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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 북클러버] 정여울 “내면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에게 말 걸어 보세요”

헤르만 헤세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정여울 작가와 함께하는 북클러버 3기 두 번째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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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는 극단적으로 다른 두 사람을 보여주고 누구의 편도 들지 않아요. 인간에게는 나르치스의 지성과 절제, 골드문트의 자유와 사랑이 적절히 융합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죠. (2020. 0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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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이 열린 예스24 중고서점 홍대점

 

 

2월 3일 예스24 중고서점 홍대점에서는 정여울 작가의 북클러버 3기 모임이 진행됐다. 이날 정여울 작가와 참여자들이 함께 읽은 책은 헤르만 헤세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는 1930년 처음 출판된 헤르만 헤세의 작품으로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라는 인물이 내면의 갈등을 통해 자아를 찾는 여정을 그린 작품이다. 수도원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처음에는 둘 다 훌륭한 성직자, 지적인 수도사의 길을 꿈꾸지만, 나르치스는 골드문트가 자기 자신과는 다른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꿰뚫어 본다. 수도원 안에서 기도하고 지적인 것을 탐구하며 자아를 찾는 나르치스와는 달리 골드문트는 세상을 경험하고 사람들과 부딪히는 자유로운 생활을 통해서 진짜 자기 자신을 알 수 있는 사람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부인하고, 외면하려 했던 골드문트는 결국 수도원을 떠나 다양한 경험을 통해 예술가로 성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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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원 안에서도 군계일학처럼 외로운 존재였던 나르치스는 골드문트가 모든 면에서 자신과 상반된 존재인데도 그의 묘한 매력에 끌리게 돼요. 나르치스는 지성과 합리성, 학자와 성직자가 갖춰야 할 모든 걸 갖추고 있지만, 화사하고 관능적인 매력을 지닌 골드문트에 대한 동경이 있었죠.”


국내에서는지와 사랑』 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다가 이후 다양한 출판사 버전의『나르치스와 골드문트』 가 출간됐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의 관계


“헤세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에 자신의 모든 것이 들어있다고 말했어요. 그게 『유리알 유희』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유리알 유희』 는 너무 어려워서 몰입이 잘 안 되는 책이기도 하죠. 반면에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는 잘 읽히면서도 이 안에 『데미안』 도 있고, 『싯다르타』 도 있어요.”


헤세의 작품은  『데미안』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다. 이전에는 계속 집을 떠나는 방랑자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뤘는데, 그 안에 사상적인 단단함이 박혀 있지는 않았다.  『데미안』  이후의 작품들에는 무작정 떠나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 사람들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분명해졌다.


“예전엔 골드문트가 훨씬 매력적으로 느껴졌어요. 끊임없이 모험하고,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인물이잖아요. 다시 보니까 나르치스가 보이더라고요. 나르치스가 없었더라면 골드문트는 살인자에 그쳤을 거예요. 반면에 나르치스는 골드문트가 없었더라도 잘 살았겠지만, 마음에 엄청난 결핍이 있었을 거예요. ‘내가 만약 사랑이라는 걸 안다면 그건 바로 너 때문일 거’라고 나르치스가 말하잖아요. 그 말이 정말 아름답게 느껴졌어요.”


정여울 작가는 처음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를 읽을 때만 하더라도 둘의 관계를 ‘사랑’으로 해석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사랑을 고백하는 말을 할 때도 헤세의 작품에 흔히 등장하는 깊은 우정이거나 존중의 의미로만 바라보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성애자이기에 가졌던 편견이었던 것 같아요. 작품의 이해를 좁게 만들까 봐 경계했던 부분도 있었고요. 이 작품은 사랑, 우정이기도 하고 사랑과 우정을 뛰어넘은 인간에 대한 무한한 존중이기도 해요. 한 사람이 타인을 어디까지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해 준 작품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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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 작가

 

 

함께 읽고 생각을 나누다


참가자들 역시 두 사람의 관계에 관한 부분을 인상 깊게 읽었다. 한 참가자는 골드문트가 내면의 욕망을 깨닫게 되면서 두려워할 때 나르치스가 골드문트에게 해준 말을 낭독했다. 수도원을 떠나기 전 골드문트는 나르치스로부터 발견된 자아를 깨닫고 큰 혼란을 겪는다. 나르치스와의 몇 번의 대화를 통해 골드문트는 나르치스와 자신이 가야 할 길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이때 나르치스가 골드문트에게 “장차 너와 내가 무엇이 되든 가령 서로 다른 길을 걷는다 하더라도 네가 나를 진지하게 부르고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순간엔 결코 너를 향한 자물쇠를 채우지 않겠어. 결코.”라고 말한다. (민음사 번역본에는 110쪽에 “그리고 분명히 말하고 싶은 것은, 너나 내가 어떤 직책을 맡게 되든 간에, 또 우리의 형편이 어떻게 되든 간에, 네가 나를 진지하게 불러주고 필요로 하는 그런 순간에 내가 너에게 침묵하지는 않을 거야. 결단코 그런 일은 없을 거야”라고 번역돼 있다.)


“마음의 자물쇠를 채우지 않겠다는 표현이 너무 아름다웠고, 사랑의 간접적인 표현인 것 같았어요. 언제든지 힘들 때면 찾아갈 수 있고, 들어주는 안식처 같은 존재로 남아준다는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평소 저는 필요하다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타인을 필요로 한다는 게 존재 자체로 소중히 여기는 게 아니라 소유한다는 의미로 생각됐거든요. 그런데 이 대화에서는 필요하다는 단어가 꼭 필요했던 것 같아서 좋았습니다.”


또 다른 참가자는 『데미안』 의 싱클레어와 데미안,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의 두 사람의 관계가 현대 작가들의 작품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관계로 설정돼 있어 흥미롭게 느꼈다고 말했다. 정여울 작가는 이런 관계가 가능했던 것은 나르치스가 수도원에 살았다는 것과 골드문트가 방랑자라는 설정, 그리고 시대적 배경의 영향이 컸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헤세는 근대와 전근대의 경계가 되는 시기를 살았어요. 지금은 유럽도 6개월 이상 여행을 하면 추방당할 수 있지만 전근대사회에는 그런 게 없었죠. 어쩌면 나르치스가 그렇게 살 수 있었던 것도 그 시기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에요. 지금은 낯선 사람이 우리 집에서 잔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지만, 그때는 보통 농가에서는 헛간을 열어두고, 방랑자들을 재워주는 문화가 익숙했던 거예요. 국가와 자본의 힘이 모든 개인에게 영향을 미치기 전이었기 때문에 자유로운 부분이 있었을 거예요.”

 

 

사랑과 우정을 뛰어넘는 존중의 관계


극단적으로 다른 두 인물이 등장하지만, 헤세는 한쪽 편에서 이야기하지 않는다. 인간에게는 나르치스의 지성과 절제, 골드문트의 자유와 사랑이 모두 필요하다. 헤세는 둘의 관계를 통해 자신에게 부족한 면을 채워줄 수 있는 타인을 만났을 때 어떤 방식으로 서로를 존중하고 위할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에서는 니체의 영향도 보여요. 니체는 아폴론 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에 대해서도 많이 이야기했죠. 아폴론 적인 건 지성의 균형과 논리를 완벽하게 추구하는 것인데, 이 작품에서 그런 인물은 나르치스겠죠. 반면에 골드문트를 상징하는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주체가 안 되는 도취와 흥분, 열기 같은 것들을 상징해요.”


작품에서 아버지는 에고의 욕망을 좇는 인물로, 어머니는 셀프의 뿌리가 되는 인물로 등장하기도 한다. 당시만 해도 가난한 집안에서 출세를 하려면 성직자가 되어야 했다. 골드문트의 아버지는 골드문트를 성직자로 만들기 위해 교육했고, 골드문트에게 어머니의 존재를 완전히 은폐했다. 나르치스는 골드문트의 진정한 자아는 숨겨진 어머니의 공백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일깨워준다.


“골드문트를 억압하고 성직자의 길로 보내려 했던 아버지와 가족을 떠나 자유를 택한 어머니도 아폴론과 디오니소스의 세계가 갈등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어요. 융심리학에서는 아폴론적인 것을 아니무스, 디오니소스적인 것을 아니마라고 볼 수 있어요. 현대사회에서는 많은 사람이 아니무스를 개발하려고 하죠. 성공하기 위해서 자기 의견을 표명하고, 남성적인 저돌성을 미덕으로 여기죠. 반대로 아니마는 배려와 사랑, 치유의 에너지를 상징해요.”


용기와 저돌성, 무언가를 끝까지 해내는 끈기 같은 것들이 아니무스로 대표되는 장점이라면, 치유와 공감 능력은 아니마의 장점이다. 정여울 작가는 100~200년 전 소설을 읽다 보면 그때보다 지금이 훨씬 공감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낀다.


“쿨한 걸 멋있다고 생각하고, 표현하지 않는 걸 세련된 것으로 여겨지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다정다감한 사람이 더 많은 사람을 챙기고 배려하면서 진짜 리더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건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능력인데 우습게 보는 것 같아요. 헤세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다정다감해요. 차갑고 이지적인 척하는 나르치스조차 굉장히 다정다감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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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3. 인간관계와 의무감으로 괴로워하는 ‘에고’에게 ‘셀프’가 편지를 쓰는 시간을 가졌다.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나가는 관계


헤세는 골드문트를 통해 예술가의 극단적인 삶을 표현한다. 골드문트는 나르치스처럼 사색을 통해 깨닫는 사람이 아니다. 끝까지 경험하고 부딪히고 깨진 후에야 그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신의 따스함, 사랑의 뜨거움을 표현할 수 있는 진정한 예술가가 되고 싶다는 것을 깨닫는다.


“작품을 읽는 내내 골드문트의 방황이 언제 끝나나 지켜보게 되죠. 그런데 골드문트는 자신의 진정한 욕구를 깨닫고 난 후에도 방황을 멈추지 않아요. 이게 헤세 식의 유머인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골드문트는 인간적이고 사랑스럽게 느껴집니다. 끝까지 떠나지 못하는 나르치스지만, 늙어서 지쳐 쓰러져 죽을 때까지 길을 떠나는 골드문트예요. 관능을 향한 열망을 꺼뜨리지 않는 골드문트는 자신의 진정한 개성화의 씨앗을 발견하면서 마침내 완전히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 냅니다.”


골드문트는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 작품을 만들고, 나르치스는 골드문트의 작품을 바라보며 인생을 되돌아보게 된다. 그의 작품을 통해 찬탄과 경이로움을 느끼며, 그의 고통에 공감하고 감사하게 된다.


“예술작품을 보면서 나는 도저히 해낼 수 없는 걸 봤을 때 큰 감동이 밀려오면서, 진심으로 감사하게 돼요. 그런 걸 느꼈을 때 우리는 더 풍요로운 성장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자기 자신만으로도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나르치스 역시 골드문트를 통해 계속 성장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에요.”


내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을 완벽하게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서 질투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본받고 배우려고 한다는 점이 두 사람의 훌륭함이다. 마침내 둘은 자신만의 미션을 깨닫고 개성화의 씨앗을 발견하게 된다.


“오늘 돌아가셔서 여러분 자신에게도 질문해 보셨으면 좋겠어요. 여러분은 자신의 어떤 부분을 더 개성화시키고 싶은지, 자신의 내면에 있는 골드문트가 나르치스에게 편지를 쓴다고 생각하고, 써보셨으면 좋겠어요.”


북클러버 3기 정여울 작가와 함께하는 다음 모임은 3월 9일 예스24 홍대점에서 열린다.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 를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눌 예정이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헤르만 헤세 저 | 민음사
지성과 감성, 종교와 예술로 대립되는 세계에 속한 두 인물, 나르치스와 골드문트가 나눈 사랑과 우정, 이상과 갈등, 방황과 동경 등 인간의 성장기 체험을 아름답고 순순하게 그려낸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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