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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터 2-10] 34화 : 탄떼기와 차떼기

『마터 2-10』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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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떼기는 시중가격의 절반 값이어서 역 인근 상인들이 서로 기관수에게 줄을 대려고 난리였다. 현장 박치기도 있고 한 달에 한 번씩 몰아서 지불하는 경우도 있었다. (2019.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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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널예스>에서 황석영 소설가의 신작 『마터 2-10』을 매주 월/수요일 연재합니다.

 

 

 

일철이 말없이 머쓱해서 앉아 있었더니 야마구치가 사케를 잔에다 부어 주며 그에게 말했다.


 “자네 신혼이라구 했지? 반년이나 지났으니 이미 구혼이다. 오입 개시 날짜가 충분히 지났다.”


야마구치가 다시 묻지도 않고 여자에게 일렀다.


 “자네가 알아서 제일 최근에 온 녀석으로 데려와라.”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고다쯔가 얼어 죽은 모양일세. 방이 왜 이렇게 추워?”


 “죄송합니다. 늦은 시간이라 고다쯔가 꺼진 모양이에요.”


 “뭐 괜찮다. 곧 잘 테니까.”


그녀가 사라지고 사케 잔이 서너 번쯤 오간 뒤에 나츠카가 개화 한복 차림의 소녀를 데리고 들어왔다. 일철은 옷차림새가 아니라도 그녀가 조선인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화장을 안 한 얼굴과 단발머리에 무엇보다도 발목 위로 올라간 개화치마에다 고름 없는 누비저고리 차림이었다. 얌전히 모은 두 발에는 코버선을 신었다. 일철은 말이 없는데 야마구치가 감탄을 했다.


 “호오, 들꽃이구나. 이름이 뭐라고?”


나츠카가 눈짓을 하자 조선여자는 조그만 소리로 말했다.


 “하, 하루카.”


 “허허 이 집은 전부 향기 향자를 쓰는 모양이군.”


일철은 속으로 그녀에게 붙인 이름이 하필이면 춘향인가 하여 풋 하는 웃음소리를 낼 뻔하였다.


 “오늘은 우리 이군을 잘 부탁한다.”


야마구치와 나츠카는 서로 눈짓을 하고는 이층으로 올라가고 둘은 한참이나 말없이 앉아 있었다. 졸음을 참지 못했던지 하루카 춘향이가 이도령에게 먼저 말을 꺼냈다.


 “주무시지요.”          


일철은 응접실에 혼자 남겨지는 것도 쑥스러워 말없이 엉거주춤 일어났고 여자의 뒤를 따라 이층으로 올라가 복도의 맨 안쪽 끝에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방안에는 이미 이부자리가 깔려 있었고 두동달이 기다란 베개가 머리맡에 놓여 있다.


 “목욕 하시려면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아니, 괜찮소.”


하고 일철은 얼른 말해버렸다.


 “나는 피곤해서…… 그냥 혼자 자겠소.”


여자는 그에게 사정하듯이 말했다.


 “그러시면 저만 혼이 납니다. 제발 나가라고 하지 마셔요.”


둘은 다시 한참이나 앉아 있더니 여자가 먼저 말을 꺼냈다.


 “불 끄고 주무시지요.”


 “먼저 누우시오. 나는 좀 앉았다가 돌아갈 테니.”


여자가 발돋움하여 공중에 매달린 알전구의 스위치를 끄고 부스럭거리며 겉옷을 벗고 이부자리 안으로 들어가 누웠다. 일철은 그대로 어둠 속에 앉아 있었다. 다시 여자가 중얼거렸다.


 “저 조선옷 안 입을라구 그랬는데 여기서 갖다 주며 자꾸만 입으라구 해서요.”


일철이 조선옷이든 일본 옷이든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그냥 입을 다물고 듣기만 했다. 


 “조선집에 가겠다구 그랬더니 거긴 굴다리 지나서 여기보다 더 험한 데라구 해서요.”


여기 일본 유곽에서 조선 사람 특색을 보이는 것이 동포에게 수치스럽다는 뜻이었을까. 이 아이는 어떻게 여기에 오게 되었을까. 춘궁기의 농촌에 가서 과년한 딸을 취직시켜 주겠다며 몇 십 원 가불해 주고 데려왔을 것이다. 일 년이 넘으면 소녀는 능숙해지고 노련한 창녀가 되어 하루히초의 춘향이로 오입쟁이들 사이에 이름을 날리게 될지도 모르고, 병을 얻거나 부적응자로 찍혀서 보다 헐값에 역전 사창가로 팔려갔다가 나이 들며 벽지의 광산 지대나 섬의 파시로 팔려가고 서른 살도 못 되어 죽을지도 모른다. 두쇠는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민족해방은 이런 사람들에게까지 새로운 삶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것일까. 일철은 소녀가 나직하게 고른 숨을 내쉬며 잠든 기척을 알아채고는 외투를 집어 들고 발소리를 죽여 조심스럽게 이층 계단을 내려왔다.


이튿날 서울로 출발할 시각에 면도 깨끗이 하고 간밤의 석탄 얼룩도 사라진 야마구치가 기관실에 올라와서는 일철을 나무랐다. 


 “이군 바카데쇼! 어제 각자 삼원씩이나 주었는데 그냥 도망쳐?”


 “피곤해서 숙소로 곧장 왔습니다.”


일철은 그렇게 얼버무리면서 생각했다. 그러면 야마구치는 어제 유곽에서 6원을 지불했다는 얘기다. 쌀 한 가마에 5원이니 그들은 어제 쌀 한 가마 이상을 먹어치운 셈이었다. 조선인 기관수 조수인 자신의 월급이 30원이고 기관수가 되면 배가 되어 40원쯤 될 테고 그는 일본인으로서 조선인의 두 배를 받으니까 적어도 80원쯤 되는 셈이었다. 그렇다고는 하여도 무슨 돈으로 그는 숙박지마다 외박을 하며 유흥비를 쓸 수 있는 걸까. 일철은 나중에야 기관수들의 ‘탄떼기’라는 용돈벌이가 선배들로부터 물려 내려온다는 걸 알게 되었다. 대전에서 그런 일이 있고 나서 며칠 후에 일철과 김군은 철도원 합숙소로 가고 야마구치는 다른 일본인 기관수들과 외박을 나갔다. 그는 출발 전에 기차에 오르기 전에 일철을 한쪽으로 불렀다.  


 “이거 경성 가면 김군과 밥이든 술이든 사먹어라.”


그가 네모반듯하게 접은 것을 일철의 작업복 주머니에 재빨리 집어넣어 주었다. 나중에 가만히 꺼내보니 일 원짜리 석장이었다. 탄떼기는 대개 중간 기착지의 역이나 종착역에서 벌어진다. 이를테면 천안역이라면 출발하고 나서 기차가 역 구내를 벗어나 외곽에 접어들기 직전쯤이 적당한 장소가 된다. 그때에 야마구치는 운전대를 일철에게 넘기고 탄부 김군까지도 뒤에 젖혀 놓고 자기가 직접 부삽을 잡는다. 기차의 화실은 거대한 난로 같은 구조인데 바닥에 타버린 석탄재가 쌓이기 마련이다. 역에서 급수를 보충하기도 하며 재는 반드시 정차하여 털어내야 한다. 개폐봉을 밀어 화실의 바닥을 활짝 열고 침목 아래로 재를 버리면 선로계에서 말끔하게 걷어간다. 기차가 출발하여 서행을 하면서 약속된 장소에 이르면 속도를 내는 때처럼 부지런히 삽으로 갈탄을 퍼서 화실 안으로 수북이 집어 던지고는 화실 바닥을 열고 지나간다. 침목 위로 석탄이 줄지어 깔린다. 기다리고 있던 업자가 일꾼 몇 명 데리고 와서 기다렸다가 버리고 간 갈탄을 부대자루에 담아 수레에 싣고 사라진다. 이미 그는 역 구내에서 대기 중인 기관수에게 갈탄 값을 미리 지불했을 것이다.


탄떼기는 시중가격의 절반 값이어서 역 인근 상인들이 서로 기관수에게 줄을 대려고 난리였다. 현장 박치기도 있고 한 달에 한 번씩 몰아서 지불하는 경우도 있었다. 종착역에서는 역 구내로 진입하기 전의 외곽 초입에서 화실의 바닥을 열어준다. 출발역에서 탄을 받는데 대개 기관차의 종류와 견인하는 차량의 수와 화물 무게 등을 측정하여 갈탄을 지급한다. 미카의 경우 최대 견인 차량이 24량이므로 그에 준하여 지급하는데 도중에 연료가 떨어지면 큰 사고의 원인이 되므로 넉넉하게 급탄한다. 견인 차량이 줄어들면 연료도 그만큼 남게 되니까 그것은 야간 근무를 많이 하고 위험하고 고된 작업을 하는 기관수의 일종의 보너스인 셈이었다. 따라서 기관수들은 서무과 차량계의 담당직원에게 평소에 기름칠을 자주 해주어야 하였다. 아마도 한 노선에서 탄떼기 한 번 또는 두 번에 야마구치는 십 원에서 십오 원 정도의 부수입을 올렸을 것이었다. 여러 지방 도시의 중심가가 모두 역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었고, 그중 술집 요정 유곽에서 기관차의 기관수들이 ‘기마에’도 좋고 배운 사람들이며 인물도 훤칠하다 하여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시중에서 기관수는 길에서 살며 그래서 좀 놀 줄 아는 한량들로 불렸다. 대륙을 뛰는 기관수들은 국내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통 크고 수입도 많았고 현지에 애인 없는 자가 없을 정도라고 했고 댄스홀 바아 등지에서 인기였다.


또한 탄떼기는 ‘차떼기’에 비하면 푼돈벌이에 지나지 않았다. 멀고 먼 지방을 연결하는 기관차는 사람도 나르지만 물자와 그 지역의 특산물도 나른다. 그곳에서는 값이 눅은 물건이 저곳으로 이동하면 몇 배가 되기도 한다. 먼 곳일수록 그 격차는 커진다. 차떼기도 종류가 여러 가지였는데 견인하는 화물열차의 차량 한 두 칸을 화물주와 짜고 규정된 운임의 절반 가격에 실어다 준다. 그보다 더 확실한 돈벌이는 아예 수완이 있는 현지인을 고용하여 계절마다 품귀가 되거나 값이 오르는 물건들을 입수해서는 등재되지 않은 기관수의 화물차량에 실어다 다른 고장에 팔아 넘긴다. 차떼기는 자주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어서 한 달에 한 두 번이면 큰 수입이 되었다. 수완 있는 기관수는 일본에서보다 두 세배의 수입을 올리는 식민지 근무를 자랑했고, 대륙을 뛰는 사람들은 고등관 참사가 부럽지 않았다고 전해졌다.


이일철은 대전 왕복 노선을 뛰는 날에는 저녁에 출근했다가 밤을 대전에서 보내고 다음날 오후에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서 쉬고 이튿날은 하루 종일 가족과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 저녁때에 출근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대전을 거쳐 부산까지 운행하는 날에는 전날 저녁에 출발하여 열두 시간 걸려서 다음 날 오전 부산에 도착해서 오후까지 잠자고, 다시 당일 저녁 출발하여 경성에 이튿날 오전에 도착하면 그날은 귀가하여 쉬고 다음날도 출근하지 않고 쉰다. 장거리 운행을 다녀온 이튿날에는 하루의 휴식 시간을 주는 셈이었다.
명절을 앞두고 부산에서 기장미역 등의 건어물과 구포배를 차떼기로 싣고 온 날에는 야마구치가 그들 앞으로 오십 원을 내놓아서 그는 삼백여 원 가까이 벌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었다. 일철은 야마구치에게서 수고비를 받을 때마다 어색하고 쑥스러웠다. 더구나 김군에게 자신이 받은 수고비를 나누어 줄 때에는 뭐라고 할 말도 없고 매우 난처하여 선뜻 내주지 못하고 늘 우물쭈물 하였다. 탄떼기 때에는 자기네가 얻는 돈이 삼사 원 정도라 일원으로 퇴근길에 그럴듯한 청요릿집이나 주점에 들러 함께 먹고 마시고 헤어질 때쯤 각자 일원씩 나누어 ‘애들 과자나 사들고 가게’라든지 ‘안사람 선물이라두 사게’하며 내줄 수가 있었다. 그러나 오십 원 정도라면 자기 월급 삼십 원을 훨씬 웃도는 액수인데다 김에게는 월급의 다섯 배가 되는 돈이었다. 그렇다고 자기의 월급만큼 삼십 원 차지하고 그의 십 원 월급의 두 배인 이십 원을 나누어 주기도 뭣하였다.

철도원 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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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황석영(소설가)

「객지」 「삼포 가는 길」 『무기의 그늘』 『장길산』… 소설의 제목만 들어도 역사가 그려지는 한국의 대표 작가. 1943년 만주에서 태어나 4.19와 5.18, 방북과 망명, 수감을 거쳐 한국의 현대사를 온 몸으로 받아낸 시대의 증인이다. 2000년대 이후 장편소설 『오래된 정원』 『손님』 『바리데기』 『개밥바라기별』 『강남몽』 『낯익은 세상』 『여울물 소리』 『해질 무렵』 등과 자전 『수인』을 잇달아 펴내고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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