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진 김에 조금만 더

가끔 하늘과 땅이 뒤집어져도 생각만큼 큰일이 생기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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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만 반복되는, 답이 없는 이야기에서 한발 비켜선다. 학습된 의지와 그 대상조차 명확하지 않은 책임감으로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기로 한다. (2019.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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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 하늘과 땅이 뒤집어져도 생각만큼 큰일이 생기지는 않는다

 

 

넘어졌는데 일어나기 싫다. 말이 이상하지만 ‘일어나지 않는 중’이다. 이런 일은 처음이라 당황 했다거나 하는 그런 문제는 아니다. 이미 수차례 넘어져봤으니 방향을 살짝 틀면 몸을 일으키기 쉽다든가 조금만 손을 뻗으면 짚을 곳이 있다든가 하는 식의, 나름의 회복법은 가지고 있다. 일어나고 싶지 않은 거다. 지금까지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이런 상황에서 내가 하는 보통의 선택은 끙끙끙 하다가, ‘그래 이럴 땐 떡볶이지’ 또는, ‘역시 오늘도 떡볶이인가’ 아니면, ‘이번엔 어디 떡볶이로 가볼까’. 그것도 아니면, ‘몸에 안 좋은 걸 먹어야겠다’ 혹은, ‘맥주나 잔뜩 사가자’. 와구와구. 벌컥벌컥. 끝. 그러고는 또 일어나서 걷다가 뛰다가 하며 어디로든 움직이는 것이다. 그런데 떡볶이도 동력이 되지 않는 상태라니. 이것은 참으로 무서운 지경이 아닌가.

 

문득, 의욕을 찾으려고 의욕적이 되고 싶지는 않아.라고 생각한다. 계속 이렇지는 않을 거니까. 이러다가 금세 아무렇지 않아질 테니까. 그래 있어보자. 다시 가보자. 한번 해 보자. 그래그래 으쌰으쌰 하는데 일순 기분이 싸한 것이, 심신에 정적이 흐른다. 아니 세상에 왜 나라는 사람은 의욕을 가지겠다며 바닥을 긁어서까지 없는 기력을 북돋우는가. 의욕을 살리기 위해서는 그걸 되찾으려는 의욕이 필요한데 의욕이 없으니까 어찌하든 의욕을 끌어내야 하겠고 그런데 의욕은 생기지 않고. 응? 이게 뭐지? 질문만 반복되는, 답이 없는 이야기에서 한발 비켜선다. 학습된 의지와 그 대상조차 명확하지 않은 책임감으로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기로 한다.

 

크고 거친 파도를 만나면 서퍼는 몸을 돌려 보드 뒤로 숨거나, 바닷속으로 숨어 파도가 지나갈 때를 기다린다. 큰 파도를 제대로 피하지 못하면, 거친 물살에 속절없이 해변으로 밀려나 버리기 때문이다. 모든 것에 맞서는 대신 가끔은 제대로 피하고 넘어갈 줄 알아야 한다. 극복하지 못한 상처가 있다고 해서 실패한 삶은 아니니까.
- 미아Mia, 『바다로 퇴근하겠습니다』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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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라는 것은 ‘스트레스를 받는구나’를 인식하는 순간 이때다 하고 본격적으로 그 실체를 드러내는데, 피하려 해도 결국 그것을 입 밖으로 뱉을 수밖에 없는 상황은 발생한다. 재미있는 점은 그때부터 스트레스의 원인을 없애기 위한 작업에 속도가 더 붙는다는 사실이다. 인지된 걸림돌은 제거해야만 속이 후련한 습성 때문인지 대부분의 경우에 그렇다.

 

나는 흔히 환자들에게 오랫동안 지속되는 한 가지 스트레스원에 사람이 마냥 무방비하게 노출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곰곰이 숙고해보라고 조언한다. 그것은 바로 (직장에서 겪는 고충이나 부부 간의 끊임없는 불화 등에도 불구하고) 부담을 덜기 위해 스스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중략) 물론 이런 것들이 문제 자체를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자신이 스트레스에 무방비하게 노출되어 있다는 느낌에서 벗어나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만성적인 스트레스의 특징 및 그로부터 유발되는 해로운 결과도 사라질 수 있다.
- 마즈다 아들리, 『도시에 산다는 것에 대하여』 33-34쪽

 

『도시에 산다는 것에 대하여』의 저자는 스트레스에도 유해한 것과 유익한 것이 있다고 말한다. 일시적인 일정 수준의 스트레스는 일의 효율을 높이고 완수했을 때의 쾌감을 더 크게 만드는데, 문제는 만성일 경우다. 스트레스를 방치하지 말아야 하는 것인데, 그 전환의 시점을 알아채기가 어디 쉬운가. 스트레스를 받고 풀고 하면서 신경이 팽팽하게 당겨졌다가 느슨해 지기를 반복하는데 그러다 마모되어 이것이 툭 끊어지면 어떻게 되는 걸까. 망가지기 전에 미리 낌새를 챌 수는 없는 걸까. 이런. 스트레스 관리에 대해 생각하느라 스트레스 받는 이런 전개라니. 정신줄은 이러다 끊어지는 것이 아닐까.

 

‘미안합니다만 이제 더는 쓸 마음이 없습니다. 어딘가에 오롯이 쏟을 만한 마음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방어기제가 작동하는 것인지, 몸과 마음이 불안정한 상황이 이어지다 보면 흔히 얘기하는 영혼 없는 상태가 되고, 어느새 저런 말을 중얼거리면서 인공지능이 사람을 대체한다는 이 시대에 발맞춰 가게 되는 거다. (물론 아무말이다. 이런 나의 기계화는 4차산업혁명과는 1도 연관이 없다.)

 

자연스럽게 넘어지는 데도 익숙해진다. 이쯤 깨져보면 아무리 쿠크다스 멘탈이었던 사람도, 강철까지는 아니더라도 강화유리 멘탈 정도는 갖게 된다. 그리고 한 번이라도 서핑을 해본 사람은 느낄 수 있겠지만 넘어지는 것이 실은 아무것도 아님을 닫게 된다. 그래, 나는 이만큼 넘어져 보고서야 깨달았다. 몇 번 넘어진다고 해서 지구가 무너지는 것이 아님을. 서핑이 끝나는 것이 아님을.
-미아Mia, 『바다로 퇴근하겠습니다』 157쪽

 

말을 쏟아낸다고 해서 딱히 해결되는 것은 없지만 말이라도 하고 나니 시원하다. 글로 말하는 것도 꽤 시원하다. 이번에는 넘어진 김에 조금만 더 앉았다 누웠다 그 다음에 생각이라는 것을 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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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박형욱(도서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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