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정산, 연말결산, 연말생산
연말에도 생산은 계속된다
매년 올해의 책과 올해의 인물과 올해의 OO을 뽑으면서 다가올 해를 더욱 잘 보내자는 다짐을 한다. (2019. 12. 06)
언스플레쉬
12월은 한 해를 갈무리하는 달. 1년 정리를 넘어 10년 정리, 20년 정리를 마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2020년을 맞이하면 좋으련만. 오늘은 침대에서 일어나기부터 최고로 어려웠다. 하루를 시작하기도 힘든데 하루를 정리할 수 있을까. 1년은? 10년은? 이렇게 작년에 마무리하지 못한 일을 올해 하고, 올해 했어야 할 일을 내년에 계속하는 게 인생일까. 나는 아직 올해의 접시를 끝내지 못했는데 다들 일어나는 분위기여서 급하게 올해 일을 입 안에 욱여넣는다.
올해 1월, 칼럼 지면을 빌어 한 해 계획을 세운 적이 있다.
집을 나서기 전 물티슈로 어디든 먼지를 닦고 나간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플랭크를 시도한다.
피아노를 친다. 연습한 날은 연습 내용을 기록한다. 연말에 기록을 토대로 '이것 봐! 내가 이렇게 쓸데없는 일을 했어!' 하고 소수의 지인에게 자랑한다.
- 「즐거운 계획 생활」 중 -
어쩜 이렇게 아무것도 못 했을 수가. 집은 여전히 먼지구덩이고 몸무게는 착실히 최고기록을 경신했다. 오늘 피아노 레슨이 있는데 2주 동안 한 번도 피아노 뚜껑을 열지 못해서 레슨을 미룰까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팔굽혀펴기를 못 한다는 걸 깨달은 해이기도 했다. 신체적 능력이 감소했다고 느낄 때 특히 우울하다. 과거만이 빛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되긴 싫은데, 연말정산을 하려니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또 깨닫고 쓸쓸해졌다.
트렌드 도서처럼 점점 결산도 앞당겨져서, 11월 말쯤 되면 슬슬 한 해를 정리해야 할 것 같아 엉덩이를 들썩인다. 일기를 쓰면 정리가 상대적으로 쉽다. 그러나 작년이나 재작년이나 비슷한 말을 써놓다 보니, 자신을 대상으로 한정하면 예언도 가능하다. 2020년 12월.... 나는 술을 마시고 살이 찐다... 달리면 점점 더 숨이 찬다... 번잡한 마음으로 처리해야 하는 것들을 함부로 치우고 2021년 1월에는 후회한다...
언스플래쉬
어렸을 때는 매년 1월 1일에 유서를 썼다. 미웠던 사람들에게 싫은 소리를 쓰다가도, 혹시나 내가 죽으면 당사자에게 평생 박힐 거라는 생각에 정작 하고 싶었던 나쁜 말은 쓰지 못하고 고운 말 바른 말 착한 말만 썼다. 내년을 생각하면 올해 마음속 앙금은 별 것 아닌 일이었다. 연말결산은 스스로 돌아보게 만든다. 매년 올해의 책과 올해의 인물과 올해의 OO을 뽑으면서 다가올 해를 더욱 잘 보내자는 다짐을 한다.
비슷한 해 안에서도 굳이 달라지는 걸 찾자면, 올해는 오디오 인터페이스 사용법을 익혔다. 에어프라이어로 만들 수 있는 요리 가짓수가 늘어났다. 군고구마와 삼겹살을 구워 먹었고 홈런볼을 에어프라이어에 돌려 먹으면 맛있다고 하길래 올해가 가기 전에 곧 시도할 예정이다. 돈을 조금 더 모았다. 서먹했던 사람과 시간의 힘을 빌어 서먹하게 화해했다. 낯이 익은 사람들이 늘어났다.
연말에도 생산은 계속된다. (에어프라이어로 홈런볼 굽기는 분명한 성취이자 생산이다) 연말결산이 어려운 이유는 생산하느라 바빠서 그렇다. 깔끔하게 계산이 맞아 떨어지는 걸 보고 싶지만 어딘가 미진한 채로 다음 해로 넘어간다면, 나는 연말까지 꾸준히 생산해 온 사람이라고 스스로 칭찬해 주자. 안 되면? 1월에 하면 되지 뭐. 한국은 구정과 신정이라는 미풍양속이 있지 않은가. 판타지 소설처럼 새해를 회귀해 다시 도전하면 된다. 구정도 넘어가면? 어…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해 보면 되겠지. 일단 12월부터 해결하고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