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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입니다. 그렇지만 괜찮아요

약간의 이해와 많은 오해들 속에서 서로를 배우고 받아들이며 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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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도 우리는,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상대를, 자신을, 이해시키기 위해 애쓸 것이다. 그렇게 도무지 알 수 없는 서로의 행복과 안녕을 바랄 것이다. (2020.10.23)

일부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 알면 되었다


살아온 시간과 비례해 포용력도 같이 좋아져야 하지 않나. 어째서 납득할 수 없는 일은 점점 더 많아지는 걸까. 왜 저러지, 이유가 뭐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네,와 같은 말을 자꾸 하게 되는 요즘이다. 일행이 저 말을 선수 쳤을 때는, 이해하려고 하지 마. 이해할 수 없을 거야. 저건 이해의 범위 밖에 있는 거야. 그냥 그렇구나 하고 받아들여,라는 말이 다음 내 몫이다. 이해할 수 없는 일에 답답함이 몰려오지만, 또 그것은 그것대로 불가항력인 부분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좋지 않은 방향으로 가면 적당한 타협이나 포기, 괜찮게는 ‘어쩔 수 없음’이나 ‘사정이 있겠지’ 하는 공감이 된다. 이런 생각도 말도 자주 하다 보니 늘 이런 사람이었던 것 같지만, 돌아보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전에는 이해에 열심이었다. 이해 못 할 게 뭐가 있어. 서로 조금씩 양해하고 이해하고 그러는 거지. 하는 마음이었다. 오지랖도 넓었다. 굳이 무리한 중재까지 필요하다면 그사이에는 들어가지 않아야 속 편하다는 것을, 직접 겪고 나서야 깨치게 되었다. 서로 어우러져서 살 수 있다,라는 결론은 같은데 과정이 달라졌다. 과거에는 ‘이해하며 살 수 있지’ 였다면, 지금은 ‘이해하지 않아도 살 수 있어’인 것. 내가 상대를, 상대가 나를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것은 그것대로 존중한다면 함께라 곤란한 어떤 지점에 달해도 덜 괴롭지 않을까.

그날 저녁, 엄마의 구시렁 소리를 무시한 채 그대로 출근한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설거지 중이어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손으로 전화를 받았다.

인생은 길고, 넌 아직 피지 못한 꽃이다. 주저앉지 마. 엄마가 하란 대로 하지도 말고.

그러곤 뚝, 통화가 끊겼다.

-김이설,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 117쪽





우리가 현실에서 타인에게 기대할 만한 ‘이해’의 한 형태가 이런 것이 아닐까. 남에 대한 완전한 이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전제하고 말이다. 아버지 역시 딸의 번민을 당사자가 느끼는 것만큼 정확하게 감각하지는 못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 마음의 흔들림이나 괴로움을 분명 느낀 것이겠지. 어쩌면 그 길을 먼저 걸어본 이의 경험에서 나온 나름의 최선의 위로인 지도 모른다. 그 안에 일정 부분 오해나 짐작이 있을지언정, 그 형태가 투박하고 서툴기는 해도, 바탕에는 상대의 상황에 대한 고민이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알아주는 사람이 있구나,를 인식하는 순간 불안한 마음은 하나의 보호막을 얻게 되지 않나.

잘 살기.

그런데 그건 대체 뭐였을까, 하고 이순일은 생각했다. 나는 내 아이들이 잘 살기를 바랐다. 끔찍한 일을 겪지 않고 무사히 어른이 되기를, 모두가 행복하기를 바랐어. 잘 모르면서 내가 그 꿈을 꾸었다. 잘 모르면서.

-황정은, 『연년세세 年年歲歲』 138쪽

울고 실망하고 환멸하고 분노하면서, 다시 말해 사랑하면서.

-황정은, 『연년세세 年年歲歲』 182쪽





역시 잘 모르겠지만, 역시 그것은 사랑일 것이다. 내가 보는 것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가족이라는 테두리 바깥에 그들에게도 각자의 세상이 있을 거라고는 쉽게 상상하지 못했던 언젠가, 그리고 그런 그들의 세상을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된 지금에까지, 역시 그래도 그것은 사랑일 것이다. ‘우리는 진짜 안 맞는다’를 백 번쯤 되새기고, 모난 말들을 순식간에 뱉어내고, 왜 그랬을까 하는 후회를 한숨과 함께 내쉬고, 다시 불타오르기를 수차례. 그러면서도 우리는,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상대를, 자신을, 이해시키기 위해 애쓸 것이다. 그렇게 도무지 알 수 없는 서로의 행복과 안녕을 바랄 것이다.

가까이로는, 대유행의 시기가 왔던 MBTI를 비롯한 온갖 테스트를 하며 우리는 ‘나’를 알려 하고 ‘너’를 묻는다. 나를 효과적으로 설명할 무언가를 찾으려 하고 다른 이들의 진짜 모습을 알고 싶어 한다. 몇가지 정해진 틀에 모든 사람을 맞춰 넣기는 힘들겠지만 가끔은 소름 돋는 정확성에 깜짝 놀라기도 하고(아마 그 결과가 ‘내가 생각하는 나’에 가까워서겠지.), 엉뚱한 예측에 의아해하며 웃어 넘기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참 부지런히 서로를 궁금해한다. 최근에 해본 테스트는 성격에 맞는 스낵을 찾는 것이었는데, 자신의 결과에 만족하며 테스트를 권한 친구는 내 결과가 ‘말랑말랑한 우유젤리’라는 것을 보고 눈을 가늘게 뜨며 테스트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사실 나도 믿을 수 없어서 다시 해보았으나 결과는 같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내 안에도 부드럽고 따뜻하고 순하고 연약한 무언가가 있는 거겠지. 참 모를 일이다. 그러니까 무엇이 되었든 당신의 지금 그 생각도 높은 확률로 오해 일지도. 그렇지만 괜찮다. 그렇게 약간의 이해와 많은 오해들 속에서 서로를 배우고 받아들이며 사는 것으로도 좋겠다.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
김이설 저
작가정신
연년세세 年年歲歲
연년세세 年年歲歲
황정은 저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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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박형욱(도서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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