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무한 반복

<월간 채널예스>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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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과거를 코앞으로 소환해서 몇 번이고 재현하는 사람들. (2019. 11.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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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손은경

 

 

지난봄 꽃나무 아래를 홀로 걷다가 외할머니를 생각했다. 그는 벌써 일흔 번째 벚꽃의 계절을 지나치고 있을 것이다. 비슷한 시절에 태어난 수많은 여자들처럼 내 외할머니의 이름 역시 ‘자(子)’로 끝난다. 1948년생 존자 씨. 봄을 뒤로 둔 채 아파트 청소 일을 다니고 꽃길을 종종걸음으로 지나칠 존자 씨를 상상하다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올 말들도 마구 떠올라 나는 혼자 웃었다. 존자 씨의 화법은 좀 무지막지한 데가 있다. 애정의 말들을 아낌없는 정도가 아니라 거의 폭격처럼 쏟아붓는다. 래퍼로 치면 MC스나이퍼와 흡사하다. 존자 씨가 속사포처럼 사랑과 미안함과 고마움을 표현하는 중엔 도무지 끼어들 틈이 없다. 휴대폰 주소록에서 외할머니를 검색했다.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그가 퇴근하고 집에 올 시간이었다. 존자 씨는 금방 “워야~” 하고 전화를 받았다. 충청남도 공주 출신인 존자 씨에게 ‘워야’는 접두사처럼 쓰이지만 나는 아직도 그게 정확히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굳이 찾자면 ‘오구오구’, ‘my baby~’ 등과 비슷한 뉘앙스다.


“외할머니, 저 슬아예요.”


“워야~ 사랑하는 우래기~”


“할머니 어떻게 지내시나 궁금해서 전화했어요.”


“이~ 이~ 그랴~ 할머니가 참말로 고마워~ 우래기 워째~ 워매...”


뭘 어쩌냐는 건지는 몰라도 대충 내 일상 전반에 대한 염려로 이해하면 된다. ‘How are you?’ 같은 의미다. 그리고 ‘이~’는 추임새 같은 거다. 랩에서 ‘yo’나 ‘you know’와도 비슷하다.


“잘 지냈어요. 할머니는요?”


“이~ 워야~ 나는 걱정 하덜덜 말어~ 우래기가 힘들지. 우래기가 참말루다가 장햐~ 이~ 너무 장하구 너무 훌륭햐~ 그리고 증맬루 착햐~”


“감사해요, 할머...”


“휴대폰으루다가 보니까는 워매 우래기가 시방 너무너무 잘하고 있어야~ 할부지가 다 보여 줬다야~ 손녀딸 신문 나구 했다구~ 시방 동네 사람들헌티 다 말햐~ 다 안디야~”


외할아버지의 이름은 병찬 씨다. 존자 씨의 남편이자 복희의 아빠인 그는 얼리어답터다. 1970년대에 공주시 이인면에서 전파사를 운영했다. 기계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이해하고 다루는 능력이 동네 사람들 중 가장 뛰어났다. 2010년대의 병찬 씨는 엔지니어로서 노인 봉사 활동에 참여한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린다. 사진 속에서 그는 화려한 재킷을 입고 장구를 메고 있다. 재주도 흥도 끼도 이웃에 대한 관심도 많은 남자인 것이다. 그런 남자의 아내는 한이 켜켜이 쌓였을 확률이 높다. 존자 씨도 그렇다. 그녀는 소싯적에 혼자 돈 버느라 고생한 기억이 떠오를라치면 병찬 씨에게 험한 말을 서슴지 않는다.


“평생 그냥 밖으로 나돌구 마누라랑 자식새끼들 고생시키구 이? 돈은 안 벌어 오구 이? 봉사는 뭔 지랄 같은 봉사여 시방?”


존자 씨는 애정의 말이나 분노의 말이나 몹시 뜨거운 온도로 내뱉는다. 하지만 태평한 병찬 씨는 부처 같은 얼굴로 존자 씨 말을 BGM처럼 흘려듣는다. 아주 불같은 여자와 미적지근한 남자가 한집에서 살아왔다. 둘의 조합 역시 내게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병찬 씨는 페이스북에서 가끔 나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페북 메시지 기능 중에는 ‘손 흔들기’라는 기능이 있는데 그 버튼을 자주 눌러 준다. 내 휴대폰에는 이런 알림이 뜬다. ‘장병찬 님이 회원님께 손을 흔들었습니다. 회원님도 손을 흔들어 대답해 보세요.’ 그러면 나도 손 흔들기 버튼을 누른다. 병찬 씨는 꽃 이모티콘으로 답장을 대신한다. 내게는 병찬 씨가 파 준 도장이 있다. 그는 전파사에 있던 도장 기계를 아직도 쓴다. 그 기계로 내 이름을 새겨 주었다. 대체로 존자 씨와 병찬 씨를 잊은 채 지내지만 중요한 약속을 맺을 때마다 기억하게 된다. 출판사 혹은 서점과의 계약서에 도장을 꾸욱 찍는 순간, 내 엄마의 부모 얼굴이 아른거리는 거다. 아무튼 지금 내 귀를 강타하는 건 전화기 너머 존자 씨의 목소리다. 손녀가 책 내고 신문 났다고 동네 사람들에게 다 알린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할아버지가 기사 난 거 보여 주셨나 봐요. 그래도 제가 아직 갈 길이 멀어요. 할머…”


“천천히 햐~ 우래기는 어려서부터 남달랐어야~ 애기 적부터 마빡이 툭 튀나와 가지구 아주 야물딱졌어야~ 그때부터 우래기가 너무 똑똑허구 너무 대견스럽구 착햐~ 너무 훌륭햐~”


이쯤 되니 내가 ‘너무’라는 말을 너무 남발하는 게 가족력으로 여겨진다. 존자 씨의 너무한 말들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우래기가 넉넉지 않은 집에서 태어나서 고생도 많이 했어야~ 그래도 니 엄마를 닮아 가지고 참말로다가 밝구 성실햐~ 복희도 어려서부터 참말로 야무지고~ 이~ 그류~”


“감사해요~ 엄마는 아마도 할머니를 닮아서 그런 거겠...”


“니 엄마가 대학만 갔어도 인생이 달랐는디... 내가 느이 엄마를 대학을 못 보내 가지고... 워째...”


존자 씨는 갑자기 조금 울먹거렸다. 복희가 내 옆에 있었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우럼마 또 시작이네.” 복희 대학 못 보낸 ‘썰’은 외갓집의 명절 때마다 반복되어 왔다. 존자 씨는 너무나 아쉽고 미안했던 것이다. 딸이 국문과에 합격했는데도 돈이 없어서 못 보냈던 시절이 말이다. 그래서 몇 번이고 다시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복희가 대학에 못 들어간 게 이제는 삼십 년도 더 지난 일이었다. 존자 씨의 한탄에 대한 복희의 반응은 다음과 같이 변주되어 왔다.


2011년: “엄마, 이제 내 딸이 대학에 입학하는 마당에 아직도 그 소리야?”


2016년: “엄마, 이제 내 딸이 대학을 졸업하는 마당에 아직도 그 소리야?”


2019년: “엄마, 이제 내 딸이 대학을 졸업해서 학자금 대출도 다 갚은 마당에 아직도 그 소리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자 씨의 설움은 마치 어제 일인 양 생생하다. 세상에는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과거를 코앞으로 소환해서 몇 번이고 재현하는 사람들. 존자 씨가 이 시대에 태어났다면 작가가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작가가 아니라면 적어도 파워 트위터리안으로 지냈을 듯하다.


“내가 대학 못 보내 가지구 느이 엄마두 고생을 너무 많이 했어야~ 그 시절에 니 엄마가 소주 세 병 사 가지구 다락방으로 들어가는디 내 가슴이 찢어져~ 사랑하는 자식들헌티 너무 미안한 게 많어~ 우리 새끼들 참말루 착헌디~ 할머니가 못나 가지구 너무 미안햐~ 그리고 사랑햐~ 너무 훌륭하구 다들 착햐~ 다들 너무 대견스럽...”


쉴 새 없는 사랑의 말들 속에서 할머니 본인의 안부를 한 마디 들으려면 어쩔 수 없이 말을 끊어야 한다.

“할머니, 일 다니는 건 안 힘드세요?”


“이? 뭐가 힘들어~ 일 댕깅께 좋아~ 놀믄 뭐햐~”


“고생스러우실까 봐 걱정이 돼요.”


“워메~ 그런 말 하덜덜 말어~ 우리 손주들이 아플까 봐 걱정여~ 우래기 참말로 사랑햐~ 대견햐~ 훌륭햐~”


“할머니! 저도 사랑해요~”


“그랴~ 사랑하구 대견하구 훌륭햐!”


“할머니~ 알겠어요!”


“그류~ 이 할미가 너무너무 사랑햐~~”


“네 할머니..! 끊을게요..!”


“그랴그랴~ 사랑하는 우래기~~ 장햐~ 사랑햐~”


“네!”


“사랑햐~ 우래기들 참말루 사랑하구 대견스럽구 훌륭하구 사랑...”


“할머니~ 이제 끊을게요~”


“그랴~ 사랑햐~ 참말루~ 사랑...”


전화를 끊고 나서도 사랑이라는 말이 귓가에 위잉 위잉 맴돌았다. 내가 먼저 끊지 않았다면 존자 씨는 몇 번이나 더 사랑을 이야기했을 것이다. 나는 그에게 하려 했던 말의 반의반도 하지 못했지만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이게 프리스타일 랩 배틀이었으면 나는 진작 말렸다. 그는 몇 번이고 사랑의 말을 변주하며 반복할 테고 나는 황홀하고 정신없는 패배를 매번 맞이할 것이다. 도대체 이 사랑은 무얼까. 어떻게 이렇게나 듬뿍 가능할까. 나도 존자 씨 같은 할머니가 될까. 사랑과 미안함과 고마움을 지치지도 않고 반복해서 말할 수 있을까. 다음 주면 다 져 버릴 꽃길을 천천히 걸어 집에 돌아왔다. 할머니와 나란히 걸은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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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슬아(작가)

연재노동자 (1992~). 서울에서 태어나 살아가고 있다. <이슬아 수필집>,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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