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스24 북클러버] 정여울 ‘에고’와 ‘셀프’를 탐구하는 시간

정여울 작가와 함께하는 북클러버 2기 두 번째 『융의 영혼의 지도』를 함께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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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자기가 되는 과정인 ‘개성화’는 마음속 깊이 자리 잡은 상처를 대면할 용기를 내고, 그 안에 숨겨진 무의식을 만나는 과정이 필요해요.” (2019. 11. 06)

지난 10월 29일, 정여울 작가와 함께하는 북클러버 2기 두 번째 모임이 진행되었다. 이번에 함께 읽은 책은 『융의 영혼의 지도』  다. 정여울 작가는 책에 담긴 융의 이론에 자신의 경험을 더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후 참가자들은 자신의 ‘에고’와 ‘셀프’가 무엇인지 탐구해보는 시간을 보냈다.


“쉽고 재미있는 책은 새로운 걸 알려준다기보다는 알고 있는 걸 재확인시켜주는 즐거움을 주죠. 진짜 새로운 건 장애물이 있어요. 이번 북클럽을 통해 함께 읽었고, 읽기로 한 세 권의 책도 읽으면서 쉽지만은 않으셨을 거예요. 특히  『융의 영혼의 지도』  가 가장 어려우셨을 텐데요. 쉬운 책은 혼자서도 읽을 수 있지만, 함께 읽는 책은 낯설고 새로운 걸 느꼈으면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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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의 영혼의 지도』  는 융 심리학 전문가인 머리 슈타인 박사가 융의 분석 심리학 이론을 설명한 개론서다. 저자는 융의 이론을 지도 제작 과정에 빗대어 설명한다. 자아, 콤플렉스, 리비도, 그림자, 아니마와 아니무스, 자기, 개성화 등 융 심리학의 핵심 이론에 다가가도록 안내한다.


“저도 10년 이상 융 심리학을 공부했는데요. 시작하니까 정말 끝이 없고, 어려워요. 그런데 한 가지 분명한 건 나 자신이 성숙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거예요. 융은 누구에게나 내면에 잠재력이 있다고 믿었어요. 트라우마를 대면하고 마주 볼 수 있을 때 숨겨진 잠재력을 끌어낼 수 있다고 믿었어요. 저 역시 공부하면서 나의 상처를 대면하고 바라볼 힘을 키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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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클러버 모임을 진행한 예스24 홍대점

 

 

사회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나를 탐구하다


융 심리학에서 말하는 궁극적인 자기완성은 ‘개성화’다. 사회에 적응하고, 사람들과 관계 맺고, 성공이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사회화라면, 진짜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 개성화다. 정여울 작가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을 소개하며, 주인공 싱클레어가 점차 데미안이 되어가는 과정을 개성화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불행하고 나약한 인간이었던 싱클레어가 데미안을 통해 자신의 그림자와 콤플렉스를 발견하면서 내면의 자신, 즉 셀프의 정체성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예전에 제 수업을 들었던 분의 이야기예요. 기자가 너무 되고 싶어서 기자가 됐는데, 막상 일을 시작하니 그동안 생각했던 모습이 아니었던 거예요. 그럴 때는 내가 하는 일이 얼마나 개성화가 되어 있는지, 사회화와 개성화의 비율이 어느 정도인지 생각해 봐야 해요. 조직에서 시키는 것, 주어진 일만 마감하다 보면 개성화가 될 수 없죠. 사회화는 어떤 직업이 되거나 사회적인 성취로도 해소될 수 있지만, 개성화는 내가 꿈꾸던 직업을 가져도 해소가 안 될 수 있어요.”


개성화되어간다는 건 잠재된 무의식과 만나는 과정이기도 하다. 정여울 작가는 애니메이션 라푼젤을 예로 들어 설명해주었다. 라푼젤의 어머니가 라푼젤을 임신하고 있을 때 마녀의 상추밭에 자라고 있는 상추를 보며 남편에게 조른다. 저 상추 하나만 먹을 수 있다면 행복할 것 같다고 조르는 임신한 아내의 부탁에 남편은 몰래 부인을 위해 상추를 따다 준다. 몇 번 상추 서리를 하다가 마녀에게 들킨 남편은 태어날 아기를 마녀에게 바치기로 한다.


그렇게 버려진 아이가 라푼젤이다. 마녀는 라푼젤을 독차지하고, 그의 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해 높은 성에 가두고 머리를 자르지 못하게 한다. 라푼젤은 마녀의 주문에만 반응해 성 아래로 머리를 늘어뜨린다. 이를 본 이웃 나라의 왕자가 마녀처럼 주문을 외고, 라푼젤은 태어나 처음으로 마녀 외의 타인을 만나게 된다.


“이때 라푼젤이 마녀에게 ‘엄마를 끌어올릴 때는 머리가 너무 아픈데, 왕자를 끌어당길 때는 하나도 안 힘들다’는 말을 해요. 라푼젤이 어떤 사람을 알게 된 후로 삶이 바뀌는 걸 경험하게 된 거죠. 저는 이게 융 심리학의 개성화를 설명해주는 것 같아요. 내면에 있던 진짜 욕망을 마주한 거예요. 성안에 갇혀서 아무것도 몰랐던 공주가 다른 세계를 알게 되면서 그쪽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그린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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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 작가

 

 

아픈 상처를 마주 보고 잠재된 무의식을 끄집어내다


많은 사람이 개성화를 추구하다 실패하는 이유가 자기 자신의 트라우마를 만나는 걸 어려워하기 때문이다. 융은 트라우마와 무의식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인간에게는 트라우마를 극복할 힘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아래에 깔린 무의식적인 잠재력을 끌어낼 가능성이 있다고 믿었다.


“융이 덜 주목받았던 이유가 그림자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사람들은 콤플렉스나 트라우마 같은 그림자를 생각하기 싫어하고, 자신의 방어기제를 뚫는 것을 어려워하기 마련이죠. 그래서 그동안 융이 사랑받지 못했던 것 같아요.”


융 심리학은 콤플렉스나 그림자를 극복하고 진짜 자기 자신을 마주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 행복하지 않은지, 내 안에 숨은 잠재력이 무엇인지, 질문하면서 살 수 있어야 한다. 자기 자신의 핵심 트라우마를 찾아 극복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더 나은 개성화의 길을 걸을 수 있다.


“콤플렉스나 그림자는 살면서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것 같아요. 자기 안에서 해결하지 못하면 주변이나 자식에게 자신의 콤플렉스를 전가하기도 하죠. 저희 어머니가 콤플렉스에 붙들려 살고 계실 때는 제가 성적이 잘 나오면 주변의 다른 분들에게 한턱을 내셨어요. 제 성적이 자기 거였던 거예요. 저는 그래서 1등을 해도 기쁘지 않고, 다음에 성적이 떨어질까 봐 두려워했어요. 지금은 제가 행복하니까 엄마도 행복하다고 말씀하세요. 그동안 엄마도 많이 성장하신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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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별로 앉은 참가자들이 자신의 ‘에고’와 ‘셀프’를 나누어 적고 있다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다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볼 때 콩깍지 쓰인 눈으로 바라보는 것, 내가 바라는 모습으로 상대를 바라보고 거기에 맞추려고 하는 것이 ‘투사’다. 타인에게 내가 원하는 모습을 강요하면서 사랑이라고 착각하지만, 그건 사랑이 아닌 집착이나 투사다.


“부모, 자식 관계에서 공부를 잘하면 사랑한다는 조건 있는 사랑이잖아요. 이런 건 눈에 보이죠. 고흐의 부모님도 고흐가 목사가 되면, 선교사가 되면 사랑해준다는 조건을 내밀었던 거예요. 그래서 성공하지 못한 화가가 된 맏아들을 인정할 수 없었죠. 자기가 원하는 모습을 투사했지만, 안 되니까 실망한 거예요. 여기에서 분리되어야 해요. 너의 행복과 나의 행복은 분리되어 있다는 걸 인정하고 각자의 블리스를 추구해야 해요.”


진정한 자아를 만나는 과정에서는 겉으로 드러난 성별 외에도 내면에 억압된 여성성이나 남성성을 만나는 일도 필요하다. 융은 여성에게 억압된 무의식의 남성성을 아니무스라고 하고, 남성에게 억압된 무의식의 여성성을 아니마라고 했다.


“아니무스가 발현되면서, 아니마가 발현되면서 진짜 개성화가 되는 사람이 있어요. 영화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에서 주인공인 애블린은 사람들이 노처녀라고 할까 봐 일찍 결혼하고, 이기적이라는 소리를 듣는 게 싫어서 아기를 낳는 등 과잉 사회화된 상태로 오랜 세월을 산 사람이었어요. 당시 많은 80년대 미국 중산층 여성이 살았던 삶이었죠. 다른 사람이 원하는 대로 사는 것, 눈에 띄지 않는 게 유일한 목표였는데, 슈퍼마켓을 가다가 부딪쳤단 이유로 온갖 혐오 표현을 들어요. 그 사건 이후로 애블린의 아니무스가 깨어나게 돼요.”


개성화가 되는 때는 위기인 순간이 대부분이다. ‘내가 나를 잃어버리는 건 아닐까, 나는 누구일까’를 고민하면서 개성화가 시작된다. 조금씩 자신의 삶을 생각하기 시작할 때 애블린은 양로원에서 만난 노인에게 잇지와 루스라는 두 여성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두 여성의 이야기를 통해 내면의 목소리를 찾은 애블린은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


평생 수동적인 태도로 사회의 요구에 맞는 ‘여성’의 역할에만 머물러 있던 애블린이 내면의 아니무스를 만나면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선택하면서 살게 되는 것이다.


“좋아하는 걸 좋아한다고, 싫은 걸 싫다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아니무스가 필요해요. 그런데 최근에는 아니무스를 표현하는 분들은 많아진 것 같아요. 내 마음을 표현하고, 드러내고, 원하는 걸 말하고 쟁취하는 게 좀 더 자유로워진 거죠. 그렇다면 그렇기 때문에 놓치는 것들은 무엇이 있을지도 생각해 보면 좋겠어요. 다양한 생각을 통해서 나의 에고와 셀프를 나눠서 써 보는 시간을 가져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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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 향하는 길을 생각하다


정여울 작가의 강연 이후 참가자들은 사회 속에서 드러내는 모습인 에고와 내면에 잠재된 모습인 셀프는 어떤 모습인지를 종이에 적었다. 참가자들은 “나는 도전하는 걸 싫어한다, 전원생활을 하고 싶다,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 독립시키고 싶다, 남들이 어떻든 관심 없다, 내가 나의 기분까지 책임져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부정적이고 냉소적인 내가 좋다.” 등 자기 안에 있는 다양한 모습을 에고와 셀프로 분류해 적었다.


“이렇게 모아 놓고 읽어 보니까 우리의 셀프가 원하는 것은 비슷한 것 같아요. 우리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지 못한 삶을 살기 싫어하고, 역할에 갇혀 있는 것보다는 진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면서 살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지금 10분 남짓한 시간 동안 쓴 내용이지만, 정말 많은 진심이 비쳐서 나왔거든요. 내가 찾고 싶은 나의 개성화의 길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서 한 편의 글로 써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정여울 작가와의 세 번째 북클러버 모임은 11월 26일 화요일 오후 7시 30분에 예스24 홍대점에서 진행된다. 북클러버 2기 마지막 모임에서 함께 읽을 책은  『작은 아씨들』  (윌북) 이다.


 

 

융의 영혼의 지도머리 스타인 저 / 김창한 역 | 문예출판사
‘융의 영혼의 지도를 30년 가까이 연구해 정제한 결실’이라는 자신에 찬 서론이 허언이 아님을 충실한 내용으로 잘 보여주고 있고,더없이 대중적으로 잘 요약 정리된 융 입문서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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