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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에세이스트] 2월 우수작 – 그날, 2019-7-21

두 번 만나고 싶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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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랑비가 한두 줄기 드문드문 내린다. 격주로 요양원에서 만나는 아버지는 언제나처럼 내게 감자탕이나 먹자고 말했다. (2020. 02.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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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스플래쉬

 

 

채널예스가 매달 독자분들의 이야기를 공모하여 ‘에세이스트’가 될 기회를 드립니다. 대상 당선작은 『월간 채널예스』, 우수상 당선작은 웹진 <채널예스>에 게재됩니다. ‘나도, 에세이스트’ 공모전은 매월 다른 주제로 진행됩니다. 2020년 2월호 주제는 ‘두 번 만나고 싶은 사람’입니다.

 


가랑비가 한두 줄기 드문드문 내린다. 격주로 요양원에서 만나는 아버지는 언제나처럼 내게 감자탕이나 먹자고 말했다. 이도 불편하면서. 뼈다귀 가득 감자탕이 한 그릇 나왔다. 이가 나빠 제대로 뜯지도 못하는 아버지에게 뼈를 발라서 고기 몇 점 드렸더니 “너나 먹어” 한다. 그러다가 입을 우물우물하더니 뭔가를 뱉는데 글쎄 시커멓게 파먹은 이가 아닌가. 감자탕을 먹다 말고 일순간 당황했고 왠지 모르게 화까지 났다. 더 짜증을 돋운 것은 신발장 위에서 아버지에게 운동화를 꺼내주는데 아직 계산 안 했다고 은근 눈치 주는 이 집 종업원. 추리닝 차림의 내 행색 때문인가. 아니면 거동 불편한 아비까지 동반해서 돈 떼먹고 도망칠 사람처럼 보였나.


‘어휴, 이도 불편한 양반이 왜 이런 걸 먹자고 해서…….’


속으로 화를 삭이다가 갑자기 무슨 객기였는지 “칠순 선물 1년 미리 당겨서 임플란트를 해드릴 테니 당분간 불편해도 좀 참아”라고 했다. 아버지는 원래 무표정하지만 은근히 임플란트를 하고 싶었는지 한 5초간 살짝 기분 좋은 표정이 얼굴에 스쳤다.


아버지를 다시 요양원으로 모셔다드리는데 비도 그친 것 같아 산책이나 하자고 했다. 요양원 바로 위에 있는 오래된 콘도 주차장으로 갔다. 주차장은 오랫동안 인적이 드물었는지 버찌가 길가에 많이 떨어져 있었다. 좁은 길은 버찌가 터져 보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이 길을 따라 아버지는 왼편으로 갸우뚱 기운 채로 걷는 건지 뛰는 건지 빠르게 산책을 했다. 산책하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다가 무슨 생각이 나서인지 본능적으로 스마트폰을 꺼내 촬영한다.


‘여태껏 아버지 동영상 하나 가진 게 없긴 하지…….’


나는 한 발짝 떨어져 뒤따르면서 “내년이 칠순인데 지금 건강 상태만 유지하면 하루나 이틀 외출 나가서 엄마랑 막내랑 설악산이나 놀러 갈까?” 묻는다. 아버지는 역시나 별다른 표정이 없다. 오히려 화제를 돌려서 이번 추석에는 할머니 성묘를 가야 하고, 삼촌이 할머니 산소를 이장하고 싶어 하는데 그걸 나보고 결정하라나. 증조할머니 이장 이야기를 왜 나한테 하나 싶었다.


여름날, 나름 넓은 주차장 서너 바퀴를 돌았더니 요양원 환우도 이제는 제법 노곤하신 모양이었다. 이제 그만하고 내려가자 하셔서 요양원으로 갔더니 “너 줄 거 있으니 이거 가져가서 애들이랑 먹어” 하며 며칠 전 문병 온 삼촌이 주고 간 사과 파이 과자를 챙겨준다. 안 받기도 뭐해서 그것들을 주섬주섬 챙겨 차로 가서 선글라스를 쓰고 차 돌리면서 인사하려는데 “운전 천천히 조심해서 가” 하더니 같이 나온 요양원 직원에게 “큰아들인데, 요양원비 내는 아들이야” 하고 나를 소개한다. ‘남한테 아들 자랑도 하네’ 생각하며 차를 돌린다. 사이드미러로 보이는 아버지는 저 멀리서도 계속 계속 손을 흔든다.


“잘 가.”


혼자 걷고 움직일 수 있는 아버지와 단둘이 서너 시간 함께했던 마지막 추억이다. 아버지는 그 다다음 주부터 배가 아프다고 하더니 장협착증으로 큰 수술을 다시 했고, 할머니 성묘를 가자던 추석을 열흘 앞두고 세상과 이별했다. 임플란트 치료는 딱 한 번밖에 못 해서 미리 낸 치료비를 대부분 환불받았다.


엄마는 큰애가 비싼 임플란트 치료비도 내주고 격주로 요양원에도 자주 들렀다고, 칠순 여행으로 설악산에도 가자고 했으니 내년에 날 잡고 가보자며 아버지에게 들은 이야기들을 내게 해주었다. 그러고 보니 산 좋아하는 양반이랑 머리 커서는 같이 산행한 적도 없다. 별생각 없이 우연히 촬영했던 산책 중인 동영상, 별로 당기지도 않는 사과 파이 과자, 그리고 이장을 앞둔 증조할머니 산소만이 내게 남았다.


엄마의 꿈에는 아버지가 두 번이나 등장했단다. 마지막 꿈에서는 아버지가 갑자기 어디에 가야겠다고 집을 서둘러 나섰는데, 엄마는 나를 불러 “아버지 차비 어서 챙겨 드려”라고 말했다. 성질이 급해 이미 대문까지 나간 아버지한테 결혼 이전의 모습을 한 내가 달려가 오만 원을 손에 쥐여드렸더니 그걸 지갑에 넣고서 그제야 저 멀리로 나가셨단다. 정작 내 꿈에는 한 번도 오지도 않고…….


꿈속에서라도 아버지를 만난다면 오글거려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꼭 해야겠다. 아버지 덕에 아들 잘살고 있어. 평생 가족들 때문에 고생만 지지리도 많이 했어.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먼 훗날 꼭 다시 만나.

 

곽병열 '곽서영-곽서진' 두 딸의 아빠이자, KEB하나은행 IPS본부에 소속된 금융 전문가. 13년간 증권사 애널리스트로 근무했고, 저서로는 『개미가 이긴다』 가 있다.

 

 

* 나도, 에세이스트 공모전 페이지
//www.86chu.com/campaign/00_corp/2020/0408Essay.aspx?Ccode=000_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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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곽병열

'곽서영-곽서진' 두 딸의 아빠이자, KEB하나은행 IPS본부에 소속된 금융 전문가. 13년간 증권사 애널리스트로 근무했고, 저서로는 『개미가 이긴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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