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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책에 쓰지 말 것

영화 <논-픽션> 우리는 이중의 삶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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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관계로 보자면 막장이다. 속고 속이는 관계다. 그러나 영화 속 그들이 나누는 대화가 하도 진지해서 얽히고설킨 관계망은 대화 속으로 편입되어 버린다. (2019. 05.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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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논픽션>의 포스터

 

 

칸 영화제에서 우리 영화 <기생충>의 수상으로 마음 들뜬 나날, 프랑스 영화 <논-픽션>을 생각한다. 프랑스적인 것, 내게 ‘프랑스적인 것’은 ‘말과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미지나 스토리텔링이 아니다. 파리에 갔을 때 들렀던 카페마다 음악을 들을 수 없었다. 파리지앵들은 서로의 이야기를 듣느라 음악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좋은 시간을 같이 보내기 위한 대화가 아니라, ‘당신의 의견’을 듣고 말겠다는 것처럼. 그래서일까. 끝없이 이야기하느라 한 카페에서 오래 머물렀으며, 우리나라처럼 2차 3차 장소를 옮겨가며 새로운 분위기를 애써 주입하지 않는 듯했다.
 
영화 <논-픽션>은 대사로 이루어졌다. 음악도 없다. 엔딩 신에서만 음악이 흘렀다. 그들은 식당, 거실, 바, 서점, 사무실은 물론이고 어디에서나 열심히 토론한다. 침실에서도 예외는 없다. 함께 자고 일어난 은밀한 사랑의 커플은 아침 햇살에 속옷을 주워 입으면서도 일 얘기로 언쟁하는 느낌마저 든다. 서로의 고집을 꺾지 않는, 눈빛은 사랑을 주고받으나 대화는 그럴 수 없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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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논픽션>의 한 장면
 

종이책과 전자책, 인터넷과 트위터, 평론가와 블로거, 작가의 사생활과 픽션, 그러니까 출판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인물들을 보자. 주인공 ‘알랭’은 명성 있는 출판사 편집장이며 급변하는 디지털 시스템 속에서 책의 향방을 고민한다. 알랭의 연인이자 디지털사업 담당자인 ‘로르’는 모든 걸 전자책으로 만들고 앱으로 읽자고 주장하는 당찬 젊은이다. 작가 ‘레오나르’는 사생활을 소설로 작업하는 데 일가견이 있으며, 편집장 알랭이 신작 원고의 출간 일정을 어떻게 잡을지 궁금한, 알랭의 아내와 연인 사이다. 알랭의 아내인 영화배우 ‘셀레나’는 인기드라마 시리즈의 경찰 역에 지쳐 있으나 그만둘 방법을 찾지 못하며 연인인 레오나르의 책 출간을 위해 남편에게 은근슬쩍 힘을 가하고 있다.
 
연애 관계로 보자면 막장이다. 속고 속이는 관계다. 그러나 영화 속 그들이 나누는 대화가 하도 진지해서 얽히고설킨 관계망은 대화 속으로 편입되어 버린다. 감독 올리비에 아사야스는 예술과 삶, 중년과 청춘의 내러티브로 인상적인 걸작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와 독특한 심리극 <퍼스널 쇼퍼>의 연출자. 그가 꽤 오래 전부터 전 세계 출판인의 고민인 책의 디지털화를 영화 속에 녹이는 것이 흥미로워서 귀를 쫑긋 세웠다(기보다는 자막을 뚫어지게 읽어냈다).

 

사실 새로운 이야기는 하나도 없었다. 결론도 모호한 토론이다. 이미 출판사, 작가, 독자 모두 되돌아갈 수 없는, 변화의 물결을 헤쳐나가고 있는데, 왜 이런 주제를 무겁게 붙들고 있는 것일까. 다행이라면 어설픈 대사는 없다는 것이다. 마치 우리 출판사에서 벌어지는 토론에 참여하고 있는 기시감이 든다고나 할까.
 
그렇다면 영화 <논-픽션>은 다시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종이책의 위기를, 전자책의 미래를, 작가의 윤리를, 독자의 발견을 이야기하려고 하는가. 원제에 힌트가 있다. ‘Doubles vies’ 이중의 삶이다. 종이책의 가치를 옹호한들 이미 우리는 디지털 세계에 살고 있으며, 어느 때보다 글쓰는 사람은 많아졌으나 작가의 윤리는 명쾌하지 않다. 자본에 저항하는 책도 자본의 투자로 출간된다. 이중의 세계에 모두 발을 딛고 살고 있다. 지향하는 삶과 현실의 삶은 이렇게 겹쳐 있다. 논픽션, 현실은 이중의 세계이다.
 
작가 레오나르는 진보정치인의 비서관인 아내 ‘발레리’에게 묻는다. 신뢰하고 존경하는 정치인이 성매매 혐의 범죄에 연루된 데 실망하는 사람에게 “당신은 은폐나 위선이 있다고 믿어?” 말이라굽쇼. 자신의 연애도 소설 작품에도 은폐와 위선이 있는데, 그리고 아내는 그걸 눈치채고 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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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논픽션>의 한장면

 

 

레오나르의 신작 <마침표>에서 자신의 연애가 성적인 묘사와 함께 적나라하게 옮겨진 것에 모멸감을 느낀 셀레나는 이별을 통보한다. “이건 책으로 쓰지 마”라고. 과연 작가는 이 이별을 작품 속에 담지 않을까. 픽션으로 쓰게 될 것이다.

 

영화 <논-픽션>에는 주목할 사건도, 아름다운 영상도 없다. 책의 미래에 대한 토론만 있는 듯하지만 감독의 의도대로 모든 걸 의심하게 된다. 불임이었던 레오나르와 아내 발레리가 임신 사실을 알고 반응한다. “기적이네?” 레오나르의 말에 “아니 이게 현실!”이라고 아내는 답한다. 나는 그 태아가 레오나르의 유전자일까 의심하게 된다. 논픽션의 세계에서 임신은 그들의 기적이지만 진실은 알 수 없다.
 
우리는 이중의 삶을 살아간다. 픽션에서는 지향점을 선명하게 밝힐 수 있지만 논픽션에서는 그 겹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활달하게 논쟁하고 유쾌하게 웃는 영화인 줄 알았는데, 돌아보니 서늘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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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은숙(마음산책 대표)

<마음산책> 대표. 출판 편집자로 살 수밖에 없다고, 그런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일주일에 두세 번 영화관에서 마음을 세탁한다. 사소한 일에 감탄사 연발하여 ‘감동천하’란 별명을 얻었다. 몇 차례 예외를 빼고는 홀로 극장을 찾는다. 책 만들고 읽고 어루만지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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