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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하이픈 ‘Drunk-Dazed’ : 엔하이픈의 다크-하이틴-판타지
엔하이픈 <Border : Carnival>
새로운 콘셉트를 찾아 전 세계를 하이에나처럼 찾아 헤매는 케이팝이 또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찾았다. 이곳인 듯 아닌 듯, 경계를 소홀히 하는 순간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위험한 다크-하이틴-판타지. (2021.05.06)
십 대는 케이팝의 가장 가깝고 오래된 친구다. 우정의 역사는 길고 또 깊다. 케이팝이라는 미명 아래 수백 수천의 그룹이 피고 지는 아비규환의 한 가운데 흔들리지 않고 굳건했던 건 생산과 소비 한 가운데 자리한 십 대였다. 벌써 지난 세기가 되어 버린 시간, 케이팝의 조상님이 그룹명을 통해 캐치프레이즈로 들고나온 메시지가 ‘십 대들의 승리’였던 건 두고두고 인구에 회자될 전설 같은 이야기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케이팝이나 아이돌을 평생 직업으로 삼는 이들이 생기고, 케이팝도 추억팔이의 일환이 되고, 팬덤 역시 중장년을 아우르는 커다란 몸집을 갖추게 되었지만, 케이팝은 십 대를 놓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그때가 아니면 안 되는 특별함’으로 승화되었다. 교복 콘셉트나 학교를 배경으로 한 뮤직비디오, 세계관은 십 대라는 생의 한 시기가 그런 것처럼 케이팝 신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거쳐 가는 필수 요소가 되었다. 그 필수 요소 안에는 우리가 십 대에 겪었거나 기대하는 것들이 뒤죽박죽 섞여 있었다. 명도 암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넘치는 생의 에너지, 때 묻지 않은 혈기,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는 빛나는 삶의 조각들 같은 ‘지상파 방송 하이틴 드라마’의 연장선에서 기승전결을 만들었다. 이야기의 절정을 이루는 반항과 좌절도 대부분 우리가 발 딛고 선 아래 자리한 것들이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 기성세대, 학교폭력, 싹 다 뒤집어야 하는 세상 같은, 손에 잡힐 듯 선명한 어둠이었다.
이제 데뷔 6개월을 갓 넘긴 그룹 엔하이픈 역시 두 번째 미니앨범 <BORDER : CARNIVAL>을 통해 십 대를 베이스캠프로 잡았다. 어딘가의 사립 학교를 연상시키는 엠블럼에 느슨하게 푼 넥타이까지 ‘국가가 허락한 케이팝’의 틀 안에서 변주될 것 같던 이들은 그러나 의문의 초대장과 불현듯 나타난 내면의 괴물로 갑작스레 이야기의 방향을 튼다. 그 회전이 새롭게 엮어내는 두 테마는 십 대와 피의 축제 카니발이다. 앨범 소개는 여전히 유순하다. 스스로 ‘데뷔 후 화려한 카니발 같은 세상을 마주한 엔하이픈의 감정’을 담았다고는 하지만 음악과 뮤직비디오에 담긴 건 온몸을 휘감은 혼돈과 영상 가득한 피비린내다. 외양은 어쩔 수 없이 내추럴-본-한반도 발 드라마 ‘펜트하우스’나 ‘스카이 캐슬’의 그것이지만, 그 안에 담긴 건 영화 ‘트와일라잇’이나 넷플릭스 ‘기묘한 이야기’처럼 십 대가 주인공인 판타지물에 가깝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모호한 뒤집혀 있는 세상(Upside Down)에 형형한 붉은 송곳니는 그 자체로 우리가 최근 수년간 즐겨온 영미권 틴에이저 판타지 작품들의 한국화 그 자체다.
이러한 흥미로운 혼종이 성공적으로 탄생할 수 있었던 건 소속사 하이브의 역량이 크다. 이미 수년 전 방탄소년단의 ‘화양연화’ 시리즈를 통해 젊은 날의 위태로움을 미학적으로 풀어내는데 탁월한 재능을 선보인 이들은 엔하이픈에 이르러 그동안 자신들의 손을 떠나 멀고 넓게 퍼져나가던 테마를 좀 더 가깝게 끌어당겨 좁고 깊은 시선으로 파고든다. 청춘은 교복을 입은 십 대로, 당장이라도 스러질듯한 위태로움은 살육의 카니발로 구체화 되었다. 익숙한 레퍼런스 목록에 탄탄하게 만들어진 이야기 틀까지 갖춰지니 다소 낯설던 이미지도 마치 어제 본 듯 선명하게 다가온다. MGMT나 M83, Nothing But Thieves 등 2010년도를 전후해 떠오른 영미권 인디-싸이키델릭-일렉트로-팝-록 밴드들의 이름이 자주 언급되는 개성 있는 음악 스타일과 인트로에서 아웃트로까지 일관성을 이어가는 높은 앨범 완성도도 호감을 더한다. 새로운 콘셉트를 찾아 전 세계를 하이에나처럼 찾아 헤매는 케이팝이 또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찾았다. 이곳인 듯 아닌 듯, 경계를 소홀히 하는 순간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위험한 다크-하이틴-판타지. 그 살기 형형한 카니발이 실제 이 땅의 십 대들이 맞닥뜨린 현실보다 안온해 보이는 것이 그저 아이러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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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평론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케이팝부터 인디까지 다양한 음악에 대해 쓰고 이야기한다. <시사IN>, <씨네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