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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빨간사춘기, 아늑하고 편안한 청취감
볼빨간사춘기 <사춘기집 II 꽃 본 나비>
봄날의 공기를 노래하며 쌓아온 볼빨간사춘기의 긴 역사를 사랑해 주는 팬들이 있는 이상, 안지영의 음색과 풋풋한 가사 노선을 성실히 밀어붙여온 볼빨간사춘기의 정공법은 분명 옳은 방법이다.(2020. 06. 24)
기타 우지윤의 탈퇴가 기타 사운드의 부재로 직결되지 않듯, 안지영 솔로 체제로의 변화 또한 음악의 큰 변화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사춘기집 I 꽃기운>의 직계 후속작 <사춘기집 II 꽃 본 나비>는 그간 유지해온 볼빨간사춘기의 정서를 충실히 수행한다. 다시 말해 초기작부터 꾸준히 유지해온 아기자기한 노랫말, 그리고 청춘과 풋사랑 주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볼빨간사춘기의 스타일이 「우주를 줄게」나 「좋다고 말해」, 「썸탈거야」 등 통통 튀고 사랑스러운 분위기의 ‘볼 빨간’ 면과, 「나만 안되는 연애」, 「나의 사춘기에게」와 같이 성장통을 그리는 ‘사춘기’ 면으로 구분된다 가정하면 사춘기집 시리즈는 이름부터 후자에 가깝다. 지금까지의 음반이 두 스타일을 섞는 방식으로 다양한 매력을 풀어냈다면 현작은 그중에서 감성적인 결에 집중하는 셈이다.
가벼운 어쿠스틱과 절절한 발라드, 그리고 단정한 사운드로만 구성된 앨범은 앞서 말한 음반의 목적에서 이해되는 대목이다. 다만, 전작에 비해 캐치한 멜로디 라인이나 귀에 한 번에 들어오는 지점이 적다. 다시 한번 익숙한 대중성을 택했으나 승부수 없는 무난한 편곡 때문에 마치 위축된, 혹은 자신감이 떨어진 듯한 인상으로 먼저 다가오는 것이다. 이는 확실한 선율을 가진 「나만, 봄」 같은 곡이 배치되어 듣는 맛을 구비한 <사춘기집 I 꽃기운>과 비교해보면 확연히 드러나는 차이다.
「빈칸을 채워주세요」와 타이틀곡 「품」은 산뜻한 시작으로 올려놓은 기대감과 다르게 고조에서 절정으로 넘어가는 단계가 이르고, 하이라이트로 이어지는 구간에서는 곡이 가진 장점을 확실하게 피력하지 못하는 등의 다소 의기소침한 모습을 보인다. 분명 자주 사용해온 기법임에도 조금 어색한 이유다. 오히려 볼빨간사춘기의 평소 작풍과 조금 달라도, 긴장을 빼고 평탄함으로 일관한 「카운슬링」과 「민들레」가 덤덤하게 전술한 목적을 충족하면서도 아늑하고 편안한 청취감을 준다.
친한 동료의 탈퇴와 음악이 점점 고착화된다는 일각의 비판, 이를 딛고 창작물을 내야 한다는 고뇌 속에서 <Red Planet>만큼의 충격을 재구현하기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전세를 뒤집을 만큼의 파격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은 아니다. 지금 이 순간뿐만이 아니라 소소한 봄날의 공기를 노래하며 쌓아온 볼빨간사춘기의 긴 역사를 사랑해 주는 팬들이 있는 이상, 안지영의 음색과 풋풋한 가사 노선을 성실히 밀어붙여온 볼빨간사춘기의 정공법은 분명 옳은 방법이다. 그렇다면 지금 필요한 건 감각을 되찾고 번뜩임을 구비하기 위한 휴식과 재정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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