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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에세이스트] 5월 우수상 - 엄마, 바질페스토는 말이야

부모님께 꼭 전하고 싶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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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처음 맛보는 걸 해주고 싶었다. 밥 말고 김치 말고 된장찌개 말고. 먼 이국의 이름이 담긴 음식을. (2020.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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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가 매달 독자분들의 이야기를 공모하여 ‘에세이스트’가 될 기회를 드립니다. 대상 당선작은 『월간 채널예스』, 우수상 당선작은 웹진 <채널예스>에 게재됩니다. ‘나도, 에세이스트’ 공모전은 매월 다른 주제로 진행됩니다. 2020년 5월호 주제는 ‘부모님께 꼭 전하고 싶은 말’입니다.

 

 

엄마가 다녀가셨다. 서울에 계시는 이모가 입원을 하셨는데, 이모 병문안을 오시면서 나의 집에서 며칠 묵기로 하신 것. 때마침 출근을 안 하고 있어서 꽤 많은 시간을 엄마와 보낼 수 있었다. 엄마는 회사에 출근하지 않는 나를 불안해하시면서도, 평일 낮에 딸과 함께 있으니 너 학교 들어가기 전 생각이 난다며 조금은 즐거우셨던 것 같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이란 대체 얼마나 옛날인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거치고 회사도 몇 번이나 바꾼 딸은 이제 그 시절이 아득하다.


엄마와 이렇게 오랜 시간을 보낸 건 엄마의 말처럼 오랜만이었다. 고향을 떠난 후, 사흘 이상을 집에서 묵은 일이 없다. 휴가를 내더라도 고향이 아닌 도시를 향했다. 왜냐면 집은, 엄마는 늘 그곳에 있기 때문에. 이번에 가지 않더라도 다음에 갈 수 있을 거라 믿기 때문에. 이제 그것을 자신할 수 없다는 걸 잘 안다. 그럼에도 어쩐지 엄마 앞에선 마냥 떼쓰고 싶고, 철없고 싶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나를, 무조건적인 애정으로 바라봐주는 건 이제 엄마밖에 없으니까. 엄마가 나를 낳았던 나이보다 훨씬 더 많은 나이지만 여전히 어린애이고 싶으니까.


엄마는 짧은 며칠을 보내는데도 음식을 바리바리 싸 오셨다. 김치와 콩자반, 된장, 멸치가루, 미숫가루 같은 것들. 이제 입맛이 달라진 딸은, 머리가 굵어진 딸은 그 음식들 앞에서 고마움보다 슬픔이 앞선다. 나는 너무 커버렸는데 엄마는 점점 작아져서. 나는 엄마를 먹고 자랐는데, 엄마는 나 때문에 늙어가고 있어서
엄마와 긴 시간을 보내는 건, 몰랐던 엄마의 모습을 발견하는 일이었다. 엄마는 미술관을 좋아했다. 유명한 작가들의 이름은 하나도 모르지만, 작품 앞에서 한없이 감동하는 법을 아는 사람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남산타워에서는, TV에서만 보던 것을 본인이 직접 타고 있다는 것에 감격했다. 나는 순간순간, 때때로 생각했다. 엄마는 우리 때문에 얼마나 많은 것을 놓치고 산 걸까, 얼마나 많은 처음을 겪지 못한 걸까,에 대해.


나의 집에서 엄마에게 밥을 해드렸다. 엄마가 처음 맛보는 걸 해주고 싶었다. 밥 말고 김치 말고 된장찌개 말고. 먼 이국의 이름이 담긴 음식을. 엄마가 처음 발음해보는 음식을. 앞으로 또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게 되길 바라며. 엄마에게 처음이 더 많아지길 바라며.


끓는 물에 소금과 올리브오일을 넣고 파스타 면을 삶았다. 7분 정도 익히는 게 내 취향인데, 엄마에겐 낯설 수 있으니 조금 더 시간을 보냈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해동한 새우를 볶았다. 마늘을 편으로 넉넉하게 썰어 넣었다. 후추와 소금으로 간을 하고, 청양고추도 하나 썰어서 같이 볶았다.


익힌 파스타 면을 프라이팬에 올려 새우와 잘 섞는다. 면수를 조금 부어 자작하게 만들고 한 번 더 볶아낸다. 그리고 며칠 전에 산 바질페스토를 꺼냈다. 엄마에게, 깻잎 같은 잎채소를 빻아서 기름에 담은 거라고 말씀드렸다. 엄마는 숟가락으로 조금 퍼서 맛을 보더니 외국 같은 맛이네, 라고 하신다. 외국 같은 맛이 무엇이냐 물으니, 한국에서는 먹어보지 못한 맛이라 그렇게 말했다고. 아, 정답이네. 바질도 페스토도 한국에서는 흔하지 않았지. 지금이야 쉽게 구할 수도 있고, 맘만 먹으면 직접 만들어서도 먹지만 엄마의 젊은 시절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것.


문득 엄마에게 묻는다. 엄마, 엄마는 다시 젊어지고 싶어? 2020년의 엄마가 스무 살이거나 서른 살이면 좋겠어? 엄마는 답한다. 글쎄, 잘 모르겠어. 2020년의 나는 예순넷인데, 지금이 좋은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아. 하지만 우리는 선택할 수 없는 것을 선택할 수 없잖아. 그러니 지금에 만족하면서 사는 게 답일 것 같아, 라고. 바질페스토를 양껏 넣어 파스타 면에 섞는다. 동그랗고 깊은 접시에 새우바질페스토파스타를 담아낸다.


테이블 양 끝에 접시를 놓고, 그 앞에 앉는다. 엄마가 면을 집어 입으로 넣는다. 맛이 어때? 묻는다. 향긋하고 고소한 외국 맛,이라고 엄마가 답한다. 엄마와 함께 새우바질페스토파스타를 먹었다. 엄마에겐 첫 파스타였다. 엄마의 어떤 처음을 함께 했다는 것이 기뻤다. 엄마도 기뻤을까.


엄마는 집에 돌아가 바질페스토,라는 이름을 발음해보았다고 했다. 낯선 외국어에서 딸의 향기가 났다고 했다. 이제는 외국의 맛이 아니라 딸이 해주는 집밥의 맛이 느껴진다고. 엄마, 엄마가 있어서 나는 그 외국 맛이 뭔지 알 수 있었어. 엄마 덕분에 외국에 나가서 직접 먹어보기도 했어. 엄마, 바질페스토는 말이야. 엄마에게도 그런 걸 선물하고 싶은 내 마음이야. 그러니 오래오래 내 곁에 있어 줘. 때로는 바질을 키워서 페스토를 만들기도 하면서. 또 다른 새로운 이름을 입술에 담기도 하면서 말이야.


제선영 새벽에 출근하고 오후에 퇴근하는 직장인. 새벽의 기쁨과 오후의 즐거움, 그 사이의 감정들을 글로 담아내고 싶은 사람. 

 

 

* 나도, 에세이스트 공모전 페이지
//www.86chu.com/campaign/00_corp/2020/0408Essay.aspx?Ccode=000_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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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제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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