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 놀이터

[나도, 에세이스트] 5월 우수상 - 두 팔에 꿈을 담아 ‘버터플라이’

미래에 가장 여행하고 싶은 곳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잘 하는 게 하나도 없는 줄 알았는데, 내게도 재능은 있었다. 상급반에 올라간 지 4달째 되던 날부터 초를 재며 인터벌 수영을 했다. (2021.05.04)

언스플래쉬


2019년 5월 시누이에게 전화가 왔다.

“잘 지냈나? 안부 차 전화했다.”

“잘 계셨어요? 벌써 5월이네요.”

“그렇제 시간 참 빠르네. 니 혹시 ‘세부’ 아나? 올여름에 우린 거기 간다 아이가.”

“세부면 필리핀인가요? 와, 좋겠어요. 저희도 휴가 계획이 있는데, 날짜 맞으면 같이 갈 수 있을까요?”

“그라믄 내가 태주한테 연락해서 일정 맞춰 보께.”

8월 여름, 우리가족은 시누가족과 함께 비행기에 올랐다. 숙소 위치는 세부에서도 시골 중에 최고봉이었다. 리조트 밖이야 어떻든 리조트 안은 별천지였다. 부대시설 중 내가 가장 좋아했던 곳은 인피니티 풀이었다. 인피니티 풀은 세부 바다 지평선과 맞닿아 있는 듯했다. 그 시각적 효과는 환상이었다. 이글거리는 세부의 열기, 인피니티 풀은 쏟아지는 태양 아래 반짝였다.

세부에서 셋째 날이었다. 남편과 나는 인피니티 풀 앞에 있는 선베드에 누워 생맥주를 들이키고 있었다. 여유로움을 보내고 있는데 체격 좋은 동양계 중년여성이 걸어왔다. 그녀는 촥! 소리를 내며 물속으로 다이빙했다. 물밑으로 가라앉더니 인피니티 풀 중간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포물선을 그리며 힘차게 날아올랐다.

그녀의 몸은 양팔을 옆으로 뻗은 채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녀의 겨드랑이 사이로 물이 따라 올라왔고, 마치 날개를 단 듯해 보였다. 따사로운 햇살과 그녀의 몸짓이 겹쳐져 눈이 부셨다. 그녀는 한 마리의 나비였다. 

몇 번의 날갯짓 후 그녀는 인피니티 풀 위로 뛰어올랐다. 긴 타월을 어깨에 걸치고 유유히 사라졌다. 그녀가 날개 짓 하는 것처럼 보였던 몸짓은, 수영 영법 중 접영이었다. 휴가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그녀의 몸짓은, 내게 강렬하게 남아있었다. 

9월 나는 집 근처 수영장에 등록했다. 수영강습 첫날 강사는 내게 물었다. 

“수영을 처음 해보는 게 맞아요?”

나는 강습이 끝나고 매일 한 시간씩 남아 연습 했다. 주말에는 집에서 멀리 떨어진 더 큰 수영장으로 가 하루 4~5시간을 연습했다. 나는 자유형, 배영, 평영, 접영을 2달 만에 마스터하고 상급반으로 올라갔다. 상급반 첫 강습 시간에 강사는 말했다.

“회원님은 중학생 때라도 수영을 시작했더라면 선수 했겠어요.”

잘하는 게 하나도 없는 줄 알았는데, 내게도 재능은 있었다. 상급반에 올라간 지 4달째 되던 날부터 초를 재며 인터벌 수영을 했다. 더 정확한 영법을 구사하기 위해 지상운동을 추가했다. 4가지 영법 중 접영을 집중적으로 했던 시기였다.

2020년 1월 코로나19가 창궐해 기존에 다니던 수영장이 문을 닫았다. 나는 집에서 왕복 1시간 거리에 있는 사립수영장으로 옮겼다. 이곳에서도 선두자리는 내 차지다. 

왼발을 수영장 벽에 대고 호흡을 크게 들이마신다. 양손으로 물을 떠 올리며 왼발이 닿은 위치까지 물속으로 몸을 가라앉힌다. 양발을 벽에 대고 유선형을 잡는다. 발을 힘차게 차고 나간다. 돌핀킥 5번 후 손으로 물을 잡아 뒤로 밀어냄과 동시에 강한 한 번의 출수 킥. 몸을 대각선으로 쏘아 올리듯 물을 뚫고 나아간다. 포물선을 그리며 양팔을 뻗어 높이, 멀리 몸을 띄운다. 광배근을 당겨 무엇인가를 끌어 안 듯 벌린 양팔을 모은다.

세부에서 보았던 중년여성의 접영은 내 마음속에 뜨거움을 가져다줬다. 접영을 할 때 내 마음가짐은 특별하다. 접영을 하기 위해 물밑으로 몸을 가라앉히면서 나는 늘 글 쓰는 내 모습을 떠올린다. 내 몸을 물 밖으로 띄우기 위해선 물속에서 출수를 위한 준비 동작을 해야만 한다. 보이지 않는 물속에서 저항을 줄이며 출수를 위한 준비를 할 때, 습작 기간인 지금을 생각다. 꿈을 품은 가슴을 활짝 열고 양팔을 벌린다. 끌어안은 꿈을 더 높이, 더 멀리 내 몸과 함께 내던진다.

코로나19의 끝이 언제일지 알 수 없지만, 언젠가는 다시 한번 더 세부의 ‘솔레아 리조트’ 인피니티 풀에 가고 싶다. 태양이 쏟아내는 빛을 받으며 찬란한 물속에 내 몸을 담그고 싶다. 그리고 가슴에 품은 꿈을 담아 내 몸과 함께, 바다 지평선 끝까지 펼치는 것이다.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짜릿하다. 날아오르는 몸처럼 내 꿈도 훨훨 날아라. ‘버터플라이’


이수아 작은 것을 보고 기록합니다.


* 나도, 에세이스트 공모전 페이지 바로가기



추천기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0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이수아(나도, 에세이스트)

작은 것을 보고 기록합니다.

오늘의 책

AI, 전혀 다른 세상의 시작일까

유발 하라리의 신작. 호모 사피엔스를 있게 한 원동력으로 '허구'를 꼽은 저자의 관점이 이번 책에서도 이어진다. 정보란 진실의 문제라기보다 연결과 관련 있다고 보는 그는 생성형 AI로 상징되는 새로운 정보 기술이 초래할 영향을 분석했다.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한국 문학의 지평을 더욱 넓혀 줄 이야기

등단 후 10년 이상 활동한 작가들이 1년간 발표한 단편소설 중 가장 독보적인 작품을 뽑아 선보이는 김승옥문학상. 2024년에는 조경란 작가의 「그들」을 포함한 총 일곱 편의 작품을 실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름들과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한 권에 모두 담겨 있다.

주목받는 수익형 콘텐츠의 비밀

소셜 마케팅 전문가 게리 바이너척의 최신작. SNS 마케팅이 필수인 시대, 소셜 플랫폼의 진화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콘텐츠 제작을 위한 6단계 마케팅 전략을 소개한다. 광고를 하지 않아도, 팔로워 수가 적어도 당신의 콘텐츠는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다.

삶의 끝자락에서 발견한 생의 의미

서른둘 젊은 호스피스 간호사의 에세이. 환자들의 마지막 여정을 함께하며 겪고 느낀 경험을 전한다. 죽음을 앞둔 이들과 나눈 이야기는 지금 이순간 우리가 간직하고 살아야 할 마음은 무엇일지 되묻게 한다. 기꺼이 놓아주는 것의 의미, 사랑을 통해 생의 마지막을 돕는 진정한 치유의 기록을 담은 책.


PYCHYESWEB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