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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숲으로 찬찬히

잘 먹고 잘 사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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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뼘짜리 마스크 안에서, 두어 뼘의 방 안에서, 숲으로의 길을 잘 닦을 시간이 주어졌다. 빈둥거리기 대회는 포기할 수 없지만 서두르지 않고 한걸음씩 찬찬히 나만의 숲으로 향한다.(2021.02.26)

나만의 숲으로 향한다

돌연하고 당혹스러운 상황도 익숙해지니 일상이 된다. 마스크의 일 년, 눈 앞의 일들을 파악하고 나누고 따라가기에 바빴던 우리는 하나 둘 이해를 갖추고 앞으로의 일 년 또 그 다음을 그린다. 밖으로 향하던 관심은 각자의 안으로, 때로는 화면 너머 무궁한 가상의 공간을 향해 과거보다 더 멀리 뻗어나간다. 역시 지나간 시간을 자꾸만 돌아보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인 나는, 이제 제법 다시 새로운 형태를 갖춰가는 주변을 보며 자극 받아 새삼스럽게 지난 일 년을 복기해본다. 돌아갈 수는 없으니 다음 계획이 필요하므로.

폭신하고 무게감 있는 이불을 턱까지 끌어올리고 누워 눈을 감고 생각을 정리한다. 그러다 잠이 오면 잠에 들고 허리가 아프면 자세를 바꿔 보기도 하고 생각이 정리되면 일어나 생각에 맞춰 움직여보고. ‘쉬는 것, 집에 있는 것도 며칠 지나면 지겨워진다’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는데, 이 특수한 사계절을 보내고 나니 더 확실해졌다. 그것은 결코 언제고 지겹지 않다. (나는 단호하다.) 연례행사 같은 여행마저 어려운 것은 괴롭지만, 우리는 ‘쉬는’ 동안에도 분명 무언가를 생산해내고 집에 있어도 하루하루는 알맞게 충실하게 흐른다. 아니면 또 어떤가. 어쨌거나, 빈둥거리기 대회가 있다면 참가해 일등을 노리겠다.

운동을 한다,는 다짐을 더 자주 한다. 마음만 먹고 있다가 드디어 시작해 으쌰으쌰했던 수영은 수영장 폐쇄로 한 달을 채 못 다니고 잠정 중단. 매일 꾸준히 하던 기초 운동은 한순간 될 대로 되라 싶어져서 외면하고 방치. 그리하여 먹고 자고 찌고 운동을 다짐하는, 하나의 견고한 주기가 완성되었고 그 와중에 건강은 챙기겠다며 약은 꼬박 삼키는 기묘한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오늘도 속속 제자리를 찾아 입주하는 내 몸의 새 지방 식구들에게 인사를 건네며, 팔굽혀펴기 30개.를 머릿속에서 해본다. 상상 올림픽이 있다면 참가해 예선 통과를 노리겠다. 상상으로도 순위권은 무리다.

이렇게 몸은 게으르지만 사고는 바쁜 한 해를 보내면서, 도달한 지점은 결국 잘 먹고 잘 사는 일에 대한 고민이다. 냉동식품과 반조리식품의 놀라운 세계를 경험하고 박수를 보내다가, 배달음식의 어마어마한 세계에 감탄하다가, 흥분이 가라앉고 서서히 진정세에 접어들었다. 두부와 가지와 버섯을 잔뜩 넣은 마파두부, 소고기와 무와 시래기와 토란대를 꾹꾹 눌러 담은 소고기 국밥을 해먹고, 백설기와 팥죽 만드는 방법을 검색하면서, 동파육을 위한 오겹살과 청경채를 주문해 기다리면서, 그렇다. 잘 먹고 잘 사는 일을 고민하고 있다.

‘잘 사는 일’이라고 하면, 하릴없이 ‘잘 살기’를 생각하는 『연년세세 年年歲歲』의 이순일이 떠오른다. 누구라고 그 정체를 속 시원히 밝힐 수 있을까. 다만 무사하기를 행복하기를 바라는 그 꿈을 자신을 향해서도 품어보는 것, 그것이 필요하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여운이 남은 것도 고민의 이유 중 하나겠다. 따뜻하게 스며들어서 오래가는 이야기, 닮고 싶어지는 색깔들. ‘배가 고파 돌아왔다’는 말에 찡한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가장 중요한 일을 외면하고 그때그때 열심히 사는 척한다’는 말에는 아프게 공감했다. 영화 속 그들처럼 우리도 모두 ‘나만의 작은 숲을 찾는’ 여정 위에 있는지도 모른다. 한 뼘짜리 마스크 안에서, 두어 뼘의 방 안에서, 숲으로의 길을 잘 닦을 시간이 주어졌다. 빈둥거리기 대회는 포기할 수 없지만 서두르지 않고 한걸음씩 찬찬히 나만의 숲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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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박형욱(도서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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