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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남남>, 남이지만 남이 아닌 남다른 모녀
웹툰 <남남>
정영롱 작가가 자신의 삶을 통해 공들여 채집해왔을 입체적인 캐릭터와 디테일한 생활감은 <남남>의 가장 큰 매력이다. (2020.07.20)
‘나만 알고 싶은 밴드 혁오’라는 말이 있다. 나는 좋아하지만, 남들도 다 좋아해서 유명해지는 건 왠지 서운하다는 양가적 감정이 담긴 표현이다. 그러나 진짜로 나만 알면 창작자는 뭘 먹고 사나. 그래서 나는 남들도 이미 알 것 같지만, 행여나 몰라서 못 좋아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을까 아까운 작품을 만나면 호객을 열심히 한다. 여성 작가의 여성 이야기라면 더욱 그렇다. 조회수 더 올랐으면, 작가님 돈 많이 버셨으면, 2차 저작물 판권도 팔렸으면!
‘이거 안 본 사람 없게 해 주세요.’를 모토로 하는 내 영업 전선에서 요즘 첫손에 꼽는 작품은 포털 사이트 다음에서 연재 중인 정영롱 작가의 웹툰 <남남>이다. 얼마 전 한 드라마 작가님을 만났을 때도 나는 마치 평양냉면을 자기가 발명하기라도 한 양 의기양양하게 구는 미식가처럼 으쓱거리며 <남남>을 추천했다. 정말 새롭고 독특한 모녀 이야기라는 말에 그 자리에서 작품을 검색하고 클릭한 작가님은 약간 당황한 듯 말했다. “성인…작품이네요?”
아… 맞다. <남남> 1화는 무더운 여름날 밤 집에 돌아온 딸 진희가 거실에서 자위하는 엄마를 목격하며 시작된다. (그래서 성인 등급으로 분류되었다.) 부모와 같이 TV를 보다 키스 신만 나와도 어색해서 물 뜨러 가는 게 대부분의 한국 가정 분위기인데, 40대 엄마의 성생활을 봐 버린 20대 딸이라니 이것은 도대체 어디로 가는 이야기인가! 여기서 잠깐, <남남>이 20화까지 연재된 이후 정영롱 작가가 특별편에서 공개한 연재 초반의 비화를 들어보자. 비교적 평화로운 분위기의 프롤로그가 공개된 다음, 작가의 엄마는 딸과 함께 다니는 교회 사람들에게 딸이 웹툰 작가임을 자랑한다. “저번 작업처럼 사람 냄새나는 순수한 만화로 가는 건가?” (<남남>이 사람 냄새 나는 작품인 건 맞다) “약간 짱구 같은 느낌인가?” (<크레용 신짱>도 성인용 만화이긴 했다) 등 교인들의 훈훈한 관심 속에 작가는 차마 뭐라 말을 잇지 못하고, 다음 주 1화가 공개된 후 교회에 갔을 땐 “아무도 만화 얘기를 하지 않았다.” 심지어 엄마조차도……. 하지만 ‘집사님’에게서 카톡이 온다. “이런 소재를 웹툰으로 펼쳐낼 수가 있는 그 자체가. 당신은 이미 최고의 작가임 ^^”
아마도 이처럼 정영롱 작가가 자신의 삶을 통해 공들여 채집해왔을 입체적인 캐릭터와 디테일한 생활감은 <남남>의 가장 큰 매력이다. 진희의 엄마는 고등학교 때 딸을 낳고 혼자서 키워왔지만, 이 작품은 ‘싱글맘’으로서 엄마의 고충이나 희생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대책 없는 엄마와 쿨한 딸의 동거 이야기”라는 로그라인 대로 서로 다른 두 여성의 삶과, 비혼여성인 미정 이모나 동성애자인 진수 등 다양한 주변인들의 일상을 함께 담아낸다. 남성 ‘가장’ 없이 스스로 벌고 서로 의지하며 살아온 모녀의 노동과 일터는 이야기의 중요한 축을 형성한다. 작은 동네 병원에서 물리치료사로 일하는 엄마는 욕심 많은 원장과 감정노동까지 기대하는 환자들 사이에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출근 전부터 와서 기다리는 나이 든 환자들이 지긋지긋하다고 느낄 무렵, 엄마에게 치료받던 할머니가 말한다. “미안혀. 이렇게 다 늙어빠져서 맨날 안마받는다고 오니까 귀찮지? 가끔 누가 만져주지 않으면 사는 것 같지가 않아.” 노인의 외로움과 나의 속 좁음을 동시에 마주하는 순간, 어퍼컷 같은 대사가 훅 들어온다, “근데 말이야. 우리 선생님은 아프면 누가 치료해주나?”
가족, 연인, 친구, 동료 등 다양한 관계에 대한 작가의 통찰력은 진희가 얼굴도 몰랐던 아버지와 마주하며 더욱 빛을 발한다. 파격과 일상성을 기가 막히게 배합해, ‘막장 드라마’ 같을 수 있는 설정을 경쾌하게 통과하며 시트콤 같은 재미를 주는 에피소드 사이에서 가슴을 치게 되는 순간은 또 예상치 못하게 찾아온다. “나는 내가 남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엄마에겐 남이 아니란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던 것 같다.”
<남남>은 최근 시즌 1을 마치고 휴재에 들어갔다. 아직 안 봤다면 정주행하기에 최적기라는 얘기다. 시즌 1 마지막 화, ‘이름’ 편은 혈연을 떠나 애정을 주고받으며 서로에게 새로운 가족이 되어 온 여성들의 애틋하고 단단한 관계를 보여준다는 면에서 정세랑 작가의 『시선으로부터,』를 떠올리게도 한다. 정영롱 작가는 “항상 ‘이게 돼?’와 ‘왜 안돼?’의 사이에서 재밌는 이야기 그려보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말한다. 곱씹을수록 엄청난 포부를 이렇게 태연하게 드러내는 작가라니, 정말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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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태그: 웹툰 남남, 모녀, 정영롱 작가, 시선으로부터
대중문화 웹 매거진 <매거진t>, <텐아시아>, <아이즈>에서 기자로 활동했다. 『괜찮지 않습니다』와 『엄마는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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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무엇보다 20세기를 살아낸 여자들에게 바치는 21세기의 사랑이다.” 한국문학이 당도한 올곧은 따스함, 정세랑 신작 장편소설 독창적인 목소리와 세계관으로 구축한 SF소설부터 우리 시대의 현실에 단단히 발 딛고 나아가는 이야기들까지, 폭넓은 작품 세계로 우리에게 늘 새로운 놀라움을 선사했던 정세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