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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터 2-10] 68화 : 국어는 잊어버렸습니다
『마터 2-10』 연재
이이철이 투옥된 지 꼭 일 년이 되던 겨울에 경기도 일대에 잠복하여 활동하던 류재익이 체포되었다. 그의 체포 소식은 여러 신문에서 대서특필 되었고 ‘집요 흉악한 조선공산당 마침내 괴멸하다’라고 보도했다. (2019. 12. 02)
“온 식구가 아예 만주로 이민을 가시려우?”
신금이가 묻자 막음이 고모는 펄쩍 뛰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녀 강 대목 계약 기간이 삼 년이라니 그만큼만 살다가 영등포로 돌아와야지. 그래서 머시냐 샛말 집두 팔지 않구 세놓고 가려네.”
총독부에서는 이른바 지나 사변을 일으키기 앞 뒤 이삼 년 전부터 조선농민의 만주 이민을 적극 권장하고 선전했다. 만주에 가면 땅 없는 농민들은 누구나 경작지를 얻어 농사를 지을 수 있다고 하여 수만 명의 농민들이 식솔을 데리고 만주로 떠나고 있었다. 조선인뿐만 아니라 일본 내지인들도 만주로 모여들고 있었다. 조선인들 중에는 지식인 중산층들도 일거리와 사업의 기회를 찾아 만주에 새로 번성한 봉천 신경 하얼빈 등지로 모여들었다. 물론 이들 가운데는 만주에서 항일 무장투쟁을 하는 독립군에 가담하려고 찾아가는 청년들도 많았다.
이백만은 며느리에게서 누이네 가족이 만주로 이사 간다는 소식을 듣고도 무덤덤하게 아무런 말이 없었다. 이일철은 특급열차 히카리호의 기관수로 경의선 구간을 거쳐 휴식 교대하여 안동 신경 구간을 달리고 돌아오는데 나흘이 걸렸다. 돌아와 이틀을 휴식하고 다시 같은 구간을 달리는 직무가 계속되는 나날이었다. 막음이 고모가 다녀간 지 며칠이나 지나서 돌아온 일철은 아내 신금이로부터 그 소식을 들었다. 아버지의 공방에서 그는 아내가 받아온 막걸리를 마시며 집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철이 사발에 따라주는 막걸리를 주욱 마시고는 이백만이 말했다.
“느이 고모네가 만주로 이사 간다는 얘긴 들었냐?”
“예, 고모부가 수완이 좋은 모양입디다.”
“그야 허사장과 뱃보가 맞아서 영단주택 건설을 잘 해냈으니 일본 본사에서도 믿고 맡기는 거겠지. 그런데 걔네가 샛말 집을 세 놓구 간다는구나. 그 집은 강 서방이 탄탄하게 잘 지은 집이고 마당두 넓어서 좋더라만……”
일철은 아버지의 속마음을 눈치 채고는 떨떠름하게 앉았다가 말했다.
“저는 철도관사 입주 대기 중입니다. 아마 두어 달 있으면 살 집이 정해질 것 같은데요. 이제 특급열차의 기관수가 되었으니 철도국의 지시를 따라야 합니다. 이철이 때문에라도 눈 밖에 나면 직장을 잃을 수도 있어요.”
이철은 그해 여름에 일 년 반의 형기를 살고 만기 석방이 되었다. 이이철이 투옥된 지 꼭 일 년이 되던 겨울에 경기도 일대에 잠복하여 활동하던 류재익이 체포되었다. 그의 체포 소식은 여러 신문에서 대서특필 되었고 ‘집요 흉악한 조선공산당 마침내 괴멸하다’라고 보도했다. 조선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는 국내 사회주의 독립운동의 마지막 희망이었던 셈이었다. 농부로 변장하고 두 손에 수갑을 차고 포승에 묶인 그를 가운데에 두고 갖가지 계층과 직업군으로 변장하고 잠복하던 형사들 스물일곱 명이 찍은 기념사진이 신문의 일면을 장식했다. 온 조선이 그 사건으로 떠들썩했다. 그리고 그의 예심이 한창 진행되던 여름에 이철은 영등포 버드나무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나 무뚝뚝하던 아버지 이백만은 옥살이를 하고 나온 작은 아들의 몸보신을 해준다고 몸소 시장거리로 나가 개고기를 사왔다. 그래도 털 그을리고 초벌 삶은 고기라서 형수 신금이가 감히 조리하기에 험한 요리는 아니었다.
그녀는 이웃에 묻고 공책에 적어 가며 찬물에 담가 피 빼고 된장 풀어 생강, 소주, 양파, 차조기 넣고 고기 삶는 것부터 탕과 수육 두루치기를 차례로 구분하여 해내는 데에 이르기까지 처음부터 성공적으로 해냈다. 그리하여 신금이는 시아버지 이백만, 이일철 이이철 형제, 전쟁터의 지옥을 헤치고 살아 돌아온 아들 이지산과 손자인 이진오에 이르기까지 대대로 능숙해진 보신탕 만드는 솜씨로 이씨네 집안 사내들을 먹여 살려냈다.
“이철이는 지금 어디서 뭐하구 사냐?”
이백만이 물었고 일철은 자기가 아우의 얘기를 먼저 꺼낸 것을 후회하며 잠자코 있었다. 아우는 무슨 작정이나 한 것처럼 석방되고 백일 동안 요양하며 집에 붙어 있었고, 어느 날 그가 근무를 마치고 돌아오니 온다 간다 말없이 사라져버렸다는 것이다.
“저두 모릅니다.”
“지산이 에미에게는 말이 없었다더냐?”
“글쎄 아무 말도 없이 집을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답니다.”
“경성 문안에 들어간 게 아닐까.”
일철은 아버지의 질문에 얼른 대답했다.
“그쪽으로 가진 않았을 겁니다.”
이백만은 더 이상 묻지 않고 막걸리만 마셨다. 일철은 짐작으로만 그가 아마도 아내 신금이에게는 뭔가 속내를 털어 놓았으리라 짐작하고 있었으며 언젠가 아내가 슬쩍 흘리던 말도 기억하고 있었다.
“인천까지 기차루 한 시간두 안 걸린다니 경성 종루에 나가는 거 하구 다를 바가 없네요.”
“응? 갑자기 인천은 왜……”
일철이 되물으니 신금이는 다시 말을 주어 담았다.
“아니, 누가 굴비를 상자떼기루 사다 말리면, 싼값에 한철 반찬 생긴다구 하길래.”
“그래서 인천 가볼라구?”
“아니, 장산이 엄마 생각이 나서. 연평굴비를 너무 좋아했거든요.”
“뭐야, 무슨 소식이라두 들었소?”
신금이는 그만 입을 다물어버렸고 그제야 문득 일철은 아우가 혹시 인천에 머물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신금이는 옛날 방직공장 시절 같은 활동가이던 박선옥과 함께 두쇠 이철이를 집안의 도련님이기 전에 동지로 생각했었다. 그의 형 한쇠 일철에게 시집 와서 이러한 난세에 안온한 생활을 하는 것이 어쩐지 미안하고 안쓰러웠던 것이다. 그것은 짧은 기간이었지만 한여옥을 알게 되고 장산이를 받아내고 이철의 투옥과 아기의 죽음 그리고 여옥의 영이별이 되어버린 망명을 지켜보면서, 형 대신 자신이 그의 아우를 돌보아야 한다는 책임감이 생겼던 것이었다. 이철이 버드나무 집을 떠나던 날 그는 물론 형수에게는 자기 생각을 밝혔다. 언젠가는 형에게도 전해지겠지 하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는 석방되고 돌아와 밖에 나가지도 않고 집안에 틀어박혀 지냈다. 이철은 감옥에서 나온 뒤 지정된 날짜에 영등포 경찰서로 가서 보호관찰 담당자에게 자진신고를 해야 하였다. 그의 담당자는 다름 아닌 야마시타 최달영이었다. 야마시타는 이제 고등계 형사반장이었다. 모리가 다른 부서로 발령받아 떠난 자리를 그가 이어받은 셈이었다. 이철이 정문 입초에게 경찰서에 온 목적을 이야기하자 그가 전화로 보고하고 잠시 후에 형사 보조가 나와서 그를 데리고 이층 고등계 사무실로 데려갔다. 고등계는 대개가 외근이어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형사들은 두어 명 있었는데 칸막이 너머의 반장 자리에서 야마시타는 전화를 받고 있었다. 이철이 보조의 뒤를 따라 들어서자 그는 유창한 일본어로 지껄이면서 들고 있던 만년필로 앞자리를 가리키며 앉으라는 시늉을 했다. 이철은 그 자리에 앉았고 보조가 그의 등 뒤에 다소곳한 자세로 서있었다. 야마시타가 수화기를 내려놓고 이철에게 말했다.
“여어, 두쇠 고생 많았지? 자네 보호관찰 기간이 형기만큼이야. 그러니 일 년 육 개월 동안 우리에게 생활 보고를 해야지.”
“알고 있소.”
이철은 무뚝뚝하게 대답했고 야마시타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그러게 왜 사상운동은 하구 다니냐구. 자네 아이는 낳자마자 사망하고 한여옥이는 달아나고. 집안이 풍비박산이 되었잖나? 자네 아버지 형 모두 얼마나 선량하고 성실하게 사는 분들인가. 그래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할 건가?”
“별로 생각해 보지 않아서……”
이철은 당장에 달려들어 그의 모가지를 두 손목에 움켜쥐어 비틀어버리고 싶었지만 이를 꽉 물고 턱에 힘만 주고 앉아있었다. 야마시타는 버릇처럼 만년필로 책상을 톡톡톡 두드리며 낮은 목소리지만 위협적으로 말했다.
“생각해보지 않았다? 니가 쓴 전향서 아직도 우리 서류철에 보관되어 있다. 그거 진심이 아니란 거, 우리 모두가 알지. 니가 달라진 생활을 보여주지 않으면 우리는 너를 당장에 잡아넣을 수 있지. 지금 이 자리에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자필로 자술서를 쓰도록.”
그는 펜과 잉크병과 줄이 쳐진 양면괘지를 그의 앞에 내밀어 주었다.
“여기다 써라. 석방 소감과 앞으로의 생활계획을.”
보조를 이철의 옆에 남겨둔 채 야마시타는 잠시 자리를 떴다. 이철은 꼼짝도 않고 양면괘지에 그어진 검은 선을 내려다보았다. 저 선 안에 나의 생활을 적어 넣으라는 것이다. 그는 펜을 잡을 생각도 없이 비어있는 야마시타의 의자를 노려보며 앉아 있었다. 삼십 분쯤 지나서 형사반장 야마시타가 돌아왔고 그는 처음 그대로 놓여있는 양면괘지를 보자 화를 냈다.
“이 자식이 누굴 놀리나? 자술서를 쓰라고 했잖아?”
“어떻게 써야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 그럼 불러줄 테니 받아써.”
“성명 생년월일 주소.”
이철은 끄적였다. 야마시타가 불러주기 시작했다.
“저는 어리석은 실수로 불령선인들의 조직에 연루되어 체포 투옥되었고, 지난 일 년 육 개월 동안의 형기를 마치고 7월 21일에 석방 되었습니다. 그동안 저는 잘못을 뉘우치고 대일본제국의 황국신민이 되어 충성한 마음으로 성실하게 살아갈 것을……”
야마시타는 중얼거리다가 이철이 쓰고 있는 종이를 들여다보더니 화가 나서 손바닥으로 그의 머리를 후려치면서 외쳤다.
“바카, 이런 개새끼! 누가 언문으로 쓰라구 했나? 국어로 쓰란 말이다, 국어로.”
“국어는 잊어버렸습니다.”
야마시타는 점점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오는 모양이었다.
“너 보통학교까지 나오고 기술강습소까지 거친 녀석이 국어를 모른다? 이 자식 안되겠구나. 조사실루 내려갈 테냐?”
뒤에서 지켜보던 보조가 답답했던지 이철의 뺨을 후려치고는 의자에서 밀쳐냈다.
“바닥에 꿇어앉아 있어.”
그리고는 이철이 앉았던 자리에 앉아 야마시타가 불러준 문장들을 능숙한 일본어로 휘갈겨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펜을 멈추고 이철의 뒷통수에 대고 물었다.
“앞으로의 계획이 뭔가?”
“밥은 먹구 살아야겠지요.”
철도원 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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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지」 「삼포 가는 길」 『무기의 그늘』 『장길산』… 소설의 제목만 들어도 역사가 그려지는 한국의 대표 작가. 1943년 만주에서 태어나 4.19와 5.18, 방북과 망명, 수감을 거쳐 한국의 현대사를 온 몸으로 받아낸 시대의 증인이다. 2000년대 이후 장편소설 『오래된 정원』 『손님』 『바리데기』 『개밥바라기별』 『강남몽』 『낯익은 세상』 『여울물 소리』 『해질 무렵』 등과 자전 『수인』을 잇달아 펴내고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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