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선 “여행 유튜브 ‘여락이들’, 58만 구독자수를 모은 과정"

『설레는 건 많을수록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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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분은 불편한 게 훨씬 좋다고 하시더라고요. 저한테 ‘불편하지 않으려면 다 해내야만 하는데 너는 다 해내고 싶냐’고 하셨어요. 그때 뭔가 울림이 오는 거예요. ‘그렇지, 내가 왜 완성시켜야만 하지? 약간 불완전해도 그대로 좋았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2021.05.04)


여행의 즐거움을 전하는 유튜브 채널 ‘여락이들’. 운영자인 ‘더티(김옥선)’와 ‘그래쓰(김수인)’는 동네 헬스장에서 처음 만났다. 희한한 인연만큼이나 희한하게 닮은 점이 많았던 두 사람은 5년 넘게 세계를 여행하고 있다. 시작은 멜버른이었다. 비행기 티켓을 내밀며 그래쓰가 말했다. “너무 지쳐서 잠깐 호주로 도망갈 건데... 같이 갈래?” 그때를 떠올리며 더티는 말한다. “도망가자! 라는 마음으로 떠났다”고.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여행지에서 촬영한 영상을 페이스북에 올리자 무서운 속도로 좋아요가 올라가고 댓글이 달린 것. 이후 유튜브 채널을 개설한 두 사람은 본격적으로 영상을 공부하며 크리에이터로서 다시 여행을 떠났다. 그들의 ‘리얼하고 재미있는 여행 이야기’를 볼 수 있는 채널 ‘여락이들’은 58만여 명의 구독자에게 사랑 받으며 유튜브의 대표 여행 채널로 자리 잡았다. 



『설레는 건 많을수록 좋아』는 여락이들이 함께한 여행의 기록이자, 저자인 김옥선(더티)의 이야기다. 그에게 떠남이 필요했던 이유, 여행을 하며 보고 느낀 것들, 일하듯 여행하며 사는 일에 대한 생각이 담겨있다. 어느 때보다 여행이 그리워지는 지금, 우리의 그리움을 잠시 달래줄 뿐만 아니라 ‘후회 없는 삶’에 대해 질문하게 한다. 



이렇게 사는 게 맞나?

‘여락이들’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가 굉장히 많잖아요. 책에 어떤 내용을 어떻게 담을지, 고민하셨을 것 같아요. 

솔직히 재미없는 것들은 뺐어요. 글을 쓸 때 신나서 써지는 게 있고 재미없다고 생각되거나 막히는 것들이 있더라고요. 글을 쓰는 입장이지만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 많이 생각했어요. 영상을 만들 때도 제가 재밌게 만든 건 보는 분들도 재밌어하고, 제가 조금 루즈하다고 느끼는 건 똑같이 느끼시더라고요. 그래서 재밌게 써지는 글 위주로 실었고, 또 제가 꼭 넣고 싶은 나라의 이야기를 담았어요. 그래서 다녀온 나라들 중에서 빠진 곳들이 조금 많아요. 에피소드가 별로 없다든지 그곳에 대한 제 감정이 별로 없으면 많이 뺀 것 같아요. 

이 책은 김옥선 작가님 개인의 이야기이기도 한데요. 첫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어떠셨어요? 벗어나고 싶은 현실이 있었나요?

여행가기 전에는 딱히 하고 싶은 게 없었어요. 직업으로서 관심을 가졌던 것도 없었고, 장래희망이라는 게 없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그냥 돈 많이 주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서 했는데, 확실히 금방 질리고 지치더라고요. 동시에 ‘이렇게 사는 게 맞나? 남들도 다 이렇게 살고 있나?’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나만 못 견디겠다고 투덜거리는 건가? 내가 너무 나약한 사람인가?’ 걱정도 되고요. 그런데 동시에 ‘어쩌라고, 나는 이렇게 먹고 살고 싶지 않은데’ 하는 생각이 들어서,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많이 걱정했던 것 같아요.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컸나요? 

특히 저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당장 내일 죽는다고 해도 후회되지 않게 살아야 한다’고 뼈저리게 느낀 것 같은데, 이렇게 살면 오늘 죽어도 너무 후회할 것 같은 거예요. 머리로는 ‘내가 하고 싶은 걸 해야 된다, 후회 없는 삶을 살아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현실은 ‘남들도 다 이렇게 살아, 남들도 다 버티고 살아’라고 하니까 ‘나도 버텨야 되나? 내가 너무 철없는 소리를 하나?’라는 생각으로 괴리감이 되게 컸죠. 

우연히 불법 콜센터에서 일하게 되셨고, 그곳을 그만두고 멜버른으로 첫 여행을 떠나셨죠? 

그때 현실에 많이 지치고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여행을 떠날 때도 ‘여행 간다~’가 아니라 ‘도망가자!’라는 마음으로 떠났어요. 당시 만들었던 여행 영상에 ‘도망에 성공한 노예의 기쁨’이랄까요(웃음), 그런 게 너무 잘 드러났던 것 같아요. 그래서 많은 분들이 영상을 보면서 같이 신나고 좋아하신 것 아닐까 싶어요. 

요리가 하고 싶어서 호텔조리학과에서 공부하셨고, 졸업 후 요식업계에서 일하셨죠. 생각했던 것과 현실은 많이 달랐나요? 

너무너무 달랐죠. 저는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게 좋아서 요리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 음식을 먹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뿌듯하고 성취감이 느껴져서 요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그때 ‘요리하는 남자’, ‘요섹남’이 엄청 유행했어요. 하얗고 깨끗한 요리복을 입고 카리스마 넘치게 요리하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요리를) 시작했는데, 현실은 지하상가에 있는 빕스에서 엄청 큰 그릴판 앞에서 고기를 굽는데, 사람들이 맛있게 먹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없고 지금 구워지고 있는 게 고기인지 내 손인지도 모르겠고 어쩔 때는 ‘그냥 미친 척 내 손을 구워서 화상 입고 병원에 간다고 나갈까’ 하는 생각까지 들고... 너무 힘들더라고요. 그게 현실이 맞다고 생각은 하는데, 스무 살에 벌써 ‘이게 내 현실인가 보다’ 하고 안주하기에는 너무 삭막한 현실이었죠. 이건 내가 생각하던 길이 아니다, 내가 생각하던 요리는 이게 아니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책 앞부분에서 부모님 이야기를 들려주셨어요. 작가님이 ‘여행하는 삶’을 사는 데, 두 분이 미친 영향이 큰 것 같아요. 

엄청 많은 영향을 받았죠. 제가 공부에 관심이 하나도 없었어요. 대학을 가야 되는 이유를 전혀 모르고 ‘내가 왜 공부를 해야 해? 나는 공부하고 싶지 않은데?’ 하고 당당하게 말하던 학생이었어요. 고등학교 1학년 때 아빠가 돌아가셨는데, 그 전까지만 해도 엄마는 ‘네가 서울로 갈 수 있는 방법은 인서울밖에 없다’는 생각이었어요. 인서울로 갈 게 아니면 큰 세상을 겪어볼 필요도 없다는 주의였는데,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 ‘공부뿐만이 아니다, 네가 할 수 있을 때 다 보고 다 누려 봐’라는 주의로 바뀌시더라고요. 그리고 원래는 걱정이 많으셨어요. 저 어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애가 혼자 서울이든 해외든 나가서 뭘 할 수 있을까, 나가서 잘못되면 어떡하나, 내가 품에 안고 케어해야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많이 하셨대요. 

그 생각도 바뀌셨나요? 

나중에 말씀하시더라고요. ‘아빠도 같은 공간 안에 있다가 이렇게 됐는데, 너를 내 공간 안에 잡아놓는다고 해서 그 일이 안 일어난다는 보장도 없다, 네가 내 손 안에 있든 넓은 세상에 있든 그건 엄마가 다 컨트롤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니까 네가 나중에 생각했을 때 그 선택을 하길 잘했다고 생각되는 일들을 했으면 좋겠다’고요. 아마 그래서 제가 중동이나 인도, 이집트 같은 나라를 갈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원래라면 무서워서 잘 못 갔죠(웃음). 안전한 나라들만 가지 않았을까 싶어요.

 


딱 1년만 해보자, 후회 없을 정도로

‘그래쓰’와의 인연은 참 희한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첫 만남도 독특했고, 굉장히 빠른 속도로 친해졌고, 지금까지 많은 일들을 함께 하고 있잖아요. 

그래쓰가 저보다 훨씬 더 외향적인 사람이에요. 아마 그래쓰가 저한테 그렇게 적극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더라면 저는 그냥 (인연을) 흘려 보냈을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모든 게 좋은 타이밍으로 잘 만났던 것 같아요. 원래 서로의 접점이 하나도 없었는데 그래쓰가 먼저 다가와 줬고, 우리가 되게 닮은 사람이란 걸 같이 깨닫게 됐고... 그래서 저희도 ‘와, 우리는 진짜 신기하다’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해요. 

두 분이 처음으로 같이 떠난 여행의 영상이 페이스북에서 큰 화제가 됐어요. 그때 어떤 기분이 드셨어요?

진짜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해요. 제가 불법 콜센터를 다니다가 때려치우고 다음 날 도망가듯이 떠난 여행이었잖아요. 그래서 에코백에 지갑, 여권, 휴대폰, 휴대폰 충전기, 딱 그것만 들고 갔었거든요. 돌아와서 사실 그대로 ‘회사 때려치우고 친한 언니랑 멜버른 여행 갔다 왔다’ 이런 식으로 영상을 만들었는데, 올리고 나서 얼마 되지도 않아서 좋아요가 다다다다다다 올라가는 거예요. 진짜 너무 얼떨떨하고 ‘어, 뭐야? 우리 재능 있나 봐, 우리 할 수 있나 봐, 이건가 봐’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 생각이, 사람들이 댓글로 다음에는 어디로 갈 거냐고 물어보니까, 점점 ‘그 다음은 어디로 가지?’ 하는 생각으로 변했던 것 같아요. 무엇보다 우리도 그 순간에 너무너무 재밌었고 인정받는 기분이었어요. 

뒤이어 태국 여행 영상을 올리셨는데, 반응이 기대에 못 미쳤어요.

완전 망했죠. 멜버른 영상은 우리끼리 ‘재밌다, 키키’ 하면서 만든 건데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해줬거든요. 그런데 태국 영상은 ‘진짜 각 잡고 만들어보자’ 했는데 아무도 안 봐주는 거예요. ‘뭐가 잘못된 거지? 멜버른 영상이 떴던 이유는 단순히 운이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인정받은 느낌을 다시 뺏긴 것 같았다고 할까요. 사탕 받았다가 다시 뺏긴 것처럼. 영상을 만들면서 나는 똑같이 재밌었는데 왜 멜버른 영상은 터지고 태국 영상은 망한 건지 너무 궁금했어요. ‘이걸 성공시키고 싶다’는 생각도 들어서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영상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 시기를 굉장히 치열하게 보내셨더라고요. 아르바이트, 영상 공부, 영상 제작, 세 가지 일에만 전념하셨죠. 

돈이 없으니까 계속 여행을 갈 수가 없었어요. 카메라, 영상 편집할 노트북, 편집 프로그램도 없었고요. 그래서 저희가 선택했던 방법이 영상 공모전에 나가는 거였어요. 우승하면 상금도 주니까요. 카메라 같은 건 알바 해서 대여했고, 편집실은 나라에서 지원해주는 시설이 있거든요. 그런 곳을 예약해서 영상 편집을 했어요. 그리고 공모전에 출품하고 떨어지고, 다시 출품하고 떨어지고, 그걸 반복했던 것 같아요. 

어떻게 계속할 수 있었나요?

솔직히 돈도 안 되고 계속 떨어지기만 하니까 많이 힘들었어요. 그런데 그런 생각이 있었어요. 그 전까지는 제가 ‘해야만 해서’ 일을 해왔잖아요. 주방에서도 돈을 벌어야 되니까 일을 해야만 했고, 콜센터도 그랬고. 그런데 이건 처음으로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니까 결과가 안 나오더라도 해보자 싶었어요. 그리고 지금 노력을 하고 있으니까 ‘딱 1년만 투자해보자’ 생각했어요. ‘1년만 후회 없을 정도로 다 쏟아 보자, 그래도 안 되면 그때는 깔끔하게 포기하자’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그런데 하다 보니까 10개를 지원하면 간혹 한두 개씩 붙는 거예요. 공모전 주제에 따라서 원하는 영상이 어떤 건지도 알게 됐고요. 그러다가 러쉬라는 회사의 영상팀에 계약직 인턴으로 일하게 됐죠.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하면서 인턴쉽 기회를 가졌던 거죠?

네. 3개월 동안 계약직 인턴쉽 생활을 했고, 그 안에서 영상에 대해서 되게 많이 배웠어요. 속성 과외를 받은 것처럼. 

그때 직업으로서 유튜버, 영상 크리에이터를 염두에 둔 건 아니었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엄청 유명한 유튜버가 됐어요. 

아마 20대 초반이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나 생각해요. 잃을 것도 없었고 책임질 것도 없었으니까 ‘그냥 해보자, 해보고 아니면 나중에 다시 하면 되지’ 하는 생각으로 이것저것 다 도전하는 게 가능하지 않았나 싶어요. 지금 제가 스물일곱인데, 갑자기 다 때려치우고 다른 걸 한다고 생각하면 ‘이건 어떡하고 저건 어떡하지?’ 하는 고민들을 하게 되죠. 이런 이야기는 20대 초반의 친구들이 저한테 메일이나 인스타그램 DM으로 질문하는 것이기도 해요. 자신이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 사이에서 고민하는 친구들이 많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우리가 좋은 직장, 좋은 집, 좋은 차, 이런 것들을 가지려고 모든 걸 포기하면서 열심히 살잖아요. 그런데 사실은 좋은 집이나 차, 직업 같은 것들이 나를 아무데도 못 가게 묶어놓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래서 저는 ‘그런 것들이 하나라도 없을 때, 그런 것들에 의존성이 하나라도 적을 때 떠나는 게 아주 좋다’고 이야기해요.

 


어디로 튈지 몰라서 새로운 것 같아요

인턴쉽이 끝나는 걸 기념하기 위해서 유럽 여행을 떠나셨고, 경비를 아끼기 위해서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셨죠. 그 이야기가 책에도 실려 있는데 남다른 애정이 느껴졌어요.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약간 뭉클할 정도예요. 일단 횡단 열차에서는 말도 통하지 않았고, 그때까지만 해도 횡단 열차에 대한 후기나 리뷰 같은 게 없었어요. 열차 안에서 데이터가 안 터진다는 정보도 없었기 때문에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탔어요. 그랬기 때문에 거기에서 일어났던 모든 일들이 색다르고 신기하고, 그냥 있는 그대로 다 받아들여졌어요. 그리고 정말 좋은 친구들을 만났으니까, 감동이 배가 돼서 오는 거예요. 말이 안 통하니까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기 위해서 집중하게 되고, 집중하기 위해서 행동이나 눈빛이나 진심에 더 귀를 기울였고, 그래서 더 소중하고 애틋한 친구들로 남은 것 아닌가 싶어요. 원래 영국에서 크리스마스를 즐기기 위해서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탄 거지만, 영국은 잘 기억도 안 나요. 시베리아가 너무너무 좋았다는 기억만 나고. 

말씀하신 ‘횡단 열차 오형제’도 그렇고, 파리에서 만난 ‘필승이’도 그렇고, 여행에서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가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진짜 만나는 사람에 따라서 그날이 여행이 좌지우지되는 것 같아요. 사람이 주는 여행의 즐거움이 있고 자연이 주는 여행의 즐거움이 있는데, 두 개는 서로 완전히 다르면서 서로 완전히 완벽해서, 내가 원하는 대로 둘 사이를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게 여행이 가진 장점인 것 같아요. 

자연이 주는 즐거움이 가장 컸던 나라를 꼽으라면요?

스위스, 인도, 쿠바가 정말 대박이었던 것 같아요. 스위스는 별개이기는 하지만, 사람 손이 많이 닿지 않은 곳들은 다 대박인 것 같아요. 여행일 재밌게 만들어주는 건 그 나라에서 만난 사람들이지만, 내가 얼마나 작은 존재였고 내가 하는 걱정들이 얼마나 하찮은 것이었는지를 깨닫게 하고 세상은 이렇게나 넓고 아름답다는 걸 느끼게 하는 건 입이 턱 막히는 장면이라고 생각해요. 인도의 사막에서 잔 적이 있는데, 게르에서 자는 건 비싸서 그냥 침낭을 깔고 잤어요. 그런데 사막의 일교차가 진짜 심하거든요. 자다가 너무 추워서 깼는데 눈앞에 보이는 별이 정말 밝은 거예요. 누가 형광들을 켠 것처럼 빛나고, 낮보다 밝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별이 많았어요. 그 장면을 찍고 싶어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는데 휴대폰 액정에서 나오는 불빛보다 하늘의 별이 더 밝더라고요. 그럴 때 ‘세상은 진짜 넓고, 나는 진짜 작고, 아직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이 너무 많고, 내가 볼 수 있고 해볼 수 있는 것들이 진짜 많다’는 걸 느끼는 것 같아요. 

하지만 살고 싶은 나라는 스위스인가요(웃음)?

네(웃음), 살아보고 싶은 나라죠. 사실 살고 싶은 나라가 두 개예요. 하나는 스위스이고 하나는 포르투갈. 스위스는 한 달 살기 정도로 생각하고 있고, 정말 이민 가버릴까 하는 생각이 드는 나라는 포르투갈이에요.

그렇게 좋아요?

정말 좋아요. 날씨, 음식, 에그타르트까지 너무 좋아요. 거짓말이 아니라, 공항 밖으로 나감과 동시에 온 나라가 달콤한 냄새가 나요. 에그타르트 가게가 너무 많아서. 대리석 바닥은 맨들맨들하고 벽면에는 타일이 깔려 있고 사방팔방에서 달콤한 에그타르트 냄새가 나고 지붕은 다 주황색이고... 너무 낭만적이고 뭔가 로맨틱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포르투 와인이 되게 유명해요. 와인 하나 먹고 디저트 하나 먹으면서 걸어 다니니까 ‘여기는 진짜 사랑하는 사람하고 오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드는 거죠. 그래서 저는 포르투갈에 한 번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이집트, 인도로 떠나기 전에 걱정했던 부분이 있지 않았나요?

인도는 전혀 예상을 못 하고 가게 된 거라서 걱정을 할 틈도 없었고요. 유일하게 고민했던 곳이 이집트였어요. 제가 <이집트 왕자>라는 애니메이션을 되게 좋아하는데, 거기에서 이집트는 너무 예쁘게 나와요. 그래서 이집트는 ‘미지의 나라로 떠난다~’ 하는 생각으로 갔던 것 같아요. 그런데 확실히, 무언가를 기대하면 기대한 만큼 실망하게 되는 것 같아요. 처음 이집트에 갔을 때 너무 많이 실망을 했는데, 이집트에 대한 모든 정이 다 떨어졌을 때 도착한 곳이 다합이었어요. 

완전 반전이었죠. 

네. 다합 바다에서 프리다이빙을 배웠는데 그 바다가 진짜 예뻐요. 순간순간이 너무 벅차고 행복했어요. 여행은 진짜 어디로 튈지 몰라서 늘 새롭게 재밌고 즐거웠던 것 같아요. 




불완전해도 그대로 좋았는데

코로나로 여행을 못 가게 되자 “솔직한 마음으로 이제 조금 쉴 수 있겠다는 생각에 안도했다”고요. 번아웃이 왔던 거죠?

그때는 번아웃인지 전혀 몰랐고, 책을 쓰면서 ‘그때 내가 번아웃이었구나’라는 걸 깨달았어요. 좋아하는 일이 ‘일’이 되어버리면 원래 의미가 많이 퇴색되는 것 같아요. 점점 ‘나는 여행이 너무 좋아, 그래서 나는 여행 유튜버야’가 아니라 ‘나는 여행 유튜버니까 여행을 좋아해야 해’로 주객전도가 되더라고요. 그런데 이게 직업이니까 사람들 앞에서는 티 낼 수 없고, 늘 즐거운 척 재밌는 척 행복한 척 해야 되죠. 제가 5년 동안 여행을 했는데, 아무리 잘 달리는 마라토너도 5년 동안 달리라고 하면 쓰러지다 못해 죽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도 많이 쉬고 싶었는데 쉴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었나 싶어요. 점점 내가 왜 가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설레지가 않고, 이 나라나 저 나라나 여권에 찍히는 도장만 다를 뿐 똑같은 거예요. 영상을 찍을 때도 ‘오늘은 무슨 일이 있을까? 어떤 사람들을 만날까?’가 아니라 ‘아침에 일어나는 거 찍고, 어디 어디 돌아다니는 거 찍고, 근방에 맛집 있는지 찾아서 넣고, 마지막에 노을 영상 집어넣고 잔잔한 노래 넣고 끝내야겠다’ 이렇게 기계화 되어 가고요. 

그때 어떤 생각을 하셨어요?

주방에서 ‘싫지만 해야 되니까’ 일했던 때처럼 여기에서 이렇게 하고 싶지 않은데, 어떻게 해야 되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코로나가 터졌어요. 처음에는 메르스나 사스 정도로 3~4개월만 버티면 될 거라고 생각하고 ‘아, 이제 합법적으로 쉴 수 있겠다’ 싶었어요(웃음). 그런데 코로나 사태가 길어질수록 제 상태도 더 심각해지는 거예요. 나는 아직 해결된 게 하나도 없고 변한 게 하나도 없는데 상황은 계속 안 좋아지고, 이도 저도 못하고 묶여있는 느낌이었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더라고요. 그런데 예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던 것 같은 거예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막막했던 순간이요?

네. 콜센터에 다닐 때 퇴근하는 지하철에서 늘 느꼈던 거거든요. 그걸 또 느끼고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생각을 해봤어요. ‘내가 그때 어떻게 했지? 어떻게 극복했더라?’ 생각해 보니까, 그때 멜버른으로 도망갔잖아요. 그래서 ‘이번에도 도망가야겠다’ 해서 떠난 게 국토대장정이었어요. 걸으면서 되게 많은 사람들도 만나고, 그때 느끼는 것도 있고, 그러면서 또 번아웃이 극복됐던 것 같아요. 

국토대장정을 하면서 인상적인 순간이 있었나요?

번아웃에서 벗어나게 해줬던 상황이 두 번 있었는데, 한 번은 삼척 바다까지 갔었어요. 밤에 숙소 주인 분이 어떤 노래를 틀어줬는데, 저희가 이집트 야간 버스에서 들었던 노래인 거예요. 듣자마자 여행 갔을 때로 생각이 넘어가면서 ‘그때는 되게 즐거웠는데, 뭐가 그렇게 좋았지? 지금은 뭐가 그렇게 힘든 거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저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됐어요. 생각해 보면 그 야간 버스는 너무너무 고통스러운 순간이었잖아요.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되게 재밌고 즐거웠던 기억인 거예요. 그리고 그때 버스 안에서 너무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새벽에 자다가 (창 밖으로) 본 돌산이 황금같이 반짝거리면서 너무 예뻐 보였거든요. 그런 것들이 조금씩 상기되면서 여행 갔던 일들이 생각났어요. 

또 다른 순간은 언제였나요? 

정점을 찍었던 게, 정선 게스트 하우스의 사장님을 만났을 때였어요. 그 분을 보자마자 ‘이 분은 진짜 찐 여행자다’ 싶었어요(웃음), 실제로 히말라야에 갔다 오신 분이더라고요. 그런데 그 분이 사시는 곳은 너무 산골짜기여서 인터넷이 안 돼요. 전화도 안 터지고 불도 안 들어와요. 벌레도 엄청 많고, 고기도 장작 긁어 모아서 불 피우고 돌 위에 구워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사시는 게 힘들고 불편하지 않으시냐고 물었더니, 그 분은 불편한 게 훨씬 좋다고 하시더라고요. 저한테 ‘불편하지 않으려면 다 해내야만 하는데 너는 다 해내고 싶냐’고 하셨어요. 그때 뭔가 울림이 오는 거예요. ‘그렇지, 내가 왜 완성시켜야만 하지? 약간 불완전해도 그대로 좋았는데’ 하는 생각이 들고, 멜버른에서의 추억이 생각났어요. 온천 가는 길에 산속에서 길을 잃고 헤맸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길을 걷던 순간들이 다 좋았던 거예요. 사실 온천 자체는 딱히 좋지 않았거든요. 그때 기억이 떠오르면서 ‘맞아, 나는 여행지가 좋았던 게 아니라 여행지까지 가는 길에서 내가 느꼈던 모든 것들이 좋았던 거지, 여행이 문제가 아니었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면서 내가 왜 여행을 좋아했는지를 다시 알게 됐고 ‘여행을 가야만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게 된 것 같아요. 

번아웃이 지나간 지금은 다음 여행이 기다려지세요? 

코로나가 풀리면 해외여행이 제일 가고 싶어요. 원래는 해외를 배경으로 웹드라마도 제작을 하려고 했었거든요. 

<인도행 티켓>이요? 

네, 맞아요. 원래는 진짜 인도에서 찍으려고 사전 답사까지 마치고 게스트하우스도 계약까지 하고 왔는데 코로나 때문에 갑자기 진행을 못하게 돼서, 코로나가 끝나면 해외에서 웹드라마도 찍고 싶고요. 그리고 포르투갈에 가서 에그타르트 레시피를 배워볼까 생각하고 있어요. 배워서 한국에 와서 가게를 차리는 게 제 현재의 꿈입니다. 

책 제목이 『설레는 건 많을수록 좋아』잖아요. 요즘 작가님을 설레게 하는 건 무엇인가요?

가장 설레는 건, 너무 에그타르트에 집착하는 사람 같은데(웃음), 에그타르트 가게 창업할 생각이 진짜 제일 설레는 것 같아요. ‘어느 지역에 어떤 인테리어로 하지? 인테리어는 한국식으로 말고 진짜 리스본하고 똑같이 해야지, 이 가게에 온 사람들은 리스본으로 돌아간 것처럼 느낄 수 있도록 해야지’ 하는 생각도 하고요. 리스본은 제비가 행운의 상징이라서 모든 포장 용기에 제비가 그려져 있거든요. ‘나도 포장해줄 때 제비를 그려놔야지’ 이런 상상을 하는 것도 너무 즐거워요. 저는 무조건 포르투갈에 가서 레시피를 배워올 거라서, 이 레시피로 하면 대한민국 원탑이 될 자신이 있어요. 요즘 그 생각할 때가 제일 설레는 것 같아요. 확실히(웃음).




*김옥선

1995년 2월생. 워낙 조그맣게 태어나 ‘동네에서 맞고 다니진 않을까’걱정하던 부모님의 우려를 보기 좋게 무시한 채 골목대장으로 자랐다. 동네 할머니에게도 스스럼없이 친구 하자며 말을 걸던 관종끼는 한국을 너머 동남아, 유럽, 미국, 중동으로 뻗어 나가 멈출 기세 없이 달려나갔지만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지금은 잠시 중단, 하려다가 ‘작가’에 관심을 보여 2021년 『설레는 건 많을수록 좋아』를 출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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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레는 건 많을수록 좋아
설레는 건 많을수록 좋아
김옥선 저
상상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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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설레는 건 많을수록 좋아

<김옥선> 저13,500원(10% + 5%)

유튜버 ‘여락이들’의 가식 0% 역대급 재미 보장 여행기! “내가 뭘 선택하든 후회하지 말자. 내가 겪은 경험들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갈까 말까 고민하다 끝내 못 간 여행이 쌓여만 간다. 학교 때문에, 직장 때문에, 여건 때문에, 시기가 안 맞아서… 핑계는 끝이 없고 미루면 미룰수록 떠날 용기는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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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책

끝나지 않는 오월을 향한 간절한 노래

[2024 노벨문학상 수상] 1980년 5월 18일부터 열흘 간의 광주, 그리고 그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작가의 철저한 노력으로 담아낸 역작. 열다섯 살 소년 동호의 죽음을 중심으로 그 당시 고통받았지만, 역사에서 기록되지 않은 인물들의 이야기를 꺼내 보이면서 그 시대를 증언한다.

고통 속에서도 타오르는, 어떤 사랑에 대하여

[2024 노벨문학상 수상] 2023 프랑스 메디치 외국문학상 수상작이자 가장 최근작. 말해지지 않는 지난 시간들이 수십 년을 건너 한 외딴집에서 되살아난다. 깊은 어둠 속에서도 “지극한 사랑”이 불꽃처럼 뜨겁게 피어오른다. 작가의 바람처럼 이 작품은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다.

전세계가 주목한 한강의 대표작

[2024 노벨문학상 수상] 2016년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수상한 장편소설이자 한강 소설가의 대표작. 보이지 않는 영혼의 고통을 식물적 상상력으로 표현해낸 섬세한 문장과 파격적인 내용이 큰 울림을 만들어낸다. 폭력의 악순환을 끊고,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나무가 되고자 한 여성의 이야기.

더럽혀지지 않는 어떤 흰 것에 관한 이야기

[2024 노벨문학상 수상] 한강 소설가의 아름답고 고요한 문체가 돋보이는, 한 편의 시와 같은 작품. 삶과 죽음의 경계를 허물고, 그 사이를 넘나드는 소설이다. ‘흰’이라는 한 글자에서 시작한 소설은 모든 애도의 시간을 문장들로 표현해냈다. 한강만이 표현할 수 있는 깊은 사유가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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