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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한 격리 속, 집에서 만들어진 라이(Rhye)의 작은 세상
라이(Rhye) < Home >
철저히 격리된 삶 속 만들어진 < Home >, 기나긴 팬데믹 시대에 그가 머물렀던 작은 세상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2021.02.03)
마냥 익숙하지는 않은 뮤지션 라이(Rhye)지만, 그의 싱글 'The fall'과 'Open'은 국내에서 꽤 많은 마니아층을 섭렵하는 것에 성공했다. 캐나다 토론토 출신의 마이크 밀로쉬(Mike Milosh)의 프로젝트성 팀인 라이는 덴마크 출신의 일렉트로니카 뮤지션 로빈 한니발(Robin Hannibal)과 함께 데뷔 싱글 'The fall'로 음악 커리어를 시작, 이후 두 번째 정규앨범 <Blood>부터는 마이크 밀로쉬 혼자 음악을 제작했다. 앨범 단위로 보았을 때 변화의 폭은 좁다. 단지 <Home>은 코로나 19라는 전대미문의 재앙 속 로스앤젤레스 봉쇄 조치로 인한 격리된 삶에서 발현되었을 뿐이다.
해안이 보이는 산타모니카의 산 정상, 연인과의 삶이 영감이 되어 탄생한 <Home>은 풍요롭게 채워진 합창단의 'Intro'로 앨범의 문을 연다. 이어서 등장하는 수록곡들은 전반적으로 밝기도 어둡기도 한, 그 중도를 지키고 있다. 무력함을 동반하는 사랑을 관능적인 사운드로 풀어낸 'Helpless', 2020년 캘리포니아 산불의 좌절 속 발견한 삶의 고통과 극복이 담긴 'Black rain'이 그 예다. 단조의 성질을 띠는 편곡 속에서도 결국 이야기하고자 하는 건 사랑의 순수함, 위로의 언어이다.
라이는 중성적인 목소리와 사운드의 형태가 샤데이(Sade)와 더 엑스엑스(The XX)를 떠오르게 한다는 일각의 의견을 뒤로하고 이번 음반으로 고유의 색깔을 창출해낸다. 부드러운 소프트 팝 혹은 알앤비, 일렉트로닉. 감각적인 사운드의 총집합 속 차별점을 심는 건 현악기의 포진이다. 첼리스트로 활동했던 경력을 적극 활용했다. 미니멀한 비트의 'Come in closer'에서는 역동성을 부여하는 역할로, 연인의 아름다움을 향유하는 'Beautiful'에서는 노래의 시작과 끝을 임팩트 있게 끌어올리는 역할로 기능한다. 달콤한 복수와 증오심을 대변하는 'Sweetest revenge'에서는 침울한 분위기의 조성을 돕는다. 현악기가 가진 날카롭고도 부드러운 소리의 성질이 음악의 부피를 극대화한다.
무엇보다 안정적인 청취감을 선사한다. 앨범 전반에 걸쳐있는 부드러운 질감의 아날로그 신시사이저가 그 중심에 있다. 또한 간소화된 사운드에 얹어지는 일정한 톤의 보컬은 따분하리만큼 유지되지만, 결정적으로 음악의 전체적인 색채를 통일시켜준다. 어두운 기조의 'Fire' 같은 경우에도 일정한 볼륨 안에서 다양한 사운드를 적재적소에 배치해 곡의 서사를 이끈다. 가사의 의미를 배제하더라도, 듣는 것만으로 만족감을 선사한다.
앨범의 발현부터 과정, 완성까지 모든 건 그의 집에서 이루어졌다. SNS를 통해 고요하게 펼쳐진 시골 자락에서의 삶을 전하기도 하고, 명상하는 장면을 공유하는 등 팬들과의 소통의 장소 또한 집이었다. 뮤직비디오 또한 거리 두기를 지키기 위해 망원렌즈로 촬영했다는 일화도 있다. 철저히 격리된 삶 속 만들어진 <Home>, 기나긴 팬데믹 시대에 그가 머물렀던 작은 세상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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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