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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에세이스트] 4월 우수작 - 올 봄에는 빵 치료에 전념하고 싶다

올 봄에 꼭 하고 싶은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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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1월 매일같이 들락거리던 집 근처의 단골 빵집이 문을 닫았다. 프랜차이즈 베이커리 건너편에서 당당하게 자태를 뽐내던 작은 빵집이었는데 아무래도 재정상 문제가 생긴 모양이다. (2020.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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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래쉬

 

 

채널예스가 매달 독자분들의 이야기를 공모하여 ‘에세이스트’가 될 기회를 드립니다. 대상 당선작은 『월간 채널예스』, 우수상 당선작은 웹진 <채널예스>에 게재됩니다. ‘나도, 에세이스트’ 공모전은 매월 다른 주제로 진행됩니다. 2020년 4월호 주제는 ‘올 봄에 꼭 하고 싶은 일’입니다.

 

 

작년 11월 매일같이 들락거리던 집 근처의 단골 빵집이 문을 닫았다. 프랜차이즈 베이커리 건너편에서 당당하게 자태를 뽐내던 작은 빵집이었는데 아무래도 재정상 문제가 생긴 모양이다. 그 빵집에는 프랜차이즈 베이커리에서는 팔지 않는 빵들이 있었다. 멜론빵, 얼 그레이 스콘, 앙버터. 빵 이름도 참 귀엽다. 나는 그중에서도 레몬 파운드케이크를 가장 좋아했다. 촉촉하고 새콤하고 달달한 레몬 파운드케이크는 나의 지친 하루를 위로해주었다. 나는 레몬 파운드케이크를 맛보고 난 뒤부터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참새가 되었다. 평일에는 퇴근하고 아무리 피곤해도 지친 몸을 이끌고 기어이 그 빵집에 가서 빵을 샀다. 주말에는 온종일 이불 속에서 뒹굴다가도 그 집 빵을 먹기 위해 기꺼이 몸을 일으켰다. 점점 밥 대신 빵을 먹는 날이 늘어났다. 나는 빵을 먹기 위해 돈을 버는 사람 같았다.

 

그렇게 좋아하던 빵집이 있었음에도 내 삶은 고통스러웠다. 결국 그 빵집이 문을 닫기 두 달 전 즈음 우울증 판정을 받았다. 사실 정확한 병명은 모른다. 퇴근길 길에서 엉엉 울다가 이대로는 정신을 놓을 것 같아서 그 길로 병원에 갔다. 대체 어디가 아픈 건지 물었지만 선생님은 병명을 알려주지 않았다. 이겨내려는 의지를 가지는 대신 ‘나 환자야’라는 말 뒤로 숨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병명을 알려주지는 않았지만 이런 증상이 시작된 건 아주 오래전이며 당장 약물치료를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고민 끝에 내 증상을 인터넷으로 검색해보았고 우울증, 공황장애, 불안장애를 겪고 있다고 추측하는 중이다.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였다. 결국 주된 원인이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 뒤로 여행을 다녀왔지만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사람들을 만나는 게 무서웠다. 지금은 대부분의 연락을 끊고 병원에 다니며 약도 먹고 상담도 받고 있다. 다행히도 점차 안정되고 있다.

 

내가 우울증을 겪기 전에는 그게 뭔지도 잘 몰랐다. 그런 사람들은 하루 종일 울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그랬다. 그런데 의외로 우울증의 주된 증상은 무기력증이다. 시체처럼 차갑도록 무기력하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먹는 것도 별로. TV도 보고 싶지 않다. 재미있는 것도 잘 못 느낀다. 어떤 느낌이냐면 마치 비 오는 길거리에서 주룩주룩 내리는 비를 맞으며 앉아있는 길고양이가 된 느낌이다. 비가 오면 차 밑에라도 들어가면 될 것을 후들후들 떨면서 멍하니 비를 맞고 있다. 도와달라고 깽깽거리지도 않는다. 소리라도 내면 누구라도 도와주러 올지도 모르는데. 그것도 싫다. 그냥 이러다 죽겠지 싶다. 진짜 죽겠다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삶의 의미가 느껴지는 것도 아니다.

 

가족들을 포함하여 아주 친한 친구 몇 명만 나의 상태를 알고 있다. 그들은 대체로 ‘힘내라. 하고 싶은 거 하면서 푹 쉬어라.’라고 이야기하는데 사실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힘을 내는 방법을 모르겠는데 힘을 내라고 하고, 하고 싶은 게 뭔지도 모르겠는데 해보라고 하니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진심 어린 응원의 말을 듣고도 벙벙하다. 그냥 알겠다고 대답했다. 내가 아끼는 사람에게 ‘전혀 도움이 안 되는데?’라고 되받아치며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다. 집에 있으면 맛있는 것도 많이 사다 준다. 그럴 때는 신나긴 신난다. 그런데 그것도 잠깐일 뿐 먹고 나면 또다시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있는 행동을 반복했다.

 

사람과 고양이와 말이 통한다고 치자. 길에서 힘이 빠진 고양이가 비를 맞고 있다면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방법은 세 가지다. 먼저 고양이에게 힘을 내서 집 안으로 들어가라고 응원하는 방법이 있다. ‘파이팅’을 외쳐봤자 고양이는 안 움직일 게 뻔하다. 두 번째, 내가 가지고 있는 우산을 고양이에게 씌워주는 방법도 있다. 당장 비는 피하겠지만 일시적인 방법이다. 내가 저 고양이라면 우산도 생겼으니 그 안에서 더 꼼짝하지 않을 거다. 세 번째 방법은 고양이를 들쳐 안고 집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가장 이상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이 역시도 큰 효과는 없을 것이다. 나라면 집에 가서 주는 밥 열심히 먹고 밖에서처럼 똑같이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 같다.

 

가장 좋은 방법은 고양이가 스스로 움직이도록 이끌어주는 것이다. 그리고는 스스로 비를 피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몸에 익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그래야 나중에 혼자서도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굳어버린 고양이처럼 무기력한 나에게 가장 힘이 되었던 말은 ‘그 빵집 빵 먹으러 갈까?’였다. 몸을 움직일만한 매혹적인 말이었다. 예전만큼 몸이 번쩍 움직여지지는 않지만 몸을 움직여볼 만한 솔깃한 제안이었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레몬 파운드케이크’가 떠오르면 스르르 이불 속에서 빠져나와 옷을 갈아입고 나갈 준비를 했다. 그런데 옷을 갈아입으면서도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고 말았다. SBS <TV 동물 농장>에서 길고양이를 구출할 때 참치 캔 같은 것으로 유인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먹는 것 하나에 이토록 행복해지는 단순한 사람이었나, 싶고. 이 사소한 방법이 정말 통한다는 게 신기했다.

 

그렇게 두 달 동안 나에게 ‘빵 치료’라는 아주 비전문적인 처방을 내렸다. 가족들도, 친구들도 그게 통한다는 걸 알고부터는 내게 빵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오늘은 멜론빵을 먹고 내일은 블루베리 식빵을 먹자.” 나를 어떻게든 도와주려는 그 말들이 눈물겹도록 고마웠다. 나중에는 혼자서도 그 집 빵을 먹으러 나갔다 왔다. 스스로 움직일 수 있게 된 것이다. 혼자 빵집에 다녀오는 그 십분 남짓한 시간이 좋았고, 진열대에서 나를 기다리는 빵들도 좋았다. 빵집에 다니다 보니 점점 용기가 생겼다. 밖에 나와도 괜찮구나, 조금 더 멀리 나갈 수 있겠구나, 새로운 사람도 만나볼 수 있겠구나 하는 막연한 설렘도 피어났다.
 
그러다 빵집 유리문에 붙은 ‘영업 종료’라는 글씨를 보던 날 나는 숨이 턱 막히고 말았다. 나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었다. ‘나는 이제 어쩌지? 너는 나의 희망이었는데.’ 괜히 나 때문인 것 같았다. 무기력하다는 이유로 더 자주 가지 못했던 것 같아 미안했다. 건너편 프랜차이즈 베이커리가 미웠다. 그렇게 빵집은 갑자기 사라졌고 빵집과 함께 생겼던 내 안의 의지도, 용기도 다시 사그라졌다. 석 달이 지난 지금 빵집은 어떠한 흔적도 찾아볼 수가 없다. 지금도 그 자리를 지날 때마다 마음이 쓰리다.

 

나는 아직도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무섭다. 그런데 무서우면서도 ‘빵 치료’가 내게 줬던 희망의 불씨를 다시 키워보고 싶다. 그러니 올봄에는 나를 먹구름 아래서 꺼내줄 새로운 ‘빵 치료’ 전문점을 꼭 찾고 싶다. 멈춰버린 나를 움직이게 하는 그런 빵집을 만나고 싶다. 다시 한번 빵 치료에 전념해본다면 지난번보다 조금 더 멀리 나가볼 용기가 생길지도 모르겠다.

 


김민정 올해 책을 출간하기 위해 글을 쓰고 있는 저자 지망생. 서울 지역 빵집 추천을 받고 있음.

 

 

* 나도, 에세이스트 공모전 페이지
//www.86chu.com/campaign/00_corp/2020/0408Essay.aspx?Ccode=000_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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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민정

올해 책을 출간하기 위해 글을 쓰고 있는 저자 지망생. 서울 지역 빵집 추천을 받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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