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에세이스트] 7월 우수상 - 나를 위로해 준 온묵밥
나를 위로했던 음식
엄마가 해 온 음식에는 도토리묵과 육수가 있었다. 도토리묵은 산에서 친정아빠가 여름과 가을 내내 동네 산에 올라 도토리를 주워와 만든 것으로 내가 제일 좋아했다. (2020.07.02)
'문 앞에 반찬 갖다 놨다. 유산도 아이 낳은 것과 똑같이 몸조리해야 돼. 미역국은 사부인이 끓여주신다고 하니 끓여 오지 않았다. 몸조리 잘하고 너에게 뱃속의 아이가 중요한 것처럼, 나에게는 둘째딸이 너무 소중하다. 잘 먹고 몸조리 잘해라'
그날 저녁 내내 울고 있는데 문자가 왔다. 엄마가 보낸 문자에 문을 열어보니 문 앞에는 몇 겹이나 싼 보자기에 반찬통이 몇 개 들어 있었다. 유산한 작은딸에게 따듯한 밥을 차려주고 싶은 마음을 대신해 반찬을 준비했을 엄마 마음이 느껴져 눈물이 나왔다. 시댁 식구들이 있으니 들어오지도 않고 문 앞에 반찬통을 두고 돌아서는 엄마가 보이는 듯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2년을 연애하고 결혼을 했다. 얼마 뒤 아이를 임신한 것을 알았을 때는 모든 축복이 우리 부부에게 쏟아진 것처럼 행복했다. 그러나 몇 주 뒤 유산이 되었다. 처음이라 충격이 커서 힘들어했을 때 주위에서 그럴 수 있다며 또 아이는 생길 것이라며 위로해주었다. 다시 아이를 가졌다. 이번에는 4개월째 병원을 갔을 때 아이가 뱃속에서 숨을 쉬지 않는다는 얘길 들었다.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너무 슬펐고 나에게 자꾸 이런 일이 왜 일어나는지 계속 눈물만 흘렸다. 시어머님과 함께 살았는데 내 잘못인 것만 같아 마음 편히 쉴 수도 먹을 수도 없었다.
그때 친정엄마와는 전화 통화만 했다. 마음이야 딸 옆에 와서 위로해주고 싶고 밥도 해주고 싶다고 했지만 시어머님과 함께 사니 그렇게도 못하는 걸 안타까웠을 것이다. 그리고 딸이 좋아하는 음식뿐만 아니라 시어머님과 시동생이 좋아하는 반찬까지 준비해 온 엄마의 마음이 어땠을지. 아마 울지 않았을까.
엄마가 해 온 음식에는 도토리묵과 육수가 있었다. 도토리묵은 산에서 친정 아빠가 여름과 가을 내내 동네 산에 올라 도토리를 주워와 만든 것으로 내가 제일 좋아했다. 도토리를 산에서 주워와 돗자리를 깔아 말리며 썩은 도토리를 골라내고, 겉껍질을 까는 작업을 모두 손으로 해야 한다. 잘 말린 도토리 가루에 적당량의 물을 붓고, 뽀글뽀글 한두 방울 기포가 올라올 때까지 주걱으로 계속 저어야 도토리묵이 완성된다.
묵이 식는 동안 엄마는 육수를 준비했겠지. 난 더위를 많이 타면서도 뜨거운 한 여름날도 온육수에 밥을 말아 먹는 온 묵밥을 좋아했다. 아마 몇 번의 유산으로 힘들어 밥을 먹지 않을 나를 떠올렸을 것이다. 다시 멸치와 다시마, 커다란 무 한 덩어리를 넣고 은근한 불에 오래 끓여 진한 육수를 내고, 국간장과 파, 마늘을 약간 넣어 간을 맞춰야 한다. 엄마가 싸준 반찬통에는 고명으로 얹을 양념된 김치와 김가루도 있었는데 시어머님은 하나하나 열어보시고는 “사부인이 참 꼼꼼하게 준비해 주셨네.” 했었다. 또 보온통에는 뜨끈한 멸치 육수가 담겨 있을 것이라고 모두가 눈치챌 수 있었다.
그날 밥상에는 어머님이 끓인 미역국과 엄마가 주고 간 몇 가지의 음식이 올라왔다. 먼저 온묵밥 국물을 떠먹었다. 뜨거운 멸치 육수가 들어가니 온몸에 온기가 퍼지면서 슬픔을 위로 해 주는 듯했다. 하얀 쌀밥을 묵과 함께 비벼 밥과 도토리묵과 김치와 김가루가 조금씩 들어간, 수북한 한 숟가락이 눈물과 고통을 위로해 주었다. 이런 사랑이 가득한 음식을 먹으니 다시 힘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뒤 참 어렵게도 아이를 낳았다. 몇 번의 유산과 아이의 수술 등은 부모가 겪고 감당해야 할 몫이었지만 힘들었다. 그때마다 엄마가 문밖에 놓고 간 온묵밥을 생각한다. 따듯한 멸치육수에 손수 쑨 도토리묵과 밥을 말아 한 숟가락 입에 넣었을 때 느끼던 위로 가득한 음식 덕분에 견딜 수 있었다.
오래전 친정 부모님은 돌아가셨다. 건강한 아이를 낳은 둘째딸을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바라보던 눈길이 마지막으로 가슴 깊이 새겨져 있다. 주말에는 그동안 차마 해먹을 수 없었던 온묵밥을 해 먹어야겠다.
박윤희 올 여름 무척 덥다는 일기예보에 손 선풍기 장만하고, 시원한 카페를 알아두었습니다. 무더운 날, 어느 시원한 카페 구석에서 책 읽는 나를 많이 보고 싶습니다. 요새 글쓰기의 즐거움을 알아가는 중입니다.
//www.86chu.com/campaign/00_corp/2020/0408Essay.aspx?Ccode=000_001
추천기사
관련태그: 나도 에세이스트, 7월 우수상, 온묵밥, 박윤희
올 여름 무척 덥다는 일기예보에 손 선풍기 장만하고, 시원한 카페를 알아두었습니다. 무더운 날, 어느 시원한 카페 구석에서 책 읽는 나를 많이 보고 싶습니다. 요새 글쓰기의 즐거움을 알아가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