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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진정한 사과를 ‘본 적’이 없답니다
『지금 시작하는 생각 인문학』1편 관찰이란 무엇일까
사과를 제대로 보려면 애정을 가지고, 만져보고, 베어도 보고, 물어도 보고, 그늘과 스민 햇볕도 생각해봐야 하는 것처럼 관찰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모든 감각을 집중시켜 대상에 대한 정보를 모으는 것입니다. (2020.04.27)
“그는 아이들이 감각을 다루고 충족하고 싶은 욕구가 커서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것에 대해 자주 이야기했다. 그는 바닷가 하늘을 끊임없이 바라보며 별들의 움직임, 구름, 빛을 관찰하고 그리는 것을 즐겼다. 돌멩이, 꽃, 모든 종류의 딱정벌레를 수집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늘어놓았다. 인간과 동물에 대해 경의를 표했고, 백사장에 앉아 조개들을 찾았다. …그는 배회하며 다른 나라의 바다, 공기, 낯선 별들, 무명의 동식물, 그리고 사람들을 눈여겨보았다. …그는 들었고, 보았으며, 만졌고, 동시에 생각했다. 낯선 것들을 관계 지을 수 있어 즐거웠다. 그에게 별들은 곧 인간이었고, 인간은 곧 별이었으며, 돌멩이는 동물, 구름은 식물이었다.”
- 노발리스 Novalis
“모든 지식은 관찰에서부터 시작한다.” 위대한 인물들이 어떻게 창의적으로 생각했는지를 다룬 책 『생각의 탄생』 속 첫 번째 생각도구의 첫 문장입니다. 저 역시 이 문장을 첫 문장으로 적은 까닭은 관찰이 생각의 도구로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또 그렇게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제가 십수 년간의 교육을 받는 동안 누구도 제대로 알려준 기억이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우리의 교육 현장에서는 관찰과 지식의 연관성을 진지하게 다루지 않습니다.
흔히 관찰이라고 하면 매우 쉽고 익숙한 행위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깊숙이 들여다보면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많은 창의적인 인물들조차도 자신이 잘 보지 못한다고 여겼고 관찰력이 뛰어난 사람이 되기를 열망했죠. 빈센트 반 고흐는 “나의 목표는 써 내려가듯 쉽게 뭔가를 그리는 것이었고, 자신이 본 것을 나중에 마음대로 재현할 수 있도록 잘 보는 능력을 갖는 것이었다.”라고 말했습니다.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의 갈망과 지리한 훈련의 과정을 엿볼 수 있습니다(훗날 반 고흐는 낮에 살펴본 풍경이나 대상을 집에 돌아와 한번에 그려낼 수 있게 되었으니 결국 그의 열망이 이뤄진 셈입니다).
미국의 과학자이자 발명가인 그레이엄 벨은 말년 어느 강단에서 “누구나 평생 눈을 감은 채 살고 있어 우리 주변과 발밑에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것들이 널려 있다.”라며 제대로 보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표현했습니다. 이렇듯 관찰이 생각만큼 쉽지 않은 과정이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창의적인 삶에 꼭 필요한 능력이라는 점도 깨달아야겠죠. 창의적인 사람은 본래 관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스스로 잘 보지 못하는 사람으로 치부하기도 하지만, 그들이 일상에서 최고의 아이디어를 찾아내는 뛰어난 관찰자라는 사실을 부정하기 힘듭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자신이 이룬 모든 창의적 업적의 비밀은 ‘사페르 베데레’saper vedere, 즉 ‘보는 법을 아는 것’knowing how to see에 있다고 한 것처럼 말이죠. 창의적인 문제 해결은 남들이 무심코 지나쳤던 현상이나 문제를 발견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아이디어의 단초는 남들이 보지 못한 정보를 모으고 수집하는 행위에서 비롯합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을 이끄는 핵심 기술이 바로 ‘관찰’입니다. 그만큼 관찰은 창의적인 삶의 출발점으로 삼기에 참 좋은 주제지요.
무언가를 ‘관찰한다’는 것
우리는 세상에 넘쳐나는 모든 자극과 정보를 다 볼 수도 없고, 또 그래서도 안 됩니다. 무엇보다 선택적으로 주의를 집중하는 대상 이외의 것은 인지할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해야 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자신의 일상이 특별하지 않다는 생각 때문에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 익숙함 속에 숨어 있는 새로움에 다시 집중해보는 것. 이것이 창의적 삶을 살아가기 위한 관찰의 시작입니다.
그렇다면 ‘관찰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를 보면 김용택 시인이 등장해 ‘사과를 본다’는 행위에 대해 설명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사과를 몇 번 보았나요? 천 번? 만 번? 백만 번? 아니요. 여러분은 지금까지 사과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진짜로 본 게 아니에요. 사과를 알고 싶어서 관심을 가지고, 대화하고 싶어서 만지고 싶어서 보는 것이 진짜 사과를 보는 것입니다. 사과의 그늘도 관찰하고 이리저리 만져도 보고, 뒤집어도 보고, 한입 베어 물어보기도 하고, 사과에 스민 햇볕도 상상해보고. 무엇이든 진짜로 보게 되면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것이 있어요. 삶에 물이 고이듯이…. ”
시인의 말처럼 우리는 사과 하나조차 제대로 본 적이 없을지 모릅니다. 관찰은 수동적으로 바라보는 행위가 아닙니다. 의도적이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일상에 관여하는 행위입니다. 따라서 사과를 제대로 보려면 애정을 가지고, 만져보고, 베어도 보고, 물어도 보고, 그늘과 스민 햇볕도 생각해봐야 하는 것처럼 관찰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모든 감각을 집중시켜 대상에 대한 정보를 모으는 것이지요. 즉 진정한 관찰은 관찰의 방법으로서의 오감, 관찰의 대상으로서의 일상, 관찰의 행위로서의 기록과 수집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가 포함되어야 합니다.
감각을 일깨우는 방법
창조적인 관찰자들을 보면 그들이 모든 종류의 감각 정보를 예민하게 활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헬렌 켈러의 일화 하나를 들려드릴게요. 그녀가 우연히 숲에 다녀온 사람에게 거기서 무엇을 보았는지 물었습니다. 그 사람이 “별것 없다.”고 대답하자 헬렌 켈러는 안타까워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떡갈나무 기둥을 만질 때와 자작나무 기둥을 만질 때의 느낌이 완전히 다르고, 나뭇잎은 오묘하게 균형이 잡혀 있고, 폭신하게 밟히는 낙엽과 새, 바람, 물소리까지 모든 게 엄청난 세계인데, 왜 별것 없다고 하는 거죠?”라고요. 손의 감각만으로도 세상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즐거움을 얻어내는 그녀는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특별하게 인식하지 않는 감각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알려주고 싶지 않았을까요.
앞서 말한 것처럼 관찰은 대상의 정보를 수집하는 과정입니다. 활용할 수 있는 모든 감각을 동원해서 대상을 관찰하면 더 새롭고 많은 정보를 끌어낼 수 있습니다. 강의를 해보니 눈으로 보는 데만 익숙해져 있는 사람을 다른 감각들에도 집중하게 만들려면 다소 강제적인 방법을 쓸 필요가 있더군요. 실제 강의에서 활용하던 활동을 하나 소개해보죠. 학생들을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시각 중 하나의 감각만을 사용할 수 있는 그룹으로 나누고 귤을 관찰하게 했습니다. 시각 이외의 감각을 맡은 학생들은 눈가리개를 하고 귤을 충분히 관찰한 뒤, 귤에 대한 정보와 느낌을 기록했습니다. 청각을 맡은 학생들은 귤을 튕겨보고 부위별로 긁거나 뜯어보고, 촉각을 맡은 학생들은 품어보고 쓰다듬어보고 손으로 구멍을 냈습니다. 당연히 청각을 통해 얻은 귤에 대한 정보와 시각이나 촉각을 통해 얻은 정보는 상당히 다릅니다. 이런 모든 감각을 통해 얻은 귤에 대한 ‘풍부한’ 정보가 합쳐져야 진정한 귤이 되는 것이지요. 남들이 활용하지 못한 감각을 사용해 관찰할수록 남들이 보지 못한 ‘눈에 덜 띄는 중요한 특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얻은 정보들이 곧 창의적인 아이디어의 근간이 됩니다.
관찰의 시작은 마음이다
이 글의 첫 문장을 기억하나요? “모든 지식은 관찰에서부터 시작한다.”였습니다. 저는 이 문장에 미국의 철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의 “경험은 내가 주목하기로 결정한 것에 달려 있다.”라는 말을 덧붙여봅니다. 두 문장을 연결해보면, 내가 삶에서 축적한 지식과 경험은 나 자신이 몰두해 관찰한 것들의 총합이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어디에 주의를 기울이고 무엇을 보는지가 지금의 나, 그리고 앞으로의 내 삶을 만든다는 뜻입니다.
관찰은 생각만큼 쉬운 과정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못 할 것도 없습니다. 드로잉 노트를 하나 장만해 자신이 관심을 갖는 대상을 그려보거나, 평소 잘 쓰지 않던 감각을 사용해 주변을 살펴보거나, 관심 있는 것들을 정성스레 모아보는 등의 노력들 말입니다. 우리가 의외로 주변과 자신의 관심 대상을 잘 보지 못한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 무엇에 관심을 두고 집중해야 하는지를 아는 것, 어린아이 같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익숙해 보이는 것을 외면하지 않고 그것이 품고 있는 아름다움에 몰두해보는 것, 그리고 몰두한 대상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잘 포착하고 담아두는 것. 이 모든 과정이 창의적인 삶을 이끄는 첫 번째 요소 관찰의 핵심입니다.
관찰하는 삶을 위한 다음의 아홉 가지 질문을 살펴봅시다.
● 나는 의외로 잘 보지 못한다는 점을 인식하는가?
● 나는 무엇에 관심을 두고 집중해야 하는지를 생각하는가?
● 나는 여러 감각을 사용해 주변을 살피려 하는가?
● 나는 평범해 보이는 것을 외면하지 않는가?
● 나는 일상을 낯설게 보려고 노력하는가?
● 나는 대상을 낯설게 보는 나만의 방법이 있는가?
● 나는 잘 보고 싶은 대상을 그림으로 그려보려 하는가?
● 나는 내가 관찰한 것을 잘 기록하고 수집하는가?
● 그래서, 나는 세상을 풍요롭게 느끼고 경험하는가?
어떤가요? 조금 더 진정한 관찰에 다가간 것 같나요? ‘나는 관찰하고 있는가.’ 훗날 이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 이화선
심리학을 전공하면서 만난 ‘창의성’의 세계에 깊이 매료되어 이 공부에 빠지게 됐다. 자신만의 생각을 세상에 내보이고, 독창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에게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진 ‘성장 욕구’라는 강력한 동기를 발견했다. 또한 일상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방법으로서 창의적 태도가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도 주목했다. 이후 15년 넘게 예술, 문학, 과학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 창조적 삶을 산 인물들의 사고 과정을 연구해왔으며, 창의성에 관한 학문적 고찰과 실제 삶에 적용하는 방법을 전하는 일을 하고 있다.
성균관대학교 석, 박사 졸업을 하고 창의적설계연구소(CREDITS), 한국예술종합학교, 성균관대학교 다산창의력센터에서 선임연구원으로,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창의적 관점과 사고, 영재 교육과 관련된 다양한 연구 프로젝트와 100여 회가 넘는 대학 및 기업체 특강을 해오고 있으며, 현재 성균관대학교 초빙교수로 10여 년간 창의성 교양 강의를 이어가고 있다. 이 강의는 10년 연속 인기 강의로 인정받고 있다.
지금 시작하는 생각 인문학
이화선 저 | 비즈니스북스
15년 넘게 창의성에 대해 연구해온 저자의 통찰과, 이를 바탕으로 10여 년간 수천 명에게 강의해온 생각수업의 핵심을 담아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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