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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구도 아닌> 여성의 삶이자 여성들의 서사

‘그 누구도 아닌’ 르네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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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구도 아닌’ 여성의 삶이면서, 나를 살게 한 건 ‘그 누구도 아닌’ 결국 나였다는 개별성이 담긴 여성들의 서사가 완결된 것 같지 않은 이 영화의 제목을 입체적으로 완성한다. (2020.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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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 누구도 아닌>의 한 장면

 

 

<그 누구도 아닌> 의 국내 제목은 완결형이 아니다. 채 완결짓지 않은 문장을 보완해야 하는 역할은 관객에게 돌아간다. 도대체 어떤 내용이기에. 영화의 발단은 르네(아델 에넬)라고 불리는 여인이 갑자기 집으로 들이닥친 경찰에게 체포되면서다. 그때 관객이 획득하는 정보는 르네의 실제 이름이 르네가 아니라는 것. 그렇다면 그녀는 누구인가, 그녀는 왜 체포되는 것인가, 등의 의문이 관객을 <그 누구도 아닌> 에 몰입하게 한다.

 

독특하게도 영화는 이후 전개에 있어 르네에게 관심이 없는 듯한 태도를 취한다. 르네보다 어려 보이는 산드라(아델 에그자르코풀로스)의 사연이 등장하고, 산드라보다 더 어린 카렌(솔린 리갓)의 에피소드가 이어지고, 아주 어린 키키(베가 쿠지테크)의 내용이 펼쳐진 후에야 다시 르네의 사정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각기 다른 인물이기는 해도 이들에게서 보이는 배경의 공통점이 하나의 인물에서 파생된, 혹은 여러 인물이 하나로 수렴되는 인상을 준다.

 

르네가 경찰에 체포된 건 사기 행각에 연루되어서다. 어떤 사기 행각? 밑바닥 삶을 살다 경마 도박장에 취업해 판돈을 빼돌린 산드라의 사연이 르네의 체포 건과 연결되는 듯하다. 그렇다면 산드라는 어떤 성장기를 보냈기에 카페를 전전하며 신문의 구인란을 살펴보는 삶에 내몰리게 된 걸까? 허구한 날 폭력을 행사하는 오빠가 무서워 가출을 밥 먹듯 하는 카렌의 에피소드가 산드라의 현재를 뒷받침하는 듯하다.

 

한 인물을 여러 명으로 분화하여 묘사하는 방식의 영화는 <그 누구도 아닌> 이전에 밥 딜런을 7명의 배우가 연기한 토드 헤인즈의 <아임 낫 데어>(2007)가 있었다. <아임 낫 데어>가 어느 하나의 틀에 규정되지 않는 한 개인의 입체적인 면모를 부각했다면 <그 누구도 아닌> 은 여자의 삶이면서 동시에 여자’들’의 삶일 수도 있는 개별성과 보편성을 포괄한다.

 

관련해,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의 게스트로 참여한 아르노 데 팔리에르 감독은 이렇게 얘기했다. “한 사람이라 해도 여러 가지 인생을 살게 된다. <그 누구도 아닌> 의 주인공 역시 다양한 이름을 부여받고, 그에 맞춰 다른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그 모든 삶은 그녀이면서 동시에 그 누구도 아니다.” 그래서 르네의 사기 행각은 실제적이기보다 은유의 설정에 더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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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 누구도 아닌> 포스터

 

 

르네가 소개되는 영화 초반, 교도소에서 당당하게 풀려나는 타라(젬마 아터튼)가 교차편집으로 등장한다. 곧이어 르네를 찾아가 못 받은 돈을 내놓으라고 협박하는 설정이 두 사람을 구분하는 듯하다. 하지만 다른 나라로 피하던 중 각성한 르네가 경찰서에 자수하러 가는 영화의 마지막과 연결하면 교차편집이 르네와 또 다른 르네를 하나의 인물로 묶어버린다.

 

르네를 필두로 산드라와 카렌과 키키, 그리고 타라는 남성 지배의 감옥에 갇혀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데 애를 먹는다. 성적으로 착취당하고, 범죄에 이용당하고, 일상의 폭력에 노출되고, 부모의 학대에 시달리고 등등 악조건하에서도 영화는 르네와 르네들이 그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저항하고 빠져나와 더 좋은 부모로, 성숙한 어른으로, 독립한 개인으로 성장할 가능성을 열어둔다.

 

각본으로 참여한 크리스텔 베르테바스의 자전적인 경험이 모티브가 된 <그 누구도 아닌> 은 나이별로 변화하는 다양한 이름을 가진 인물의 초상이 축적하여 한 명이 되고 다시 새로운 생명을 얻어 분화한다. ‘그 누구도 아닌’ 여성의 삶이면서, 나를 살게 한 건 ‘그 누구도 아닌’ 결국 나였다는 개별성이 담긴 여성들의 서사가 완결된 것 같지 않은 이 영화의 제목을 입체적으로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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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허남웅(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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