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에세이스트] 9월 우수상 – 누구를 위한 선물
가장 후회했던 쇼핑
엄마의 생일날, 수업을 마치고 시장통으로 갔다. 서로 다른 2장의 지폐로 무거워진 바지 주머니를 움켜쥐고 무엇을 살지 이리저리 둘러봤다. (2020.09.08)
폭염에도 친구들과 뛰놀던 어린 시절, 엄마의 생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하루는 동네 아줌마가 우리 집을 찾아왔다. 맨날 남편 자랑하기 바쁜 아줌마였다. 오늘도 자기 얘기만 하다가 가겠구나 싶어 방에서 조용히 컴퓨터 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날 아줌마는 다른 자랑거리를 얘기했다. 어제 자기가 생일이었는데 자식들이 용돈을 모아서 옷과 케이크를 사줬다고. 엄마는 이전에 아줌마가 남편 자랑할 때는 항상 덤덤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엄마의 표정이 좀 달랐다. 크리스마스트리에 소원을 비는 아이처럼 아줌마의 자랑을 꿈처럼 듣고 있었다. 지금도 그때 엄마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마음을 먹었다. 나도 저 아줌마 자식들처럼 엄마에게 근사한 선물을 해주기로. 하지만 난 돈이 없었다. 항상 돈이 필요할 때만 받아 썼지 주기적으로 들어오는 용돈은 없었다. 어디서 돈을 구하지? 고민을 하다 아빠가 헌책방에 책을 팔았던 기억이 났다. 난 집안 책들을 몰래 책가방과 슬리퍼 가방에 잔뜩 실어 헌책방에 팔았다. 그런데 내 손에 들어온 돈은 겨우 5천 원. 한 번 더 집안의 책들을 팔았다. 그러자 내 손에 1만 1천 원과 처음으로 돈을 벌었다는 보람이 생겼다.
저녁이 되어 아빠가 퇴근했다. 순간 겁이 났다. 아, 책을 몰래 팔았으니 혼나겠구나. 아빠는 방에 들어갔다. 텅 빈 책장이 선명하게 보일 텐데. 하지만 아빠는 몰랐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판 책들은 아빠 게 아니라 엄마 거였다. 엄마는 그날 아빠와 말다툼을 했다. 아빠가 상습적으로 책을 팔아서 이번에도 그런 줄 안 것이다. 엄마는 학창 시절 추억이 담긴 책들이 없어졌다며 울었다. 죄책감이 밀려왔다. 어찌할 바를 몰라 그만 울어버렸다. 그런다고 눈물이 내 죄를 씻기진 못하는데. 아빠는 그 책을 자기가 판 줄 알고 엄마에게 미안하다며 사과했다. 엄마는 우는 나를 보고 자신을 따라 우는 줄 알고 날 안아 같이 울어줬다. 그때 솔직하게 말했어야 했는데. 다른 생각이 먼저 들었다. 생일 선물로 정말 기쁘게 해 줘야지.
엄마의 생일날, 수업을 마치고 시장통으로 갔다. 서로 다른 2장의 지폐로 무거워진 바지 주머니를 움켜쥐고 무엇을 살지 이리저리 둘러봤다. 그러다 내 발걸음이 멈췄다. 장난감 가게였다. TV에서 방영 중인 3단 로봇이 입구에 놓여 있었다. 가격은 5천 원. 생각해보니 내가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 엄마도 옆에서 기뻐했던 것 같았다. 난 바로 장난감을 샀다.
다시 주변을 걸었다. 여성용 옷가게가 보였다. 내가 입구에서 어슬렁거리자 주인아줌마가 나와 무릎을 굽혀 뭘 살지 물어봤다. 엄마의 옷이요. 아줌마는 기특하다며 옷을 하나하나 추천해줬다. 화려한 옷들이 내 눈앞을 지나쳐 갔다. 그런데 대부분 옷들이 1만 원이 넘어갔다. 아줌마에게 6천 원짜리 옷은 없냐고 물었다. 아줌마는 있다며 한쪽 구석 뭉텅이에서 옷을 하나 꺼내 보여줬다. 단추조차 없는 허름한 옷이 아줌마 손에 맞춰 너덜너덜거렸다. 난 어쩔 수 없이 옷가게를 나왔다.
마지막으로 빵집을 들렀다. 빵집에 들어가자 고소하고 달콤한 냄새가 날 홀리는 것 같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초콜릿 크림빵도 보였다. 우리 집은 항상 생일 때 고구마 케이크를 먹어서 고구마 케이크 알아봤다. 가장 작은 크기가 6천 원이었다. 아, 이걸 사면 초콜릿 크림빵을 못 먹는데. 난 고민에 빠졌다. 그러다 생각해보니 엄마는 항상 내게 초콜릿 크림빵을 사줬었다. 엄마도 초콜릿 크림빵을 좋아하니까 사줬겠지. 난 천 원짜리 초콜릿 크림빵을 6개 샀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순식간에 2개를 먹어 치웠다.
집에 돌아와 엄마 몰래 선물을 숨겼다. 이걸 보면 엄마가 기뻐할 거란 상상에 취해 게임도 하지 않았다. 퇴근한 아빠가 엄마에게 생일 축하한다며 케이크를 내밀었다. 고구마 케이크였다. 생일 축하를 부르고 엄마는 여전히 산타를 믿는 아이처럼 소원을 빌었다. 그리고 후. 촛불을 껐다. 다시 불이 밝혀지자 난 방으로 달려가 엄마의 생일 선물을 가져왔다. 선물을 펼쳤다. 장난감과 초콜릿 크림빵 4개이 바닥에 펼쳐졌다. 그걸 보는 순간 깨달았다. 내가 사 온 이것들은 엄마의 생일선물이 아니라 오직 나를 위한 것들이었다. 엄마는 살면서 처음으로 자식이 사 온 선물에 고마워했다. 그리고 그날 처음으로 안 사실이 있었다. 엄마는 초콜릿 알레르기가 있었다.
그날 이후로 엄마는 집에 놀러 온 아줌마들에게 내가 준 선물을 자랑했다. 그럴 때마다 난 방에서 웃지도 울지도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죄책감이 나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전용호 『나대지 마라 슬픔아』 저자, 지금은 드라마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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