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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 북클러버] 정여울, 『데미안』을 다르게 읽는 방법

『데미안』과 『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 정여울 작가와 함께하는 북클러버 3기 첫번째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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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셀프를 만나는 연습을 하기까지 에고와 셀프의 대화를 멈추지 않아야 해요. (2020. 0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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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6일, 정여울 작가와 함께 하는 예스24 오프라인 독서모임 북클러버 3기가 열렸다. 이번 모임은 융 심리학을 중심으로 『데미안』 을 읽어보고, 『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 에 나온 내용을 대입해보는 시간이었다.


『데미안』 은 1919년 헤르만 헤세가 ‘에밀 싱클레어’라는 가명으로 출판한 소설이다. 당시 사회는 물론 오늘날까지 많은 이에게 사랑을 받는 명작 소설로 손꼽히지만, 고전이기 때문에 오히려 어려울 것 같다는 마음에 독서를 주저하게 되기도 한다. 『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  는 그간 내면의 빛과 그림자를 탐구해온 정여울 작가가 슬퍼하고 아파하는 독자들을 위해 스스로 힘으로 치유하는 심리 테라피를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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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고, 셀프, 페르소나


정여울 작가는 ‘에고’와 ‘셀프’, ‘무의식’ ‘의식’ ‘페르소나’ 등 앞으로 자주 사용하게 될 용어 설명으로 모임을 시작했다. 『데미안』 을 읽기 위해 필요한 용어이기도 했다.


“에고는 사회적 자아라고 하죠. 교육을 받고 문명화되기 전 내 안에 있는 셀프와 에고는 원래 하나였어요. 사회화 과정을 거치면서 점점 다른 사람과 비슷해지고 규격화되고 규범화되는 존재가 되죠. 다른 사람의 시선에 민감해지면서 형성된 자아가 에고에요. 에고의 진짜 주인은 내가 아니라 타인의 시선이고, 이게 에고의 허점이자 무서운 점이에요. 원래 내면의 나, 셀프를 만나기 위해서는 외부의 자극으로부터 나를 봉인해 놓을 필요가 있어요.”


이때 봉인은 은둔형 외톨이처럼 자신을 가둔다는 의미보다 일상생활 속에서 셀프를 끊임없이 의식하라는 뜻에 가깝다. 에고가 너무 커지면 셀프가 줄어든다. 에고와 셀프가 끊임없이 대화하는 상태에서는 셀프가 에고에게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에고가 너무 비대해져 있으면 그림자를 억압하게 돼요. 트라우마나 콤플렉스, 예전에 상처 입었던 모든 것들에 대한 불안, 슬픔, 두려움이 모여있는 게 그림자예요. 그림자는 인간을 매력적으로 만들기도 하죠. 상처를 아름답고 지혜롭게 잘 극복해낸 사람은 그 상처 때문에 더 아름다울 수 있고 현명해질 수 있어요.”


정여울 작가는 슬기롭게 자기 상처를 극복해낸 사람을 ‘상처 입은 치유자’라고 표현했다. 흔히 회복탄력성이 높다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그림자는 없어야 좋은 게 아니라, 그림자가 강해도 그림자를 이겨내는 것이 더 건강한 자아가 된다.


“에고는 사회화를 지향하고 셀프는 개성화를 지향해요. 다른 사람이 원하는 모습대로만 나아가는 극단적인 형태가 소시오패스예요. 셀프는 남아 있지 않은 채 무정하고 오직 성공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존재가 되는 거죠. 그건 진정으로 이기적인 것도 아니에요. 셀프가 행복해야 인간은 진정 행복할 수 있거든요. 에고와 셀프가 50대 50으로 균형을 이루는 게 아니라 되도록이면 셀프가 더 강하고 풍요로워질수록 좋은 관계라고 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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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프로 떠나는 여행


복잡한 셀프를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문학 주인공 중 하나는 『데미안』 의 싱클레어다. 성장 소설 모티브를 가진 작품 중에서는 셀프가 에고와 투쟁하면서 진정한 자기 자신을 향해 가는 주인공들이 많이 나온다.

 
“싱클레어는 원래 에고가 강했어요. 자존심이 너무 강한 나머지 도와주려는 데미안을 멀리했잖아요. 그런 걸 심리학에서 저항, 혹은 퇴행이라고도 해요. 저항은 셀프가 될 수 있는 성장을 거부하는 거죠. 데미안을 따라가면 많은 걸 배울 수 있다고 무의식이 말하지만, 따라가면 왠지 자존심이 상하는 거예요. 싱클레어는 데미안이 자기보다 더 많이 알고 있고 자기가 데미안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걸 인정 못 하고 있어요. 에고가 강하게 저항하면 셀프는 변화와 성장의 가능성을 잃어버려요.”


정여울 작가는 처음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심리학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고 한다. 마음의 문제를 심리학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것 자체가 자존심이 상했다고 느꼈고 이상한 자격지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글쓰기 수업을 하면서 글쓰기를 거부하는 분도 있었어요. 수업은 열심히 들으시는데 글은 한 줄도 안 쓰시는 거예요. 선생님이나 작가 앞에서 자신의 글을 보여주는 것에 대해 굉장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거죠. 하지만 그 두려움을 계속 가지고 있으면 글을 못 써요. 저항은 어떻게 하든 내 손해예요. 그래서 저항을 멈추고 용감하게 나와 대면하는 시간이 필요해요.”


정여울 작가는 『데미안』 뿐만 아니라 다른 문학 작품을 바라보는 데도 그림자와 에고, 셀프가 좋은 프리즘이 될 것이라 조언했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와 라푼젤, 백설공주 등의 동화는 보통 왕자나 기사가 공부를 구해내는 이야기로 이해하기 쉽지만, 정여울 작가는 여기서 에고와 셀프를 대입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동화는 여성이 불리하고 페미니즘적으로 비판할 소지가 있다고 말을 많이 하죠. 실제로 그러기도 해요. 하지만 심리학적으로 해석하면 이건 다른 이야기가 될 수 있어요. 남자 캐릭터도 여자 캐릭터도 우리 자신의 일부라는 거죠. 남성 캐릭터를 에고로 해석하고 여성 캐릭터를 셀프로 해석하면 사실 여성이 더 중요한 인물이에요. 에고가 셀프를 구하는 이야기로 해석할 때 동화와 민담과 신화가 우리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생각해요. 『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 에서 나만의 신화를 발견하는 것이 개성화라고 썼는데, 우리는 누구나 자기 신화의 주인공이 될 수 있어요.”


정여울 작가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으면서 아라크네라는 캐릭터에 자신을 대입했다고 한다. 아라크네는 올림푸스 12신에게 저항하면서 태피스트리 양탄자를 통해 신들의 이야기에 문제가 있다고 비판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 안에서 아라크네는 아주 작은 역할만을 맡고 있지만, 아라크네가 겁도 없이 신들의 세계에 예술로 저항했기 때문에 굴하지 않는 영혼이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아라크네의 비중은 그렇게 크지 않지만, 감정이입을 했기 때문에 해석이 크게 되는 것 같아요. 이런 게 ‘내 안의 신화’가 될 수 있어요. 왠지 닮고 싶은, 어떤 참고 문헌이나 모델들이라는 거죠. 융은 이걸 ‘원형’이라고 해요. 『데미안』 에서는 여러 가지 원형들이 나오는데, 싱클레어의 두 가지 원형은 데미안과 에바 부인이에요. 데미안이 지혜를 전수하는 멘토의 역할을 하는 아니무스라면, 에바 부인은 아니마일 수 있어요.”


무의식에서 ‘아니마’와 ‘아니무스’라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아니무스는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다가가려는 투기와 성취하는 힘을 의미한다. 아니무스가 과잉되었을 때는 전쟁과 파괴밖에 모르는 스파르타가 된다. 데미안은 그런 면에서 아니무스의 긍정적인 측면을 보여준다. 반면 아니마는 배려와 치유, 생명의 에너지를 의미한다.


“싱클레어가 친구의 엄마를 사랑하는데도 에바 부인은 밀어내지 않잖아요. 우리가 볼 때는 너무 파격적인 로맨스(웃음)인데도 밀어내지 않죠. 싱클레어는 에고의 장벽을 뚫고 데미안과 에바 부인을 통해서 진정한 자기 모습을 발견해요. 자신의 아니무스적인 측면을 데미안을 통해 보고 아니마를 에바 부인에게서 배우는 거죠. 아니무스와 아니마를 균형 있게 성취한 상태를 개성화라고 해요. 이때 아니무스와 아니마는 단순히 남성성과 여성성이 아니에요. 사회적인 남성성이나 여성성은 오히려 에고에 가까워요. 무의식의 아니무스는 오히려 사회적인 남성성, 여성성을 깨고 무슨 일이 있어도 원하는 걸 성취해낸다는 투지인 거죠.”


셀프가 되는 것을 가로막는 모든 존재와 싸워야 진정한 셀프가 될 수 있다. 『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 라는 제목도 결국은 ‘(개성화되기 위해) 셀프를 돌보지 않는 에고에게’라는 뜻이었다. 셀프 속에 있는 무의식, 그림자와 트라우마를 들여다봐야 한다는 게 책의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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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고와 셀프의 대화를 멈추지 않아야 해요

 

나는 오로지 내 안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것에 따라 살아가려고 했을 뿐. 그것이 어째서 그리도 어려웠을까.
- 『데미안』 의 첫 문장

 

“에고와 셀프를 이야기하고 나니 『데미안』 이 더 잘 이해되시죠? 내 안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건 셀프이죠. 그걸 어렵게 만든 게 에고예요. 에고에서 셀프로 가는 길이 개성화라는 거죠. 마음속에서 모든 것을 다 알고 우리 자신보다 모든 것을 잘 해내는 신적인 요소가 바로 셀프입니다. 그래서 ‘나만의 신화’라는 표현을 쓰는 거예요. 책을 읽고 셀프를 만나는 연습을 하기까지 에고와 셀프의 대화를 멈추지 않아야 해요.”


에고 중에서도 가장 바깥의 영역은 페르소나라 불린다. 사람들은 많은 역할을 소화하면 자기가 유능하다고 착각하지만, 아무리 많은 역할을 다 해내도 페르소나는 셀프가 될 수 없다.


“페르소나가 나쁜 건 아니에요. 에고와 셀프의 투쟁 속에서 셀프가 완전히 진다면 페르소나는 겉껍질일 뿐이지만, 에고와 셀프가 조화를 이룬 상태에서 그 사람이 페르소나를 다양하게 가지고 있다면 그건 건강한 상태예요. 그런 사람들은 페르소나가 쌓여갈수록 셀프도 확장돼요. 그 역할 때문에 자신을 학대하는 게 아니고 페르소나의 역할이 셀프를 더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거죠. 셀프가 강해지면 페르소나도 아름다울 수밖에 없어요.”


데미안은 작품 속에서 카인이 사악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벌을 받은 것이 아니라, 그가 우월하기 때문에 견뎌야 했던 뭇 사람들의 질투와 두려움 때문이었다고 설명한다.


“헤르만 헤세는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어떤 교파가 주장하는 해석을 믿는다고 해서 훌륭한 종교인은 아니라고 비판하는 것이었어요. 성경에 대한 해석은 자유라고 생각하는 거죠. 어떻게 보면 헤세가 신학교와 김나지움에서 두 번씩 퇴학을 당했기 때문에 우리가 이런 작품을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융 심리학을 공부한 뒤에 헤세가 데미안을 썼는데, 그전까지는 굉장히 아름답고 목가적인 작품이 많아요. 그런데 『데미안』  이후 작품에서는 헤세가 융 심리학과 대화하기 시작해요. 끊임없이 평생 독학만 해온 헤세가 융 심리학을 만나 셀프가 꽃을 피운 거죠.”


싱클레어가 알에서 깨어나 날개를 펼치는 새를 그렸을 때, 데미안은 그 새가 아프락사스임을 알려준다. 완전무결하고 지고지순한 신이 아니라 악과 선의 세계가 합일된 상태이다. 악도 우리 안에 있다는 걸 인정해야 인간의 욕망에 더 잘 대처할 수 있다.

 

새는 힘겹게 투쟁하여 알에서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들은 신에게로 나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 『데미안』 

 

“아프락사스는 우리 자신이에요. 우리 자신이 힘겹게 에고와 투쟁하는 것일 수도 있고, 에고 바깥의 수많은 자극에 맞서는 것일 수도 있어요. 에고를 깨뜨리고 진정한 셀프로 가는 것, 그게 아프락사스입니다.”

 

 

 

 

 


 

 

데미안헤르만 헤세 저/전영애 역 | 민음사
내가 앞에서 예를 든 아프락사스의 설도 그렇다. 이 이름은 희랍의 주문과 관계가 있다고 말해지고 있는데, 오늘날에도 대개는 야만 민족이 가지고 있는 어떤 악마의 이름이라고 왕왕 생각되고 있다. 그러나 아프락사스는 훨씬 더 많은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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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정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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