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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춤추자: BTS ‘Permission to Dance’
BTS 'Permission to Dance'
머리를 잠시 비우고 익숙한 리듬에 몸을 맡겨보자. 우리 모두 마스크 없이 어디에서나 춤출 수 있는 그날이 올 때까지. BTS의 노래 말마따나, 우리가 춤을 추는 데는 허락이 필요 없으니까. (2021.07.14)
인간은 생각한다, 고로 복잡해진다. 지금 인생이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머리가 깨질 듯 아파진다. 직장인은 이것이 고달픈 먹고사니즘의 결과라고 생각하지만, 머리가 둥둥 울리는 건 매일 아침 7시 30분까지 조그만 교실에 집어 넣어진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작은 머릿속만으로도 이렇게 골치가 아픈데, 복잡한 세상으로 주파수를 옮기면 답은 더욱더 먼 지평선 저 너머로 사라진다.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 단순하게 생각하자 주문을 외며 심호흡도 해보고 유튜브에서 본 명상법도 떠올려 보지만 그다지 큰 효과가 없다. 온 힘을 다해 겨우 단전까지 끌어올린 호흡은 기다렸다는 듯 울려대는 전화벨이나 빚쟁이처럼 쫓아오는 단체 채팅방의 까똑까똑까똑 소리에 순식간에 사라진다. 과연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나 『일 잘하는 사람은 단순하게 말합니다』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될만한 시대다.
이 지겹도록 복잡한 사고는 타인을 보는 시각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나를 둘러싼 세상도 복잡하게 바라볼진대, 나와 상관없는 타인을 명상까지 시도하며 단순하게 볼 여유가 있을 리 만무하다. 방탄소년단은 그런 세상만사 복잡함의 덫에 휩싸인 대표적인 케이팝 아이콘이다. 2013년 데뷔한 이 7인조 남성그룹을 둘러싼 이야기는 파도 파도 끝이 없다. 지난 8년 간 가수로서 한국 대중음악 역사에 오랫동안 기록될 일들을 차근차근 쌓아간 이들은, 이제는 그 수많은 기록과 숫자에 둘러싸여 정작 실체가 보이지 않을 지경에 이르렀다. 동시에 이들을 그룹명보다 그룹이 이룬 것들로 불리는 경우도 늘어났다. 빌보드, 미국, 1위, 7주 연속, 웸블리 스타디움, UN 연설, 그래서 그다음은, 그래미? 누가 시킨 것도 아니건만 이들 앞에는 자꾸만 정해진 것처럼 새로운 미션이 떨어졌다.
그러던 2020년, 그룹 커리어 최초의 영어 싱글 ‘Dynamite’가 발표되었다. 다소 이색적인 행보였다. 데뷔 시절부터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의 언어로 말하는 아이돌로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 낸 이들은, 미국 시장 진출에 성공한 이후에도 줄곧 한국어로 노래했다. 그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 안달 난 사람이 한 트럭이었지만, 지금껏 그렇게 노래해 왔기 때문에 노래할 뿐이라는 답이 자연스러웠다. 그런 그들이 갑자기 영어로, 그것도 디지털 싱글을 발표하자 역시나 이런저런 추측이 쏟아졌다. 소란을 가르고 나온 멤버들의 대답은 언제나 그렇듯 단순했다. 영어로 받은 데모의 느낌이 좋았고, 그대로 녹음해 보니 나쁘지 않았고, 하지만 준비 중인 앨범에는 어울리지 않는 스타일이라 디지털 싱글로 발표했다는 설명이었다. 느낌에 몸을 맡긴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Dynamite’는 빌보드 HOT100 싱글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한 방탄소년단의 첫 노래가 되었다.
한국을 넘어 아시아 단위로 커진 이야기는 계속해서 꼬리를 물고 언론사 데스크가 좋아할 만한 헤드라인거리를 낳았다. 그 한가운데 ‘Permission to Dance’가 있다. ‘Permission to Dance’는 ‘Dynamite’에 이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보이밴드’라는 수식어가 더욱 강고해진 방탄소년단의 싱글 <Butter> CD에 함께 수록된 곡이다. 팝 스타 에드 시런의 참여로 더욱 화제를 모은 노래는, 딱 떨어지는 노래만큼이나 단순한 메시지로 가득 찬 노래였다. ‘계획을 모두 깨버리고 그냥 춤에 홀린 것처럼 즐기자고, 우리가 춤을 추는 데 허락은 필요 없다고(Let’s break our plans / And roll in like we’re dancing fools / ‘Cause we don’t need permission to dance)’.
‘Dynamite’의 성공 이후 신나고 밝은 댄스 팝 위주로 활동하고 있는 방탄소년단의 행보에 아쉬움을 표하는 이들이 있다. 이외에도 아쉬움은 두더지 게임처럼 여기저기에서 튀어 오른다. 복잡의 덫이 찾아온 것이다. 다만 한 번쯤은 단순하게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 권하고 싶다. ‘Permission to Dance’는 풍부한 리듬과 현악 사운드가 아낌없이 넘쳐 흐르는, 시대를 초월한 주류 팝에 노스탤지어를 간직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딘가 몸 한구석이 간질간질해지는, 그저 긍정적인 에너지로 가득 찬 팝 넘버다. 호흡이 가쁠 정도로 꽉 짜인 복잡한 일상 속에서, 사람들은 단순함을 쉽게 죄악시한다. 우리가 꿈꾸는 미래의 가장 소중한 가치가 단순함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복잡한 세상을 탈출할 수는 없더라도 가끔은 단순한 생각으로, 단순한 음악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 머리를 잠시 비우고 익숙한 리듬에 몸을 맡겨보자. 우리 모두 마스크 없이 어디에서나 춤출 수 있는 그날이 올 때까지. 노래 말마따나, 우리가 춤을 추는 데는 허락이 필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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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평론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케이팝부터 인디까지 다양한 음악에 대해 쓰고 이야기한다. <시사IN>, <씨네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