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에세이스트] 4월 대상 – 네 바퀴를 굴려보자

올 봄에 꼭 하고 싶은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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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봄, 내 목표는 운전이다. 무려 7년째 장롱에 고이 모셔둔 면허증을 이제는 꺼내 보려고 한다. (2020.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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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스플래쉬

 

 

채널예스가 매달 독자분들의 이야기를 공모하여 ‘에세이스트’가 될 기회를 드립니다. 대상 당선작은 『월간 채널예스』, 우수상 당선작은 웹진 <채널예스>에 게재됩니다. ‘나도, 에세이스트’ 공모전은 매월 다른 주제로 진행됩니다. 2020년 4월호 주제는 ‘올 봄에 꼭 하고 싶은 일’입니다.

 

 

올봄, 내 목표는 운전이다. 무려 7년째 장롱에 고이 모셔둔 면허증을 이제는 꺼내 보려고 한다. 사실 여태껏 운전을 못 해서 크게 불편한 점은 없었다. 대중교통이 잘 되어 있는 서울은 버스와 지하철로 웬만한 곳은 다 갈 수 있고, 내 생활 반경은 주로 집 근처라서 멀리 나갈 일도 몇 없었다. 물론 차로 가면 15분이면 닿을 거리를 대중교통을 타고 1시간이 걸려 가는 등의 소소한 수고는 있지만 이 정도는 내가 감내할 수 있는 불편함이었다. 무엇보다 남편이 운전을 하기 때문에 차를 타고 갈 일은 남편 쉬는 날을 기다렸다가 같이 가는 걸로 해결했다.


남편 눈에는 이런 내가 답답했나 보다. 며칠 전 그는 운전을 안 할 거면 면허는 뭣 하러 땄느냐고 물었다. 안 그래도 운전 학원을 다닐 때 큰돈을 써서 내심 찔리던 나는 면허증이 갖고 싶어서라고 대답했다. 넌 <은전 한 닢>도 모르냐고, 그냥 면허증이 갖고 싶은 사람도 있다고, 주민등록증만으로는 신분증이 모자라다고 우겼다. 운전에 대한 로망은 있었지만 겁이 많은 성격에다가 남편에게 부탁하면 되기 때문에 딱히 불편함이 없던 나와 달리 남편은 어느새 불만이 쌓인 것 같다.


급기야 남편은 저녁 밥상에서 아이에게 줄 고등어 살을 발라내며 그동안 섭섭했던 점을 쏟아냈다. 누구 부인은 술 마시면 운전해서 데리러 온다더라, 명절에 번갈아 운전하면 덜 피곤하잖니, 출근할 때 지하철역까지만 태워다주면 좀 좋겠니, 빗장 풀린 남편의 입에서 위시리스트가 빼곡히 나왔다. 나도 물러서지 않았다. 술 마셨으면 대리를 불러야지 자는 애기 두고 내가 어떻게 나가니, 명절에 기차 타기로 해놓고 네가 맘 바뀌어서 차를 끌고 간 거 아니니, 그리고 지난번에 내가 운전 연습 좀 하자고 했더니 네가 차 긁으면 안 된다고 가만히 있으라고 하지 않았느냐, 하며 맞섰다. 아이가 있어 서로 조근조근 말했지만 고등어가 뼈만 앙상히 남을 때까지 책임 공방은 끝나지 않았다.


저녁 밥상머리에서 습격을 당해 방어적으로 말하긴 했지만 사실 나도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크다. 운전이 힘든 걸 왜 모르겠는가. 몸이 안 좋은 날에도 일 때문에 한 시간 반 거리를 운전해서 가야 하는 남편을 보는 날에는 특히 더 그랬다. 내가 운전만 할 수 있으면 남편 태우고 가면 되는데,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게 너무 싫었다.


더는 미룰 수 없다고 생각해 쓸 일 없던 면허증을 꺼내서 지갑에 넣고 남편에게 처음으로 운전 연수를 받았다. 하지만 큰 난관이 있었으니, 남편의 운전 스킬은 본인만 아는 암묵지였다. 커브 길을 어떻게 돌아야 하냐는 내 물음에 그냥 차선을 따라서 핸들을 부드럽게 움직이면 된다고 하질 않나, 골목길에서 빠져나올 때 핸들을 얼마큼 움직여야 하냐는 질문에도 차가 나올 만큼만 돌리면 된다고 대답했다. 초보에겐 뜬구름 잡는 얘기였다. 핸들을 잡고 우왕좌왕하다가 결국 남편에게 운전석을 뺏기고 집으로 돌아왔다.


돈 아끼려고 남편에게 운전을 배우다가는 가정이 파탄 날 것 같아서 전문 강사의 도움을 받았다. 좁은 골목길은 사이드미러가 통과하면 핸들을 틀고, 그보다 더 좁은 골목길은 내 어깨가 지나갈 때 핸들을 돌리라고 했다. 이 외에도 선생님의 비법 전수는 계속됐다. 그래, 내가 찾던 게 이런 공식이었는데 이제야 길이 보였다.


조금씩 자신이 생겨서 남편이 차를 두고 간 날 지하주차장을 한 바퀴 돌았다. 운전석 시트를 내 몸에 맞춰 조정하고 아무도 없었지만 숄더 체크까지 착실히 하면서 나름 긴 주행을 마쳤다. 20분 남짓한 시간이었지만 긴장한 탓인지 마치 부산이라도 갔다 온 것처럼 팔다리가 뻐근했다. 지치지 말고 조금씩 연습해서 아기랑 꽃놀이도 가고, 부모님과 병원에 갈 때는 내 차로 모셔야지. 차를 뺏길 남편에게는 매일 출퇴근을 시켜주겠노라 공언했다. 남편은 못 미더운 눈치였지만 혹시라도 내 기분이 상할까 봐 기계처럼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올봄, 남편과 아이를 태우고 신나게 도로를 달리는 내가 되겠다.

 

 


김진경 진압할 진(鎭), 서울 경(京). 서울을 진압하진 못했지만 진출에는 성공한 지방 사람. 5년간 출판편집자로 일했다.

 

 

* 나도, 에세이스트 공모전 페이지
//www.86chu.com/campaign/00_corp/2020/0408Essay.aspx?Ccode=000_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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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진경

진압할 진(鎭), 서울 경(京). 서울을 진압하진 못했지만 진출에는 성공한 지방 사람. 5년간 출판편집자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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