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첫
‘당신의 관자놀이에 아직도 파닥이는 첫’
누군가는 첫 고양이를 들였고, 누군가는 새로운 직장에 다니기 시작했다. 나는 최근 첫 클라이밍을 해냈다. 아직 첫이 남아있어서 기쁘다. (2019. 07. 19)
언스플래쉬
회사에 새로 인턴이 들어왔다.
다른 사람의 '첫'을 볼 때마다 나의 첫을 생각한다. 첫사랑, 첫 월급, 첫 술자리와 첫 모닝커피. 뭔가 두근거리는데 이 마음이 무엇인지 생각하기도 전에 도망가 버리는 것들. 빠르게 지나간 첫 들은 다른 처음으로 채워지고, 처음 만난 사람은 가끔 영영 만나지 못할 사람이 된다.
당신은 사진첩을 열고 당신의 첫을 본다. 아마도 사진 속 첫이 당신을 생각한다. 생각한다고 생각한다.
김혜순, 『당신의 첫』 중 「첫」 일부
대학교 막학기 시절, 첫 면접은 지하철 종점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한참 들어간 가정집에서 이루어졌다. 나를 정희정 씨라고 발음하는 면접관을 만나 몇 마디를 나누다가, 인터뷰어인 면접관이나 인터뷰이인 나 둘 다 '아... 이놈(곳)은 글러 먹었다'라는 표정을 동시에 지었다. 암담했던 첫 면접의 추억.
첫 인턴을 지냈던 직장은 어땠는가. 면접 안내 메일에는 분명 정장이 아니어도 좋으니 단정하고 편한 차림으로 오라고 되어 있었는데, 면접장에 갔더니 모두 검은 H라인 스커트와 검은 정장 바지를 입은 채 구두코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정장 사이에 청바지가 끼면 아무리 깨끗한 청바지일지라도 금방 단정하지 못한 것으로 변한다. 누구도 나에게 뭐라고 하지 않았지만 면접 내내 안절부절못했다. 어떤 사람은 정장을 입고도 불안했는지 자기소개 시간에 "안녕하십니까! 생각은 빠르고 손발은 신중한 OOO입니다!"라고 했다. 아무래도 반대로 말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세상에는 준비하고 기다려도 안 되는 첫이 있다. 그다음 면접에는 그를 보지 못했다.
첫 직장의 기회는 어떻게 오나. 좋아하던 선배는 학교 교직원이 되는 게 꿈이어서 졸업한 뒤 대기업에 들어갔다. 교직원은 경력직만 뽑는다고 했다. 좋아하던 동기는 계약직을 전전하며 '안정적인 첫 정규직 직장'을 꿈꾸다 팀장 직책까지 올라갔다. 좋아하던 후배는 열심히 하면 정규직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믿었지만, 사실 나는 그 친구가 계약이 끝나면 떠나야 한다는 걸 미리 알고 있었다. 첫 자리가 늘 유지되지는 않았다. 처음 하는 사람에게 자리를 비워주는 사람이 되어야지, 말은 그렇게 하지만 늘, 여전히 다른 이보다 나의 첫이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한다.
'첫. 첫. 첫. 첫. 자판의 레일 위를 몸도 없이 혼자 달려가는'(「첫」 중) 손목으로 첫에 관해 생각한다. 김혜순의 시를 빌려 이야기를 꺼냈는데, 대학생 때 처음 만났던 시와 지금 시가 나에게 주는 형상이 달라져 있다. 흘려보낸 비관의 첫보다는 조금 더 환희의 첫에 발을 맞추고 싶어진다. 예전에는 첫이 ‘죽었다’는 것에 주목했으나, 지금은 ‘당신의 관자놀이에 아직도 파닥이는 첫’이 더 좋다.
저번 주에는 8년 만에 만난 친구와 8일 전 만난 것처럼 수다를 떨다 헤어졌다. "그럼, 40대 되어서 보자." 처음에는 지지고 볶던 사람들이 이렇게 담백하게 헤어지다니. 우리는 더이상 처음을 같이 보낸 사람들을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8년 만에 누군가는 첫 고양이를 들였고, 누군가는 새로운 직장에 다니기 시작했다. 나는 최근 첫 클라이밍을 해냈다. 아직 첫이 남아있어서 기쁘다. 당신에게 나는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새롭게 첫을 만들어내고 있다.
첫 자세는 늘 우스꽝스러울 수밖에.
새삼스레 오늘의 첫을 도전한다. 모르는 사람에게 농담을 던지고, 처음 맞는 2019년의 여름밤을 보낸다. 다른 이들도 오늘의 첫을 맘껏 즐기길.
<김혜순> 저10,800원(10% + 1%)
80년대 이후 한국 시에서 강력한 미학적 동력으로 역할해온 김혜순 시인의 아홉번째 시집. 멈추지 않는 상상적 에너지로 자신을 비우고, 자기 몸으로부터 다른 몸들을 끊임없이 꺼내오는 시인의 시학은 독창적인 상상적 언술의 가능성을 극한으로 밀고 나가며, 언제나 자기 반복의 자리에서 저만치 떨어져 있다. 때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