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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뭐길래] 편집자의 영혼이 깃든 책 – 이연실 편

당신이 읽는 책이 궁금해요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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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가 있어야 할 곳에 정확히 있고, 일해야 할 곳에서 제대로 일한 책이요. 책 한 권을 집어들었을 때, 띠지, 뒤표지 문안, 심지어 뒷날개까지 샅샅이 훑어보면, 편집자가 영혼을 갖고 일했나, 그냥 책을 내야 하니까 낸 건가, 느껴져요. (2019. 1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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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가 미니 인터뷰 코너 ‘책이 뭐길래’를 매주 목요일 연재합니다. 책을 꾸준하게 읽는 독자들에게 간단한 질문을 드립니다. 자신의 책 취향을 가볍게 밝힐 수 있는 분들을 찾아갑니다.

 

 

“할머니가 될 때까지 현직 편집자로 일하고 싶다”는 이연실 씨는 올해로 문학동네에서 책을 만든지 13년이 됐다. 2019년 가장 기뻤던 일 중 하나는 배우 하정우의 에세이 『걷는 사람, 하정우』 가 ‘2019 예스24 올해의 책 24권’ 중 1권으로 선정된 것. 이연실 편집자는 이외에도 김훈의 『연필로 쓰기』 , 이슬아의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 ,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 허지웅의 『버티는 삶에 관하여』 등의 책을 만들었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을 소개해주세요.

 

첫번째는 아무튼 시리즈의 최근작이죠. 요조 작가님의 『아무튼, 떡볶이』 를 가방에 넣고 다니면서 다시 읽고 있어요. 두번째로는 <한겨레> 편집장으로 일하면서 esc, 토요판 등 특별한 지면들을 기획하고, 기존의 판을 갈아엎은 고경태 작가님의 편집론, 기획론이 담긴 『굿바이 편집장』 을 읽고 있고요. 
세번째로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의 속편 안드레 애치먼의 장편소설 『파인드 미』 를 더듬더듬 읽고 있습니다. 

 

세 권의 책들을 어떻게 읽으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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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떡볶이』 는 제가 요조 작가님의 직전 책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를 편집했던 터라 기다려온 책이었어요. 이 책에 ‘영스넥’이라는 오래된 노원역 떡볶이집이 나오는데, 거기가 제가 학창시절 내내 다닌 떡볶이집이기도 해요. 요조 작가님이 ‘영스넥’ 사장님을 찾아가서 인터뷰했는데, 그렇게 눈물이 나더라고요. 이건 그저 떡볶이 맛집 예찬이 아니었어요. 어렸을 때 심장을 나눠쓰는 것처럼 붙어다니며 떡볶이를 나눠먹던 친구들, 어른이 되어 각자 다른 환경 속에서 살다가 그들을 만났을 때 느낀 묘한 어색함과 부딪침, 친구가 변해버렸다고 쉽게 단정짓고 거리를 두었던 일…… 내가 잊어버리고 묻어두었던 모든 일이 이 책을 읽는 동안 한꺼번에 밀려와서 울다가 웃다가 했어요. 이 책은 유년시절과 친구와 기억에 관한 매우 아름다운 이야기이기도 해요. 요조 작가님의 문장과 이야기는 점점 진화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아서 행복하게 거듭 읽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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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편집장』 은 작가의 이전 책에 대한 신뢰 때문에 고른 책이에요. 고경태 작가님의 전작 중에 『유혹하는 에디터』라는 책이 있어요. 제가 편집자를 꿈꾸는 이들이나 제 후배에게 반드시 권하는, 편집자의 바이블이라 할 수 있죠. 편집자는 그저 주어진 것들을 단정하고 매끈하게 엮어놓는 사람이 아니에요. 작가를 유혹하고 독자를 유혹하고 텍스트에서 가장 유혹적인 부분을 발견하고 도드라지게 만드는 ‘꾼’이어야 하죠. 새로운 판을 깔고 사람들을 불러모을 수 있어야 해요. 고경태 작가님은 제게 그것을 알려준 ‘마음의 스승’과도 같은 작가님이에요. 『굿바이 편집장』 은 고경태 작가님이 10년 만에 다시 펴낸 편집론에 대한 책인데요. 과감한 시도를 하고 판을 갈아엎는 과정에서 느낀 상처와 두려움까지도 생생하게 담겨 있어서 감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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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은 저의 인생 연애소설이에요. 안드레 애치먼의 신작 『파인드 미』 에 그후 이야기가 담겼다니 안 살 수가 있나요. 안드레 애치먼의 소설은 읽다보면 실제로 몸이 뜨거워지는 것 같아요. 잔잔하고 편안한 휴식 같은 사랑이 아니라 내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사랑, 다가갈수록, 욕심낼수록 마음이 타들어가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잖아요. 읽다보면 문장 하나하나에서마저 통증과 열감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파인드 미』 를 받아들었는데 기분이 좀 묘했어요. 엘리오와 올리버를 다시 보고 싶고, 그들의 뒷이야기를 집요하게 캐묻고 싶으면서도, 그냥 제 마음속에 영원히 지금의 완벽한 이미지로 넣어두고 싶기도 한 마음이 엇갈리는 것 같아요. 그래도 만나야죠, 어떻게 되었는지 봐야죠! 천천히, 더듬더듬 만나러 가고 있어요. 

 

평소 책을 선택할 때, 기준은 무엇인가요?

 

앞의 3쪽을 읽어보고 결정합니다. 온라인서점에서 구매할 때도 미리보기를 통해 반드시 앞의 30쪽을 읽고 구매해요. 저는 편집자로서는 좀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편 같은데, 개인적인 취향으로 책과 작가를 고를 때는 매우 괴팍한 독자라는 생각이 들어요. 초반 30쪽 내에서 저를 강렬하게 끌어당기는 문장, 저를 사랑에 빠지게 하는 문장이 없고, 그냥 무덤덤하면 즉각 책을 덮습니다. 싫은 게 아니라 그냥 별 느낌 없이 무난하다 싶어도 바로 덮어요. 이거 좀 나쁜 습관 같다고, 중후반부에 힘을 발휘하는 좋은 책도 있다고, 좀 견디면서 읽어보는 것도 좋다는 조언도 자주 듣는데요.

 

그런데 세상엔 첫 30쪽에서 저를 블랙홀처럼 단숨에 끌어들이고 마지막 장까지 저를 빠져나갈 수 없게 옭아매는, 모든 페이지가 촘촘하고 강렬한 책들도 정말 많아요. 그 책들도 지금 제가 다 찾아 읽지 못하고 있는걸요! 초반부터 저를 완벽하게 매혹하고, 끝까지 저를 열광하게 하는 매력적인 책들만 다 찾아 읽기에도 제 인생이 모자랄 것 같아요. 

 

어떤 책을 볼 때, 특별히 반갑나요?

 

편집자가 있어야 할 곳에 정확히 있고, 일해야 할 곳에서 제대로 일한 책이요. 책 한 권을 집어들었을 때, 띠지, 뒤표지 문안, 심지어 뒷날개까지 샅샅이 훑어보면, 편집자가 영혼을 갖고 일했나, 그냥 책을 내야 하니까 낸 건가, 느껴져요. 이 편집자가 진심으로 이 책을 세상에 알리고 싶어하고 이 이야기를 사랑하는지 아닌지가 책의 몸에 문신처럼 새겨져 있죠. 편집자가 최선을 다하고, 간절하게 만든 책은 책 외관의 모든 것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서 감동을 불러일으켜요. 그런 책을 보면 반갑고 마음이 흔들리죠.
 
신간을 기다리는 작가가 있나요?

 

김혼비 작가님을 무척 좋아해요. 김혼비 작가님이 『아무튼, 술』 을 펴내고 예스24 팟캐스트 <책읽아웃>에 나와서 차기작 얘기를 하셨잖아요. 물론 그때는 이것이 책이 될지 안 될지도 모른다면서, 한국의 각종 지역 축제를 직접 취재하고 그 독특한 문화와 그것을 이루는 사람들에 대해 쓰고 싶다고 하셨었는데요. 그 방송을 제가 엘리베이터에서 막 좋아하면서 듣고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에어팟 블루투스가 끊어져서 제가 듣던 방송이 바깥으로 다 들리게 터져나온 거예요. 제가 허둥지둥 방송을 정지하려고 했는데 잘 안 됐어요. 그때 김혼비 작가님이 ‘의 좋은 형제 축제’의 볏단 나르기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었는데…… 엘리베이터에 있던 전혀 낯모르는 사람들이 큭큭 같이 웃기 시작하더라고요. 와, 이 작은 에피소드만으로도 엘리베이터에 오종종 갇혀 있던 사람들을 와르르 웃게 만들다니, 이 책은 엄청나겠구나, 싶었죠. 김혼비 작가님의 ‘전국 축제 자랑’은 지금 지금 ‘릿터’에 연재중이기도 한데요. 단행본으로 나오면 바로 달려가서 살 겁니다!
 
 

 


 

 

아무튼, 술김혼비 저 | 제철소
‘생각만 해도 좋은 한 가지’에 당당히 “술!”이라고 외칠 수 있는 세상 모든 술꾼들을 위한 책이다. “술을 말도 안 되게 좋아해서 이 책을 쓰게” 된 작가는 수능 백일주로 시작해 술과 함께 익어온 인생의 어떤 부분들, 그러니까 파란만장한 주사(酒史)를 술술 펼쳐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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