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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에세이스트] 1월 우수작 - 머리 휴지기

2020년 나에게 하는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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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내 머리스타일은 총체적 난국이다. 어떻게든 시간이 빨리 흘러버려 내 머리가 이전 모습으로 돌아오면 좋겠다는 마음뿐이다. (2020.01.02)

머리 휴지기.jpg

언스플래쉬

 

 

채널예스가 매달 독자분들의 이야기를 공모하여 ‘에세이스트’가 될 기회를 드립니다. 대상 당선작은 『월간 채널예스』, 우수상 당선작은 웹진 <채널예스>에 게재됩니다. ‘나도, 에세이스트’ 공모전은 매월 다른 주제로 진행됩니다. 2020년 1월호 주제는 '2020년 나에게 하는 약속'입니다.

 

 

2019년 11월 25일. 현재 내 머리 스타일은 총체적 난국이다. 층이 3단, 4단까지 져 있으며. 잦은 염색으로 인해 머리카락은 건조하다 못해 빗자루 같다. 원래 머리로 돌아오려면 최소한 2년은 필요할 텐데. 2년의 시간을 어떻게 버티지. 연말이 되면 보통의 경우 우울해진다. 시간이 너무 빨리 흐른다는 허망함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는 조금 다르다. 어떻게든 시간이 빨리 흘러, 내 머리가 이전 모습으로 돌아오면 좋겠다는 마음뿐이다. 내년을 기다리고. 더 나아가 내년마저 빨리 흐르길 바라는 연말은 올해가 처음일 거다.

 

빗자루 머리를 가지게 된 건 안 좋은 습관 때문이다. 나는 내가 하는 연애가 위태로워질 때마다 나만의 의식을 수행한다. 바로 머리를 하는 거다. 머리를 하는 게 왜 안 좋은 습관이지(?)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물론 연애가 안정적이면 상관없지만 문제는 매일같이 연애가 위태로운 경우다. 나는 위태로운 수만큼 머리를 하러 갔다. 담당 미용사가 바쁠 때는 내가 직접 문방구 가위를 들고 앞머리를 자르고. 옆머리를 자르는 등의 무모함을 보이기도 했다. 미용사는 또 그걸 수습하느라 진땀을 빼고. 이런 사이클을 한 다섯 번 반복하다 보니 뜻하지 않게 빗자루 스타일 머리가 된 것이다.

 

연애가 위태로울 때마다 미용실로 향하는 심리는 낮은 자존감 말고는 설명이 안 된다. 나를 대하는 애인의 미묘한 변화 하나하나 모두 나의 외모에 좌지우지된다고 여겼다. 실제로 잘 차려입고 머리도 잘 손질해가면 애인은 어울린다며 웃으며 말해줬고. 반대로 츄리닝을 입고 머리도 안 감고 나가면 왠지 모르게 애인이 나의 말에 이전보다 덜 경청해주는 것 같았다. 인터넷엔 권태기의 원인이 단점이 보이기 시작하는 외모 때문이라는 분석의 글이 여럿 있었다. 그날의 데이트 컨디션이 내 외모에 좌지우지된다고 확신하기에 이르니 불안했다. 미용실에 가 머리라도 해 애인의 마음을 확인받고 싶었나 보다. 하지만 정작 애인의 반응이 신통치 않은 경우가 많았다. 그러면 염색한 걸 후회하고 파마를 하는 등의 악순환이 반복됐다.

 

이제 몇 달간은 그냥 두세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에요. 미용사는 나에게 단호히 통보했다. 미용사의 통보가 있은 후에야 머리를 지지고 볶는 일을 관뒀다. 반강제적 머리 ‘휴지기’를 맞았다.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여겼다. 너무 기진맥진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불안감에 뭐라도 해야겠다라는 절박감. 그 절박한 변화가 먹히지 않을 때 오는 더 큰 절박감. 머리를 못한다니 손발이 묶인 복서처럼 답답했다. 다행히 나에게 스치듯 다가온 드라마 속 한 대사는 답답함마저 가라앉혀줬다. 

 

“사랑받지 못한 사람한테는 못난 버릇이 있다. 불안하면 더 꼭 붙들면 되는데, 불안하면 확인받고 싶어진다. 확인 받고 싶어서 다 망치고 난다” (『동백꽃 필 무렵』)

 

맞다. 불안하면 그의 손을 한 번 더 붙잡으면 될 일인데 나는 늘 이상한 방식으로 애인의 마음을 확인받고 싶어 했다. “예쁘다”는 말로 표현되는 애정을 확인받기 위해 미용실에 가 파마하고 염색을 하고 커트를 했다. 확인을 받기에 실패하면 또다시 다른 머리를 하고 결과적으로 망쳐버려서 이전보다 못한 상태가 돼버리곤 했다. 드라마의 영향인지 미용사의 영향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더 이상 사랑이 불안할 때마다 머리를 하진 않는다. (엄밀히 말해 못한다는 말이 정확하다) 대신 다른 방식을 취하게 됐다. 내 마음을 한 번 더 표현하기. 손을 꼭 잡기 등이다.

 

애인과의 관계는 다시 회복됐다. 내가 그렇게 매달려온 헤어스타일은 나의 연애에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2020년엔 머리 좀 그만하기. 조금 일찍 세우는 2020년 계획이다. 머리를 그냥 놔두는 일은 나에 대한 자존감을 다시 찾는 행위이기도 하기에. 약속을 넘어 꼭 성공하길 바란다. 정말로.

 

윤혜준 20대, 아직은 지망생

 

* 나도, 에세이스트 공모전 페이지

//www.86chu.com/campaign/00_corp/2020/0408Essay.aspx?Ccode=000_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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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윤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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