에서 나는 데비를 봤다. 우리는 서로를 보고 별로 놀라지 않았다. 데비는 앉아 있던 자리에서 쟁반을 들고 내가 앉은 테이블로 왔다.

북쪽으로 간다면서 나폴리라니. 그 애의 말에 나는 내 사정을 설명했다. 그애는 엉뚱한 기차를 타는 게 말이 되는 일이냐고 나를 한참이나 놀렸다. 선크림을 잘 바르고 다녔는지 목 부위 피부가 더는 붉지 않았다. 여행한 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았지만 나는 어쩐지 외로웠고 외롭다는 걸 인정하기 싫었지만, 그래도 또 외로워지곤 했다. 그런 상황에서 데비를 만났을 때, 나는 데비 또한 나를 무척 반가워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날 데비와 나는 포지타노라는 작은 해변 마을에 가서 해수욕을 했다. 바다에 들어가자 소나기가 내렸고 우리는 별말 없이 바닷속에서 비를 맞았다. 얼마나 더 여행을 같이할지, 앞으로 어디로 가게 될지 우리는 따로 이야기 나누지 않았다. 다음 날 우리는 폼페이에 갔고, 그다음에는 카프리섬에 갔다. 카프리섬 정상에서 데비는 내게 자기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며 언젠가 그 사람과 결혼해서 이곳으로 신혼여행을 올 거라고 선언했다. 여자 친구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이라니, 결혼이라니. 그런 데비가 그때의 내눈에는 순진하고 촌스럽게 보였다.

데비와 나는 여행의 궁합이 잘 맞았다. 예산 규모와 씀씀이가 비슷했고 유명한 관광지를 가는 것보다는 골목길을 헤매는 것을 더 좋아하는 취향이 그랬다. 입맛도 비슷했고 커피를 못 마시고 라거 맥주를 좋아하는 것도 같았다.

하루를 마치고 호스텔 주방 식탁에 앉아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하루 동안의 지출을 검토했다. 센트까지 반반으로 나눠 정리가 끝나고 나면 데비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고 나는 샤워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우리는 정해진 예산을 초과하지 않으려고 갖은 수를 썼고 슈퍼에서 산 빵과 잼으로 샌드위치를 만들어 점심으로 먹는 식으로 여행을 했다. 생수를 사는 것이 아까워 분수대에서 나오는 물을 마시는 정도였는데 그런 와중에도 데비는 자신의 사랑을 위해 아기자기한 기념품과 엽서를 꼬박꼬박 샀고 우표를 사서 도시를 떠날 때마다 홍콩에 편지를 부쳤다.

시칠리아로 가는 기차 안에서 데비는 그녀에 대해 내게 이야기해줬다. 메시나 해협을 건너는 동안 데비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얼굴도 본 적 없는 그녀에게 호감을 느꼈다. 그리고 데비가 그녀를 한 사람의 인간으로 존중하고 지지하고 있다는 것도 느꼈다. 그 애의 말을 들으며 처음 데비가 사랑이라는 말을 입에 올렸을 때 거부감을 느낀 건 내게 사랑을 고백했던 남자들과의 기억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었다. ‘너를 사랑하는 나’에 도취한 모습과 그 고백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때 내가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내게 감정을 강요하던 남자들에 대한 기억이 내 안에서 사랑이라는 말을 오염시켰기 때문이었는지도 몰랐다. 사랑이라는 말이 꼭 흉기처럼 느껴져 마음 깊은 곳에서 떨었던 기억이 잊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네마 천국>의 주 무대가 된 체팔루에 도착했다. 이탈리아 본토의 작은 마을과 다른 느낌이 드는 평화롭고 조용한 마을이었다. 아이 둘을 데리고 바닷가에 놀러 온 젊은 부부를 보며 데비는 내게 말했다. 자기도 저런 가정을 꾸리고 싶다고. 살면서 꿈이 하나 있다면 자신만의 가족을가져보는 것이라면서 아내와 아이들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고 싶다고 했다. 너도 자라면서 외로움을 많이 느꼈니. 그렇게 따로 묻지 않았던 건, 외롭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사랑이 넘치는 가족이란 꿈처럼 대단한 목표가 아니라 공기나 물처럼 당연히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넌 정말 낭만주의자인 것 같아. 벌써 애들 이름도 지어둔거 아니야?

나는 데비에게 놀리듯이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순간 나는 데비와 같은 꿈조차 꿔보지 못한 나를 발견했다. 안정적인 직장을 잡고 누구에게도 아쉬운 소리 하지 않고 노후까지 돈 걱정 없이 사는 것이 내 유일한 목표였기 때문이었다. 가족이니, 자식 같은 건 내게 너무 사치스러운 생각이었다. 사는 게 팍팍하니까 그런 말랑말랑한 꿈꿀 시간 없어, 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그렇게

살 자신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런 삶을 원하나, 원하지 않나, 라는 질문에 나는 제대로 대답할 수 없었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열흘을 같이 여행했고 내가 먼저 이탈리아를 떠났다. 팔레르모의 버스 정류장에서 데비는 엽서 한 장을 건넸다. 오르비에토의 종탑이 수채화로 그려진 엽서였다. 버스에 오르며 나는 그 애에게 손을 흔들었다. 고작 열흘간 같이 여행했을 뿐인데 이상하게 정이 많이 들어서 목이 잠겼다. 버스에 올라타 공항으로 가는 길에 나는 조금 울다가 데비가 준 엽서를 읽었다. 새똥을 조심해, 엉뚱한 기차를 타지 마, 동행이 되어줘서 고마웠어. 엽서의 말미에는 데비의 이메일과 그 애의 블로그 주소가 적혀 있었다.

데비는 영어로 영화 리뷰를 쓰는 블로거였다. 우리가 만난 2005년까지만 해도 100편이 넘는 리뷰가 올라왔고 적어도 일주일에 두 번은 새 글이 올라왔다. 꽤 재미있는 글들 이어서 따라 읽고, 영화에 대한 내 의견을 댓글로 달기도 했다. 우리는 종종 이메일을 주고받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둘 다 대학을 졸업했다. 데비는 비행기 정비사로 바로 취직을 했지만 나는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일 년 반 동안 취업준비를 했다. 스물여섯에 겨우 들어간 회사에서 상처를 많이 받았는데 그 직장이 아니고서는 대안이 없다고 생각해 참고 다녔던 것이 정신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좋지 않은 결과를 낳았던 것 같다. 적어도 삼 년은 참고 경력을 쌓아 이직을 하자고 생각하면서 왕복 네 시간의 통근을 하는 동안 나는 한없이 날카로운 사람이 되어갔다. 

데비와의 이탈리아 여행을 떠올리면 늘 양가감정이 들었다. 그 하늘이며 바다며 골목이며 노을이며 널어놓은 빨래 마저도 아름답게 보이던 그곳에서 차가운 마음이 녹아내리던 순간이 그립기도 했고, 사랑이니 꿈이니 같은 이야기를 하던 데비의 순진하고 낭만적인 생각에 동요되던 나 자신이 짜증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 이야기도 결국 자기 기술이 있고 직장을 잡을 능력이 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지닐 수 있는 여유였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데비가 블로그에 추천하는 영화들과 그 애의 따뜻하고 섬세한 평가들이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스물일곱의 내가 입사 2년 차의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을때 데비는 내게 이메일로 청첩장을 보냈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게 되었으니 축하해달라는 말이었다. 청첩장속 데비의 사진은 내가 알던 그 애의 모습이 아니었다. 얼굴과 몸에 살이 붙어서 더는 깡마른 모습이 아니었고 단정하게 정리한 머리카락에 무엇보다 표정에서 여유가 묻어 나왔다. 데비의 여자친구는 데비보다 두 살이 많았고 그 해 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했다. 데비가 그녀를 얼마나 자랑스러워했는지 나는 눈감고도 그 애의 표정을 그려볼 수 있었다.

꿈을 이룬 것을 축하해, 데비. 

거기까지 쓰고 나는 생각했다. 

데비, 나는 다시 잘못된 기차에 탔어.

데비는 자기 인생에서 무엇을 정확히 원하는지 알고 있었고, 그것을 이뤄낼 수 있다는 낙관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이 데비와 나의 결정적인 차이였다. 사람은 자기보다 조금 더 가진 사람을 질투하지 자기보다 훨씬 더 많이 가진 사람을 질투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데비를 질투 할 수조차 없었다.

내 마음속에서 정해놓았던 기한인 삼 년이 흐르고 난 후에도 나는 첫 직장을 떠나지 못했다. 이직할 자신이 없었으면서 그걸 인정하고 싶지 않아 그 회사의 좋은 점들을 하나하나 꼽아보고 그곳에 남아 있는 편을 택했다. 나는 변화를 싫어하는 사람이었고, 불안정한 가능성보다는 불행속에서 익숙해지고 체념하는 편을 선호했다. 다들 이렇게 살잖아? 나 자신에게 그렇게 설득할 때 내 나이는 스물아홉이었고 내가 너무 늦어버렸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다른 삶을 추구하기에도 너무 늦어버렸고, 진짜 삶이라는 것을 살아보기에도 너무 늦어버린 나이라고 생각했다.

데비에게서 짧은 메일이 온 건 스물아홉의 초겨울이었다. 그 애는 홍콩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기 직전에 내게 메일을 남겼다. 나는 시계를 확인했다. 이미 데비가 한국에 도착했을 시간이었다. 그 애는 동대문구에 있는 비즈니스호텔에 숙박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 애는 담담하게 자신이 지난 석 달 동안 겪은 일을 메일로 썼다. 아내가 죽었고 장례를 치렀고 함께 살던 집에서 이사를 나왔고 홍콩은 너무 좁은 곳이고 모든 것이 견딜 수가 없다면서. 아무 비행기표나 끊어놓고서 한국에 내가 살고 있다는 걸 떠올렸다고 했다. 

내가 그 메일을 읽은 건 수요일 오전이었다. 나는 데비에게 회사에 가야 하니 가능하다면 내 회사가 있는 구로동으로 오라고 했다. 짧은 영어로 그 애가 겪은 일을 위로하는 문장을 써보려고 노력했지만 이메일에 몇 줄 쓰는 말들이 가볍게만 느껴졌다.

우리는 회사 근처 초밥집에서 만났다. 데비는 검은 오리털 파카를 입고 있었는데 한국에 도착해 막 사서 입었는지 가격표가 그대로 붙어 있었다. 너 이러고 다녔니? 나는 필통에서 커터칼을 꺼내 가격표를 떼주고 그 애와 마주 보고 앉았다. 실내여서 공기가 따뜻한데도 데비는 파카를 벗지

않았다. 한국 많이 춥지. 휴가는 며칠이나 받았어? 먹은건 좀 있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나는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고 데비도 그 마른 얼굴로 애써 웃으며 내 말에 대답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상하게도 목이 메었고 초밥이 나올 때쯤에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남희, 남희,

난 괜찮아, 정말 난 괜찮아. 오히려 데비가 나를 달래주고 있을 때 나는 내가 왜 그렇게 슬픈지, 왜 눈물을 멈출 수 없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데비는 행복해야 할 사람이었다.

그녀 또한 그래야 했다. 눈물을 닦고 데비를 바라보자 그 애가 말했다. 남희, 나는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 운이 좋았지. 그녀와 만나고 사랑할 수 있었잖아. 그게 어떤 건지 태어나서 경험할 수 있었잖아. 어릴 때는 내가 왜 태어났는지 이해할 수 없었어. 하지만 이제 그 이유를 알지. 이런 사랑을 경험 해보려고 태어났구나. 그걸 알게 됐으니 괜찮아.

나는 데비의 얼굴을 바라보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말이 자기 위안을 위한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그 애의 얼굴을 보며 이해할 수 있었다. 예전의 나였다면 나이브하고 어리석은 생각이라고 속으로 비웃었을 말이었지만 그 말을 듣던 순간 나는 데비의 그 말을 온전히 받아들였다. 데비는 단순히 순진한 낭만주의자가 아니었다. 

데비는 그 주 주말까지 서울에 머무르다 홍콩으로 돌아갔다. 그 애는 영화 리뷰를 올리는 블로그를 제외하면 어떤 SNS도 하지 않았는데 서른 살 여름에 블로그 문도 닫았다. 이제 우리는 서로의 생일에 메일을 주고받는 정도의 사이가 되었다. 서른여덟이 되던 해에 데비는 아내와 사별한 지 구 년 만에 재혼했고 이듬해에 첫아이를 만났다.

서른여섯에 홍콩으로 출장 갈 일이 있었다. 그때 나는 데비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내가 그 애의 일상에 노크하기에는 그 애로부터 너무 멀어진 친구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처음 가본 홍콩에서 나는 <중경삼림>에서 왕페이가 탔던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도 타보고 <첨밀밀>에서 여명과 양조위가 좋아하던 등려군을 기념해 만든 카페에도 가보았다. <화양연화>의 장만옥과 양조위가 식사를 같이하던 골드핀치 레스토랑에도 갔다. <성월동화>에 나온 빅토리아 피크에도 올라가봤다. 그곳에서 홍콩의 야경을 바라보며 나는 그곳 어딘가에 있을 데비를 생각했다. 홍콩 영화에 빠져들었던 20대 초반 시절과 한때는 그저 미숙한 시절이라고 깎아내렸던 데비와의 여행이 떠올랐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아침에 나는 일찍 일어나서 호텔 근처의 더들 스트리트를 산책했다. 인적이 없는 계단을 오르는데 누군가가 계단 아래로 내려오고 있었다. 청바지에 가죽재킷을 입고 천천히 계단을 내려오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나는 더는 계단을 오르지 못하고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그녀는 자신에게 시선을 거두지 못하는 나를 보고 익숙한 상황이라는 듯이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점점 나와 가까워지는 그녀를 보며 나는 언젠가 데비가 내게 한 농담을 생각했다.

모르지. 너도 언젠가 그녀를 보게 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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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은영(소설가)

소설가. 장편 소설 『밝은 밤』과 소설집 『쇼코의 미소』, 『내게 무해한 사람』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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