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 놀이터

이슬아, 정재윤 “새해에는 에너지 살림을 더 잘하고 싶어요”

헤엄 출판사의 『심신단련』, 『서울구경』 북 토크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저는 저를 싫게 하는 것보다는 좋아하는 것을 계속 들여다보고 어떻게 하면 더 좋게 쓸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데, 정재윤은 싫은 걸 기막히게 잘 구현하는 작가인 거예요.” (2019. 12. 30)

 사진1_이슬아작가_김진솔.jpeg
이슬아 작가(사진 김진솔)

 

 

“헤엄 출판사의 1호 작가이자 대표인 이슬아라고 하고요. 제 짧은 이야기, 정재윤의 조금 더 긴 이야기가 있을 예정입니다. 그리고 두 사람이 동시에 무대에 올라와서 조금씩 이야기하고요. 독자분들과 이야기를 주고받으려고 해요. 이렇게 무대와 객석이 가까운 경우에는 질문을 많이 해주시면 더 좋은 자리가 돼요. 들으시면서 궁금한 것들, 하고 싶은 말들, 뭐든 해주세요.”

 

지난 12월 22일, 통의동 보안여관에서 이슬아X정재윤의 합동 북 토크가 열렸다. 하루 한 편씩 쓴 글을 메일로 독자에게 직접 전송하는 ‘일간 이슬아’ 시리즈로 알려진 작가는 2019년부터 헤엄 출판사를 함께 운영하고 있다. 이날 북 토크에서는 출판사의 1호 작가이자 대표인 이슬아 작가와 2호 작가인 정재윤 작가를 함께 만났다.

 


이슬아의 짧은 이야기

 

“저는 말을 잘 못 하는 어린이여서 열심히 썼던 것 같아요. 말을 잘하는 사람들은 대화를 통해 문제없이 해결하는 반면, 말을 잘 못 하는 사람들은 집에 가는 길에 후회를 하게 됩니다. 그 후회를 일기로 해소했던 것 같아요. 내가 해야 했던 말, 다르게 했다면 좋았을 말, 안 했으면 좋았을 말을 적으면서 매일 하루를 두 번 사는 느낌이 들었어요.”


초등학교에 들어간 작가는 ‘나의 일기보다 더 긴 답글을 달아주는 선생님’을 만나게 된다. 선생님의 답글을 동력으로 계속 쓸 수 있었고, 작가가 될 수 있었다.


“최초의 글쓰기였던 일기에서 수필, 픽션, 인터뷰, 서평으로 넘어가는 과정이 저의 작가 생활인 것 같습니다. 일기는 자기 자신에게 머물러 있는 글쓰기일 확률이 높은데요. 다른 사람이 주어가 되는 순간 다른 장르로 가능해집니다. 이를테면 수필로 넘어가면 나 말고 다른 이들이 많이 등장해야 하는데요. 그러려면 그들의 삶을 좀 더 열심히 관찰해야 온전히 완성할 수 있게 됩니다.”


다른 사람을 주어로 하는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내가 이 사람들을 잘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족, 친구, 애인 등 가깝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관해 쓰려고 해도 단언해서 마침표를 찍기가 어려웠다. 계속 글을 쓰려면 더 면밀히 주변을 관찰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올해부터 시작한 인터뷰는 과정부터 결과물을 내놓는 순간까지 중요한 훈련의 장이 되었다. 잘 묻는 것, 성실하게 듣는 것, 마주 보았을 때 실수하지 않는 태도, 잘 옮겨 적는 것 등을 생각하고 배울 수 있었다.


수필, 인터뷰, 서평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글쓰기’를 하는 이슬아 작가는 노래 부르기, 라디오, 공연 등으로도 독자와 만나고 있으며, K팝에 맞춰 요가를 가르쳐주는 요가 학원에서 요가를 배우고, 페이스북 메시지를 통해 말을 걸어온 ‘말소리 선생’에게 소리내기를 배우고 있다.


“지금도 완벽히 고쳐지진 않았지만, 원래 말할 때 더 우물우물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페이스북 메시지로 말소리 선생이라는 분이 쪽지를 보내왔어요. 저의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에 올라온 영상들을 분석한 뒤에 장단점을 분석하고, 개선점과 보완점을 알려주는 거예요. 너무 성실하고 대단해 보여서 한 달 동안 네 번의 교육을 받았는데 너무 좋아서 지금까지 배우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출판사를 운영하며 책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몸소 겪으면서 이전까지는 적다고 생각했던 작가의 인세가 왜 10%인지 이해하게 되었다. 힘든 점도 많았지만, 좋아했던 작가들과 협업하는 장을 마련하는 기회이기도 했다.


“정재윤 작가를 보면서 ‘만화라서 다행이다, 저 사람이 글을 썼으면 너무 질투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는데요. 출판사를 만들어 함께 작업하게 되었습니다. 아직은 어려움도 많고 서툴게 해나가고 있습니다.”

 

 

사진2_정재윤작가_김진솔.jpg 

정재윤 작가(사진 김진솔)

 

 

정재윤의 조금 더 긴 이야기

 

헤엄 출판사의 2호 작가인 정재윤 작가는 올해 두 권의 책을 출간했다. SNS에 자신이 보고 느낀 것들을 짧은 만화로 올려 주목받았던 작가는 미묘한 순간의 ‘싫음’을 포착해 표현함으로 많은 공감을 얻었다. 자신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만화는 『재윤의 삶』 으로 묶여 출판되었고, 2016년 독립 출판했던 『서울구경』 이 헤엄 출판사에서 재출간되었다.

 

 

800x0.jpg

                                                                     

 

 


“올해 나온 두 권의 책을 묶어서 저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걸 생각해 보니 ‘싫은 것을 굳이 열심히 보는 사람’이라는 공통점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 만화에 담았던 싫어하는 것들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해요.”


2010년대 초반 SNS 간식이 범람하던 시기 정재윤 작가가 기억하는 최초의 ‘인스타그램 디저트’는 벌꿀 아이스크림이다. 비슷한 시기에 허니버터칩 대란이 일어났고, 너 나 할 것 없이 벌꿀 아이스크림과 허니버터칩을 성취한 사진을 SNS에 올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정말 그렇게까지 먹고 싶어서 이것들을 찾는 건지, 아니면 자랑하고 싶어서 열성적으로 찾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벌꿀 아이스크림과 허니버터칩이 잊힌 후의 이야기를 만화로 그렸다. 이후에도 정재윤 작가는 서구권에 우리 문화를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 때문에 김치와 불고기, 손흥민을 묻는 말들에 불편함을 느끼며 ‘김치를 좋아하는 만화’를 그렸다.


“백인 남성들이 언제 어디서든 편안하고 안전하게 활보하는 것들이 부러우면서 꼴 보기 싫었던 감정, 온 세계 사람 모두가 한복을 입고 있는 종로구에 대한 만화도 그렸고요. 가슴에 대해서 자신도 모르게 가지고 있는 양면적인 감정이나 서른이 되면 내가 아닌 타인의 의지로 꺾여버리는 상황이 되는 것까지 『재윤의 삶』 에는 그런 지긋지긋한 싫음에 대해 많이 다뤘던 것 같아요.”


가볍고 위트있게 싫은 것들을 말하고 싶었다면, 『서울구경』 은 작가 자신이 주인공이 아닌 픽션으로 그린 작품이다. 종종 한 페이지 안에 기승전결이 되는 만화를 그리는 게 두려워졌을 때, 긴 호흡으로 이야기하고 싶다는 생각에 『서울구경』 을 그리기 시작했다.


“서울이라는 장소에서 느꼈던 싫은 것들을 병렬적으로 그려볼까 싶어서 시작했던 낙서가 『서울구경』 의 시작이었어요. 서울의 풍경 중에서 유독 시선에 걸리게 되는 것들, 또 경상도 출신인 제가 느꼈던 서울에 대한 편견이나 시선들 같은 것들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경상도 사람들은 공격적이라거나 쌀쌀맞게 말을 던진다는 편견을 듣는 걸 싫어하면서도 작가 자신도 동시에 그렇게 행동하고 있을 때가 있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여자친구에게도 심한 말을 하는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남자들, 마음에도 없는 말을 던져버리고 마는 경상도식 화법 같은 것들이 『서울구경』 에 담겨 있다.


“서울에 대한 편견, 스무 살에 처음 대학에 들어가 아르바이트 했던 기억들을 담았어요. 이를테면 주인공 XX가 상상하는 서울의 대학생은 다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할 것 같지만, 현실은 아니잖아요. 저도 여러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가장 좋았던 건 W가 일했던 식당에서 일할 때였거든요. 나의 영양 상태를 사장님이 신경 써주고, 몸도 마음도 가장 편안했던 것 같아요. 이렇게 노동이라는 것도 판타지의 영역에 있을 때와 현실이 완전히 다르게 느껴지죠.”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힘든 일을 피할 수 없다는 현실, 물 때가 분홍색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을 때의 당혹감, 끊임없이 몸을 움직여야만 나를 돌볼 수 있는 집과 나와의 관계, 맛집 블로거나 쇼핑몰 모델을 꿈꾸다 좌절하는 사람들, 글로벌 리더가 되어야 하고 상위권 대학을 ‘스카이’라고 부르며 동경하는 마음, 아직 서울을 보지 못한 사람들이 먼발치에서 서울을 구경하는 모습에서 보이는 모순에 대해 하나씩 꼬집은 것이 『서울구경』 에 담겨 있다.


“이렇게 불편하고 꺼리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면서 끊임없이 던지게 되는 질문은 이런 세상과 계속 닮아가는 저 자신에 대한 회의예요. 싫은 것들을 열심히 보고, 수집하다 보니까 결국 저 자신에게 계속 질문하게 되었어요. 저 역시도 여전히 찾아가는 중이고, 잘 몰라서 이 이야기를 썼던 것 같아요.”

 

 

사진3_정재윤,이슬아작가_김진솔.jpeg
정재윤, 이슬아 작가(사진 김진솔)

 


이슬아 정재윤의 주거니 받거니

 

이슬아: 정재윤의 발표를 들으면서 제가 왜 2호 작가로 섭외했는지, 납득이 가셨을 것 같아요. 너무 멋지고 빛나는 작가입니다. 저희의 작업은 비슷한 점과 다른 점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저희는 비슷한 시기에 태어났는데요. 전혀 포개지지 않는 성장사인 것 같아요. 일단 저는 서울 한복판에서 태어났습니다.

 

정재윤: 저는 경남 김해 출신이고요. 중학교까지 나왔는데, 고등학교를 부산으로 유학 갔습니다. 중학교 무렵에 이슬아 작가는 어떤 걸 하고 있었죠?

 

이슬아: 서울에서 태어나긴 했는데, 초등학교 때 경기도로 이사를 하고, 중고등학교 시기를 대안학교에서 보냈어요. 밭이 2천 평이 있고, 양계장에 닭이 있었어요. 아침에 5시 30분에 학생들을 깨워서 요가를 시킨 다음 밭에서 김매기를 시킵니다. 김맬 게 없으면 산행을 시키고요. 몸을 많이 단련하고 작물을 키우고, 절기를 배우는 경험을 하면서 자랐어요. 어떤 사교육이 있는지 모르는 채로 자랐던 것 같아요. 『서울구경』을 읽으면서 궁금했던 게 있는데 글로벌 리더가 뭐죠?

 

정재윤: 그걸 누구한테 물어보면 알 수 있죠? 오바마한테 물어보면 될 것 같은데 왜 자꾸 한국의 열다섯 살에게 물어보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그 시기에 입시의 한복판으로 가는 마음으로 어딘가로 갔던 것 같아요.

 

이슬아: 재윤아, 크게 돼라. 이런 마음인 거잖아요.

 

정재윤: 자식은 어느 정도 부모의 욕망이 투영되는 존재잖아요. 어느 순간부터는 어디까지 자기가 욕망하는 만큼이고, 어디부터 부모가 원하는 모습인지 모르는 것 같아요. 적어도 제가 속했던 소도시를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은 있었던 것 같은데. 다른 건 잘 모를 때가 많아요. 슬아 작가는 대안학교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생활을 꾸려나가는 것도 함께 배우잖아요. 그 나이 때 그런 생활을 했던 건 어떤 느낌이었나요?

 

이슬아: 더러운 곳이 아주 많았고, 나의 사랑하고 너무 싫은 친구들이 어떤 오물과 때를 남겨가면서 살아가는지 낱낱이 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때 살림하는 교육을 받았을 때는 굉장히 조급해지기도 했어요. 중요하다고 하는 시기인데, 내가 김을 매고 있어도 되나 이런 생각들이요.

 

정재윤: 제가 생각하는 중요한 시기라는 것과 이슬아 작가가 생각하는 건 다를 것 같아요.

 

이슬아: 저는 글로벌리더가 되고 싶진 않았어요. 다만 뭔가 대단한 사람이 되려면 딴 걸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확신이 없었죠. 그런데 저는 그 시기에 대해서 잘 쓰지 않거든요. 왜냐하면, 별로 재미가 없거든요. 재윤 작가가 싫은 것을 잘 들여다보는 작가라고 소개했는데, 이것도 정확히 반대예요. 저는 저를 싫게 하는 것보다는 좋아하는 것을 계속 들여다보고 어떻게 하면 더 좋게 쓸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데, 정재윤은 싫은 걸 기막히게 잘 구현하는 작가인 거예요.

 

정재윤: 저는 좋아하는 걸 길게 말하는 걸 너무 낯간지러워하는 것 같아요.

 

이슬아: 그러면 제 글의 일부분도 굉장히 낯간지러우실 텐데요.

 

정재윤: 그런 점이 없는 게 이슬아 작가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인데요. 제가 좋아하는 걸 말하는 게 낯간지럽다고 느끼는 이유는 너무 좋다고밖에 표현할 수 있는 게 없어서 그런 것 같아요. 그런데 이슬아 작가는 왜 좋은지, 어떤 기분이 느껴지는지, 이런 것들을 굉장히 풍부하게 표현하기 때문에 읽으면서 굉장히 기분 좋게 만들어줘요.

 

이슬아: 정재윤 작가의 작품에서는 맡기 싫은데 맡게 되는 구린내 같은 게 잘 드러나 있어요. 싫다고 인식하지 못하고 지나쳤던 것들을 굉장히 잘 포착해서 표현해줘서 신기해요. 우리는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느끼는 출발점이 다른 것 같아요. 저는 ‘저 사람이 너무 좋아’라는 상태에서 쓰기 시작한다면 정재윤 작가는 어떤 한국적인 것들을 잊지 말아야겠다고 기억해뒀다가 적재적소에 넣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정재윤: 적재적소에 쓴다고 말씀해주신 걸 생각해보니까 저는 전업 작가가 아니고 회사에 다니면서 만화를 그리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 에너지를 완전히 쏟을 수가 없어요. 그걸 잘 알고 있고, 그래서 에너지 살림을 잘 꾸리는 게 저의 목표예요. 그러다 보니까 최소한으로 제가 할 수 있는 작업을 하게 되고, 거기에 적재적소의 것들을 넣을 뿐이에요. 작업 시간이 늘어나면 넣고 싶은 요소를 유하게 분배하겠지만, 에너지가 모자랄 땐 한 번에 집어넣어야 하니까요.

 

이슬아: 자기가 주인공인 것에 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어요. 저희 둘 다 자기와 매우 닮은 화자가 주인공인 만화로 데뷔를 했는데요. 저는 저랑 굉장히 닮은 캐릭터를 그리면서 어떻게 해야 이슬아가 이슬아를 모에화하지 않는 이야기를 그릴지에 대해서 많이 고민해요.

 

정재윤: 저 역시 그런 것들이 징그러워서 『서울구경』 을 작업했던 것 같아요.

 

이슬아: 저한테도 『서울구경』 같은 작품이 있으면 좋겠어요. 2020년에도 그런 걸 하고 싶은데, 아직 다른 논픽션 계약이 많아서요. 이를테면 『아무튼, 노래방』을 쓰기로 했거든요.

 

정재윤: 저는 노래방에 가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이슬아: 우리 듣고 자란 K팝이 비슷해요. 2000년대에는 발라드가 굉장히 과했어요. 내가 죽어도 영혼은 너를 사랑한다는 둥 비장미가 있었잖아요.

 

정재윤: 그걸 10대 때부터 듣고 자라서 사랑에 대한 잘못된 인상을 남긴 것 같아요. 그런 노랫말에 영향을 받진 않으셨나요?

 

이슬아: 불행하게도 받았겠죠? 십 대 때 생각해보면 샤기컷한 남자애가…

 

정재윤: 샤기컷 한 여자애랑 만나잖아요.

 

이슬아: 나도 했었어. 그래. 샤기컷을 하고, 고해를 부르고 너 죽고 나 죽고. 이런 발라드를 부르는데 우리가 당시 불렀던 발라드와 우리의 실제 사랑은 너무 다르잖아요.

 

정재윤: 저도 십 대 때는 왜 내 사랑은 영혼을 걸지 못하고, 죽음을 감수할 만큼 깊고 진하지 않을까. 고민했던 것 같아요. 그게 미디어의 영향이라는 걸 깨닫기까지 10년이 걸린 것 같네요.

 

이슬아: 그러니까요. 어쨌든 아직 수필이어야 잘 써지는 주제가 있어요. 그런데 계속 수필을 쓰면 계속 받는 질문이 있잖아요. 어떻게 그렇게 솔직하게 자기 이야기를 다 하느냐고요. 어느 정도 편집하고 보여주는 게 나의 전부라고 생각할 수는 없는데, 독자분들 따라다니면서 지어낸 이야기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요. 정말 좋은 픽션을 하나 쓰면 이슬아가 픽션도 한다는 걸 알릴 수 있을 텐데. 아직 그런 시기가 도래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래서 『서울구경』 을 보면서 이게 내가 가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재윤 작가의 2020년 소망이 궁금하네요.

 

정재윤: 2020년에는 잘 쉬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쉰다는 건 뭔지, 대체 무엇을 위해서 달리고 있는 건지, 취미생활도 이렇게까지 한국인처럼 해야 하는 건지, 그런 생각이 들어요. 어쨌든 2020년에는 에너지 살림을 잘하는 것, 잘 쉬는 것이 소망입니다. 슬아 작가는 어떻게 쉬나요?

 

이슬아: 정말 안 쉰 지 오래됐어요. 새해에는 잘 쉬고 싶은데요. 2020년에는 거절도 좀 하고, 쉬면서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하고 싶어요. 새해에는 에고서칭 덜하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틈날 때마다 네이버에 이슬아를 검색한 지 2년 정도 되었는데요. 이게 정말 정신을 갉아먹는 것 같아요. 남이 나에 대해서 뭐라고 생각하는지, 무심하게 살았으면 좋겠는데, 에고서칭이 너무 중독적이어서 완전히 끊을 수는 없을 것 같고요. 덜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사진4_서울구경.jpeg
서울구경. 사진 김진솔

 


독자님들과 주고 받는 이야기

 

이슬아 작가님의 글에 드러나는 솔직함이 화살이 되어서 돌아올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자기 자신을 콘텐츠로 만드는 데 두려움은 없었는지, 있었다면 극복하는 방법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슬아: 두렵고, 극복하지 못한 채로 계속하고 있는데요. 아직도 3개월 전에 쓴 글을 읽으면 창피한데, 그걸 만회하면서 계속 가고 있는 것 같아요. 지난번에 했던 작업을 만회하는 방법은 반성하고, 공부하고, 새로 쓰는 것밖에 없는 것 같아요.

 

제가 요즘 설레는 일이 별로 없어서요. 요즘 가슴 뜨겁게 하는 일이 무엇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슬아: 일단 글 쓰면서 가슴이 뜨거웠던 적은 별로 없는 것 같고요. 굉장히 건조하게 작업을 했던 것 같거든요. 음. 음. 싸랑을 할 때?

 

정재윤: 저도 요즘에 설레는 일이 별로 없어서 재미있는 질문이었어요. 물론 두 권의 책을 낸 성취를 한 것이 굉장히 즐거운 일이었긴 했지만, 정말 설레고 뜨겁게 하는 것과는 달랐던 것 같거든요. 최근에 비슷한 설렘을 느끼게 되었어요. 저는 수영도 자전거도 잘하지 못했어요. 수영은 가끔만 배웠고, 자전거를 배울 때는 너무 호되게 배워서 트라우마가 생겨서 10대 때는 헤엄도 못 치고 자전거도 못 타다가 대학 때 교양 수업에서 수영을 배웠고, 자전거도 혼자서 어영부영 타다가 탈 수 있게 되었거든요. 퇴근을 자전거로 할 수 있게 된 거예요. 그때 마침 서울구경을 마감하고 있을 10월 정도였어요. 에너지 살림이 너무 안 돼서 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자전거로 퇴근을 하게 되었는데 너무 설레는 거예요. 바퀴를 굴려서 자전거를 타고 집까지 갈 수 있다는 게. 어린 시절의 나를 이겨냈다는 두근거림이 있었던 것 같아요.


93년생 아이를 둔 엄마예요. 『울 때마다 나는 엄마 얼굴이 된다』를 읽으면서 슬아 작가님과 장복희 님의 대화가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저는 아직도 딸 아이와 19금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없어요. 어떻게 엄마와 딸 사이에 그런 대화를 할 수 있을지 존경심을 갖게 되었어요. 저도 딸과 친밀한 관계인데 그런 대화를 해보지 못해서 하고 싶은데,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이슬아: 그냥 어릴 때부터 엄마가 하길래… 저는 모든 모녀가 섹스를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데요. 하지만 정말 하고 싶다면 뒤에 계신 복희 님께 노하우를 들어봐야 할 것 같아요.

 

장 팀장님(이슬아 어머니): 19금 이야기라기보다는 슬아가 처음 하는 연애나 사랑 이야기를 나한테 편하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걸 한다면 다른 이야기는 굳이 하지 않아도 다 한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첫 연애에 대해서 슬아가 이야기했을 때는 저도 같이 빠져버렸던 것 같아요. 슬아가 연애를 할 때마다 저도 같이 연애를 하는 것처럼 사랑하고, 아픔을 겪을 때도 똑같이 아팠던 것 같아요. 특별히 노하우랄 것이 없지만, 굳이 물어보신다면 사랑 이야기를 했을 때 그 마음이 같이 되어보는 것? 그러면 그다음부터는 조금씩 열어주는 것 같아요. 요즘은 오히려 안 듣고 싶을 때가 많아지는 것 같아요. (웃음)


슬아 작가님은 엄마를 ‘복희’라고 부르시잖아요. 그 계기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이슬아: 글쓰기 모임에서 매주 복희 씨에 대해서 썼어요. 그때는 ‘엄마는, 엄마가’ 이렇게 썼거든요. 근데  저의 글쓰기 선생님이 엄마라고 하지 말고 이름을 써보라고, 그러면 다른 글이 될 거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복희라고 썼는데 정말 달라지더라고요. 그때부터 다른 사람들도 다 이름으로 쓰기 시작했어요. 그러니까 거리가 생기고, 그 거리감 때문에 좀 더 정중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제가 엄마라고 했을 때 더 무례해지는데, 복희라고 했을 때는 나와 상관없는 사람이 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때부터 이름을 쓰게 되었던 것 같아요.


재윤 작가님은 불쾌한 이슈들을 가공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정재윤: 제가 만화를 그리면서 제일 의식했던 건 너무 연민에 빠지지도 말고 너무 심하게 쿨한 척하지도 말아야겠다는 거였어요. 내가 만들어낸 것을 싫어하고 싶지 않아서 만든 철칙 중에 하나였고요. 내가 마치 어떤 것을 평가내릴 수 있는 위치로 가지 말자는 의식이 있었습니다.


저는 5년 차 직장인인데요. 이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 사실 조금 힘들기도 하고, 요즘 체력 관리가 어렵다는 걸 느껴요. 재윤 작가님은 일과 작업을 병행하면서 어떤 노하우가 있는지 궁금하고요. 슬아 작가님도 오늘 처음 뵈었는데 굉장히 건강해 보이시더라고요. 그래서 계속 궁금한 마음이 들어서 두 분께 비법을 듣고 싶습니다.

 

정재윤: 이렇게 대답하기가 너무 싫어요. 너무나 한국적인 솔루션인데요. 그냥 하면 해진다. (웃음) 정말 진짜 저도 속상해요. 제가 이렇게 한국을 싫어하면서도 너무나 한국 사람처럼 살 수밖에 없는 게. 버티고 살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회사에 다녀야 하죠. 그런데 직장인으로만 살기에는 만족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는지 또 다른 작업을 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에너지를 갉아먹고, 그런데 이것을 멈출 수가 없게 되었어요. 일단 투 트랙을 열심히 달리고 있는데 별로 건강하게 느껴지지 않아요. 열심히 살고 있다는 감각은 있는데 잘 살고 있다는 느낌은 안 드는 게 큰 문제인데요. 톱니를 굴리지 않고 있는 것이 왜 이렇게 불안하게 느껴지는지 모르겠어요. 쉬는 게 편안했으면 좋겠는데, 그게 잘 안 되는 것 같아서 저도 이 마음을 잘 탐구해보고 싶어요. 좀 더 건강하게 두 가지 일을 잘하고 싶은 마음이에요.

 

이슬아: 저의 솔루션은 요가가 답이다. 운동을 하러 가면 더 힘들다고 느껴지는데, 그게 아니라 운동을 하면 다른 식으로 치유가 되는 느낌이 들어요. 마음이 힘들 때 요가가 많이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전체적으로 노동 시간이 너무 긴 사회이고, 열심히 사는 것을 조장하는 것 같아서, 한가한 게 미덕이 되는 세상이 되길 바라고 있어요. 

 

 

서울구경정재윤 저 | 헤엄
서울적인 것과 안 서울적인 것에 대한 탐구, 가정법에 끊임없이 사로잡히는 인물들에 대한 묘사가 번쩍번쩍 빛이 난다. 정재윤 특유의 농담과 능청에 낄낄대며 읽다가도 어느 순간 가슴이 서늘해지는 이야기다.

 

 

 

 

 

 

 

배너_책읽아웃-띠배너.jpg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YES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0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이수연

재미가 없는 사람이 재미를 찾지

오늘의 책

AI, 전혀 다른 세상의 시작일까

유발 하라리의 신작. 호모 사피엔스를 있게 한 원동력으로 '허구'를 꼽은 저자의 관점이 이번 책에서도 이어진다. 정보란 진실의 문제라기보다 연결과 관련 있다고 보는 그는 생성형 AI로 상징되는 새로운 정보 기술이 초래할 영향을 분석했다.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한국 문학의 지평을 더욱 넓혀 줄 이야기

등단 후 10년 이상 활동한 작가들이 1년간 발표한 단편소설 중 가장 독보적인 작품을 뽑아 선보이는 김승옥문학상. 2024년에는 조경란 작가의 「그들」을 포함한 총 일곱 편의 작품을 실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름들과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한 권에 모두 담겨 있다.

주목받는 수익형 콘텐츠의 비밀

소셜 마케팅 전문가 게리 바이너척의 최신작. SNS 마케팅이 필수인 시대, 소셜 플랫폼의 진화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콘텐츠 제작을 위한 6단계 마케팅 전략을 소개한다. 광고를 하지 않아도, 팔로워 수가 적어도 당신의 콘텐츠는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다.

삶의 끝자락에서 발견한 생의 의미

서른둘 젊은 호스피스 간호사의 에세이. 환자들의 마지막 여정을 함께하며 겪고 느낀 경험을 전한다. 죽음을 앞둔 이들과 나눈 이야기는 지금 이순간 우리가 간직하고 살아야 할 마음은 무엇일지 되묻게 한다. 기꺼이 놓아주는 것의 의미, 사랑을 통해 생의 마지막을 돕는 진정한 치유의 기록을 담은 책.


PYCHYESWEB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